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스 2 : 집으로 가는 길 ㅣ 팍스 2
사라 페니패커 지음, 존 클라센 그림, 김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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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다시 읽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린 왕자》를 다시 읽으면 왕자가 이해하지 못했던 혹은 어릴 적의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어른들의 모습을 이제는 이해하게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팍스》의 피터는 완고했고 어찌 보면 무모했으며 쉽게 공감하기 어려울 만큼 용감했다. 얼마 전 반려동물과 아버지를 모두 잃고 거의 혼자가 된 열세 살 어린아이라면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해 줄 곳을 찾기 마련일 텐데 그는 과거 자신이 살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바깥으로 바깥으로 나아간다. 나는 어른이 된 지금도 도전하길 좋아하지만 어른이 되었으므로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말하지만 어쩌면 내가 선택한 일일는지도 모른다) 안전한 길을 택하곤 한다. 어쩐지 존재하는 내 주변의 울타리들이 오랫동안 견고하길 바라며 가끔은 어릴 적보다 더 보호받고 싶은 열망이 생기곤 한다. 문득 어린이였을 적의 나를 깨달으며 그 모습을 피터에 겹쳐 본다. 무모하고 자신의 힘을 믿었던 아이, 현재의 안온보다 오래된 추억과 가슴에 품은 사랑을 더 귀히 여겼던 아이. 자라나는 아이들은 그런가 보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피터의 용감한 다정을 안쓰러이 지켜볼 수밖에 없는가 보다. 이 책을 읽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감상을 듣고 싶다. 내가 잊어버린 어쩌면 잃어버린 어릴 적의 우정과 용기와 믿음을 현재의 아이들은 여전히 가지고 있기를, 그리고 그 소중한 성장의 감정들이 그다음 세대로 무사히 물림되기를 바란다. 


…어린 왕자가 영영 어린이로 남아야만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돌봄을 잃은 동물들에 대해 생각했다. 돌봄을 잃었다는 말은 곧 '이전에는 누군가에 의해서 돌보아졌음'을 함의하고 있다. 《팍스》에서 여우 팍스(Pax)는 구해졌고 돌보아졌고 결국 다시 버려졌음에도 인간의 사랑을 잊지 않았고 자신을 돌보아주었던 인간을 믿었다. 그런 믿음을 피터는 (일시적으로) 배반한다. 이것은 배반 외의 다른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우면서도 배반이라고 단정 짓기 어려운 행동이었다. 피터가 총을 챙기는 순간부터 나는 그를 조금씩 원망하게 되었는데 동시에 그 지점에 도달해서야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하기 시작하는 내가 왠지 우습기도 했다. (1권을 읽고 나서 2권을 읽었더라면 피터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었을까) 


다행스럽게도 이 책의 제목은 《피터》가 아니라 《팍스》다. 팍스는 라틴어로 '평화'를 뜻하며 로마 신화에서 평화의 여신의 이름이기도 하다. 따라서 팍스는 피터에게 평온을 가져다주며 피터를 평화롭고 안온한 길으로 인도해주는 존재다. 그러나 주인을 끝까지 사랑하고 믿는 것은 인간에게 마음을 내어준 동물들의 특징적인 면모인 것을. 파괴하고 미워하고 버리고 버려지는 인간의 잔혹함과 피폐함 앞에서도 인간을 사랑한 동물들은 최후의 애정을 보여 준다. 《팍스》는 잔혹한 세계에도 끝내 사랑과 따스함을, 희망과 다정을 버리지 않는 인간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동물의 눈으로 표현해낸다. 


3.


존 클라센의 여우 그림들이 좋았다. 여우보다도 더 여우같다고 이야기하면 여우들에게 실례가 될까? 하지만 그가 그린 여우들은 숲과 들판과 책과 사람에게 동화되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동물이었다. 그림은 흑백이었지만 그림 속 여우는 살아 있는 것만 같았다. 삽화가 섭외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동화.


※ 아르테 책수집가 활동을 위해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치 네가 여우를 가지기라도 할 것처럼 얘기하네.
-저도 예전에 한 마리 키웠어요.
피터가 차분하게 말했다. 목구멍이 옥죄어 왔다. 두 손을 꽉 움켜잡았다. 진정되자 이어 말했다.
-그래도 제가 가졌던 건 아니에요. 그건 제대로 된 표현이 아니에요.
피터는 제대로 된 표현을 알았다. 사랑. 피터는 팍스를 사랑했고 팍스는 피터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 말을 차마 내뱉지는 않았다.
-제가 길들였어요.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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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소호 지음 / 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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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나는 그를 꼭 시인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감정에 사로잡힌다. 동시에 그를 시인이라고 불러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 속에서 헤맨다. 이소호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시를 쓰는 사람이니 분명 시인인데 - 그렇지만 시인이라는 두 음절의 단어 속에 가두기엔 너무나 자유분방하고 놀라운 사람. 그런 사람•••. 내가 '시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가 에세이이기 때문. 하지만 과연 이소호의 글에 장르를 매길 수 있을까? 장르로 그의 글을 가둘 수 있을까?

