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알베르 카뮈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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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적 부조리에 던져진 나!’

 

태어나는 것도 죽음도 정해진 것이 없다. 부모를 결정할 수도, 나라를 선택할 수도 없다. 그냥 세상에 던져졌다. 나는! 그것은 어쩌면 우주적 부조리라 할만하다. ‘나’의 존재에 대해 ‘나’의 선택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의 장난인가? 섭리인가? 사르트르의 존재론은 ‘신’을 부정한 상태에서 출발한다. ‘일자’인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나’의 존재를 말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이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코믹 영화를 보고, 여자와 수영을 즐겼다는 것만으로 검사는 그를 패륜아로 몰아간다. 배심원도 유죄를 결정한다. ‘패륜’이라는 개념은 사회적 개념으로, 법 아래에 있는 것이다. 법이란 인간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 낸 개념이고, 그것은 권력자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란 주장이 일반적이다. 그것은 사회적 부조리다. 재판의 과정이 모두 그러하다. 검사는 그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보지 않고 계획살인으로 보고 논거를 펼친다. 여기서 변호사는 무력하기만 하다. 피의자의 의견을 제대로 듣지도, 말하게 하지도 않는다. 그의 주장은 반영되지 않는다. 수사도, 기소도, 재판 과정도 모두 부조리하다. 언뜻 보기에는 잘 만들어진 시스템인 듯 보이지만 당사자가 되어보면 전혀 다른 세상으로 느껴진다. 분명 정당방위로 해석되어야 할 상황은 계획살인이 되어버린다. 그걸 맞다고,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사회다. 그래야 유지된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러한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 또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짧았던 장례식도 내 의지가 아니었다. 소위 어른들의 몫이었다. 장례 후도 마찬가지다. 내 의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사회가 마련해 둔 절차대로 흘러갈 뿐이었다. 하나도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사람들은 장남인 나의 얼굴을 이상하게 쳐다보곤 했다. 나는 뫼르소처럼 패륜아인가?

 

사회는 ‘나’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제재한다. 금지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나’를 제대로 보호해주지 않는다. 나를 대변해주지 않는다. 그렇게 하려면 오히려 엄청난 대가를 요구한다. 역시 부조리하다. 나는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사회를 거부하는 것이 맞는가? 사회는 그것을 금지한다. 그럼 나의 선택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여기서 우주적부조리, 사회적부조리 에 던져진 ‘나’는 다른 작품에서도 엿보인다.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가 그것이다. 여기에서 ‘바틀비’는 ‘안 하는 편을 선택’함으로써 사회적 부조리에 대항한다. 그의 선택은 주변을 당황시키고, 두려움에 빠지게 만들어 마침내 그를 감옥으로 보낸다. 조금 더 말하는 것을 거부하는 뫼르소와 닮은꼴이다. 이처럼 ‘존재’는 사회적 부조리에 대항하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한다. 그것이 죽음일지라도 그러하다. 그것의 가치 여부에 대해 말하기보다 그것을 추구하는 삶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작가의 외침이 처절하게 느껴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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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동물은 섹스 후 우울해진다
김나연 지음 / 일레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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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관계는 외롭다.’

 

책을 받고 한참 쳐다봤다. ‘이 폰트는 뭐지?’, ‘디자이너가 누굴까?’ 등등... 많은 생각 - 참 몹쓸 직업병이다 - 을 했다. 뭐 하나 마음에 드는 점이 없는 책은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 읽고 난 지금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엉망진창으로”(p.260)가 딱 들어맞는 느낌이라면 너무한가? 인기 있는, – 손이 가는 디자인 – 소위 그럴듯한 디자인이 아닌 파격적인 선택이라 생각된다. 여전히 수목적 사고에서 벗어나기란 참 힘들다. 마찬가지로 다 읽은 후에 제목을 다시 생각해 보니, “동물”을 “인간”으로 바꾸고, “섹스”를 “인간관계”로 생각하면 왜 이 제목이 어울리는지 이해가 된다. 작가의 말처럼 타자를 알아가도 ‘나’는 외롭다. 그게 단순한 관계이든 사랑이든 말이다. 적은 사람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앞에서는 웃고 떠들고 세상 친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이 ‘나’는 혼자다. 누가 말하지 않았던가, 네가 내 옆에 있어도 나는 네가 그립다고...

