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왕과 왕세자 - 왕관을 쓴 자의 무게 민속원 아르케북스 86
육수화 지음 / 민속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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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이란 음침하면서도 화려하고 다소 모순적이다. 우리가 기존에 알고있는 궁중이라면 화려해보아지만 결코 화려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왕이나 세자나 거 되게 피곤하게 사는 군하고 느꼈다..

조선이 오아도정치를 내세운 군주독재정치이다보니 왕에게 정사를 돌보는 업무는 이만저만이 아니다.아침에 일어나 정조처럼 활쏘기라도 않으면 운동할 시간도 없다.하루 세번의 경연 ,밤열시넘도록 상소를 읽어야하는 빡빡함...

부부관계도 당색에 따른 정략결혼인만큼 왕비와의 애틋한 정따윈 애초부터 없었다.

왕도 왕이지만  왕이되기위한 왕세자, 이건 보통 피곤한 자리가 아니다. 적장자면 다행이지만 적장자가 아니면 왕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왕실 내의 암투와 조정대신들의 정쟁 속에서 눈치를 보며 줄타기를 해야하는 데 광해군이 소년시절부터 궁중의 암투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실록을 보면 나타난다.

권력투쟁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왕세자가 받아야 하는 그 교육들은 철이 들기 전에 자신의 위치가 보통이 아님을 이미 알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건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다. 왕세자의 자리에서 국왕의 자리로 오르지 못하거나 하면 그냥 죽음으로 내몰릴 수도 있는 극과 극의 자리이다.

사도세자가 죽은 건 그가 소론 즉 아버지영조의 반대파에게 기울었던 까닭이다.즉 군주였던 아비에게 아들이 정적이 된것이다.
한편으로 왕자의 중요성을 부각하여 조선의 왕세자의 교육은 임신을 하기 전 태교와 몸가짐을 통해서 왕세자를 낳기 전 부모의 마음가짐부터 올바르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태어난 왕세자이지만 그의 앞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끝임없는 정사와 대신들간의 권력다툼 , 막중한 의무 밖에 없었다. 오직 성군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다른 누구보다 더 고된 일생을 살다가 간 것이다.
정조가 어느날 갑자기 즉사한 것도 과로사였다는 의심이 짙다.혹은 반대파에 의한 독살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과 권력 유지를 위해 뒤에서 평생걸쳐 몇십년, 아니 조선왕조 오백년 동안 이런 노력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왕권유지만을 위한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럴듯한 성군은 세종이나 정조 몇 없는 걸보면. .이런 서연과 경연 등 유교적인 교육이 얼마나 의미있는지 미지수다.결국 백성을 위한다는 기치아래 백성은 없고 권력의 정점에 선 사대부,왕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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