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평화 - 삼국지 이전의 삼국지, 민간전래본
김영문 옮김 / 교유서가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삼국지를 다시 읽고 싶을 때,
그리고 새로 읽고 싶을 때
'삼국지평화'

 

용과 범이 다투지 않고 인의를 일으키니(不爭龍虎興仁義)
역적들과 간신들이 꿈속에서도 놀라겠네.(賊子讒臣睡裏驚)

 

『삼국지평화 三國志平話』 김영문 옮김, 교유서가 펴냄
- 무선 제본

 

# '평화'라는 말은 당시 이야기 공연 장르의 대본이라는 뜻이다. 송나라 이래 중국 민간 연예에서는 특히 장편 역사 이야기 공연을 '강사'라 불렀다. 이 '강사'는 점차 창 없이 이야기로만 공연하는 방향으로 발전했고 이들 이야기 공연 장르의 대본은 점차 독서물로 문자화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평화'다. (31~32쪽)

 

  어릴 적의 나는 『삼국지』와 함께 자랐다. 만화로 시작해 여러 버전의 『삼국지』를 읽었고 애니메이션도 여러 종류 보았더랬다. 죽이고 빼앗고 함락시키는 이야기를 어찌 그리 좋아했나 싶기도 한데, 생각해보면 어릴 적에도 지금도 『삼국지』를 읽으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우애와 신의여서 그랬던 것 같다. 죽고 죽여야 하는 시대에 존재하는 믿음이란 목숨만큼 끈끈한 것이었다. 의형제 관우와 장비가 죽었을 때 유비를 묘사한 부분을 보면 도원결의가 얼마나 깊은 우애를 담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유비가 조운을 대하는 태도나 군사를 얻기 위해 삼고초려를 하는 모습에서는 상대에 대한 존중을 읽어내게 된다. 『삼국지』를 여러 번 읽고 좋아했던 이유는 작품 전체에 내재되어 있는 믿음의 정서 때문이었을 테다. 그래서 이번에 『삼국지평화』를 통해 오래 읽고 좋아했던 삼국지 이야기를 다시 만나게 되어 무척 반가웠다.

 

# 군사 제갈량은 관우의 죽음을 감히 속이지 못하고 유비에게 천천히 이야기했다. 유비는 그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라 땅에 쓰러졌고 몇 번이나 기절했다. (343쪽)
# 세 사람은 함께 군막으로 가서 장비를 죽인 뒤 그의 목을 잘라 오나라에 투항했다. 다음날 유비는 그 사실을 알고 여러 번 기절했다. (346쪽)

 

  『삼국지평화』는 『삼국지』를 다시 읽고 싶을 때, 그리고 새로 읽고 싶을 때 편하게 집어들 수 있는 책이다. 『삼국지평화』는 『삼국지연의』보다 한참 앞서 구전된 내용을 텍스트로 엮은 것인데 연의에 비해서 자세하지는 않으나 시간을 비교적 적게 들여 삼국지 전체 내용을 훑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연의에는 나타나지 않는 몇 가지 독특한 설정이 눈에 띈다. 해제에서 옮긴이가 언급하기도 했지만, 내 개인적으로도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환생 모티프를 사용했다는 점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삼국지』가 『초한지』의 복수극이라는 것인데, 『초한지』에서 유방을 도와 한나라 건국에 이바지한 한신, 팽월, 영포가 저승의 판결을 통해 각각 조조, 유비, 손권으로 환생해 한 헌제로 환생한 유방에게 복수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한신에게 유방에게서의 독립을 말했던 괴철은 제갈량으로 환생하며 판결을 한 저승의 왕은 사마의로 환생한다. (36쪽 참고) 『초한지』의 유방과 항우 이야기는 『삼국지』의 삼국 이야기 이전에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다. 유방이 세운 한나라를 배경으로 삼국 이야기가 시작되므로 환생 소재는 초한지와 삼국지의 이야기가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특징은 장비의 활약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장비는 사고가 단순하고 행동이 거친 까닭에 장비 중심의 『삼국지』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최초의 삼국지 텍스트에서 장비는 주도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술을 좋아하고 거친 성정은 그대로지만 도원결의를 주도하는 것도 장비였고 독우 최렴을 죽이고 삼 형제가 산적이 되었을 때도 장비가 앞장섰으며 서주를 잃고 삼 형제가 흩어졌을 때 장비는 '쾌활'이라는 연호를 사용하며 왕으로서 고성에 근거지를 마련한다. (34~35쪽 참고) 개인적으로 어릴 적부터 삼국지를 읽을 때 항상 눈에 밟혔던 인물이 장비와 조운이었는데 - 장판파 전투와 장판교에서의 장비, 아두를 구해 적진을 홀로 탈출한 조운의 모습이 크게 남았던 것으로부터 시작된 것 같다 - 최초 텍스트에서는 장비가 우리가 알던 것보다 주체적이고 긍정적인 인물로 그려져 있다는 사실이 기꺼웠다. 『삼국지평화』의 이러한 특성에 맞추어 표지에 장비 일러스트를 내세운 점 또한 인상적이다.