0.

시인 또한 이 작품을 '어떤 불행한 예술가가 한 땀 한 땀 손수 지은, 여러 사람에 대한 단 하나의 이야기이다. 거짓과 진실이 뒤섞여 독자는 영원히 알 수 없는, 아주 불평등한 이야기'라고 묘사한다. 이 에세이가 픽션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저 '나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에세이에서 타자는 '허구처럼' 보일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에세이에서 타자는 내가 바라본 '타인'으로 등장하고, 당신조차 모르는 당신의 모습이 내 이야기에서 샅샅이 토로된다. 그것은 에세이의 매력이자, 에세이의 위험한 면이다. •••위험한 것은 매력적이다.

0.

이소호는 진솔하고, 시적이다. 그리고 진솔해서 시적이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녀의 현실적인 삶 깊은 곳에 가 닿았다가 순간 아주 예술적이고 아주 먹먹한 지점까지도 포용한다. 그녀의 에세이는 아름답지 않음을 아름답게 만든다. 투박하고 솔직하고 때론 엉망진창인 사랑 이야기는 실패담이어서 더 인간적이고 더 사랑스러우며 더 재미있다. 시인이 나와 너무나 다른 사람이었던지라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이소호는 미지였고 놀라움이었고 그녀의 글을 읽다 보면 수많은 것들이 새로웠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의 세상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 적어도 이해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고 - 그녀의 글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전율하곤 했다.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가 그녀의 전시회였다면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녀의 스케치북이었다. 어쩌면 망작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실패한 그림들이 담긴 스케치북. 어찌 보면 초라하고 남루하다. 그런데 그 초라함과 남루함이 우습게도 아름답다. 그래서 사랑을••• 사랑이라고 하나 보다. 그런 아름다움 탓에 우리가 사랑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일 테야.

99.

달 출판사의 에세이가 좋다. 나는 천부적으로 에세이 읽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인데 지금껏 접한 달 출판사의 에세이들은 모두 웃고 감동하며 편하게 읽었다. •••아무래도 나는 시인들의 산문을 좋아하나 보다. 유희경 시인의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도 인상적이었는데, 박준 시인의 『계절 산문』과 이병률 시인의 『혼자가 혼자에게』도 꼭 읽어 보아야겠다.

디자인 면에서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타이포나 삽입된 디자인 아트가 모던하고 독창적인 느낌인데다 배경에 쓰인 깔끔한 분홍색이 참 귀엽다. 내지에도 디자인 요소가 과하지 않게 배치되어 있어 좋았다. 소제목이 적힌 부분에 기하학적인 디자인 요소들이 다양하게 삽입되었는데, 《모두를 찢어 붙인 모자이크》에 모자이크 기법의 무언가를 본뜬 듯한 도형들이 들어가 있어서 각 챕터 내용을 반영해 디자인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작품 후반부 《흑》과 《백》의 소제목 디자인이 특히 마음에 남았다.

※ 《망한 연애 조작단》 서평단 활동을 위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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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오팅캘리의 슬기로운 기록생활 - 사소한 일상도 특별해지는 나만의 작은 습관
이호정(하오팅캘리)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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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딱 한 개의 단어일지라도, 사진 한 장일지라도 충분하다. 다른 사람들의 기록과 또 기록에 대한 조언은 참고할 만한 것이지, (그것을) 나한테 적용할 필요는 없다. 다른 것들을 신경 쓰는 순간 내 기록은 방향도, 쓰고자 하는 바도 잃는다. 또 좋은 것만 '잘' 써넣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87쪽)


대학에 진학하고서부터 다이어리를 본격적으로 쓰게 되었다. 기존에 스터디플래너였던 것이 다이어리로 한 단계 진화했고 공부 이외의 하루하루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나는 항상 다이어리 혹은 플래너 쓰기는 개성이고 취향이며 극한의 주관적 영역이라고 생각해왔다. 작년 시월 『30일 셀프 카운슬링 다이어리』 리뷰에서도 말했듯, 나는 마음의 고민이나 사적인 기분을 글로 남기는 것을 지양하는 편이다. 그래서 나의 다이어리는 객관의 일기에 가깝다. 그래서 저자의 다이어리 사진을 볼 때는 왠지 남의 내밀한 일기를 훔쳐본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저렇게까지 솔직한 심정을 남길 수 있다니. 나는 가끔 모든 감정이 휘발되어 사라지고 '감정'이라는 존재를 새로 익힐 수 있게 되길 바라곤 하는데. 


