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지금, 여기의 유학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유학도서
김성기 외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 여기의 유학

 

  예부터 우리나라 전통 학문으로 생각되어온 유학, 그리고, 민간 신앙처럼 종교로서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유교. 유학이라는 것에 대해 떠올릴 때면, 항상 거리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굉장히 오래되고, 조금은 시대에 뒤떨어 지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고리타분할 것 같고, 답답한 예의범절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고지식한 선비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우리 나라의 유학 사상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생각하고, 접근하려 하고 있다. 그러한 시도 중 하나로 나온 것이 이 책일 것이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유학에 대해서 잘 아우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필자와 같이, 유학에 대해 무지하면서도, 유학에 대해 조금이나마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좋은 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사회의 유학의 전래와, 흐름, 유학적 세계관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고, 그러한 유학이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를 모색하고 있다. 유학에 대해 단순히 소개하고, 그것을 옹호하기만 한다면,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그런 유학 서적으로 그쳤을 테지만, 이 책은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유학을 실용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지, 특히 우리나라에서 유학을 활용하여, 세계화 시대에 발맞추어 더욱 성장할 수 있을지에 대해 모색하고 있다는 면에서 실용성이 높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또한 읽어보면서 기존의 책들과 다른 면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유학에 대해 무조건적인 지지나 옹호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잘못된 점은 과감히 지적하고, 또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유학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해서도 그러한 편견이 옳지 않은 이유를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시원하게 지적을 해 주어서, 왠지 더 설득력이 느껴졌다.
  과거의 것에서 현대에까지도 배울 수 있을만한 의미를 찾을 수 있고, 과거보다 더욱 발전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에서 말하려 하는 유학의 가장 큰 교훈이 아닐까 싶다. 그러한 면에서 유학은 여러 가지로 쓰임새가 높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유학에 대해 전반적인 이해와 배경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교양서이자, 유학의 등장 배경과 유학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유지되고, 활용되어 왔는지 보여주는 역사서로서의 가치도 지니고 있다.
  개인적으로 특히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여성의 경험으로 읽는 유교’ 부분 이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유학 사상이 깊게 뿌리박혀 있고, 그 중심에는 가부장제가 자리 잡고 있다. 여러모로 생각해 볼 때, 가부장제는 여성들에게 불리한 제도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족들에게 희생하고 봉사할 것을 강요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가 바라보는 유학과, 가부장제는 다소 여성의 입장으로서는 부정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속으로 은근히, 이 책에서 페미니즘의 입장을 취해, 가부장제와 유학을 비판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용은 필자가 기대했던 내용과는 사뭇 달랐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물론, 유학과 가부장제가, 여성의 삶을 억압하는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적으로 유학의 책임만은 아니다, 과거에는 여성의 지위가 높은 시절도 있었지만, 새로운 왕조가 왕이 되고, 여러 가지 복잡한 사회적 상황과 결부되어, 의도적으로 여성을 낮은 위치에 배치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의 지위가 낮아지게 되었다....’는 식의 설명이 주를 이룬다. 역사적인 흐름을 전반적으로 다룸으로써, ‘유학과 여성의 대립’과 같은 극단적인 주제를 살짝 빗겨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솔직히 유학에 대해 커다란 깨달음을 얻고, 유학을 이해하고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유학에 대해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고정관념들을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었던 기회가 된 것 같다. 유학에 대해서 무조건 ‘좋다, 싫다’ 혹은 ‘옳다, 그르다’는 식의 이분법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좀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유학에 대해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요즘은 여기 저기서 다들 세계화 시대라고 떠들어 대지만, 이렇게 세계적으로 다른 국가들과 교류가 쉬워지고, 가까워진 상황에서 세계인들은 우리나라 고유의 것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더욱 우리 것에 대한 향수를 느끼고 있다. 이렇게 빠르게 세계화가 진행되는 시점에서 오히려 우리 것에 대한 가치가 높아지고,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무조건 우리것이 옳고, 좋은 것은 아니다. 그렇듯이 우리 유학에 있어서도, 무조건 좋고 나쁘다고 가치를 판단할 수 없다. 우리는 유학을 현대의 실정에 맞게 실용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객관적인 눈으로 과거부터 이어져 내려온 우리나라의 상황과, 유학을 제대로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자연스러운 역사적 해설과 함께, 유학에 대한 이해와 객관적인 시각을 제공하는 이 책은 누구나 가볍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풍부한 교양을 제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을 편력하는 두 기사 이야기
베쓰야쿠 미노루 지음, 송선호 옮김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세상을 편력하는 두 기사 이야기







