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무의 일기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지음, 이재형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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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어느 나무의 일기

 

프랑스 작가가 쓴 이 소설은 교훈적이다.

소설의 재미를 나름 첨가한 것 같지만, 그닥 매력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제목에서 일기라고는 했지만 일기 보다는 여행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한 것 같다.

 

1.

나무의 이름은 트리스탕이다.

루이 15세 때 심어진 이 배나무는 프랑스의 역사의 산증인이다.

돌풍에 트리스탕은 뿌리가 뽑혀 나간다.

결국 그는 나무의 생을 마감하지만 그의 의식은 자신의 일부에 남아 있다.

 

그를 사랑했던 꼬마 숙녀인 마농은

트리스탕을 이용해서 조각품을 만든다.

 

그녀로부터 다시 삶을 시작하게 된 트리스탕.

또한 마농도 그를 사랑해서 그와 이름이 비슷하게 개명을 한다.

바로 트리스탄으로.

 

이야기는 트리스탄과 야니스의 불꽃놀이 사랑으로 이어진다.

이 둘의 커플은 나이차가 꽤 나는 것 같다.

야니스가 임신을 하고 나서 아마존으로 떠나는데

솔직히 왜 떠나는지 모르겠다.

 

문화적 차이인가.

아니면 여자의 심리인가.

 

세월이 흘려서 트리스탄의 아들 토에는 야니스를 만나게 된다.

그렇게 중요하게 처리된 장면은 아니다.

그저 하나의 상징으로 쓰여진 것 같다.

 

2.

 

야니스는 트리스탕에 관한 책을 집필하지만 잘 안 된다.

그러다가 그의 장기인 바람을 또 피운다.

야니스는 100살까지 산다.

참, 저렇게 밤낮으로 섹스를 하는데도 오래 사는거 보면

카사노바를 능가하는 정력가인거 같다.

 

이야기는 그저 나무인 트리스탕이 들려주는 걸로 끝이 난다.

간혹 나무가 인류에게 전해주는 경고 메세지가 뜨기는 하지만

이야기가 유기적이지 못해 감동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일부 식물들은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로 부터 방어하는 수단으로

피임약을 상기시키는 양의 프로게스테론과 에스트론을 꽃가루에 뿌리는 걸로 밝혀졌다.

 

자연의 반격이 시작되면 우리 이제 끝장이다.

지, 잘 난 맛에 자연을 엉망으로 만들더니

이제 어쩌누.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결국 자연을 훼손하지 말자는 것이다.

결국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자연의 일부부인 것을 인정하며 살자.

우리의 편의를 위해서 동식물들을 그만 죽이자.

그 대가를 누가 받겠는가.

 

우리가 뭐가 뛰어나다고 자연을 함부로 대하는가.

인류가 지금보다 손톱만큼이라도 겸손했더라면

지구에 사는 동식물의 멸종을 거의 막았을 것이다.

 

 

 

[출판사에서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저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서평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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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이 항상 따르는 사람들의 7가지 비밀 - 운 좋은 사람들의 아주 사소한 습관들
마크 마이어스 지음, 김선형 옮김 / 페이퍼스토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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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이 항상 따르는 사람들의 7가지 비밀

 

행운은 단순히 운을 말하는 것일까.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대는 사람에게도 행운이 있을까.

물론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뼈빠지게 노력을 했는데 왜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들에게는 왜 행운이 접근을 꺼리는 것일까.

 

노력을 한다고 해서 100%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여기에 행운이 들어가야 한다.

행운은 자신을 부르는 사람에게 따라다니는 습성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불러야 행운이 자신 곁으로 올까.

그 의문점을 이 책에서 이야기해 주고 있다.

 

 

1.

p 171. 대가를 바라면 당신은 실망하게 되며

자신의 운을 깍어 먹게 될 것이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고 나서 대가를 바란적이 있다면.

누군가를 도와 주고 나서 대가를 바란적이 있다면.

물론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 대가가 돌와오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을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서 부어 놓는 적금과 같기 때문이다.

적금이 꽉 차지 않았는데 깰 이유는 없지 않은가.

 

2.

p 195. 당신이 느긋하게 마음먹고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면 놀랄 만큼 낙관적이 될 수 있어요.

