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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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이  명장이었지만  조선왕조의 정치란 음침하면서도 다소 모순적이다. 우리가 기존에 알고있는 왕들이라면 화려해보이지만 결코 화려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왕이나 신료들이나 권력다툼앞에서 거 되게 피곤하게 사는 군하고 느꼈다..

조선이 왕도정치를 내세운 군주독재정치이다보니 왕에게  신료란 쓰고버리고마는  존재이고  백성은  더한 불쏘시개같은  존재였다.충무공도  예외가  아니었다.  유난히  의심많은  선조밑에서  고단한  병졸들을  인솔해  전쟁을  이끄는  장수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아침에 일어나 잘때까지  심지어  활을  다듬는  일까지  할만큼  개인적시간도 없다.그리고  고문의  후유증으로 ,밤늦도록 잠들지못하는  고통을 읽어보라...

벼슬관계도 당색에 따른 안배인만큼 동인이 몰락한  이래  든든한 배경 따윈 애초부터 없었다.

왕도 왕이지만  그아래서  눈치보고  줄서야하는  권력다툼, 이건 보통 피곤한 일이 아니다. 세도가의  뒷받침이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도않은  이순신은  미관말직부터 통제사에 오르기 까지 조정내의 암투와 조정대신들의 정쟁 속에서 눈치를 보며 줄타기를 해야하는 데  미관말직시절부터 조정의 암투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실록을 보면 나타난다.

권력투쟁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질투와  의심에  눈먼  군주에게 자신의 위치가 목숨마저  위태롭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건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다. 승전하지 못하거나 하면 그냥 죽음으로 내몰릴 수도 있는 극과 극의 자리이다.

명장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어이없이  죽은 건 그가 선조와 반대파에게  멀려  숙청될것임을  예견했다는  학설이 있다.그만큼  선조는  참소하는  이들에게  기울었던 까닭이다.즉 군주였던 아비에게 아들이 정적이 된것이다.
한편으로 국방과  무관출신인  장군의 중요성을 부각되는  것을  꺼린   조선에서 그의 앞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끝임없는 국왕의  견제와 대신들간의 권력다툼 , 막중한  군사들에대한 의무 밖에 없었다. 오직 임난의  폐해속에  승전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다른 누구보다 더 고된 일생을 살다가 간 것이다.
충무공이  갑자기 전사한 것도 자살이였다는 의심이 짙다.혹은 반대파에 의한 숙청을  대비해  은신했거나..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과 권력 유지를 위해 뒤에서 , 아니 조선왕조 오백년 동안   신권을  견제하려는  이런 비열한  노력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왕권유지만을 위한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럴듯한 충효를  내세워 민초들을  전란에  뛰어들라고 부려먹고 군주란  인간은  의병장들까지   숙청하고  그뒤의  조선이 평탄했을지는    미지수다.결국 백성을 위한다는 기치아래 백성은 없고 권력의 정점에 선 사람은  , 오직 왕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인간적 충무공의 고뇌가 진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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