 

# "장비의 용력은 천하에 으뜸이다. 내 휘하 관원들도 모두 장비에 비견할 수 없다." 조조는 또 이렇게 말했다. "장비는 벼슬이 없지만 거기대장군이라 할 만하다. 내가 동쪽에서 여포를 정벌한 뒤 조정으로 돌아가면 그대에게 바로 벼슬을 내릴 것이다." (143쪽)

 

  상·중·하 3권이 1책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모든 쪽마다 삽화가 들어가 있는 원전에 충실하도록 지면이 허락하는 한 가급적 본문 내용과 일치되게 구성했다. 그 밖에도 인물화, 계보도, 지도 등을 삽입하여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 책은 정사 『삼국지』나 소설 『삼국지연의』와 비교하여 ‘삼국 이야기’의 원류와 그 형성과정, 변화과정을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yes24 보도자료 발췌) 본래 삼국지의 팬이었던 사람, 오래전 읽었던 삼국지의 기억을 되살리고 싶은 사람, 중국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 모두 『삼국지평화』를 한번쯤 읽어 보면 좋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은 삼국 이야기를 기억하는 그리고 기억해나갈 모두를 위한 텍스트다.

 

# 교유당 서포터즈 활동을 위해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리뷰는 개인의 주관적 시각에서 쓰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배틀그라운드 - 끝나지 않는 전쟁, 자유세계를 위한 싸움
H. R. 맥매스터 지음, 우진하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자국의 국민들조차 존중하지 않는 국가가 어떻게 이웃 국가들을 존중할 수 있겠는가." - 안드레이 사하로프 Anderi Sakharov (109쪽)

♥︎ 역사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는 종종 완전한 무지보다 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443쪽)


* 『배틀그라운드』에 도달하기까지 교유당 서포터즈 활동을 하며 느낀 인문사회 분야 도서들의 공통점은 제목에 부제가 붙는다는 것이었다. 『가구, 집을 갖추다 : 리빙 인문학, 나만의 문명』, 『청춘, 여름, 꿈의 무대 고시엔 : 100년 역사의 고교야구로 본 일본의 빛과 그림자』, 『마지막 지식인 : 아카데미 시대의 미국 문화』, 『인간은 왜 잔인해지는가 : 타인을 대상화하는 인간』, 『배틀그라운드 : 끝나지 않는 전쟁, 자유세계를 위한 싸움』 늘어놓고 보면 책의 본 제목만 보았을 때는 책의 내용을 확실히 알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제목으로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책을 빌리거나 구매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책 선택의 지름길을 제시해놓은 것이 부제라고 볼 수 있겠다. 교유서가와 싱긋 책들의 부제는 본 제목을 설명하면서 책 내용을 깔끔하게 요약하고 있다. 책을 읽고 나면 본 제목과 부제를 모두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 포인트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 인터넷 서점 홈페이지에 들어가 베스트셀러에 꼽히는 인문사회 분야 도서들의 표지만 쭉 열람해보았다. 대부분의 책들이 부제를 통해 책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지 않은가. 제목과 부제목의 조화가 이루는 향연을 훑고 있자니 그동안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 이상할 지경이었다. 아무튼 인문서의 경우 강렬한 제목과 그를 뒷받침해주는 깔끔단정한 부제목이 모두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모두 교유당 서포터즈 활동 덕택!