  이 작품은 나에게 아주 특별한 충격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이야기의 소재가 여지껏 접해봤던 책과는 너무도 달랐다. 현대에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중세의 기사 이야기를 다루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두 명의 기사가 등장하는데, 이 기사들은 더 이상 사람들을 위험으로부터 구해주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을 위험에 빠지게 하고, 죽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마치 그것이 자신들의 사명인 것처럼. 책 제목 처음에 ‘돈키호테로부터’라는 말이 붙어있는데, 여기 나오는 기사들을 ‘돈키호테’와 비교해보자면, 돈키호테의 엉뚱하고 황당한 면, 그러니까 일반인들이 기사들로부터 기대하지 않았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그러한 행동을 한다는 면이 닮아있는 것 같긴 하다.

  첫 장면은 의사와 간호사가 간이식 숙박업소에 기웃거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손님을 찾고 있다. 의사는 손님을 위해, 일부로 물에 약을 탈 생각도 한다. 이번엔 목사가 나타나서, 자신의 손님을 찾는다. 자신의 손님이라 하면, 이미 죽은 시체가 되겠지만. 그리고 간이식 숙박업소 주인은 이들을 보고 화를 낸다. 자신의 손님을 먼저 차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모습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참 닮아있다. 어처구니없고, 정신 나간듯한 말과, 행동으로 현대인들을 풍자한 듯 보인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만, 살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그런 사회를 이 작은 공간에 담아 보여주고 있다. 그 뒤로는 기사 2명과 그들에게 딸린 종2명이 숙박업소에 방문한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은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기사들이 등장해서 차례차례 사람들을 죽인다. 이유 없이, 아주 잔인하게, 그리고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그들은 말한다. ‘죽이지 않으면 죽게되니까 죽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선수쳐야 된다’고 말이다. 이 말이 심히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겠으나, 잘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의 무한 경쟁을 비꼬는 듯 보인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그렇게 돌아간다. 누군가가 앞서나가게 되면 그 뒤에는 뒤쳐지는 사람이 있을 테고, 누군가가 위로 올라간다면 그 아래에 밟히는 사람이 있듯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 진정 ‘죽지 않으면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유쾌하고, 황당하고 깜짝 놀랄 정도로 끔찍한 죽음의 이야기 속에서 세상의 진실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에 박수를 치고 싶은, 세상의 부조리함을 놀랍게 꼬집어낸 그러한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의 신선과 귀신 이야기
임방 지음, 정환국 옮김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조선의 신선과 귀신 이야기







  6월이 이제 막 시작 되었다. 벌써부터 영화관에는 공포영화가 하나 둘 등장하고 있다. 사람들은 더울 때는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공포를 찾는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더울때 공포감을 느끼면 소름이 끼치는 현상과 함께 더위를 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필자는 사실 그러한 공포를 책을 통해서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을 고르게 되었다. ‘조선의 신선과 귀신 이야기’라는 책의 제목을 통해 짐작해 봤을 때, 마치 전설의 고향 같은 한국적인 귀신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했다.

