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레레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2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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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살해된 피해자의 집에서 앨범 한 장이 눈에 뜨였다. 17세기 전반기에 시스티나 예배당 성가대의 일원이었던 그레고리오 알레그리가 쓴 <미세레레>라는 성악곡을 녹음한 앨범. 그 음악은, 아주 높은 선율을 따라가는 목소리는 듣는 사람을 홀리는 마력(魔力)을 지나고 있었다. 과연 이 성악곡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프랑스 스릴러 소설의 황제라는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제의한다. 그 비밀을 풀어보지 않겠느냐고…….

 

노쇠한 형사의 비밀 풀이

 

그랑제의 장편소설 <미세레레>는 파리의 아르메니아 성당에서 한 성가대 지휘자가 시체로 발견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마침 성당 사무실에 있었던 은퇴한 경찰관 리오넬 카스단이 제일 먼저 사건 현장에 도착한다. 엄밀히 말해 경감으로 퇴직한 카스단에게는 이 사건을 수사할 권한도, 또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60대의 말라깽이 남자 빌헬름 괴츠를 죽인 범인을 찾는 일에 착수한다. 이제부터 우리는 ‘말수가 적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던 사람을 누가 왜 죽었을까?’하는 의문을 지닌 채 골치 아픈 늙은 경찰의 뒤를 따르게 될 것이다.

 

소설과 음악

 

소설 속에 음악이 등장하는 경우는 수없이 많이 있다. 그 대표적인 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이다. 이야기에서 소개되는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나 ‘평균율 클라비아곡집’ 등은 작품의 매력을 더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하루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작가들이 작품 안에 음악을 첨가한다. 그랑제 역시 그런 작가들 중 한 명이다. 아니, 한때 음악가가 되려고 했다던 그에게 소설과 음악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관계일 것이다. 검은 선, 돌의 집회……. 그의 전작들을 읽어보면 이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번 소설은 아예 음악을 전면(제목부터가)에 내세웠고 그 음악은 필수 불가결한 실마리로 작용한다.

 

카스단은 플레이를 중단시켰다. 그리고는 오디오를 끄고 음반으로 덮인 벽돌과 종이 계란판을 붙여놓은 천장 사이에서 자기를 휘감고 있는 침묵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잠재의식의 신호 같은 것이 들려왔다. 잠재의식이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있었다. 듣는 사람을 홀리는 그 목소리, 또는 <미세레레>라는 성악곡에 살인사건의 단서가 있다는 통지였다. (1권, p. 73)

 

진리 속의 범죄

 

카스단은 자신과 비슷한 면을 지닌 후배 경찰관 세드릭 볼로킨과 팀을 이루어 사건 수사에 박차를 가한다. 괴츠를 죽인 살인자가 아이라는 볼로킨의 말, 그리고 그가 과거에 지휘했던 한 성가대 소년의 실종 등의 사실이 밝혀지며 사태는 오리무중으로 빠진다. 거기에 성도착증 환자였을지도 모른다는 의혹까지……. 범행 수법을 보면 아이가 살인을 했다고 보긴 어려웠다. 하지만 모든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이들은 결코 죄를 짓지 않습니다.”라는 한 영화 속의 대사가 결정적인 공리(公理)가 되기를 바라면서도 그 진리마저 의심해 봐야 하는 것이 두 형사들의 몫이었다.

 

괴츠와 친밀하게 지냈거나 연관이 있던 사람들이 연이어 죽임을 당하는데 그 현장들에는 어김없이 미세레레에 나오는 구절이 쓰여 있다. 볼로킨이 카스단에게 설명하는 것처럼 미세레레는 원래 속죄와 용서를 비는 구약성경 ‘시편’의 한 장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들은 ‘진정한 속죄, 용서란 무엇인가.’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범인은 살인을 통해서 그들을 단죄하는 동시에 구원하고자 한다. 그런데 과연 타인의 혀나 눈동자 같은 인체기관을 훼손시키면서까지 하는 살인을 구원이라고 합리화 시킬 수 있을까. 비록 피해자들에게 죄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생명을 빼앗는 일은 속죄(구원)의 도구가 될 수 없다. 이 소설에 쓰인 내용들은 과장된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저 무심히 넘기기엔 무리가 따른다. 아이들의 범죄도, 진리의 탈을 쓴 범죄도 현실의 삶 속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검은 진실 찾기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 <미세레레>가 악에 관한 하나의 설명이라고 말했다. 서스펜스 스릴러라는 장르와는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주제인 아이들의 순수한 목소리……. 그런데 그 목소리(음악)가 살인과 관련되어 있다면? 이런 색다른 설정과 이야기 곳곳에 보이는 치밀한 자료 조사의 흔적들은 독자들의 궁금증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미세레레> 1권은 괴츠의 과오와 사건의 배후에 나치즘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마무리된다. 카스단과 볼로킨은 점점 검은 진실에 다가간다. 프로이드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말이다.