* 『배틀그라운드』를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과연 이 지구에 '전쟁이 멈출 날'은 존재할까 하는 것이었다. 왜인지 십 년 후에도 이십 년 후에도 '끝나지 않는 전쟁'과 유사한 부제목을 단 책이 나올 것만 같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뉴스를 읽고 있자면 우리 땅에서 일어난 일이 아님에도 마음이 아프고 막막한 기분이 드는데, 문제는 이러한 크고 작은 싸움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장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고 있고 우리나라 또한 크고 작은 정치적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위치에 있지 않은가. 폭력과 살인이 발생하는 이유는 결국 인간이 다른 인간을 악한 행동을 투영하는 존재, 즉 악한 행동을 가해도 되는 존재로 상정하고 그것을 공동체와 집단으로 확산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자의 '악'이란 주관성을 띠는 수단으로서, 많은 경우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기제로 사용된다. 이는 인간이 전쟁과 싸움을 멈추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이며 따라서 『배틀그라운드』에 등장하는 정치 이야기는 일종의 고질적인 현상이자 인류가 해결해나가야 할 총체적인 과제에 관한 서술이다. 


* 자밀 자키는 "우리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 스스로는 잘 알아차리지 못하며 따라서 아직 직면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건 인간의 본능에 반하는 행동이다. 또한 우리가 어떤 행동을 했거나 혹은 하지 않았을 때의 결과가 아직은 드러나지 않았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만 영향을 미치게 될 경우, 우리는 오늘 당장 어떤 희생을 치르거나 투자를 할 가능성이 적(572쪽)"다고 말한다. 이는 전쟁뿐만 아니라 전쟁에 사용되는 핵의 장기적인 위험성 그리고 기후위기의 고질적 문제까지 포괄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맥매스터는 미국인의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보고 있지만 그의 시선을 읽음으로써 나 또한 전쟁, 세계 정세 그리고 미래에 대해 다시금 고찰해볼 수 있었다.


#_교유당 서포터즈 활동을 위해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리뷰는 개인의 주관적 시각에서 쓰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은 왜 잔인해지는가 - 타인을 대상화하는 인간
존 M. 렉터 지음, 양미래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인간은 타인을 당신(Thou)이 아닌 그것(it)으로 경험함으로써 상대방을 대상화한다. (47쪽)

♥︎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와 동족인 인간을 고문하거나 살해하기를 주저할 것이다. 그러나 타인이 우리 같은 인간이 아니며 어떤 사악한 행동을 대변하는 자라는 말을 듣고 나면 그런 거리낌을 느끼지 않게 될 것이다. …… 모든 정치적, 민족주의적 프로파간다의 목표는 하나이다. 어떤 집단으로 하여금 다른 집단에 속한 구성원들이 진짜 인간이 아니라고 믿게 만들고, 따라서 그들을 약탈하거나 속이거나 괴롭히거나 심지어는 살해해도 그것은 정당한 행위라고 설득하는 것이다. (65쪽, 올더스 헉슬리의 말 인용)


  '인간관계' '심리학' '타인과 타자' '공동체' '자아' '대상화' '사물화' 그리고 이들이 엮인 복합적인 사회현상과 그 해결점에 관해 고찰해보고 싶다면 꼭 읽어야 할 책.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 사회, 우리는 타인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상정함으로써 발생하는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문제들을 쉽게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늘 현상 자체를 이해하는 것보다 그 문제가 왜 일어나는지에 관한 고질적인 궁금증을 끌어안고 있었더랬다. 인간이 같은 권리와 인격을 가진 다른 인간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나아가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약자는 스스로를 규정된 울타리 속에 가두기도 하는 것일까. 과연 '대상화' 문제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료하게 존재할까. 『인간은 왜 잔인해지는가』는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내릴 수 있게끔 길잡이가 되어 주는 책이다. 인간이 타인을 대상화하는 형태와 원인을 사례를 바탕으로 분석함으로써 대상화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심리를 설명하고, 심지어는 책을 읽는 나 자신이 타인을(혹은 나 자신을) 대상화하고 있음을(혹은 하였음을) 인식하게 한다. 