  그렇지만 책을 읽어보니, 필자가 원하고 바라던 몸을 떨게하는 충격적인 공포의 장면은 전혀 등장하지가 않았다. 주된 내용은 조선의 사람들이 겪은 신비로운 체험에 관련된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이야기 하나하나가 완벽한 근거를 가지고 있어서 신빙성을 느끼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마치 전해져 내려오는 전래동화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충격적인 공포를 기대했던 것에는 다소 실망감을 느꼈지만, 나름대로 읽어가는 재미가 있는 책이었다. 내용은 주로 어디서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것들이었다. 짧게 구성된 이야기들이 읽는데에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이 책에 있는 이야기중에 특히나 흥미로웠던 이야기중 하나는, 선계에서 신선생활을 하고 돌아온 유생의 이야기였다. 깊은 산중에 홀로 가다가 신선 세계를 경험하고 돌아온뒤, 그곳을 잊지 못해 어느날 다시 사라졌다는 이야기인데, 이것은 어린시절 할머니께 듣던 전래동화와 같아서, 이러한 내용을 책으로 보니 기분이 색달랐다. 또한, 이 이야기를 읽고서, 옛날 조선시대에도 사람들이 ‘신선세계’라는 이상향의 공간을 설정해 놓고, 그것을 끊임없이 그리워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현대의 사람들만이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도 많은 사람들이 유토피아를 꿈꿔왔고, 그것을 이야기 속에서라도 느껴보려는 소망이 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인상깊었던 이야기는 한마디 말을 못해 사랑을 놓친 김생 이라는 이야기였는데,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도 결혼을 하겠다는 말을 아버지께 하지 못해서 결국 여인을 죽음에 몰고가게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내용은, 조금은 극단적이기도 하지만, 현재 우리의 삶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에도 용기를 내지 못해서 간절히 원하는 사랑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는 용기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이러한 교훈을 조선의 옛날 이야기를 다룬 책에서도 얻게 되니,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는 가치 또한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책을 읽으면서, 조선의 사람들의 삶에 대해 엿보고, 지금 나의 삶에 대해서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름대로의 의미를 얻을 수 있어 마치 즐거운 휴식을 얻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다와 양산
마쓰다 마사타카 지음, 송선호 옮김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희곡을 책으로 읽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이 희곡의 내용은 삶과 죽음의 관련된 것이었다. 하지만 내용의 전반적인 전개는 그리 무겁지 않게 이어진다. 죽음을 소재로 한 것인데도 말이다. 그 이유는 너무나 일상적인 것에서 기인한 듯 싶다. 일상적인 대화로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이 제시가 되고, 이야기가 흘러간다. 죽음 역시 그저 일상의 일부인 듯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사실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은 건강한 사람들의 삶과 멀리 떨어진 얘기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에 바쁜 나머지, 죽음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죽음을 이야기 한다. 죽음은 삶과는 뗄려면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실제로 삶과 죽음은 이 소설에서 전개되는 일상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누군가의 ‘죽음’은 누군가의 ‘삶’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일상이기 때문이다. 모든사람의 삶 역시 죽음과 연결이 되어 있으니 일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소설 속에서의 일상적인 죽음은 은은한 슬픔을 준다. 마치 잔잔한 바다의 물결 같다고나 할까?

  책의 제목과 같은 ‘바다’와 ‘양산’은 소설 속에서 하나의 소재로 등장한다. ‘바다’, 그리고 ‘양산’.. 소설에 제시되는 것처럼 주인공 부부에게 이 두 가지 소재는 일상적인 것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비 일상이기도 하다. 바다와 양산 둘 다, 두 주인공을 엮어주는 하나의 이야기 거리가 된다. 이야기의 시작은 아내가 양산을 공원에 두고 온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남편인 요지가 아내 나오코의 양산을 찾으러 간 사이 아내는 쓰러지고, 죽음이 3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통보를 듣게 된다. 또한 ‘바다’라는 소재는 주인공 부부의 마지막 에피소드를 장식한다. 바다로 소풍을 떠나고 싶어했던 나오코는 결국 남편과 함께 바다에 가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처럼, 바다와 양산이라는 소재는 묘하게 나오코의 죽음과 연결이 된다.

  그들은 죽음 앞에서 지나칠 정도로 덤덤한 모습을 보인다. 죽음을 거부하려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는다. 그저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이 사람도 외로워 질 거예요.’, ‘나 잊어버리면 안 되요.’ 라는 대사에서 나오코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혼자 남게 될 남편을 걱정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필자는 무언가 서러운 감정을 느꼈다. 그렇지만, 그것이 뭐라고 구체적으로 표현하긴 힘들었다. 소설 내용 자체가, 그러한 슬픈 감정들은 철저하게 절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로서는, 주인공보다 더 크게 흐느끼고 더 크게 슬퍼할 여지를 잃게 된다. 어쩌면 슬픔을 절제해야 하는 현실이 더 슬프고 답답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희곡을 읽고나서 ‘힘이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맥이 빠진다고 해야 하나. 대화만으로 전개되는 줄거리는, 사실 무엇인가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건지도 분간키 어려울 정도로 매우 평이 하다. 일반적인 희곡의 구성인 ‘발단-전개-절정-하강-대단원’이라는 법칙을 전혀 지키고 있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절정’이라 할 만한 대단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일종의 틀을 거부한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심심하기 보다는, 오히려 새롭고 독특하게 다가온다. 

