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 평전 - 조선 후기 민족 최고의 실천적 학자
박석무 지음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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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그는 대단한 천재임이 틀림없다.경세유표부터 목민심서에 이르기까지,.토지제도를 개혁하여 유민을 안정시킨다는건 그시대 어느통치자도 생각지 못했다.대개의 통치자가 사욕을 채우거나 국고만을 생각하여 민중에 대한 수탈만을 추구한 것에 비하면 그는 지배층에서도 질적으로 다른 인물임이 틀림없다.
그런 그가 왜 카톨릭신자가 되어 정계에서 추방됐을까? 먼저 그의 출신을 생각해봐야한다.그의 아버지는 남인이어서 그도 출신상의 약점으로 불이익을 겪었다.
그의 실학사상은 조선후기 양반들이 군역을 기피함으로 인한 조세수입의 궁핍과 부역의 부재로 나타난 국가재정및 존립의 위기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는 여기서 부와 권력을 독점한 노론양반들로부터 전답 등의 농토는 실제로 농사를 짓는 농민들에게 부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양반권문세가들의 분노를 샀다.
정약용이 정조와 결합한 것은 이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정조의 인성을 믿은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조선의 실정때문이었다.
정조사후 조선의 통치기반은 세도정치로 몰락해 식민지화된다. 아쉬운 점이라면 그토록 천재적인 두뇌로 백성을 생각한 정책들이 정조의 군주독재의 수단으로 전략한 것이 애석하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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