어떤 일이 일어나건 사람들을 돌봐주고,함께 나누고,베풀려고 노력하세요.

 

여유로운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말을 할때에도 빨리 말하는 것은 신뢰에 영향을 준다.

되도록이면 천천히 하는 것이 좋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의 여유가 필수다.

 

3.

이 책에서는 총 7가지의 비밀을 말하고 있다.

이 중에서 특히 '감정에 휘둘려서 인간관계를 끊지 마라'라는

비밀이 가슴에 와닿는다.

 

인간은 감정적인 동물이다.

자신에게 안 좋은 행동이나 말을 하면 되려 복수를 생각한다.

물론 다 참으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순간을 참으면 나중에 일을 생각했을 때 도움이 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이 책에 나와 있는 행운을 보니 문득 만화가  떠오른다.

'캡틴 테일러'라는 일본 만화다.

 

이 만화의 테일러라는 주인공은

어리숙해 보이고 아는 척하지 않고 호기심은 많고

적에게 친절하며 감정에 휘둘려 인간관계를 끊지도 않는다.

그래서 만화속에서 그는 부하직원들에게 얼간이로 놀림을 받는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순간에서

그는 놀라운 판단력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그때는 모두 테일러의 운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테일러는 스스로 운을 불러 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에 나와 있는 대로 살면 정말 테일러처럼 된다.

 

행운은 어린아이와 같은 동심이 없으면 곁에 두기 어렵다고 생각된다.

그래도 그런식으로 연기라도 하면 올 것이다.

 

행운을 부르는 비밀인 동시에

사람을 부르는 비밀인 이 책은

성격 깐깐한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출판사에서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저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서평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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웜 바디스 블랙 로맨스 클럽
아이작 마리온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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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웜 바디스

 

좀비가 주인공인 로맨스 소설이다.

일단 좀비라는 설정자체가 흥미롭다.

그 설정때문에 이 소설은 가볍게 보인다.

왜냐하면

좀비는 내 머릿속에서 영화의 엑스트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우스꽝스러운 몸짓이나 어눌한 말투보다는

영화 주인공이 그들을 물리칠는 모습이 더 각인되어져 있었다.

 

이 소설은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던

좀비의 사랑과 여행이 담겨져 있다.

또한 인류의 야만적인 횡포도 포함되어 있어

결코 가벼운 소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1.

이유가 무엇이든간에 세상은 좀비와 정상인으로 나뉘어져 있다.

주인공은 남자 좀비 R이다.

여자 주인공은 줄리라는 정상인이다.

남자 주인공이 줄리를 구해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좀비라면 당연히 인간을 먹어야 하지만 R은 먹지 않고

그녀를 자신의 은신처인 747비행기 안으로 데리고 온다.

줄리는 처음에 의혹의 시선으로 그를 보다가

그가 다른 좀비와 다름을 알게 된다.

 

R은 줄리를 그들의 보금자리로 되돌려 보내는 일을 하게 된다.

 

2.

소설은 긴박함과는 거리가 다소 멀지만 순간 순간 R이 생각하는

서술에서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된다.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괴로워 하는 주인공.

그녀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는 용기.

사랑을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는 순정파.

 

줄리는 그런 R을 사랑하게 되고 소설 후반부에 멋있는 대사를 한다.

 

P 313 "우리가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해서

아무 생각이 없을 거라고 우리 맘대로 추정하는 건지도 모르잖아요?"

 

정상인들은 좀비를 알려고 하지도 않고 무작정 죽이기에 바쁘다.

그들을 연구하는 목적은 그들을 죽이는 것에 한정되어져 있다.

물론 그럴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여기서 한발짝 더 나아간다.

다른 좀비와 다른 R을 더 이해하려는 줄리와 그녀의 친구 노라.

적이 아닌 친구로 볼 수도 있다는 그들의 시선이 새롭게 다가왔다.

 

3.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 '가위손'이 생각났다.

에드워드를 바라보는 인간들의 시선.

잘 알려고 하지도 않은채 자신들만의 시선으로 보고 판단해 버리는 단순함.

 

인류가 종말을 맞이한다면

인간들의 협소한 시선이 한 몫 단단히 할 것이다.

 

줄리라는 여자는 왜 썩어가는 R을 사랑했을까.

