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글입니다.
제갈량은 남양에서 밭을 갈던 평범한 백성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어떻게 천하를 호령하던 승상의 뿌리가 되었을까? 단순한 천재적 책사나 역사적 영웅으로 호출하지 않는다. 그의 출발은 한낱 촌부에 불과했고, 어떤 신화적 배경도, 천재의 광휘도 묻어나지 않는다. 세상은 오랫동안 제갈량을 오해해 왔다. 동남풍을 부르고 적진의 마음을 꿰뚫어 보며, 죽은 뒤에도 목상으로 사마의를 물리쳤다는 그 신출귀몰한 도사의 의미지. 사실 그것은 나관중이 빚어낸 환상일 뿐이다. 사실 제갈량은 기적을 만든 사람이 아니라, 기적이 필요 없도록 판을 짜둔 사람이었다. 사람이 일할 수밖에 없도록 구조를 만든 것이다.
이 책은 신화 속의 제갈량이 아니라, 행정가이자 운영자였던 제갈량을 만나게 해준다. 그는 화려한 책사이기 이전에 매일 같이 군량의 수량을 계산하고, 장수의 인사를 결재하고, 법령의 조문을 다듬던 한 명의 승상이었다. 그는 평생 국가의 중대사를 짊어지면서도 사사로운 욕망에 흔들리지 않았다. 권력의 정점에 있던 사람이 그토록 헌신했다는 사실이 바로 그가 부린 진짜 마법이다.
제갈량의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첫 번째 화두는 바로 천명을 탓하기 전에, 스스로 그어둔 한계의 선부터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그 선이 정말 하늘이 그은 것인지, 아니면 두려움에 사로잡힌 내면이 스스로 만들어 낸 장벽인지, 만약 후자라면, 그것은 천명이 아니라 변명일 뿐이다. 변명은 부숴야 하며, 변명을 부수기 전에 에는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유비가 제갈량을 만나기 위해 흔히 말하는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하게 된 이야기는 단순한 예우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누가 더 평정을 오래 쥐고 있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삼고초려는 흔히 유비의 인내로만 읽지만, 사실 진짜 주인공은 오두막 안에 누워 있던 제갈량이다. 첫 번째 방문과 두 번째 방문에 응하지 않았던 이유가, 거만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비전을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인지를 시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큰일을 함께할 사람을 알아보는 가장 정직한 방법은, 그가 초조함 앞에서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보는 것이다. 초조함을 견디지 못하는 바는 결국 어느 길목에서든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릇은 평정의 두께만큼 깊어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많은 질문을 하지 않는다. 다만 이 책을 통하여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얻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질문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여러 가지로 힘들고 어려운 시대를 살아간다. 누구나 인생에 대한 여러 질문이 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를 구한다. 하지만 모든 인생의 질문에 답을 얻지는 못한다. 그래서 이 책은 그 질문 앞에서 멈추는 훈련을 하게 한다. 멈춘다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멈추는 동안 다른 이들이 앞서 나가는 듯한 초조함이 쏜살같이 밀려 들어오기 때문이다. 멈추는 동안 자신이 게으른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것을 버리고 온전히 살아가게 하는 길을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