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그네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1. 신비의 인물 헤르타 뮐러

 

헤르타 뮐러는 200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 전까지는 우리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소설가(시인)였다. 데뷔한 지가 20년이 다 되어가는 그녀의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정식으로 출판된 시기가 바로 올해 초이다. 1953년 8월 17일 루마니아에서 태어난 뮐러, 가난한 마을에서 자란 그녀가 가질 수 있는 장난감은 TV나 인형이 아닌 낱말(언어)이었다. 낱말들을 가지고 노는 습관은 단순함을 벗어나 그녀의 삶과 문학에 밑거름이 된다. 뮐러의 이러한 특징과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동구권의 근현대사가 융합된 소설 중에서 하나가 바로 <숨그네>이다.

 

2. 처참하게 아름다운 말들의 향연

 

<숨그네>는 열일곱 살의 동성애자 레오의 시점에서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고발하고 있다. 강제수용소는 군사적, 정치적 이유 또는 처별이나 격리 등의 목적으로 재판을 거치지 않고 강제로 다수의 사람들을 수용하는 시설이다.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된 곳의 실상을 소설로 표현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뮐러의 곁에는 든든한 협력자이자 동료가 있었다. 실제로 강제수용소에서 5년간 노역했던 파스티오르의 경험에서 이 책은 탄생되었다.(저자의 어머니도 그와 똑같은 일을 겪어야 했다.)

파스티오르는 수용소의 상황을 ‘실존의 절대영도’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이론적인 온도의 최저점인 절대영도 -273.15 °C, 상상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의 삶은 얼마나 처참할 것인가. 뮐러와 파스티오르 두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처참함을 시적인 말들로 표현했다. 무른 석탄을 하역할 때만 쓰는 심장삽, 배고픔을 의미하는 배고픈 천사, 인간의 숨이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흔들리는 것을 뜻하는 숨그네 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말들은 겉모습과 달리 강한 힘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3. 인간은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존재

 

레오가 수용소에서 배고픈 천사와 싸울 수 있었던 힘은 할머니의 말 한마디에서 파생되었다.

 

할머니가 말했다. 너는 돌아올 거야.

그 말을 작정하고 마음에 새긴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수용소로 가져갔다. 그 말이 나와 동행하리라는 것을 몰랐다.

그러나 그런 말은 자생력이 있다. 그 말은 내 안에서 내가 가져간 책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큰 힘을 발휘했다. 너는 돌아올 거야. 는 심장삽의 공범이 되었고 배고픈 천사의 적수가 되었다. 돌아왔으므로 나는 말할 수 있다. 어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p. 17)

 

그는 이 말을 되뇌며 삽질을 했고 배고픔과 추위를 견디어냈다. 지금은 어렵지만 언젠가는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 어쩌면 희망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스스로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영원한 고통은 없다. <숨그네>는 공포와 불 안속에서도 희망을 갖고자 했던 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죽하면 타인의 죽음을 보고 한방울넘치는행복이라고 말했을까. 그만큼 수용소에서의 삶은, 그리고 배고픔을 참아내는 것은 죽음보다 더한 형벌이었다.

 

4.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숨그네>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루마니아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그 당시 루마니아를 포함한 다수의 동구권 국가들은 소련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했고 희생되었는지는 현재까지도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6,70년 전의 일이지만 과연 그것이 단순한 과거사의 한 부분이기만 한 것일까. 사실 현재에도 소설 속 수용소와 같은 공간들이 존재하며 처참한 상황들이 계속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뮐러가 한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북한이 강제수용소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우르는 큰 강물이다.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우리들의 삶이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된다고 생각하면 그 어떤 이야기도 나와 무관하지 않다. 인류가 소멸되지 않는 한 완전히 끝나는 이야기라는 것은 없다.

 

5. 고정관념을 깨는 도끼

 

소설가 카프카는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는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보통 고정관념이나 편견 등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틀에 얽매이기보다는 변화무쌍하기를 즐겼던 카프카에게 문학(책)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도구였다. 그렇다면 헤르타 뮐러는 자신의 문학을 어떻게 정의할까.

 

“상황은 처참했다. 문자는 아름다웠다. 나는 비극은 시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처참함을 고발하기 위해서는 그래도 비극은 시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내 문학의 명예였다. “

 

슬픔과 비참함을 이야기하는 비극에 시의 옷을 입힌다. 비극은 문자처럼 아름다울 수도 있다. 과연 이런 생각을 누가 해 보았을까. 비극은 슬픈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시처럼 신비롭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도전장을 던진 뮐러의 작품 <숨그네>는 그야말로 고정관념을 깨는 도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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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 2010-08-06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문학동네 편집부의 고우리입니다.
이번에 제작하는 소책자 <헤르타 뮐러 스페셜북>에 독자님의 리뷰 일부를 게재하고 싶어 사용 허가 요청 드립니다. ^^ 보시는 대로 답글 또는 메일kupsch@naver.com로 허락 여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용하려는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다면 영원한 고통은 없다. 『숨그네』는 공포와 불안 속에서도 희망을 갖고자 했던 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고맙습니다.


고우리 2010-08-09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겸성님, 진행 일정이 급해 답을 기다리지 못하고 게재하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책 나오면 한 부씩 보내드리겠습니다. 메일로 주소와 연락처를 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겸성 2010-08-30 21:34   좋아요 0 | URL
집에 사정이 있어 이제야 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