 

“프로이드가 뭐랬는지 알아? ‘우리는 누구나 어린이와 대형사건 범죄자에게 매료된다.’ 우리가 찾는 범인은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지. 어린이인 동시에 대형사건 범죄자 말이야.” (1권, p.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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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 측 증인
고이즈미 기미코 지음, 권영주 옮김 / 검은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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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는 불안함과 아쉬움을 미소 속에 감추고 새로운 세계로 발을 들여놓았다. 일족의 골칫덩이라는 꼬리표가 퍼런 쇠무릎 열매처럼 달린 신랑이었지만 그녀는 남편을 사랑했다.

야시마 산업의 후계자 스기히코와 카바레 스트리퍼 미미 로이의 결혼식은 이 작품에서 가장 행복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그의 다정하고 멋진 미소를 보며 다짐했다. 이이를 내 목숨보다도 소중히 할 거라고……. 그때 그들은 자신들을 갈라놓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전설의 명작‘으로 불리며 46년 만에 복간된 고이즈미 기미코의 <변호 측 증인>은(세이케 변호사의 말을 빌리자면)단순해 보이는 사건 이후 벌어지는 법정 싸움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미 로이는 재벌가의 와아들과 결혼하여 신데렐라가 되었지만 남편에게 의존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미미, 스기히코 부부가 교도소 면회실 철망 너머로 입을 맞추는 것으로 <변호 측 증인>은 시작된다. 온갖 기대와 근사한 사랑을 꿈꾸었던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실수만 연발하고 바보 같던 미미 로이는 이제 야시마 스기히코 부인이 되었다. 넓은 정원과 깊고 오래된 우물, 아름답고 세련된 별채가 있는 집안의 안주인이라는 역할을 맡았지만 미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카바레 분장실에서 나는 라면 냄새를 떠올린다. 오래전부터 있었던 가정부들은 그녀를 샅샅이 훑어보고 시아버지는 신경질 많고 고독한 노사장이자 자신을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는 쇠고집 늙은이였다. 무희였다는 이유로 자상한 사람들에게 경시되는 처지였으나 미미는 용기를 내어 애써 밝게 웃었다. 그리고 친구 에다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적는다. “내 걱정은 하지 마. 꼭 좋은 아내가 될 거야.”

 

<달과 게>로 올해 나오키상을 수상한 소설가 미치오 슈스케는 이 작품을 그림에 비유했다. 고이즈미 기미코라는 작가가 밑그림을 그리고 독자인 우리가 직접 붓을 움직여 완벽하게 완성시키는 그런 그림이다. 그림 그리기에 소질이 있는 사람들에겐 흥미로운 작업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붓을 들 용기조차 상실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소설을 접한 이상 우리 모두는 그림을 완성시킬 수밖에 없다. ‘도대체 무엇부터 그려야 되는 건가.’ 너무 심각하게 고민하지 말고 그냥 필(feel)이 꽂히는 대로 그려보자. 밤늦은 시간에 목욕을 하면서 올케인 미미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 라쿠코를, 화려한 새틴 깃털 이불 위에 엎드린 자세로 쓰려져 있는 야시마 노인과 피가 묻은 청동 문진을 그려보자. 그렇게 작가의 밑그림에 따라 붓을 놀리다 보면 이제 서서히 윤곽이 드러난다. 시아버지의 시체 앞에서도 미미는 살해사건의 용의자가 될지도 모르는 남편을 걱정한다. 이런 그녀가 선(善)이라면 악은 야시마 가 사람들이다. 자신들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없애버리고, 그 잘못을 미미에게 전가시키는 모습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기적인 욕망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292페이지로 이루어진(일본 원서는 264페이지) <변호 측 증인>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그 깔끔함이 지나쳐 불친절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미술품 복원가가 오래된 그림을 복원시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듯 이 책의 모든 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글 한 줄도 쉽게 넘기지 말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독자에게 즐거움이 될 수도 있고, 괴로움을 주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니 일본의 거장 작가들이 극찬했다고 해서 쉽게 골라서는 안 된다.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변호 측 증인>의 백미는 바로 11장에 등장하는 변호 측 증인과 그를 둘러싼 법정 싸움이다. 세이케 변호사와 검사의 팽팽한 신경전……. 아니, 엄밀히 말하면 세이케의 논리 정연함에 혀를 내두를 것이고 증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게 될 것이다. 분명 이 작품은 명작이라 불릴 만한 독특한 매력이 있다. 하지만 그 매력에 모든 사람이 현혹된다고 장담하기는 쉽지 않다. 자! 어느덧 붓을 손에서 놓을 때가 되었다. 당신은 자신이 그린 그림에서 무엇을 느꼈는가. 완벽한 그림이 아니라고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당신의 그림은 타인과는 다른, 단 하나뿐인 소중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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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의 아이들 - 부모를 한국으로 떠나보낸 조선족 아이들 이야기 문학동네 청소년 8
박영희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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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흑룡강성 해림시에 살던 한 조선족 부부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들어왔다. 그들은 셋방을 얻어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각오로 팔을 걷어붙였다. 그런데 아내가 뜻하지 않은 임신을 하면서 부부의 계획에는 차질이 생겼다. 그렇게 한국에서 태어난 미혜는 백일이 지날 무렵 엄마와 함께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서 해림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2년 뒤 엄마는 한국으로 다시 들어갔고 미혜는 외할머니 손에 맡겨져 언니와 함께 지냈다. ‘만주의 아이들’은 미혜와 같이 부모의 사랑 대신에 고통을 벗 삼아 살고 있는 조선족 아이들의 실상을 담은 이야기이다. 10년 만에(처음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본다면 과연 어떤 느낌이 들까.