  주된 내용은 ‘평범한 일상’에 초점을 맞춘다. 주인집 부부의 ‘운동회’ 이야기라든가, 물받이 수리라든가... 너무나 평범하기 짝이 없다. 우리가 겪고 있는 일상들과 다를 바가 없다. 보통 소설이라 하면, 일상에서는 볼 수 없는, 조금이라도 특별한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왜냐하면, 독자가 그런 새로운 체험을 엿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희곡은 현실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그것이 오히려 이 소설의 매력이 된다. 이러한 방식은 독자에게 공감을 유도한다. 또 독자는 거기에 꾸밈없는 감동을 느끼게 된다. 바다와 양산이라는 이 희곡은 평범하면서도 새로운 느낌을 준다. 희곡이라는 장르를 하나의 소설로서 읽기에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잔티움, 빛의 모자이크
이덕형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비잔티움, 빛의 모자이크



  이 책을 선택하게된 동기는 사실 학교 과제 때문이었다. 비잔티움 문화와 관련된 내용을 공부하고자 관련된 서적을 찾아 보았으나, 선택의 폭이 넓지는 않았다. 몇가지 후보를 두고 고민하다가 결국 선택하게 된 것이 이 책이었다. 일단 고급스러워 보이는 표지가 많았고, 두껍긴 했지만 풍부한 사진자료가 우선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욕심내서 한꺼번에 읽으려면 힘들겠지만, 시간을 내어 차근차근 읽기에는 적합한 서적인듯 싶다. 필자처럼 아예 비잔티움 문화에 대해 전혀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도 아마 이 책을 통해 쉽게 비잔티움에 다가서지 않을까 싶다. 내용 구성이 종교적인 내용, 역사적인 내용, 예술적인 내용이 아우러져, 조금은 정신이 없긴 했지만, 다 같이 합쳐져 있는 편이 배경 지식을 쌓고 이해를 쉽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비잔티움문화에 대해 여태껏 이름만 몇 번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많이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한번쯤 품었을 만한 비잔티움 문화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고 있다. 비잔티움 문화는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제국주의 이념과 법률 제도를 계승하고, 언어적으로는 그리스어를 말하는 제국의 동부 지역을 말하며, 문화적으로는 헬레니즘 문화 요소에 이집트, 시리아, 소아시아, 페르시아 등의 동방적 요소를 받아들인 복합 문화를 지칭한다. 비잔티움 문화는 로마 제국주의의 정치적‘보편성’과 헬레니즘적인 그리스-로마 문화유산,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보편성’이라는 세 가지 기본 요소를 바탕으로 발전을 지속해나간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비잔티움 문화는 10세기경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우고, 다른 여러 나라에도 문화를 전파 하는 등, 문화적으로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유럽 문화사 속에서 비잔티움 제국은 올바르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한 예로, 프랑스인들은 비잔티움 제국을 ‘열등한 제국’이라고 평가절하 하고 있으며, 19세기 영국에서도 비잔티움 제국을 비속한 문명이라고 폄하하는 것들이 있다. 중세 서양 미술사 또는 중세 서양 예술사에서도 비잔티움 문화와 예술에 관한 항목을 거의 제외시키고 있거나, ‘암흑시대의 모호한 예술’로 여기곤 한다. 왜 이러한 일들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었던 것일까?

  그 해답은 책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서구 문화에 비해서 비잔티움 문화를 깊이 있게 알 수 없었던 이유는, 서구 중심주의에 입각한 시각 때문이었다.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볼 때, 7~11세기에 가장 낙후한 지중해 문명은 오히려 서구 라틴 유럽의 가톨릭 문화권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 우월주의사상으로, 비잔티움 제국의 문화의 우수성은 역사 속에 묻히고 마는 것이다. 서구 중심주의의 문화적 정체성이 비잔티움 제국의 천 년 그리스도교 문화를 역사 속에서 배재시켜 버렸다. 필자는 이 부분에서‘진정 역사가들의 역할은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품게 되었다. 올바른 사관을 가지고 역사를 서술하고, 그 문화에 대해서도 후세에 알렸다면, 이렇게 편향된 문화지식이 만연하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이렇게 잘못 심어진 문화에 대한 생각의 뿌리가 흔들리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결국 진정한 역사와 문화의 전달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순수하게 역사 사실을 전달하는 역사가와, 역사를 탐구정신을 가지고 학술적으로 연구한 학자에 의해서 후세에 전달 될 수 있다. 그리하여 온전히 문화의 의미가 우리에게 전달 될 수 있는 것이다.

