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 측 증인
고이즈미 기미코 지음, 권영주 옮김 / 검은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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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는 불안함과 아쉬움을 미소 속에 감추고 새로운 세계로 발을 들여놓았다. 일족의 골칫덩이라는 꼬리표가 퍼런 쇠무릎 열매처럼 달린 신랑이었지만 그녀는 남편을 사랑했다.

야시마 산업의 후계자 스기히코와 카바레 스트리퍼 미미 로이의 결혼식은 이 작품에서 가장 행복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그의 다정하고 멋진 미소를 보며 다짐했다. 이이를 내 목숨보다도 소중히 할 거라고……. 그때 그들은 자신들을 갈라놓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전설의 명작‘으로 불리며 46년 만에 복간된 고이즈미 기미코의 <변호 측 증인>은(세이케 변호사의 말을 빌리자면)단순해 보이는 사건 이후 벌어지는 법정 싸움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미 로이는 재벌가의 와아들과 결혼하여 신데렐라가 되었지만 남편에게 의존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미미, 스기히코 부부가 교도소 면회실 철망 너머로 입을 맞추는 것으로 <변호 측 증인>은 시작된다. 온갖 기대와 근사한 사랑을 꿈꾸었던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실수만 연발하고 바보 같던 미미 로이는 이제 야시마 스기히코 부인이 되었다. 넓은 정원과 깊고 오래된 우물, 아름답고 세련된 별채가 있는 집안의 안주인이라는 역할을 맡았지만 미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카바레 분장실에서 나는 라면 냄새를 떠올린다. 오래전부터 있었던 가정부들은 그녀를 샅샅이 훑어보고 시아버지는 신경질 많고 고독한 노사장이자 자신을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는 쇠고집 늙은이였다. 무희였다는 이유로 자상한 사람들에게 경시되는 처지였으나 미미는 용기를 내어 애써 밝게 웃었다. 그리고 친구 에다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적는다. “내 걱정은 하지 마. 꼭 좋은 아내가 될 거야.”

 

<달과 게>로 올해 나오키상을 수상한 소설가 미치오 슈스케는 이 작품을 그림에 비유했다. 고이즈미 기미코라는 작가가 밑그림을 그리고 독자인 우리가 직접 붓을 움직여 완벽하게 완성시키는 그런 그림이다. 그림 그리기에 소질이 있는 사람들에겐 흥미로운 작업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붓을 들 용기조차 상실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소설을 접한 이상 우리 모두는 그림을 완성시킬 수밖에 없다. ‘도대체 무엇부터 그려야 되는 건가.’ 너무 심각하게 고민하지 말고 그냥 필(feel)이 꽂히는 대로 그려보자. 밤늦은 시간에 목욕을 하면서 올케인 미미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 라쿠코를, 화려한 새틴 깃털 이불 위에 엎드린 자세로 쓰려져 있는 야시마 노인과 피가 묻은 청동 문진을 그려보자. 그렇게 작가의 밑그림에 따라 붓을 놀리다 보면 이제 서서히 윤곽이 드러난다. 시아버지의 시체 앞에서도 미미는 살해사건의 용의자가 될지도 모르는 남편을 걱정한다. 이런 그녀가 선(善)이라면 악은 야시마 가 사람들이다. 자신들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없애버리고, 그 잘못을 미미에게 전가시키는 모습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기적인 욕망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292페이지로 이루어진(일본 원서는 264페이지) <변호 측 증인>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그 깔끔함이 지나쳐 불친절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미술품 복원가가 오래된 그림을 복원시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듯 이 책의 모든 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글 한 줄도 쉽게 넘기지 말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독자에게 즐거움이 될 수도 있고, 괴로움을 주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니 일본의 거장 작가들이 극찬했다고 해서 쉽게 골라서는 안 된다.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변호 측 증인>의 백미는 바로 11장에 등장하는 변호 측 증인과 그를 둘러싼 법정 싸움이다. 세이케 변호사와 검사의 팽팽한 신경전……. 아니, 엄밀히 말하면 세이케의 논리 정연함에 혀를 내두를 것이고 증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게 될 것이다. 분명 이 작품은 명작이라 불릴 만한 독특한 매력이 있다. 하지만 그 매력에 모든 사람이 현혹된다고 장담하기는 쉽지 않다. 자! 어느덧 붓을 손에서 놓을 때가 되었다. 당신은 자신이 그린 그림에서 무엇을 느꼈는가. 완벽한 그림이 아니라고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당신의 그림은 타인과는 다른, 단 하나뿐인 소중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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