나의 다이어리에서 거의 유일하게 객관적이지 않은 영역은 '아이디어'다. 다이어리는 불현듯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메모하는 공간으로도 쓰인다. 휴대전화 메모장과 병용하긴 하지만 갑작스레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단상들을 개괄식으로 끄적이기는 다이어리 쪽이 더 편하다. 


저자가 책에서 말하고 있듯 타인의 기록과 기록에 관한 조언은 상대방의 것일 뿐이다. 다이어리 쓰기가 필수적인 것 또한 아니다. 내 주변에는 오히려 다이어리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에 독서 기록을 남기는 것도 하나의 '기록'이다. 형태는 다양하고 방법은 무궁하며, 어쩌면 기록 자체가 개성이고 취향이며 극한의 주관적 영역일지도 모른다.


2.


아무래도 나는 쓰지 않는 삶이 무용하다고 느끼기에 계속 무언가 기록하려 드는 것 같다. 생각한다기보다는 '느끼고 있기' 때문에. 내 안에 존재하는 무언가가 나에게 계속 쓰라고 이야기한다. 그런 목소리는 머리와 이성으로만 들을 수 없는 음성이다.


3. 


'글'은 '개성이고 취향이며 극한의 주관적 영역'인 '기록'의 결과물이다. 그래도 가끔은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보통의 산문에 '(?)'가 삽입되면 글의 흐름이 끊기며 저자의 글에 대한 신뢰성이 조금 떨어진다. 책을 읽으며 '(?)'를 발견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내 안의 의아함은 뭉실뭉실 부풀어 오른다. 저자는 '(?)' 표시를 붙일 만큼 불확실한 표현을 반드시 글에 포함해야만 했을까? 다른 표현으로 바꾸어보거나, 혹은 '(?)' 앞에 쓰인 내용을 확신의 영역으로 이행시키려고 노력한 결과물일까? 그런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의 활용이 저자의 작법이고 개성이라 하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특별한 문학적 장치가 아닌 이상 사용을 지양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역시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은 어쩔 수 없나 보다.


4.


『하오팅캘리의 슬기로운 기록생활』과 같은 생활지침서 성격의 에세이를 평소에는 잘 읽지 않는 편이라 이러한 책을 읽는 사람들의 성향이나 취향이 궁금해졌다. 에세이의 경우 문학서나 인문서에 비하면 내지에도 그림이나 일러스트, 디자인 요소가 여럿 들어가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결국 책을 집어 들고 선택하여 읽고 구매하는 것은 독자들인데, 에세이를 주로 읽는 독자들은 어떤 디자인의 도서를 선호할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개인적으로는 내지 편집에 많은 종류의 서체가 사용되어 다소 소란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본문 내용이 반점(쉼표)의 크기가 크고 형태가 뚜렷한 서체로 쓰였는데, 저자가 글에 반점을 상당히 많이 사용하고 있었던지라 문장 부호가 자꾸 눈에 띄었다. 너무 긴 문장이나 주술 호응이 어색한 문장도 종종 보였다. 이러한 점들이 자칫하면 독서에 불편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만, 자간과 행간이 넓고 글씨 크기도 커서 읽기 자체가 그다지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쉽고 편한 글이어서 정말 순식간에 읽었다.


- 책수집가 활동을 위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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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보다 가벼운 둘이 되었습니다 - 비울수록 애틋한 미니멀 부부 라이프
에린남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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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니멀리즘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이 책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미니멀리즘은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예술과 문화적인 흐름'으로 그 범위가 방대하다. 따라서 '채워나가던 사람'이 무언가를 '줄이기 시작하며' 새로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았다면 그 또한 미니멀리즘이라 할 수 있을 테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미니멀리스트의 에세이였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미니멀리스트의 에세이'라 규정하기보다는 새로운 환경과 생활을 통해 성장을 경험한 개인의 성장기라 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 생각했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건 '비우며' 삶의 균형을 맞추는 삶의 지향이 아니라 '필요'에 대해 이해하고 '자신에게 맞는' 삶의 균형을 찾아가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그리고 사실 그것은 맥시멀리즘과 미니멀리즘을 따지지 않아도 현명하고 유익한 삶을 살기 위해 필수적으로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가 아닐까. 삶의 균형을 찾지 못한 생활은 흔들거리다 언젠가 무너지기 마련이므로.

