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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한시 - 사랑의 예외적 순간을 붙잡다
이우성 지음, 원주용 옮김, 미우 그림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한시는 흔히 따분하다고 여긴다. 끝없이 반복되는 충효의 유교적 논리 ..나도 그렇게 여겼다. 하지만 이책은 그 옛날 선인들도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고 그들의 애틋한 감정을 시로 남겼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어쩌면 요즘 신세대같이 직선적인 표현보다 더 은유적이고 온화한 듯한 시들이 더 애로틱하고 낭만 적인 것이 아닐까?
고대의 시들이 더 자유분방하고 감각적인 것인 아마 유교적 통치관념이 정착되기전이라 그런 듯 싶다. 먼저 설요의 시를 보자.
예쁜 풀의 꽃다움이여 향기로움을 생각하나니 아아, 어찌하리, 이 젊은 청춘을 ...이시는 당나라에도 알려진 시라는 데 청춘의 애끓음을 나타내고 있다.7세기 여승 이었던 그 녀는 열다섯에 아버지를 여의고 출가 6년 수행후에도 애끊는 감정을 버릴 수 없었다.21세에 반속요를 지으며 환속하여 곽원진의 연인으로 지냈다는 얘기도 전해지는데 연인인 곽원진의 출현에 설레이는 마음을 엮은 시는 솜사탕 같은 연애 편지로 느껴진다.
남정네들도 여인의 마음을 빌어 사랑을 노래했다.
임제의 無語別서 보면 이별의 슬픔을 애잔하게 표현했는데 결구의 '이화월(梨花月)'이란 표현은 애상적인 분위기를 만들며,임과 이별한 주인공의 슬픈 심정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서글픈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킨다.여기서 작자는 일반 적 사대부들과 달리 그의 자유분방한 성격과 낭만주의적 사고를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남녀간의 사랑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간직할 수밖에 없던 시대상을 그려낸다.그는 조선 중기의 뛰어난 시인으로서 시풍이 호방하고 명쾌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여인의 섬세한 감정표현에도 능했다.
이달의 錦帶曲贈孤竹使君 ;비단띠 그대에게 선물하고 싶지만-을 보자 .
서얼 출신의 가정교사인 그에게도 정인이 있었나보다 . 고죽 최경창이 영암군수로 있을때 방문한 이 달이 관기에게 자주색 치마를 사주고 싶었으나 돈이 없어 이 시를 지었다한다.이 시를 접한 최경창은 "손곡의 시는 한 자가 천금이니 감히 비용을 아끼랴"하며 한 글자에 비단 세필 값을 쳐 주었다한다. 예나 지금이나 남자는 애인에게 돈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드나보다.
그의 제자인 허난설헌의 시는 청아하면서도 외로움이 묻어난다. 그녀의 연밥따는 아가씨(采蓮曲) 에서는 그나마 밝은 사춘기소녀같은 감성이 남아있었다.드물게 그녀의 시가 밝다.
조선 시대 남녀차별이 뚜렷한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마음을 표현하기는 쉽지 않았다. 초가을 맑은 하늘이 파랄 때 연잎 사이로 꽃이 우거진 곳에 혼자서 타는 작은 쪽배 매어두고 연인을 기다리는 아가씨는 막상 연인이 보이지만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하고 사랑의 정이담긴 연밥만 따서 슬쩍 던져두고는 달아난다. 혹시 누가 그걸 보았을까 혼자서 반나절 동안 혼자 부끄러워한다는 마지막 절에서 처녀의 심정이 잘 드러난다. 여성이 제한 된 공간에 갇혀살던 조선 시대 사랑을 고백한 뒤 부끄러워하는 아가씨의 수줍음과 서정적 자아의 기쁨을 은유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하지만 다른 시에서는 명나라사신들이 선계의 시라고 극찬했더라도 도교적이면서도 현실도피적인 여인의 외로움과 섬세한 감정이 여실히 표현된다. 다른 이에게 주려거든 차라리 버리세요雜詩 보면 바람둥이인 남편을 못미더워하고 불안한 아내의 마음이 드러난다.실제로 그녀의 결혼생활은 불우했다.
사대부들과 달리 이 책에는 기녀시인들이 쓴 시가 많다. 매창 .이옥봉등등..그러나 가장 먼짓 한시의 여류시인은 황진이다 .그녀의 시들을 보면 정말 조선시대의 여인인가 싶을 정도로 자신감에 차고 활기차다.
사랑에 빠진 마음을 알고 그를 받아들이는 정말 멋진 여인이랄밖에..그런 그녀에게도 외로움이 있었다.
詠半月 반달을 노래함을 보자 ,맨 마지막구가 여자의 외로움-자신을 암시한다고 생각되지않나요? 기녀라는 신분에 매여 결국 남정네들에게 술과 웃음을 팔아야하는 처지..결국 연인들은 떠나가고 혼자 남은 명기..
또한 冬之永夜를 보면 동짓달의 차갑고 깜깜한 밤은 애인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이라고나 할까........
따뜻한 이불은 미래에 다가올 임과의 행복한 밤을 기대하는 희망시이다. 지금은 비록 동짓달처럼 막막한 시간이지만 이 시간을 잘라 간직해 두었다가 님과 함께 할 봄밤이 되면 시간을 더 잡아끌기위해 이어 붙이겠다는 사랑시이다.그녀의 애틋한 그리움이 동짓달 춥고 기나긴 밤과 따뜻한 봄날 아쉬운 밤을 대조하면서 사랑하는 마음을 잘 드러낸 아름다운 시이다.
한시라고 딱딱한 유교의 덕목만 있지않았다는 걸 새삼 발견한다.그 옛날에도 고대인들이 지금같은 감정이 있었고 또 표현도 맛갈스럽게 했었다.아마 이 시들은 지금으로치면 TOP 10에드는 최신유행가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