  비잔티움 문화는 이렇게, 서구권 문화에 의해 평가절하 되지만, 실제 비잔티움 제국은 고대 그리스의 사상과 문화를 보존하였고, 중세 유럽의 문화 발전과 슬라브-러시아 지역의 정교 문화 형성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특히 종교 예술분야에서는 그리스도교 바탕의 세계관을 전개시켜 13세기 이후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날 수 있는 기반까지 마련한다. 비잔티움 문화가 없었다면, 12세기 이후 스콜라 철학과 로마네스크 및 고딕양식을 포함한 서구 유럽의 중세 문명 역시 결코 성립될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비잔티움 제국은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의 교차점에 위치하면서 이집트, 시리아, 이란, 카프카스 지역의 다양한 변방 문화를 흡수하였고,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실시하여 제국만의 독특한 문화적 통일성을 유지시켰다. 결국, 비잔티움 제국은 지정학적인‘이질적 다양성’들을 하나로 결집하고‘보편성과 통일성’을 문화적으로 실현한 동로마 지역의 중세 그리스도교 국가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된 주요한 인물 중 눈여겨 보아야 할 인물이 바로 사도 바울로다. 그는 당시 보편적인 헬레니즘 문화 속에서 성장한 로마 시민이면서 동시에 이민족의 종교에 배타적인 유대교도 였다. 이러한 그의 특성은 그리스도교의 전파에 크게 이바지 하게 되고, 이는 후에 비잔티움 문화를 형성하는 데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주는 것이 된다. 사도 바울로는 전도 여행을 통해 오늘날 이문화 접촉에 해당하는 세계화를 실천한 사람이었다. 오늘날 그를 평가하자면 진정한 세계인이라고도 평가 할 수 있겠다.

  책에 언급된 구절 중 현재에도 커다란 의미를 주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문화 현상을 설명한 부분일 것이다. 문화는 보편성과 특수성이라는 원리와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고 한다. 보편성과 특수성이 서로 조합되면 문화는 생성되고 탄력을 받게 되지만, 이 둘 사이의 균형이 다른 하나로 치우치게 될 경우 문화는 종종 소멸의 길을 걷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문화는 총체적인 보편성과 국지적인 특수성이 교차하는 직물이라는 비유가 상당히 적절한 비유이다. 필자는 이러한 직물과 같은 일련의 과정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반복적으로 진행될 때, 문화는 생명력을 갖게 된다고 주장한다. 문화는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보편성이 필요하고, 그러면서도 문화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것만이 가진 특별한 점이 있어야 한다고 여겨진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확산 과정도 바로 이와 같은 문화의 생명력에 가장 잘 부합되는 역사적 실례가 될 수 있다. 초기 그리스도교는 외적인 보편성에, 자기 고유의 내적인 특수성을 마련하여 세계 종교로서의 위상을 정립할 수 있었다. 비잔티움 문화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비유에 적용시켜 보면, 오랜 세월 보편성과 특수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후세에 까지 전해 내려오는 거대 문화를 이룩하게 된 것이라 말할 수 있겠다.

  이 책은 결국 우리나라 사람들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비잔티움 문화의 역사와 의의에 대하여 재조명 하고 있다. 전체 내용이 너무나 광범위하고 세밀하며, 문체가 화려하고 길게 만연되어 있어서, 독자가 읽는 동안 잠시 집중력을 잃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 저자의 초점은 비잔티움 예술 속에 살아있는 미를 밝히는 것이다. 그 미란 바로 영원의 속성이자 신성의 아름다움을 반영하고 있는 실체의 하나이다. 비잔티움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교회 내부의 모자이크나 프레스코, 이콘 속에서 성스로운 이미지의 형상으로 표현되어져 있다. 초월과 내재의 매개적 요소로서 ‘빛’은 비잔티움 미학에서의 색과 더불어 중요한 교리적, 상징적, 심미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러한 지식을 토대로, 모르고 지나쳐 버린 비잔티움 문화에 대해서 머릿속으로 그 아름다움을 새겨보며, 깊이 있게 음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