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역사는 오로지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해석에 달린 것이기에 ‘좋은‘ 사람이 해석을 하면‘좋은‘ 역사가 되고, ‘나쁜 놈‘이 해석을 하면 ‘나쁜‘ 역사가 되며, 무엇인가‘원하는 게 있는‘ 사람이 해석을 하면 역사는 그 의도를 담게 된다. - P23
카데시 전투는 시기가 BC 1308 년에서부터 BC 1274년까지 그 설이 다양하다. 참고로 브리태니커Encyclopaedia Britannica에는 BC 1299년으로 되어 있다. 이는 이 전투를 위한 준비와 이동, 전투가 끝날 때까지의 모든 과정을 볼 수 있는 이집트의 기록에서 실제 전투로 추정되는 시점을 역사가들이 달리 본 데서 비롯된 것이다. 어찌되었건 카데시 전투는 기록상으로알 수 있는 문명 간에 발생한 최초의 전쟁으로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2CLEARNIRE RES세와 히타이트의 왕 무탈리스 2세가 카데시라는 지역을 놓고 싸운 전투이다.
카데시 전투는 나름 기록의 나라인 이집트의 기록에만 의존하여 3000년동안이나 이집트의 드라마틱한 승리로 남아 있다가 20C 초에 히타이트의기록이 발굴되면서 드라마틱한 번복이 이루어진다. 공식적인 결과가 무승부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동안 알고 있었던 카데시 전투의 절정 부분은 람세스의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들통남과 함께 말이다.
본래 극단주의자들과는 타협의 여지가 없는 법이다. 달리 극단주의자라 불리는 게 아니다.
"급진적 변화가 급진적 종교를 낳는다."
좋은 용도는 항상 나쁜 용도를 동반하고, 한쪽을 없애자면 양쪽 모두를 없애야 하는 것이다.
신경과학적 연구는 우리 두뇌와 외부 세계가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대해 우리가 당연시하던 생각을 뒤집는 놀라운 사실을 밝혀왔다. 그것은 의식이 실제로 우리의 행동을 주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뇌가 의식의 영역 밖에서 결정을 내린다면, 어떻게 우리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으며, 또한 사회가 그 책임을 물을 수 있겠는가? 신이나 우리의 사법 체계가 의사결정 기능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하는 죄인을 처벌할 수 있을 것인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양자역학의 비결정론적 해석은 인간의 활동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사건이137억 년 전에 우리 우주가 탄생했을 때 이미 결정되었다는 생각이 오류라는 것을 보여준다.
거시적 스케일에서 일상적으로 관찰하는 사건들이 인과법칙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많은 사건, 아마도 대부분의 사건이 무작위적으로 발생한다. 예를 들면 우주배경복사cosmic background radiation를 이루는 광자의 수는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의 수의10억 배에 이르는데, 이들은99.999%까지 무작위적으로 운동하고 있다. 별, 행성, 사람 같은 질서를 갖춘 일부 영역을 빼고는 우주의 대부분이 무작위적 운동 상태에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보편성이란, 거시적인 물리현상의 질적인 특성을 이해하려 할 때 미시적인 세상을 기술하는 모형의 작은 차이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어는 더 나아가 문제는 우리가 가진 ‘언어’에 있다고 지적했다. 상보적인 두 개념은 일상에서는 분리되어 보인다. 우리의 언어는 ‘입자’와 ‘파동’과 같이 이들을 분리된 상태로 기술할 뿐이다. 문제는 전자가 이중성을 가진다는 ‘사실’이 아니라, 우리에게 입자와 파동성을 동시에 상보적으로 가지는 상태에 대한 언어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어휘부재의 문제가 아니라 개념부재의 문제다.
과학의 역사는 인간의 상식이나 경험이 얼마나 근거 없는가를 보여준다.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돌고, 지구상의 생명은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도는 보잘것없는 암석 덩어리 같은 것이며, 우주는138억 년 전 폭발하며 생겨났다. 일견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사실이 옳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 과학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철썩 같이 믿고 있는 상식조차 의심해야 한다. 따라서 과학의 핵심은 합리적 의심이다. 허나 의심 전문가인 과학자들조차 상식의 덫에 걸리는 경우가 있다. 바로 직관 때문이다.
