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의 축제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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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극과 코미디의 랑데부

 

스웨덴 한림원은 페루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를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하면서 그 선정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요사는 권력구조의 지도를 그려내고 개인의 저항과 반역, 그리고 좌절을 통렬한 이미지로 포착해냈다.” 그의 문학은 정치적이라 할 수 있다.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와 마찬가지로 ‘염소의 축제’에는 서로 상반되어 보이는 비극과 코미디가 섞여 있다. 도미니카 공화국 독재의 시기를 산 사람들은 저항과 반역을 꿈꾸었고 그에 버금가는 좌절감을 느껴야 했다.

 

1844년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호세 마르몰이 ‘아말리아’를 발표하면서 탄생한 장르가 독재자 소설이라면 2000년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발표한 ‘염소의 축제’는 이 장르를 재조명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트루히요의 독재 시절을 이야기하면서도 각기 다른 세 개의 관점이 등장한다. 독재자에 의해 상처를 받은 이, 그리고 독재자와 협력자들, 마지막으로 독재자를 처형한 이들과 그 후의 이야기들이 바로 그것이다.

 

2. 귀향

 

소설은 우라니아의 35년 만의 귀향으로 시작된다. 알래스카의 산맥과 눈 덮인 호수를 보고 싶어 했던 그녀는 왜 그곳으로 휴가를 가지 않고 조그만 섬으로 돌아왔을까.

 

이건 단지 호기심에 불과할 뿐이야. 이제는 너의 도시가 아닌 이 도시를, 슬픔과 향수와 증오와 괴로움과 분노를 느끼지 않은 채 이 타인의 국가를 걸어 다닐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던 거야. 아니면 가련한 노인네로 전락해버린 아버지를 만나려고 온 거니? 그래,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그를 만나면 네가 어떤 인상을 받을지 확인하기 위해서 온 것이지. (‘염소의 축제 1, p. 13)

 

아버지 아구스틴 카브랄이 자랑스러웠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것은 영원하지 못했다. 과연 이 부녀에게는 어떤 과거가 숨겨져 있는 것일까. 우라니아는 기억하기 싫은 상처를 드러내기로 결심한다.

 

이 소설에서 우라니아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가교이자 주인공이다. 그녀는 미국으로 건너가 모든 도미니카 여자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살고 있지만 어린 시절 트루히요에게 강제로 처녀성을 빼앗긴 치욕스러운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 후 남자들을 증오하며 허전함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하루하루를 보낸다. 수령님의 총애를 잃어버린 아버지를 위해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야만 했다. 그녀는 불쾌한 기억들을 잊을 수 없었다.

 

아빠는 뇌졸중에 걸렸지만, 이미 나름대로 예방책을 취해놓으셨어요. 아빠는 불쾌한 것들을 기억에서 제거했어요. 나에 대한 불쾌한 기억, 우리에 관한 불쾌한 기억도 이미 지우셨나요? 난 아니에요. 하나도 지우지 않았어요. 지난 35년 동안 단 하루도 잊지 않았어요, 아빠. 난 결코 잊지 않았고, 아빠를 용서하지 않았어요. (‘염소의 축제’ 1, p. 180)

 

3. 미완의 축제

 

작품에서 트루히요를 살해한 사람들은 그를 ‘염소’라고 부른다. 악마, 번식력, 생명력의 상징이 바로 염소이다. 영원한 권력을 원했던 독재자는 여성들을 정복하면서 쾌감을 얻는 동시에 국가를 통치해나간다. 각료들의 아내와 딸, 또는 호감이 가는 여자들, 그 정복의 대상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절대적인 힘이 있었고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은 죽이거나 감옥에 가두면 그만이었다. 도미니카에는 30년 동안이나 그렇게 음울하면서도 무시무시한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었다. 염소의 축제는 1961년 5월 30일에 끝이 난다. 그렇다면 염소를 살해한 인물들의 미래는 어떠했을까.

 

독재자를 살해하는 데 성공했으면서도 이후의 계획을 실패로 돌아가게 만든 주요 가담자들의 행동이었지요. 그런데 왜 실패했을까요? 주요 음모자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일을 보고는 스스로 겁을 집어먹었습니다. 트루히요의 시체는 거기에 있었지만 트루히요는 계속 그들 안에 살아 있었던 것이지요. (바르가스 요사의 인터뷰 중에서…….)

 

염소는 죽었지만 그의 망령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30년 동안 지속된 트루히요 독재의 잔재는 음모자들을 영웅으로 만들지 않았다. 그들은 야자수 밑에서 총탄 세례를 받고 숨이 끊어질 때까지 몸부림쳤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의 축제를 희망했지만 그것은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4. 우라니아를 통해 본 도미니카의 상처

 

실제의 역사와 실존 인물들을 바탕으로 한 ‘염소의 축제’에서 우라니아는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이다. 여성에게 특히 잔인했던 도미니카(라틴아메리카)의 독재는 대상이 되는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들에게 상처와 치욕을 준다. 책의 종반부에 이르러 우리의 주인공은 사촌들에게 자신이 오랫동안 간직했던 비밀을 털어놓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고모와 너희들도 문제가 있고, 힘든 시기를 보냈고, 실망하고 절망하기도 했어. 그러나 가족이 있고 남편도 있고 아이들도 있고 친척도 있고 조국도 있어. 그런 게 바로 인생이겠지. 하지만 아빠와 총통은 나를 불모지로 만들었어. “ (‘염소의 축제’ 2, p. 365)

 

독재는 모든 사람들을 불모지처럼 거칠고 메마르게 한다. 어두운 시절을 체험한 열네 살 소녀는 세월이 흘러 중년이 되었지만 그 때의 상처는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우라니아의 상처는 개인적인 것을 떠나 도미니카의 전 여성, 그리고 전 국민의 아픔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역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언제나 논란에 휩싸일 여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트루히요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염소의 축제’도 마찬가지이다. 요사도 분명히 이 작품을 쓸 때 모든 것을 고려했으리라. 하지만 그는 침묵하지 않고 소설을 통해 상처와 아픔을 드러내고 비밀을 폭로했다. “글쟁이는 동상처럼 입을 다물어선 안 된다.”는 그의 문학적 신념은 확고한 것이었다. 바르가스 요사의 문학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이유는 현실을 직시하고 진실을 추구하려는 신념 때문이 아닐까.

 

(p.s: 동일한 시기를 배경으로 한 주노 디아스의 소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을 같이 읽으면 더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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