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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 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정태남의 로마 역사 기행
정태남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9월
평점 :
작자는 건축학도로 로마에 거주하는 보헤미안이다.이 책외에도 유럽의 문화와 역사를 다룬 책들을 여러권 냈는데 주관심은 건축인 듯하다.전공이 건축이니만큼 다소 어렵고 생소한 설명도 있다. 건축에 내가 문외한이니만큼 하지만 분명한 건 고대 로마건축들이 참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이천년 전의 가도와 기초초석을 그대로 쓰다니..이런 나라는 지구상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천년 제국도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다.그들도 시작은 테베레강변의 일곱언덕에서부터 나무오두막부터 출발했다.국력이 커지며 공공건축물들을 내실을 기해 벽돌이 아닌 대리석화강암으로 지은 것이다.
지금 대다수남은 로마유적은 공화정의 벽돌의 로마가 아닌 제정시대의 대리석의 로마 유적이다.그전의 유적은 내내 벽돌이나 나무로 지어져 수명이 길지않아 별로 남지 않았나보다.그러나 공화정시대의 유적들도 주춧돌만 남은 터라도 부지를 다진 흔적이 엿보인다.적어도 부실공사를 하지않았다는 얘기다.
특이한 건 로마사람들이 자손만대의 용도를 생각하고 내구성을 중시했다는 것이다.지금의 미국국회의사당의 모델이 된 판테옹을 예로 들면 이천년 전 사람들이 지금같은 설계공학을 알고 있었는지 의심스럽지만 건물을 뜯어보니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아마 경험으로 습득한 지식이리라.
로마포룸의 공공건축들의 기초초석들을 보면 그들의 토목공사수준이 보통아님을 느낄 수 있다. 외관을 치장하는 심미관은 둘째고 거리를 정확이 계산하여 홍수나 지진까지 대비해서 부지를 다지고 사방에 튼튼한 벽을 쌓아 시작한 걸보면 그들의 멀리 보는 안목에 탄복할 뿐이다.시간과 공간적인 차이를 넘어 현대에도 적용될 수 있으니..
거기에 섬세한 조각과 부조는 그 시대의 역사를 전한다.하드리아누스황제의 개선문이며 여러 분수의 조각들이 이천년전에 해부학을 알고 있었나싶을만큼 섬세하다...
게다가 사비를 들여 공공도로 포장하며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공익정신이란 ..현대에도 대한민국에 이런 사람이 드문데..그들의 멀리 내다보는 안목이 부러울 따름이다.이래서 포에니전쟁이 승리할 수 있었나 보다.재산으을 군비로 헌납하고 아들을 전장으로 보낸 로마 시민들덕에 제국은 위기를 넘겼다고 한다.
그당시 시민들의 엔터테인먼트를 위해 콜롯세움을 지은 황제들은 빵과 서커스만을 염두에 두고 그 장대한 건축물을 이용했을까?얼마나 튼튼하게 지었는지 근세까지 석재를 뜯어다 건축자재로 썼다고 한다.
수천년전의 도시개발계휙이며..우리나라는 일제시대나 되어서야 도로정비를 시작했건만 그들은 이천년 전에 도로포장과 상하수도시설을 계휙하여 공공위생에도 신경썼다.로마뿐 아니라 이태리 곳곳에 그들이 남긴 수도교를 보라. 수십키로 떨어진 곳의 수원에서 물을 끌어오면서 시멘트도 없이 이런 정교한 건축물을 어떻게 지었을까?쇠로 조임새를 엮어 돌을 잇다니...툭하면 댐건설 관리나 치수사업하나도 제대로 못해서 물난리나고 상수도오염때문에 시끄러운 현대의 우리가 부끄러울 뿐이다...
확실히 대제국을 경영한 이들은 사고가 다르다. 적어도 길게 내다보고 계휙하지 않았으면 오늘날도 그 초석들이 남아있지 못햇을 것이다.미국사람들처럼 장대하기도 하지만 기초나 내구성을 중시하는 건 현대관점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부실공사로 백화점이 붕괴하는 전력이 있는 대한민국은 이런 로마인들의 정신을 좀 배웠으면 한다.
작자가 찍은 로마 건축물들의 사진들이 휼륭해서 로마 여행을 다녀온 듯한 착각이 든다. 넥타이를 맨 보헤미안인 작자가 찍은 사진이 정말 매력적이다.야경의 로마 콜롯세움은 독자를 훌쩍 이천년전으로 데려다주는 듯하다....왜 그가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로마에 남아 거주하는지 이해할 만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