  '타인을 대상화하는 행위는 인간의 발달 과정에서 온당히 나타나는 감정적 미성숙을 반영하고 있(47쪽)'으나 이것이 성인기까지 이어질 경우 도덕적 결여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잃음으로써 자기 자신을 발견(마태복음 16장 25절)"하(47쪽)'므로 성인이 될 때까지 타인과 공동체를 고려하는 일종의 이타적 역량을 함양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도덕적 실패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47쪽)'는 것이다. 대상화는 과도한 경계적 자아가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러한 경계를 통한 구별은 타인을 '그것(it)'으로 인식하게끔 한다. 타인을 '자율성이 없고 대체 가능하며 소유할 수 있는' 존재로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대상화의 주체는 과연 고정되어 있을까? 바트키에 따르면(37쪽) 대상화는 반드시 대상화를 하는 사람과 대상화를 당하는 사람이 모두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따라서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관능적인 외양의 여자들을 보여 수시로 쾌락을 얻고자 하는 남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감시받고 관찰당한 여자들이 결국 본인을 대상화하고 본인에 의해 대상화를 당하는 역할 모두를 맡에 된다(37쪽)'. 이것은 대상화가 단순히 하나의 집단 혹은 특정 가해자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깊숙이 내재해 있음을 시사한다. '규율을 부과하는 주체는 모든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특정한 누군가도 아니기(37쪽)' 때문에 근본적인 대상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우리(어쩌면 모든 사람) 내부에 깊이 침잠해 있는 무관심과 유도체화의 파편을 인지하고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상화는 사적인 성향과 기질이라기보다는 상황과 심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발생하는 맥락적 현상이므로 인간 내면뿐만 아니라 대상화가 발생하는 상황에도 주목해야만 한다. '우리는 우리가 지닌 성격의 본질적인 선함, 기질의 안정성, 상황이 주는 압박을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 비도덕적인 행동에 대한 유혹을 명확히 거부할 수 있는 능력 등을 믿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알려진 것, 익숙한 것, 사랑받는 것으로 대표되는 선(善)과 이국적인 것, 생경한 것, 경멸적인 것으로 대표되는 악(惡) 사이에 확실한 경계를 세워서 세상을 단순화하고자 한다. 그런데 우리는 선과 악을 구분짓는 경계선이 모든 인간의 마음을 관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 자주 간과한다(293~294쪽).' 이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이 스스로가 지닌 본질과 내면을 믿는 경향이 있으며 이것이 이점으로 작용할 때도 분명 존재하지만 분명 때로는 상황 속에 우리를 잠몰시키기도 함을 말해 준다. 인간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할 수 있다. 완벽하게 선한 사람, 그리고 완벽히 대상화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까. '좋은 자아는 언제나 나쁜 상황을 이겨낼 수 있(296쪽)'을까? 이는 계속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다. 타인을 유도체화 혹은 비인간화하게 되는 상황 앞에서 나 자신은 얼마나 선해질 수 있는가, 그리고 선해질 경우 과연 살아남을 수 있는가…….


