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잔인해지는가 - 타인을 대상화하는 인간
존 M. 렉터 지음, 양미래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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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타인을 당신(Thou)이 아닌 그것(it)으로 경험함으로써 상대방을 대상화한다. (47쪽)

♥︎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와 동족인 인간을 고문하거나 살해하기를 주저할 것이다. 그러나 타인이 우리 같은 인간이 아니며 어떤 사악한 행동을 대변하는 자라는 말을 듣고 나면 그런 거리낌을 느끼지 않게 될 것이다. …… 모든 정치적, 민족주의적 프로파간다의 목표는 하나이다. 어떤 집단으로 하여금 다른 집단에 속한 구성원들이 진짜 인간이 아니라고 믿게 만들고, 따라서 그들을 약탈하거나 속이거나 괴롭히거나 심지어는 살해해도 그것은 정당한 행위라고 설득하는 것이다. (65쪽, 올더스 헉슬리의 말 인용)


  '인간관계' '심리학' '타인과 타자' '공동체' '자아' '대상화' '사물화' 그리고 이들이 엮인 복합적인 사회현상과 그 해결점에 관해 고찰해보고 싶다면 꼭 읽어야 할 책.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 사회, 우리는 타인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상정함으로써 발생하는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문제들을 쉽게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늘 현상 자체를 이해하는 것보다 그 문제가 왜 일어나는지에 관한 고질적인 궁금증을 끌어안고 있었더랬다. 인간이 같은 권리와 인격을 가진 다른 인간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나아가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약자는 스스로를 규정된 울타리 속에 가두기도 하는 것일까. 과연 '대상화' 문제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료하게 존재할까. 『인간은 왜 잔인해지는가』는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내릴 수 있게끔 길잡이가 되어 주는 책이다. 인간이 타인을 대상화하는 형태와 원인을 사례를 바탕으로 분석함으로써 대상화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심리를 설명하고, 심지어는 책을 읽는 나 자신이 타인을(혹은 나 자신을) 대상화하고 있음을(혹은 하였음을) 인식하게 한다. 


  '타인을 대상화하는 행위는 인간의 발달 과정에서 온당히 나타나는 감정적 미성숙을 반영하고 있(47쪽)'으나 이것이 성인기까지 이어질 경우 도덕적 결여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잃음으로써 자기 자신을 발견(마태복음 16장 25절)"하(47쪽)'므로 성인이 될 때까지 타인과 공동체를 고려하는 일종의 이타적 역량을 함양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도덕적 실패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47쪽)'는 것이다. 대상화는 과도한 경계적 자아가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러한 경계를 통한 구별은 타인을 '그것(it)'으로 인식하게끔 한다. 타인을 '자율성이 없고 대체 가능하며 소유할 수 있는' 존재로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대상화의 주체는 과연 고정되어 있을까? 바트키에 따르면(37쪽) 대상화는 반드시 대상화를 하는 사람과 대상화를 당하는 사람이 모두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따라서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관능적인 외양의 여자들을 보여 수시로 쾌락을 얻고자 하는 남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감시받고 관찰당한 여자들이 결국 본인을 대상화하고 본인에 의해 대상화를 당하는 역할 모두를 맡에 된다(37쪽)'. 이것은 대상화가 단순히 하나의 집단 혹은 특정 가해자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깊숙이 내재해 있음을 시사한다. '규율을 부과하는 주체는 모든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특정한 누군가도 아니기(37쪽)' 때문에 근본적인 대상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우리(어쩌면 모든 사람) 내부에 깊이 침잠해 있는 무관심과 유도체화의 파편을 인지하고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상화는 사적인 성향과 기질이라기보다는 상황과 심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발생하는 맥락적 현상이므로 인간 내면뿐만 아니라 대상화가 발생하는 상황에도 주목해야만 한다. '우리는 우리가 지닌 성격의 본질적인 선함, 기질의 안정성, 상황이 주는 압박을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 비도덕적인 행동에 대한 유혹을 명확히 거부할 수 있는 능력 등을 믿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알려진 것, 익숙한 것, 사랑받는 것으로 대표되는 선(善)과 이국적인 것, 생경한 것, 경멸적인 것으로 대표되는 악(惡) 사이에 확실한 경계를 세워서 세상을 단순화하고자 한다. 그런데 우리는 선과 악을 구분짓는 경계선이 모든 인간의 마음을 관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 자주 간과한다(293~294쪽).' 이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이 스스로가 지닌 본질과 내면을 믿는 경향이 있으며 이것이 이점으로 작용할 때도 분명 존재하지만 분명 때로는 상황 속에 우리를 잠몰시키기도 함을 말해 준다. 인간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할 수 있다. 완벽하게 선한 사람, 그리고 완벽히 대상화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까. '좋은 자아는 언제나 나쁜 상황을 이겨낼 수 있(296쪽)'을까? 이는 계속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다. 타인을 유도체화 혹은 비인간화하게 되는 상황 앞에서 나 자신은 얼마나 선해질 수 있는가, 그리고 선해질 경우 과연 살아남을 수 있는가…….


  '핑커는 "역사는 대체 어떤 이유로 인신공양, 능지처참, 거열형, 화형뿐만 아니라 채무자 감옥, 전족, 거세, 투우, 사냥, 심지어 아동 학대로부터도 멀어지게 된 것인가?"라고 묻는다. 그러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폭력이 줄어들게 된 이유는 인간이 그러한 문제를 조금씩 제거해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379쪽)'. 인간은 악을 인식하고 인지하면서 그들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동기를 부여하고 인간이 걷는 길을 정비해왔다는 것이다. 책은 대상화에 대해 설명하면서 대상화 경향을 줄이는 방법을 제시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나는 절대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하는 편이지만 인간은 언제나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좀더 선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다고 본다. 선(善)이란 사실 완전히 절대적일 수도, 완전히 주관적일 수도 없는 개념이다. 인간이 완벽히 선해질 수 없는 일이고 또 완전히 선해지는 것이 옳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나 공동체의 평안을 위해 우리가 '조금 덜 잔인해지는 것'이 필요함은 어느 정도 명백한 사실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_교유당 서포터즈 활동을 위해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리뷰는 개인의 주관적 시각에서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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