 

이 책은 에세이로 – 사실 에세이를 좀 버거워 한다. - 보인다. 소설 아닌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작가의 경험이 상당 부분 녹아있기에 소설이라 보기에 무리가 있어 보인다. 작가의 어릴 적부터 20대가 담겨있다고 한다. 누구 손에 자랐는지, 부모는 어떠한지, 친구 관계는 어땠는지 등등 작가의 성장 흔적이 곳곳에 녹아있다. 읽으면서 내 경우를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쓸 내용이 많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내용이 너무 무거워지지나 않을까 싶어 상상을 그만 두었다. 모르긴 몰라도 이렇게 책으로 나오기는 어려울 테니까. 작가는 자신의 소망대로 사유하는 작가가 된 듯하다. 곳곳에 철학적 사유의 흔적이 많이 느껴진다. 성장 배경이 그를 그렇게 이끌었을까? 생존을 위한 고독한 투쟁의 결과물일까? 많은 글쓰기와 사유가 빚어낸 멋드러진 작품이 탄생했구나 싶었다. 신간인 줄 알았는데 개정판이더라. 무려 8년 전에 첫 출판이 있었던... 그것도 신선했다!

 

인간은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고 한다(사르트르).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니기에 부모를 선택할 수도, 나라를 고를 수도 없이 그저 태어나 살기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산업화 이후에 소위 사회화를 거치면서 인간은 나름의 질서를 만들고 세상이, 아니 권력자가 말하는 대로 안전(?)을 보장받으며 사회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들뢰즈로 말하자면 영토화된 세계다. 물론 그 속에서 끊임없는 재영토화가 일어난다고 하지만 그걸 알아채며 살아가는 이가 얼마나 될까? 작가는 그렇게 살지 말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렇게 맨몸으로 던져진 세상을 홀로 힘들고 외롭게 살아온 작가는 자신의 생을 돌아보면 끊임없이 남겨온 문장들을 정리해 독립출판을 이뤘다. 정말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생의 일면을 드러낸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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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를 전하며 - 헤르만 헤세 x 빈센트 반 고흐 ㅣ 세계문화전집 1
헤르만 헤세.빈센트 반 고흐 지음, 홍선기 옮김 / 모티브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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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안부는 어떻게 기억될까?’

그림과 시가 어우러진 한 편의 논문(학술지)! 마지막 장을 덮으며 느낀 것이다. ‘역은 이’는 단순히 두 거장의 작품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지 않다. 그 속에서 억지로 의미를 찾으려 하고 있지도 않다. 만난 적도 없고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은 두 거장에 대해 그들의 삶을 조망하고 작품을 해석하고, 수많은 서신들을 분석했다. 그 속에서 그는 “안부”라는 공통점을 찾아낸 것으로 판단된다. 그것 말고도 두 거장의 삶에 공통된 점은 더 있다. 아버지가 신학자였다는 점, 신학을 공부하다 실패했다는 점, 이웃들에게 외면당했다는 점,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았다는 점, 자살을 시도했다는 점 등이다. 그리고 많은 편지를 썼다는 점과 많은 그림을 그렸다는 점도 그러하다.

어릴 적 ‘반 고흐’의 전기를 읽고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의 싹을 틔웠더랬다. 그것이 무엇인지, 빠른 길은 무엇인지, 그 결과는 어떠할지 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던 때가 있었다. 그 후로 고흐의 작품에 빠졌고 그림을 그릴 줄은 몰랐지만 미술 시간이 적어도 지루하지는 않았다. 고흐 편을 보면서 내내 어릴 적 생각에 머물러 있었던 이유라면 그게 맞겠다. 커서는 ‘헤세’의 작품에 눈을 떴다. 그의 문장이 얼마나 깊은 의미를 가지는지 더듬거리며 찾아 내려갔다. 그것이 어둠일지라도 두렵지 않았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어둠이 아니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그의 문장은 ‘희망’을 말한다고 보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더 확신하게 된다. 그의 안부가 전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임을 ‘역은 이’도 말하고 있다.