 

10년 만의 첫 부녀 상봉, 자리는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엄마와 아빠가 함께 찍은 사진을 몇 장 가지고 있었지만 아빠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낯설었다. 엄마만 옆에 없다면 아빠는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흔한 아저씨일 뿐이었다. (p. 223)

 

부모와 친척들까지 돈 벌러 떠나면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학교 기숙사뿐이다. 학생들에게 기숙사는 막장(인생의 막다른 곳)이다. 한창 부모의 사랑 속에서 꿈을 키우며 성장해야 할 조선족 청소년들은 새장 속에 갇힌 새가 되어, 어둠속에 방황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만주의 아이들’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확실히 어둡고 또한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한 줄기의 빛은 존재한다. 효범이와 그의 고모가 나누는 대화부분에서는 저절로 웃음이 지어진다. 물론 효범이에게도 고통은 있겠지만 그 아이의 곁에는 고모라는 큰 그늘이 있다. 그 그늘 아래서 효범이는 소방관이 되겠다는 꿈을 키워나갈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은 재물의 힘에 도취되어 자신의 의무를 등한시하는 조선족 부모들과 대조를 이룬다.

 

‘만주의 아이들’은 욕망에 미쳐 자녀를 방임하는 일부의……. 조선족 부모들을 비판하기보다 한국에 있는 부모와 만주에 남은 아이들을 잇는 끈이 되기를 소망한다. 남은 아이들의 고통 못지않게 한국의 노동자로 살아가는 부모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저자 박영희는 책의 말미에서 만주의 봄은 언제나 오는지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는 말로 조선족들의 서글픈 변화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였다. 그런 한편으로 만주의 아이들에게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언젠가는 부모님이 돌아올 것이라는, 행복해질 것이라는 희망을. 지금 현재가 아무리 절망스럽고 미래가 불투명해 보인다 해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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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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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는 미국 현대문학의 4대 작가 중 한 명으로 불리는 대가이다. 그의 수상내역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전미 도서비평가협회상을 두 번, 미국의 대표적인 문학상이라 할 수 있는 펜포크너상을 세 번, 그리고 1998년에는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야말로 필립 로스 자체가 미국 문학의 대명사라 할 수 있다. ‘울분’은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번역된(개인적으로는 처음 접한)그의 작품이다. 반세기 동안 연마한 거장의 소설을 통해 우리들은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의 극찬을 받은 ‘에브리맨’이 한 남성의 일생을 그렸다면 ‘울분’은 질풍노도처럼 갈등했던 한 청춘의 짧은 일기와도 같다. 70대 후반의 작가가 썼지만 ‘울분’은 아주 뜨거운 소설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 책을 이렇게 평했다.

 

청춘의 격정으로 불탈 만큼 여전히 분노하고 동시에 그 격정이 스스로를 파멸시킬 수 있음을 이해할 만큼 충분히 현명한 작가로부터 나오는 폭발을 볼 수 있는 소설.

 

이야기는 ‘나’(마커스)가 뉴어크 시내에 있는 작은 대학 로버트 트리트에 입학하면서 시작된다. 1950년 당시 그의 가족이 운영하던 코셔 정육점(유대인의 율법에 맞는 정결한 고기를 파는 정육점)은 동네에 슈퍼마켓이 생기면서 점차 쇠퇴하고 있었고 아버지의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지면서 친밀했던 부자 사이에는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마커스는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걱정이 당신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면 소중한 아이를 세상에 내주어야 한다는 두려운 사실이, 인생의 위험성을 간과하는 아들의 모습이 아버지는 걱정되었을까.