  '핑커는 "역사는 대체 어떤 이유로 인신공양, 능지처참, 거열형, 화형뿐만 아니라 채무자 감옥, 전족, 거세, 투우, 사냥, 심지어 아동 학대로부터도 멀어지게 된 것인가?"라고 묻는다. 그러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폭력이 줄어들게 된 이유는 인간이 그러한 문제를 조금씩 제거해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379쪽)'. 인간은 악을 인식하고 인지하면서 그들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동기를 부여하고 인간이 걷는 길을 정비해왔다는 것이다. 책은 대상화에 대해 설명하면서 대상화 경향을 줄이는 방법을 제시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나는 절대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하는 편이지만 인간은 언제나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좀더 선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다고 본다. 선(善)이란 사실 완전히 절대적일 수도, 완전히 주관적일 수도 없는 개념이다. 인간이 완벽히 선해질 수 없는 일이고 또 완전히 선해지는 것이 옳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나 공동체의 평안을 위해 우리가 '조금 덜 잔인해지는 것'이 필요함은 어느 정도 명백한 사실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_교유당 서포터즈 활동을 위해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리뷰는 개인의 주관적 시각에서 쓰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지막 지식인 - 아카데미 시대의 미국 문화
러셀 저코비 지음, 유나영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지식인'이란 무엇인지 고민해보고 싶다면?

♥︎ 미국 문화, 사회, 교육에 관심이 있다면?

♥︎ 문화의 대중성, 상업성에 관해 고찰하고자 한다면?


『마지막 지식인 - 아카데미 시대의 미국 문화』 러셀 저코비 지음, 유나영 옮김, 교유서가 펴냄

- 견장정(양장)


 교유서가와 싱긋의 인문서들은 전반적으로 모던한 깔끔함을 추구한다. 표지에는 고딕에 형태변화를 준 단정하고 멋스러운 서체를 자주 사용하며, 표지 디자인의 균형감을 중요시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과하게 딱딱해 보이지 않아서 - 때론 일러스트가 삽입되기도 한다 - 거부감이 들지 않으며 안정적인 기분을 느끼게 해 주어 좋다.


# 1940년 무렵과 그 이후에 출생한 세대가 사회에 나왔을 때는 대학과 지성계의 정체성이 거의 완성되어 있었다. 지식인이 된다는 건 교수가 되는 일이었다. 이 세대는 대학으로 흘러들어갔고 지식인이 되고 싶으면 대학에 남아 있었다. 문제는 그들의 재능이나 용기나 정치적 입장이 아니다. 문제는 대중적 산문에 숙달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그들의 글이 대중적 영향력을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보다 폭넓은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들의 머릿수가 얼마나 많은가는 상관없었다. 실종된 지식인들은 대학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41쪽)


 대학이 일반화되면서 대학의 규칙이 보편화된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대학별로 어느 정도 차이를 가지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대학과 교수가 원하는 답과 길이 정해져 있기 마련이다. 젊은이들은 교육이 제시하는 방향을 따라야 하고 창의적인 작업 기회는 일부에게만 주어진다. 리포트는 '대학의 기준에 따라' 학술적이어야 하며, 학생들은 어느 순간부터 그에 적응하여 보편적 규칙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젊은 지식인이 사라지는 이유는 어쩌면 치우친 보편성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사고방식과 그의 실현이 일률적으로 변화하면서 특별히 지식인이라 부를 만한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다. 


 사실 지식인이 반드시 '대중을 위해' 말할 필요는 없다. (그 과정이 아무리 보편화되어 있더라도 모든 절차가 과정과 결과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므로) 대학을 통해 양성된 젊은이를 지식인이라 부를 여지 또한 충분히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요즘 계속해서 대학 교육과 진정한 지식인 사이 미묘한 지점에서 모순을 곱씹으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나 자신조차 사회의 교육제도에 순응해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과 제도가 바뀌어 '다른 기회'가 주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사실 어느 쪽에 치우쳐 있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느 쪽에' 치우쳐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뿐.