예전에는 생각지 못한 부분도 있다. ‘고갱’에 대해서다. 그는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른 날 그의 곁을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이 부분에 대한 그의 심경이나 생각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마찬가지로 고흐의 동생인 ‘테오’와 헤세의 아들 ‘마르틴’에 대해서도 동일한 궁금증이 생겼다. 그들은 두 거장의 죽음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간직했을까? ‘역은 이’의 말처럼 자신의 - 테오의 안부가 결국 두 고흐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 눈물이 흘렀다 - 생각했을까? 혹은 마르틴이 부친의 안부에 희망을 보며 살았을까? 고갱은 모르겠지만 다른 두 사람은 죽음 이후 약 6개월 후 사망했다고 보면 이런 궁금증이 생기는 것이 무리일까? 안부가 고흐에게는 ‘빚’으로, 헤세에게는 ‘숨’으로 작용했다고(p.336) ‘역은 이’는 말한다. 부정하고 싶어졌다. 헤세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고흐에게는 너무 가혹하다고 느껴졌기에... 두 형제가 나눈 안부가 결국 두 형제를 죽였다는(p.321) 표현은 너무 슬펐다! 너무 가혹했다!

어디 어두운 곳에 보관된 옛 편지들을 꺼내어 다시 보고 싶어졌다. 보냈다 돌려받은 것들도 있고, 받은 것들도 있다. 그것들 속에 있는 안부는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졌다. 과연 내가 보낸 안부는 무엇이었을까? 받은 그것은 또 무엇이었을까? 이 관점으로 보관하고 있는 편지들을 다시 읽고 싶다.

이 책은 ‘모티브’출판사에서 펴낸 “세계 문화 전집”의 첫 작품이다(“문학” 아님 주의!). 그래서 “01”이고 더 의미가 깊다고 생각한다. 여태 이런 시도가 있었나 싶기도 하다. 두 거장의 삶을 하나의 주제로 통합하려는 시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데 공개되지 않은 헤세의 초기 작품과 많은 편지들이 작품의 가치를 더하고 있다. 두 거장 중 한 사람만 좋아한다 할지라도 이 작품을 볼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작품이 벌써 궁금하고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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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iness_j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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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여성들의 북클럽
마리 보스트윅 지음, 이윤정 옮김 / 정은문고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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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지는 삶이 아닌 살아가는 삶’을 위하여!'

 

북클럽 멤버는 모두 네 명으로, 버지니아 북부의 교외 마을 컨커디아에 집을 사서 이사한 33세 마거릿은 시나브로 알 수 없는 공허감을 느끼다 샬럿을 알게 되고, 그에게 북클럽을 제안했다가 “여성성의 신화”라는 작품으로 역제안을 받게 된다. 39세인 샬럿은 이제 막 컨커디아로 이사 왔는데 그는 정신과 상담을 받고 약물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23세인 빗시는 캐서린 그레이엄 부인의 말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으며, 41세인 비브는 아이 여섯의 간호사 출신 엄마이다.

 

작품의 배경은 1960년대로 이제 막 여성의 참정권이 보장된 직후의 미국이다. 사회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매우 열악했음을 작품 안에서도 느낄 수 있다. 가령 예를 들면 남편의 서명이 없이는 여성 스스로 예금 계좌를 개설할 수 없던 시대였다. 이러한 시대에 “여성성의 신화”라는 책은 사회적으로 - p.23에서 그레이엄 부인의 말 “논쟁의 여지도 많죠.” - 매우 큰 논쟁거리였을 것이다. 이들이 함께 읽은 책들은 그와 면면이 비슷한 책들이었다. “허랜드”, “자기만의 방”등이 그것이다. “여성성의 신화”는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꼽히고, “허랜드”는 본 책과 같이 여성문학으로 분류되지만 저자가 – 작가의 의도겠지만 - 극중 ‘샬럿’과 이름이 같다. “자기만의 방”은 뭐 말해 무엇하랴! 당대 논쟁적인 작품들을 읽으며 네 사람 모두 각자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사회가 변해서? 아니다. 마치 ‘데미안’에서처럼 각자 ‘자기’로서 살아가면서부터가 아니었을까? 자신이 꿈꾸던 바, 자신이 하고 싶던 것을 찾아서 스스로 노력하고 쟁취하려 첫 발을 내딛으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것이 누군가의 눈에는 무모하게 보일 수도 있겠고, 스스로도 힘든 결정이었을 테지만 그들의 여정이 충분히 가치가 있으며 박수 받을만하다는 견해를 부정할 독자는 아마 없으리라 생각된다.

 

흡인력 있는 문장과 자연스러운 사건 전개가 순식간에 책을 덮게 만들었다. 그 중 인상적인 장면을 하나 꼽으라면, 마거릿이 어머니를 회상하면서 쓴 p.328~329의 내용이다. “마거릿은 어머니가 왜 스스로 생을 마감했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을 오래전에 관두었다. ~~~ 그래, 바로 그거였다. 뭔가 더, 라는 건 살아 있다는, 자신의 존재가 다른 이들에게 파문을 일으키고, 단순히 숨만 쉬며 공간을 차지하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고유한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고 있음을 아는 것이었다.” 이 부분이 작가가 독자에게 하는 말 같아서 오래 남는다. 누군가의 말처럼 “살아지는 삶이 아닌 살아가는 삶” 그것이 아닐까 싶다.

