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치의 주인공인 미시킨 공작은 순수한 존재이다.세상이 더러워도, 인간이 가증스럽더라도 그는 순수하게 그것을 받아들인다.사람들은 그를 백치라고 부르며, 바보라거나 사회 부적응자 정도로 생각하기도 한다.하지만, 타인의 미추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은 가장 순수한 눈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그가 백치라 불리면서도,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진 사람으로 존경받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점에 있지 않을까?우리 시대에 단순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규칙들은 너무나도 복잡해서 이제는 그것을 만든 이들도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다.본질은 수많은 레이어 속에 갇혀 이미 사라진지 오래이다.결국 우리는 벗겨야 할 양파 껍질을 수없이 다시 붙이고 있다.도대체 왜 이렇게 복잡해야 하는 것일까?인간들이 가진 수많은 욕망들은 그 정도와 방향이 모두 제각각이다.누군가는 정상에 오르기를 원하지만, 누군가는 적당한 선을 유지하면 그만이다.누군가는 부를 원하고, 누군가는 권력을 원하며, 누군가는 사랑을 원한다.이 명도와 색상이 다른 수많은 점들은 얽히고설켜 무한대에 가까운 인식의 차이를 만들어낸다.그렇게 그물은 점점 촘촘해지고 촘촘해지는 만큼 본질은 가려진다.세상이 이렇게 점점 복잡해지다 보니 단순하다는 것은 바보 같다는 말과 동의어가 되어버린다.순수함이 아름다웠던 시절은 어느새 오래된 과거가 되어버렸다.적당히 탁하거나, 적당히 약삭빠르면서 나를 수많은 껍질로 가려야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지금 우리 시대에 똑똑하다는 말은 이런 뜻이 되어 버렸다.그렇다면 똑똑해지면 똑똑해질수록 우리는 점점 약해져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