오기는 그날 내 앞까지의 아이들이 석대를 고발하는 태도 때문에생긴 것이었다. 석대의 나쁜 짓을 까발리고 들춰내는 데 가장 열성적이고 공격적인 아이들은 대개 두 부류였다. 하나는 간절히 석대의 총애를 받기 원했으나 이런저런 까닭으로 끝내는 실패한 부류였고, 다른 하나는 그날 아침까지도 석대 곁에 붙어 그 숱한 나쁜 짓에 그의손발 노릇을 하던 부류였다. 한 인간이 회개하는 데 꼭 긴 세월이 필요한 것은 아니며, 백정도 칼을 버리면 부처가 될 수 있다고도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느닷없는 그들의 정의감이 미덥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갑작스레 개종자(改宗者)나 극적인 전향인사(轉向人士)는 믿지 못하고 있다. 특히 그들이 남 앞에 나서서 설쳐대면 설쳐댈수록, 내가굳이 석대를 고발하려 들면 거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날 끝내 입을 다문 것은 아마도 그런 아이들에 대한 반발로 오기가 생긴때문이었다. 내 눈에는 그 애들이 석대가 쓰러진 걸 보고서야 덤벼들어 등을 밟아대는 교활하고도 비열한 변절자로밖에 비춰지지 않았다.‐------------------------------121~122쬐40년이나 지난 작품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비겁하다석대가 나타나길 기다리는 사람석대 옆에 붙어있는 사람 우린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