 

작품을 읽으면서 내내 한국 사회가 떠올랐다. 사회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다수의 여성 노동자가 남성에 비해 임금 불균형을 겪고 있고, 작품에서와 같이 결혼과 임신, 출산 문제에 적잖은 차별을 경험하고 있으며 아직도 300명의 국회의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20%대에 불과하다. 그래도 가만 생각해보면 ‘나’ 어릴 적 어머니들도 작품 내 미국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았으리라. 어쩌면 더 나빴을 수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삶을 존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

 

이 책을 독서모임에 추천하고 싶다. 그 이유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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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조앤 @yozo_anne 이 모집한 서평단에 선정되어 정은문고 @jungeunbooks 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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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 에밀 싱클레어의 젊은 시절 이야기 ㅣ 비룡소 클래식 62
헤르만 헤세 지음, 정여울 옮김 / 비룡소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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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넘어서는 또 다른 나를 위하여‘

 

가지고 있는 ‘데미안’은 모두 네 권이다. 이번에 받은 비룡소(정여울)와 문학동네(안인희), 소담(김희상), 더스토리(이순학) 이다. 번역가 마다 다른 표현이 있기에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있어서 이렇게 소장하고 있다. 각각의 번역 차이를 두 곳 들어보겠다. 순서는 위와 같고 번역가로 구분한다. 먼저 첫 부분이다.

 

“나는 단지 나의 내면에서 솟구쳐 나오는 대로,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고 싶었을 뿐인데.

그것은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정여울)

 

“나는 오로지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에 따라 살아가려 했을 뿐이다. 그것이 어째서 그리도 어려웠을까?”(안인희)

 

“내 안에서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그대로 인생을 살아 보려고 했다.

그게 왜 이다지도 어려웠을까?“(김희상)

 

“나는 내 속에서 스스로 솟아나는 것,

바로 그것을 살아보려고 했다.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이순학)

 

다음으로, 싱클레어가 에바 부인을 만나 대화하는 부분이다.

 

“새롭게 태어나는 것은 항상 어려운 법이지요. 이미 알겠지만 새는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힘겹게 투쟁하니까요.”(정여울)

 

“태어나는 일은 언제나 어렵죠. 당신도 알죠. 새는 알에서 밖으로 나오려고 애쓴다는 걸.”(안인희)

 

“태어난다는 건 언제나 어려운 일이죠. 새가 알을 깨고 나오려 분투하는 걸 보세요.”(김희상)

 

“태어나는 것은 언제나 힘든 일이지요. 새도 알을 깨고 나오려면 온 힘을 다해야 한다는 걸 당신도 잘 알잖아요.”(이순학)

 

누구의 문장이 더 낫다고 평가할 능력이 없는 나로서는 그저 느끼는 수밖에 없고, 정여울 작가의 번역이 자연스럽고 따뜻하게 느껴졌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자칫 어렵고 복잡하게 다가올 작품의 무게에 반하기라도 하듯 선선한 문체가 마음을 포근히 감싸는 느낌이다.

 

번역본의 차이는 이쯤하기로 하고 내용을 보자면, 이번에 주목한 부분은 ‘자아’와 ‘자기’의 차이다. 싱클레어와 데미안, 이 두 캐릭터는 어찌 보면 동일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한 이가 싱클레어라면 데미안은 이미 알을 깨고 나온 이다. 인생에서 전력을 다해도 이런 경지를 느낄 때가 얼마나 있을까? 사회적 성취도 그 대상이 되려는지 모르겠지만 작가가 표현하는 부분은 내면이 아닐까 싶다. 충동과 욕망에 휘둘려 살아가는 ‘나’가 아닌 ‘나’! 세상의 질서와 법칙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나’가 아닌 ‘나’! 마치 이분법적 사고를 때려 부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니체가 이르고자 했던 ‘위버맨쉬’를 이룬 ‘나’!

 

‘데미안’을 읽으며 매번 새롭게 도전을 받는다. 다른 번역본도 구해서 읽어보면 좋겠다. 많으면 그만큼 풍성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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