백치의 주인공인 미시킨 공작은 순수한 존재이다.세상이 더러워도, 인간이 가증스럽더라도 그는 순수하게 그것을 받아들인다.사람들은 그를 백치라고 부르며, 바보라거나 사회 부적응자 정도로 생각하기도 한다.하지만, 타인의 미추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은 가장 순수한 눈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그가 백치라 불리면서도,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진 사람으로 존경받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점에 있지 않을까?우리 시대에 단순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규칙들은 너무나도 복잡해서 이제는 그것을 만든 이들도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다.본질은 수많은 레이어 속에 갇혀 이미 사라진지 오래이다.결국 우리는 벗겨야 할 양파 껍질을 수없이 다시 붙이고 있다.도대체 왜 이렇게 복잡해야 하는 것일까?인간들이 가진 수많은 욕망들은 그 정도와 방향이 모두 제각각이다.누군가는 정상에 오르기를 원하지만, 누군가는 적당한 선을 유지하면 그만이다.누군가는 부를 원하고, 누군가는 권력을 원하며, 누군가는 사랑을 원한다.이 명도와 색상이 다른 수많은 점들은 얽히고설켜 무한대에 가까운 인식의 차이를 만들어낸다.그렇게 그물은 점점 촘촘해지고 촘촘해지는 만큼 본질은 가려진다.세상이 이렇게 점점 복잡해지다 보니 단순하다는 것은 바보 같다는 말과 동의어가 되어버린다.순수함이 아름다웠던 시절은 어느새 오래된 과거가 되어버렸다.적당히 탁하거나, 적당히 약삭빠르면서 나를 수많은 껍질로 가려야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지금 우리 시대에 똑똑하다는 말은 이런 뜻이 되어 버렸다.그렇다면 똑똑해지면 똑똑해질수록 우리는 점점 약해져가는 것이 아닐까?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아이는 고통에 쉽게 굴하지 않으며 전쟁의 상처, 어린 시절의 질병, 부모의 학대, 애정 결핍, 성적 학대, 알코올중독마저도 결국에는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그렇다고 아이들의 삶이 평탄했다거나 감정적 고통을 전혀 겪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마지막 단계에서 발달 과정을 역으로 추적하면 우리는 연관성이 연속적인 것으로 보여 매우 만족스러운 통찰을 얻었다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반대로 처음부터 시작해서 그 결과를 예측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한 사건이 그 이전 사건들이 야기하는 필연적인 결과라는 인상을 받을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창조론에 가장 치명적이었던 것은 과학도 좋은 교육도 아닌, 결국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한 복음주의자들의 도에 넘치는 행동이었다. 이것이 미래 세대에 두려움을 안겨 그들의 믿음으로부터 젊은이들을 떠나가게 만든 것이다.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가장 신뢰할 만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화이트의 주장은 반박하기 어렵다. 하지만 여기에는 그런 소중한 자료를 한 사람이 오랜 세월 동안 독점하고 있어야 한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바로 엘리트주의가 가지고 있는 문제다. 화이트가 그 긴 세월 동안 엄청나게 오래된 호미닌의 뼈들을 자신의 소유로 누구에게 얼마나 공개할 것인지를 완벽히 통제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 분야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아르디 화석에 대한 계속된 보호주의 때문에 화이트는 이 분야에서 자신의 명성을 드높일 수 있었다. 동시에 이는 아르디 화석에 대한 연구 속도 역시 전적으로 그의 통제 아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오만이나 희망이 진화 과정에서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인간’이 출현할 것이라는 생각을 만들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우리’가 출현했다는 사실에 지나치게 감동한다. 반면 긴침얼룩성게나 롱기마누스앞장다리하늘소, 참다랑어, 마코앵무새, 미국너구리가 진화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깊은 인상을 받지 못한다
인간과 같은 지능을 가진 존재자가 진화할 운명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인간은 만물의 척도’, 다시 말해 ‘모든 것이 우리를 향한다’라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와 같은 세계관에 도전한다. 나는 생물다양성의 가치를 경이로 받아들이는 생물학자로, 인간 중심적이며 근시안적인 세계관 때문에 우리의 친족인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이 지구에서 멸종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지능의 진화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는 어떤 생각도 의문스러운 근거들에 토대하고 있는 미성숙한 주장이며, 대부분 근거 없는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패턴을 찾아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좋아하는 동물이다. 우리는 자신의 세계와 삶에서 패턴을 발견하고 싶어 하고, 찾아낸 패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어 삶에 적용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신화, 종교, 역사, 과학의 이야기들이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다. 유전의 토대인DNA, 생명의 역사로서 화석 기록과 같이 때로는 우리가 찾아낸 패턴 중에는 실재를 표상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화성에 나타난 사람의 얼굴이나 유리창에 맺힌 성모 마리아와 같이 우리의 마음이 패턴을 부여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어느 것이 진짜 패턴이고, 가짜 패턴인지 가려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실재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하는 데 있어 회의주의자와 패턴을 쉽게 믿는 사람 사이에는 본질적인 긴장이 놓여 있다.
나는SETI 낙관주의자들과 진화론적 회의주의자들 사이에서 흥미로운 차이점을 발견했다(우리 자신은 현실주의자라 생각하자). 천문학자들은 반복적이고, 신뢰할 수 있고, 필연적인 자연법칙에 주목하는 데 반해, 생물학자들은 변덕이 많고, 확률적인 우연한 사건에 주목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