 

♥ 저자는 다양한 결혼생활 에피소드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생각을 바꾸었던 과정을 이야기한다. 남편의 운동화를 고를 때 제 취향을 고집했다가 남편이 그 운동화를 거의 신지 않자 결국 처분하게 된 이야기 말미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나는 그 경험을 통해 또 한 번 다른 마음을 갖게 됐다. 남편 물건을 살 때는 내 기준이 아닌 남편의 기준으로, 남편을 위한 것을 사겠다고 말이다. 원래 그게 당연한 일이지만..." 내가 아닌 타인이 사용할 물건을 고르는 것인데 내 취향을 고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줄 선물을 준비할 때도 내 취향대로 고르기보다는 선물을 받을 상대의 취향을 좀 더 생각하는데, 애초에 상대가 사용할 것을 이미 알고 함께 고르는 물건이라면 더더욱 상대의 생각을 먼저 듣고 나의 생각을 얹는 식으로 의견을 조율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일찍 깨닫지 못했던 저자를 탓할 수는 없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개개인의 속도는 모두 다르고 마찬가지로 저자가 이미 깨달은 무언가를 나는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저자는 자신의 부족했던 부분을 되짚으며 성장해온 그의 길을 되돌아보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 결혼하면 아이를 낳길 바라는 남성과, 그런 남성과 결혼해 거듭 고민하고 갈등하는 여성의 모습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저자는 '미래에 내가 엄마가 된다면 부디 그 결과가 다른 누구를 위한 일이 아니었길 바란다.'라고 말했지만 나는 모든 여성이 엄마가 된다면 '그 결과가 다른 누구를 위한 일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한 여성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놓는 선택임에도 어떤 여성은 타인의 기대와 바람을 충족시키기 위해 아이를 '낳아야만' 했다. 앞으로 이 세계를 살아갈 여성들은 정말 자신이 원하고 바랄 때, 그것이 온전히 자신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을 때 아이를 낳았으면 좋겠다. 프롤로그에 나왔던 '공부하고 일하느라 고생하는 남편을 대신해' 집안을 꾸려나갔다는 말이 책을 덮은 뒤에도 마음에 남았다. 많은 여성들이 '아이를 바라는 남편을 대신해' 아이를 낳지 않길... 소망할 뿐이다.

 

♥ 귀여운 일러스트가 가볍고 편안한 글과 조화를 이루어 좋았는데, 글꼴 선정이 조금 아쉬웠던 것 같다. 제목과 부제목에 쓰인 둥근 글씨체와 이외 다른 정보나 문구에 쓰인 고딕체가 묘한 부조화를 이루었다. 제목 글씨체는 일러스트에 맞추어 둥글고 귀여운 느낌을 살리려 했던 것 같은데, 같은 면에 들어가는 서체끼리의 조화도 조금 더 고려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


​​​​​​​※ 아르테 책수집가 활동을 위해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주 조금, 정말 아주 조금 아까운 마음에 속이 쓰려왔지만, 나는 그 경험을 통해 또 한 번 다른 마음을 갖게 됐다. 남편 물건을 살 때는 내 기준이 아닌 남편의 기준으로, 남편을 위한 것을 사겠다고 말이다. 원래 그게 당연한 일이지만...... - P28

다른 사람들은 크게 상관하지도, 쓸데없이 걱정을 하거나 참견하지도 않았다. 그런 환경 속에서 나도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되었고, 조금씩 자유로워졌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보다 내가 입고 싶은 대로 입고, 시도해 보지 않았던 새로운 옷에 도전했다. 자유로운 기분을 자주 느꼈다. - P34

미래에 내가 엄마가 된다면 부디 그 결과가 다른 누구를 위한 일이 아니었길 바란다. 엄마가 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절대 후회하거나 스스로를 탓하지 않기를 바란다. - P216

내가 받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다른 누군가에게 되돌려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선택한 사람과 우리의 관계를 지켜내기 위해, 계속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제는 사랑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것들이 보인다. 나는 우리의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매일 배운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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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셀프 카운슬링 다이어리 1 - 일하는 마음, 괜찮나요? ㅣ 30일 셀프 카운슬링 다이어리 1
서늘한여름밤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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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셀프 카운슬링 다이어리 1 - 일하는 마음, 괜찮나요?》 서늘한여름밤 지음, 아르테 펴냄
- 판형: 148*210*15mm / 견장정