 

아버지의 감시를 벗어나야 했던 마커스는 집에서 800킬로미터 떨어진 대학 와인스버그로 학교를 옮긴다. 하지만 도피처로 선택한 그곳에서의 생활은 아버지와 함께 살던 때보다 더 괴로웠다. 잠잘 시간에 전축으로 베토벤을 듣는 룸메이트 플러서와 갈등을 빚는다. 결국 다른 방에서 새로운 룸메이트 엘윈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집에서 시작된 갈등은 그를 끈질기게 쫓아왔다. 룸메이트들과 아버지, 그리고 여자 친구 올리비아까지……. 문제는 쌓여만 간다. 그는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을까?’하고 자문한다. 사실 어떻게 보면 문제들의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했다. 다만 주인공이 그것을 깨닫기에는 너무 젊었고 또 너무 일렀다.

 

나는 엘윈을 이해하지 못했다. 플러서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올리비아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도, 어떤 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p. 85)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기이해부터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지당한 말이긴 하지만 솔직히 자기를 이해한다는 것도 쉽지는 않다. 더구나 19살 청춘에게 그러기를 바란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청춘은 질풍노도의 시기, 그야말로 혼란을 겪으며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시기이다. 마커스가 문제투성이가 된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감당해야 할 일종의 성장통이었다.

 

발을 아주 조금만 잘못 디뎌도 비극적인 결과가 생길 수 있는 게 인생이라는 아버지의 조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마커스는 결국 함정에 빠지고 만다. 신경쇠약으로 고통을 받아온 여자 친구 올리비아가 자살을 기도한데다 임신까지 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자 대학 당국에서는 사건의 원인 제공자로 마커스를 지목한다. 그는 자신이 그 일과 무관함을 주장하다가 마침내 욕설을 내뱉으면서 폭발하고 말았다.

 

한마디의 욕설로 인해 정육점집 아들은 퇴학을 당하고 사병이 되어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마커스 메스너 이등병은 스무 살 생일을 석 달 남기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여기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독일 문학의 최고봉 괴테는 “청년은 가르침을 받기보다는 감동이나 자극을 받기를 원한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 말을 다르게 생각해보면 감동이나 자극을 제어하는데 취약하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이는 곧 순간적인 감정으로 한 선택이 그릇된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필립 로스 또한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말한다.

 

매우 평범하고 우연적인, 심지어 희극적인 선택이 끔찍하고 불가해한 경로를 거쳐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p.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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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의 축제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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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극과 코미디의 랑데부

 

스웨덴 한림원은 페루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를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하면서 그 선정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요사는 권력구조의 지도를 그려내고 개인의 저항과 반역, 그리고 좌절을 통렬한 이미지로 포착해냈다.” 그의 문학은 정치적이라 할 수 있다.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와 마찬가지로 ‘염소의 축제’에는 서로 상반되어 보이는 비극과 코미디가 섞여 있다. 도미니카 공화국 독재의 시기를 산 사람들은 저항과 반역을 꿈꾸었고 그에 버금가는 좌절감을 느껴야 했다.

 

1844년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호세 마르몰이 ‘아말리아’를 발표하면서 탄생한 장르가 독재자 소설이라면 2000년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발표한 ‘염소의 축제’는 이 장르를 재조명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트루히요의 독재 시절을 이야기하면서도 각기 다른 세 개의 관점이 등장한다. 독재자에 의해 상처를 받은 이, 그리고 독재자와 협력자들, 마지막으로 독재자를 처형한 이들과 그 후의 이야기들이 바로 그것이다.

 

2. 귀향

 

소설은 우라니아의 35년 만의 귀향으로 시작된다. 알래스카의 산맥과 눈 덮인 호수를 보고 싶어 했던 그녀는 왜 그곳으로 휴가를 가지 않고 조그만 섬으로 돌아왔을까.

 

이건 단지 호기심에 불과할 뿐이야. 이제는 너의 도시가 아닌 이 도시를, 슬픔과 향수와 증오와 괴로움과 분노를 느끼지 않은 채 이 타인의 국가를 걸어 다닐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던 거야. 아니면 가련한 노인네로 전락해버린 아버지를 만나려고 온 거니? 그래,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그를 만나면 네가 어떤 인상을 받을지 확인하기 위해서 온 것이지. (‘염소의 축제 1, p. 13)

 

아버지 아구스틴 카브랄이 자랑스러웠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것은 영원하지 못했다. 과연 이 부녀에게는 어떤 과거가 숨겨져 있는 것일까. 우라니아는 기억하기 싫은 상처를 드러내기로 결심한다.