외모도 안 되고, 학벌도 안 된고, 경제력도 없는

좀비인 그에게 왜 정을 느꼈을까.

 

자신의 내면과 통하는 그 무엇을 느꼈기 때문이다.

교과서적으로 말하면 정신적인 교류가 원활한거다.

 

자신의 배우자가 좀비가 된다면?

당신은 버릴 것인가?

아님, 같이 좀비가 될 것인가?

 

어려운 선택이다.

방법은 이 책에 나와 있다.

배우자인 좀비가 나을수 있도록 곁에서 지켜봐 주는 것이다.

 

당신의 배우자가 좀비가 되어도

사랑이 식지 않을 자신이 있으면

 이 책을 읽기 바란다.

 

[출판사에서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저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서평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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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섹스 - 생명은 어떻게 끝나고 다시 시작하는가?
도리언 세이건 & 타일러 볼크 지음, 김한영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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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죽음과 섹스

 

저자 한명이 지은 책이 아니다.

'죽음'은 도리언 세이건, '섹스'는 타일러 볼크.

 

두 저자의 공통점이라면, 창조론을 부정한다는 것이다.

도리언 세이건은 책에서 스스로 무신론자임을 밝혔고

타일러 볼크는 은근히 자신이 창조론을 믿지 않는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즉, 이 책은 죽음과 섹스를 과학으로 풀이하고 있다.

감성적으로 죽음과 섹스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1.

인간은 언젠가는 자신의 육체를 버릴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은 생명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다.

지금도 바로 이 순간에도 우리의 몸속에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고 있다.

 

우리의 육체에서 수많은 생명들, 즉 세포들이 죽고 있으며 다시 태어나고 있다.

우리가 자각을 하지 못 할뿐이지 우리는 죽음을 삶의 연료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p 62. 헛물관으로 변할 세포들은 살아있을 때의 세포 내용물이 텅 비어진다.

기본적으로 살해를 당하는 셈이다.

 

식물은 삶을 연명하기 위해 자신의 세포를 죽이고 이용한다는 것이다.

즉, 죽음이란 두려움이 아니라 개척이라는 말인 것 같다.

 

p 128. 나는 자신을 흐르는 물 위의 잔물결로 간주한다.

내가 있는 곳은 여기인 동시에 여기가 아니다.

 

지금의 내가 가지고 있는 몸. 뼈와 피와 살들은 예전의 것이 아니다.

우리의 세포들은 주기적으로 바뀐다.

즉, 우리의 몸은 몇개월에서 몇년에 걸쳐 완전히 다른 세포로 교체가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삶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나는 나라는 자신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처음에 내가 아니다.

우리는 호수의 잔물결을 볼 때가 있다.

조금씩 물결치는 그 잔물결이 지속적으로 호수의 맞닿은 면에 부딪힌다면

호수의 모양은 변할 것이다.

 

우리의 몸은 그렇게 조금씩 아무도 인지하지 못하게 변하고 있다.

결국 죽음이라는 생물학적 단계에서 끝이 나지만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을 잉태하는 자양분이라는 것이다.

자연의 순환계라는 것이다.

 

우리의 육체가 죽음으로써 우리의 종은 다음단계의 진화를 준비한다.

그것은 내가 아닌 타인의 삶을 보존해 주는 것이다.

죽음에 이르되 죽지 않는다는 말이 그것이다.

 

2.

섹스를 왜 하는가는 단지 종족 번식에 있지만은 않다.

더욱이 인간은 그러하다.

쾌락을 위해서 섹스를 하는 종이 인간 말고도 다른 영장류에서 발견된다.

특히, 보노보는 단체로 섹스를 하며 섹스를 하나의 놀이로 여기는 종이다.

 

식물들의 경우에도 섹스를 한다. 하지 못하는 종은 자웅동체로 스스로 해결한다.

섹스는 나와 다른 종이 결합하여 하나의 새로운 종을 탄생시킨다는 의미.

즉, 좀 더 강한 종의 진화를 의미한다.

 

섹스에 있어 좀 더 문란한 쪽은 암컷이다.

이들은 더 강한 씨앗을 얻기 위해 여러 수컷들과 성교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생명체가 태어났을 때

누군가는 그 생명체를 키워야 했다.