# 이 모두는 집필이 힘든 직업임을 가리키고 있다. 프리랜서 글쓰기가 경제적으로 유일한 생계 수단일 때 저자는 쉽게 소진된다. 경제적으로 실현 가능한 - 편집자가 사줄 만한 - 기획을 제안하고 조사하고 완수하려면, 그보다 현금 가치가 떨어지는 기획을 추진할 여력은 거의 남아나지 않는다. 프리랜서 작가는 시장의 힘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데, 멈퍼드가 지적했듯이 진지한 일반 산문에 대한 시장의 지원은 날로 줄어든다. (312쪽)


 글뿐만 아니라 예술 전반이 상업성을 띠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예술이 상업성에 갇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늘 한다. 예술가 그리고 예술가와 협업하는 이들이 상업성을 우선순위로 추구했을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만들어진' 예술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에서 명시했듯, 누군가 사줄 만한 예술이 무엇일지 고민하다 보면 예술가는 순식간에 소진되고야 만다. 실제로 나 또한 누군가 보고 듣고 읽고 평가할 것이라는 부담감을 가졌을 때, 누군가의 눈에 들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 창작할 때 어떤 작품이 만들어지는지 알고 있다. 그러니 모두가 예술을 팔아야 하는 존재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상업성을 배제한 예술이란 존재하지 않으니, 작품을 팔아야 하는 존재라기보다는 사랑받길 바라는 존재로 바라봐주면 안 될까. 그리고 사랑받지 못한다 해도 그 작품이 가치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님을 알기를. 


- 교유당 서포터즈 활동을 위해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리뷰는 개인의 주관적 시각에서 쓰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소해서 물어보지 못했지만 궁금했던 이야기 2 - 일상에서 발견하는 호기심 과학 사물궁이 2
사물궁이 잡학지식 지음 / arte(아르테)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소해서 물어보지 못했지만 궁금했던 이야기 2』 사물궁이 잡학지식 지음, 아르테 펴냄
- 무선 제본


♥ 호기심을 자극하는 신선하고 재미있는 질문들을 만나보고 싶다면?
♥ 잡다한 생활 과학 지식을 쌓고 싶다면?
♥ 유튜브 채널 '사물궁이 잡학지식'의 구독자라면?


  목차 다음 부분에 이런 말이 쓰여 있다. '세상에 이유 없이 만들어진 것은 없습니다. 이 책도 그러하길 바랍니다.' 이 말처럼, 『사소해서 물어보지 못했지만 궁금했던 이야기 2』는 세상에 이유 없이 만들어진 물음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 준다. 책은 일상 속에서 문득 궁금해할 만한 질문들을 정리하여 답을 찾아간다. 사실 이 질문들은 평소 특별히 궁금해했던 것들이라기보다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지만 듣고 보면 궁금한 점에 가깝다. 이미 알고 있던 정보들도 사례와 통계를 곁들여 좀 더 명료히 설명해주어 좋았으며 그림과 사진 자료를 풍부히 사용하여 읽어나가기 편했다.


  다섯 챕터로 나뉘어 있는 책의 구성이 참 깔끔하고 좋았다. 각 챕터마다 질문을 8개씩 분배했는데 쉬어가며 읽기 적당한 분량이라 좋았다. 더 궁금한 질문이 있는 챕터, 더 흥미로울 것 같은 챕터를 골라서 먼저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


★ 흥미로웠던 질문들
- 멀티탭에 멀티탭을 연결하면 장거리에서도 사용할 수 있을까?
- 가위바위보 게임은 정말 공정할까?
- 스카치테이프가 여러 겹일 때 왜 노랗게 보이는 걸까?
- 수저 밑에 휴지를 까는 것이 정말 위생적일까?
- 왕조 시대 때 신하들은 어떻게 타이밍을 맞춰서 합창했을까?
- 넷째 손가락은 왜 들어 올리기 힘들까?


  장거리 콘센트를 이용할 수 있게 해 주는 ‘리드선’이라는 것이 있어서, 실제로 멀티탭에 멀티탭을 길게 연결해 사용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멀티탭을 여러 개 연결해 사용한다면 전압 강하 때문에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지게 되면 전기가 공급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사극 드라마나 영화에서 신하들이 다같이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또는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를 외치는 것은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한 픽션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실록에 등장한 말들을 오늘날의 사극에 맞게 재구성하여 사용한 셈이다.


※ 책수집가 활동을 위해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리뷰는 개인의 주관적 시각에서 쓰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