 

이 소설에서 우라니아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가교이자 주인공이다. 그녀는 미국으로 건너가 모든 도미니카 여자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살고 있지만 어린 시절 트루히요에게 강제로 처녀성을 빼앗긴 치욕스러운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 후 남자들을 증오하며 허전함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하루하루를 보낸다. 수령님의 총애를 잃어버린 아버지를 위해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야만 했다. 그녀는 불쾌한 기억들을 잊을 수 없었다.

 

아빠는 뇌졸중에 걸렸지만, 이미 나름대로 예방책을 취해놓으셨어요. 아빠는 불쾌한 것들을 기억에서 제거했어요. 나에 대한 불쾌한 기억, 우리에 관한 불쾌한 기억도 이미 지우셨나요? 난 아니에요. 하나도 지우지 않았어요. 지난 35년 동안 단 하루도 잊지 않았어요, 아빠. 난 결코 잊지 않았고, 아빠를 용서하지 않았어요. (‘염소의 축제’ 1, p. 180)

 

3. 미완의 축제

 

작품에서 트루히요를 살해한 사람들은 그를 ‘염소’라고 부른다. 악마, 번식력, 생명력의 상징이 바로 염소이다. 영원한 권력을 원했던 독재자는 여성들을 정복하면서 쾌감을 얻는 동시에 국가를 통치해나간다. 각료들의 아내와 딸, 또는 호감이 가는 여자들, 그 정복의 대상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절대적인 힘이 있었고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은 죽이거나 감옥에 가두면 그만이었다. 도미니카에는 30년 동안이나 그렇게 음울하면서도 무시무시한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었다. 염소의 축제는 1961년 5월 30일에 끝이 난다. 그렇다면 염소를 살해한 인물들의 미래는 어떠했을까.

 

독재자를 살해하는 데 성공했으면서도 이후의 계획을 실패로 돌아가게 만든 주요 가담자들의 행동이었지요. 그런데 왜 실패했을까요? 주요 음모자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일을 보고는 스스로 겁을 집어먹었습니다. 트루히요의 시체는 거기에 있었지만 트루히요는 계속 그들 안에 살아 있었던 것이지요. (바르가스 요사의 인터뷰 중에서…….)

 

염소는 죽었지만 그의 망령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30년 동안 지속된 트루히요 독재의 잔재는 음모자들을 영웅으로 만들지 않았다. 그들은 야자수 밑에서 총탄 세례를 받고 숨이 끊어질 때까지 몸부림쳤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의 축제를 희망했지만 그것은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4. 우라니아를 통해 본 도미니카의 상처

 

실제의 역사와 실존 인물들을 바탕으로 한 ‘염소의 축제’에서 우라니아는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이다. 여성에게 특히 잔인했던 도미니카(라틴아메리카)의 독재는 대상이 되는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들에게 상처와 치욕을 준다. 책의 종반부에 이르러 우리의 주인공은 사촌들에게 자신이 오랫동안 간직했던 비밀을 털어놓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고모와 너희들도 문제가 있고, 힘든 시기를 보냈고, 실망하고 절망하기도 했어. 그러나 가족이 있고 남편도 있고 아이들도 있고 친척도 있고 조국도 있어. 그런 게 바로 인생이겠지. 하지만 아빠와 총통은 나를 불모지로 만들었어. “ (‘염소의 축제’ 2, p. 365)

 

독재는 모든 사람들을 불모지처럼 거칠고 메마르게 한다. 어두운 시절을 체험한 열네 살 소녀는 세월이 흘러 중년이 되었지만 그 때의 상처는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우라니아의 상처는 개인적인 것을 떠나 도미니카의 전 여성, 그리고 전 국민의 아픔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역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언제나 논란에 휩싸일 여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트루히요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염소의 축제’도 마찬가지이다. 요사도 분명히 이 작품을 쓸 때 모든 것을 고려했으리라. 하지만 그는 침묵하지 않고 소설을 통해 상처와 아픔을 드러내고 비밀을 폭로했다. “글쟁이는 동상처럼 입을 다물어선 안 된다.”는 그의 문학적 신념은 확고한 것이었다. 바르가스 요사의 문학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이유는 현실을 직시하고 진실을 추구하려는 신념 때문이 아닐까.

 

(p.s: 동일한 시기를 배경으로 한 주노 디아스의 소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을 같이 읽으면 더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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