일부일처제는 즉, 암컷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3.

이 책은 논문이나 마찬가지다.

지루하고 재미는 없지만 새로운 지식을 접한다는 즐거움이 있다.

죽음과 섹스라는 인간의 미묘한 감정을 과학적으로 풀이해 놓았다.

다소 감정이 없는 마네킹 같은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최소한 인간과 다른 생명들의 유사점을 알 수 있다.

 

죽음과 섹스는 생명체가 진화하기 위한 필연의 과정이었다.

그러하기에 결코 두려워하거나 창피해 할 이유가 없다.

동물들에게 도덕을 찾기 힘들지만, 동물들을 비난할 이유는 없다.

그것은 생명체의 본능이며 살기 위한 나름의 법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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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여자집 2012-01-28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봤습니다.^^
 
신은 위대하지 않다 - 개정판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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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위대하지 않다

 

이 책의 제목을 보면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듯 보인다.

 이 제목은 역설속의 역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은 위대하지 않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아는 신은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대단한 신이 왜 존재할 수 없으면 왜 우리 곁에 아직까지 살아남았는지를

저자는 역사와 과학과 현재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세상의 종교들을 향해

더 이상 공포와 두려움으로 사람들을 미혹시키지 말 것을 주장하고 있다.

 

1.

인류의 역사는 종교와 같이 걸어왔다.

그것은 인류가 자신의 존재가 약하며,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는데서 출발한다.

 

인간은 종교를 만들고 신을 만들었으며, 신에 무한한 권력을 안겨 주었고

그 권력을 지키기 위해 말도 안되는 구실을 들어

수많은 사람들을 피팍하고 죽였다.

 

누구나 다 아는 십자군 전쟁, 마녀 사냥을 차치하고라도

현대에 와서 구 유고에서 벌어진 인종 청소라는 전쟁이

실은 그 이면에 종교전쟁이라는 것을 차치하고라도

현재까지도 할례와 여성의 음부를 훼손하는 것이 신의 뜻이라고

따르는 종교인들을 차치하고라도

자신들만의 종교가 우위이며 다른 종교는 이단이라고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세계 곳곳의 종교인들의 독선과 아집을 차치하고라도

수많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벅찰 만큼 종교는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다.

 

인류가 로켓을 발사하고 달의 착륙하고

지구가 태양을 돌고, 진화론이 발달한 현재까지에도

종교의 위상이 이토록 대범하게 살아남는 그 이유에는

인간의 근본적인 두려움을 이용한 종교인들이 있는 것이다.

 

2.

p 172 "신약에 등장하는 갖가지 모순과 무식함은 저명한 학자들이

쓴 수 많은 책의 소재였디만, 기독교 당국자들은 '은유'라거나 '믿음의 그리스도'라는

애매한 말을 늘어놓을 뿐 이런 문제를 설명한 적이 없다.

 

신은 없다라는 책에서도 위와 같은 말을 늘어놓은 적이 없다.

종교인들은 자신들의 경전이 은유와 믿음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더 이상 당신들과 토론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실재를 무시하고 은유를 믿으라는 것이다.

즉, 과장법을 믿고 따르라는 것이다.

 

마치 아이스크림이 산처럼 크다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인데.

만일 길거리에서 이 말을 믿으라고 한다면 대부분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신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면

모두들 잠시 주춤 거리고 고개를 끄덕인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까지는 그런대로 통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인류는 더 이상 사탕을 주면 울음을 그치는 단순한 아이가 아니다.

즉, 감성이 아닌 이성으로 스스로 사고할 줄 아는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p 411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계몽주의 운동이다.

인류의 견본은 바로 인간 그 자체라는 의식을 바탕으로 한 계몽주의 운동 말이다.

 

저자는 인류가 깨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류 전체가 이제는 더 이상 종교에 이용 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종교는 인류의 유아기때 만들어진 유치한 인류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인류에게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성장하면 더 이상 유아기 때 옷을 입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그 옷을 찾고 입으려는 시도를 하는 것은

측은지심이 아니라 황당하게 만든다.

 

인간은 이제 이성과 지식으로 객관적인 판단을 할 때가 온 것이다.

 

 

[출판사에서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저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서평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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