☆ 띠지를 벗기면 영어 문구만 남는다


  띠지에 서명과 저자명, 소개가 모두 쓰여 있어서 띠지를 벗기면 I'm not OK / It's OK / a working mind 라는 영어 문구만 남는다. 혹자는 이 정도 외국어는 다들 이해하겠지,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훼손, 분실될 가능성이 있는 띠지에 책 정보를 전부 기재해둔 상태에서 띠지를 벗긴 표지에는 외국어만 남겨두다니, 꽤 위험한 디자인이 아닐까. 언뜻 보면 원서로 오인할 수 있고, 영어 가능자만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I'm not OK(나는 괜찮지 않아.) / It's OK(그래도 괜찮아.) 라는 문구 자체는 《30일 셀프 카운슬링 다이어리》의 구성과 잘 어울렸다. 한글 책 제목을 표지에 넣고 그 아래에 영어 문구를 써넣는 식으로 디자인했더라면 좀 더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셀프 카운슬링: 스스로 상담


  셀프 카운슬링은 '왜 이렇게 힘들지?'하는 막연한 생각에서 출발하여 '오늘 힘들었던 나를 격려하는 법'까지 구체적인 일상으로 좁혀 들어가며 주제별로 세밀하게 나의 마음을 확인하고 정리하는 '스스로 상담'이다. (외국어인 '셀프 카운슬링'보다는 '스스로 상담'이 좀 더 직관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30일 셀프 카운슬링 다이어리》는 저자가 매일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 던졌던 질문들을 독자들에게 권하는 책이다. 책 제목에 충실하여, 독자가 내용을 채워넣으며 완성해나가는 다이어리 형식의 도서라고 할 수 있겠다. 총 세 권의 시리즈 도서이며 지금 소개하고 있는 1권, '일하는 마음, 괜찮나요?' 외에도 2권 '관계 맺는 마음, 괜찮나요?'와 3권 '지금 내 마음, 괜찮나요?'도 함께 출간되었다. 일, 관계, 마음 중 독자가 원하는 주제의 다이어리를 선택해 써 보게끔 하는 구성이다.

 

☆ 셀프 카운슬링, 나는 할 수 있을까?


  고백하자면, 나는 마음의 고민을 사적인 글로 남기는 성격이 아니다. 물론 누군가는 고민을 글로 남김으로써 해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고, 그런 이에게는 다이어리를 통한 스스로 상담에 도전해보길 권한다. 하지만 나는 타인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고민을 나만 볼 수 있는 다이어리에 기록하는 행위가 미래의 또 다른 고민을 불러올 수 있음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다이어리에 응어리를 털어놓지 않는다. 그래서 《30일 셀프 카운슬링 다이어리》를 받고서 내용을 하나라도 채워 볼까 말까 많이 고민했다. 그러나 결국 빈칸 그대로 남기기로 했다. 내가 탁한 색의 무언가를 덧대는 것보다 물음만 존재하는 백지대로 남아 있는 것이 더 마음 편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사실 예전의 나였더라면 '이런 책은 대체 왜 팔리는 거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라면 사지 않을 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누군가에게는 이 책이 필요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단순히 개인 취향에 맞는 책이 아니더라도 책은 때때로 예상치 못한 도움을 준다는 것을. 책을 통해 타인에게 다정한 질문을 공유하고픈 마음을 책에 담아낸 저자를 떠올렸다. 그리고 책의 빈칸이 채워지든, 채워지지 않든 어느 쪽이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저자의 다정한 이야기가 여기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자가 독자를 위해 여백을 준비해 두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누군가는 위안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 '셀프 카운슬링'의 순기능


  번아웃 예방법을 읽으면서 번아웃은 개인이 노력한다고 무조건 예방할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현실을 깨달았다. '증상 알아차리기' 외에는 주변 환경이 따라주지 않으면 소용없는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우스운 사실은 책의 내용을 읽으면서 '아, 번아웃은 나 혼자 예방할 수 없구나.'하는 사실을 깨닫고 리뷰를 써 내려가는 과정에서 중간고사를 준비하는 동안 사그라들었던 의욕이 조금이나마 되살아났다는 것이다. 나는 아무래도 다이어리에 우울한 마음을 털어놓는 것보다는 SNS에 올릴 진솔한 리뷰를 쓰는 일이 마음 건강에 도움이 되는 쪽인 것 같다. 저자가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이런 식으로 나 자신을 깨닫는 찰나를 거쳐 가는 것 또한 이 책의 순기능이라 믿는다. 좋은 책을 접할 기회를 주신 아르테 출판사 분들께 감사를 전하며 글을 맺는다.

 

※ 책수집가 활동을 위해 아르테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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