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평화 - 삼국지 이전의 삼국지, 민간전래본
김영문 옮김 / 교유서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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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삼국지를 다시 읽고 싶을 때,
그리고 새로 읽고 싶을 때
'삼국지평화'

 

용과 범이 다투지 않고 인의를 일으키니(不爭龍虎興仁義)
역적들과 간신들이 꿈속에서도 놀라겠네.(賊子讒臣睡裏驚)

 

『삼국지평화 三國志平話』 김영문 옮김, 교유서가 펴냄
- 무선 제본

 

# '평화'라는 말은 당시 이야기 공연 장르의 대본이라는 뜻이다. 송나라 이래 중국 민간 연예에서는 특히 장편 역사 이야기 공연을 '강사'라 불렀다. 이 '강사'는 점차 창 없이 이야기로만 공연하는 방향으로 발전했고 이들 이야기 공연 장르의 대본은 점차 독서물로 문자화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평화'다. (31~32쪽)

 

  어릴 적의 나는 『삼국지』와 함께 자랐다. 만화로 시작해 여러 버전의 『삼국지』를 읽었고 애니메이션도 여러 종류 보았더랬다. 죽이고 빼앗고 함락시키는 이야기를 어찌 그리 좋아했나 싶기도 한데, 생각해보면 어릴 적에도 지금도 『삼국지』를 읽으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우애와 신의여서 그랬던 것 같다. 죽고 죽여야 하는 시대에 존재하는 믿음이란 목숨만큼 끈끈한 것이었다. 의형제 관우와 장비가 죽었을 때 유비를 묘사한 부분을 보면 도원결의가 얼마나 깊은 우애를 담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유비가 조운을 대하는 태도나 군사를 얻기 위해 삼고초려를 하는 모습에서는 상대에 대한 존중을 읽어내게 된다. 『삼국지』를 여러 번 읽고 좋아했던 이유는 작품 전체에 내재되어 있는 믿음의 정서 때문이었을 테다. 그래서 이번에 『삼국지평화』를 통해 오래 읽고 좋아했던 삼국지 이야기를 다시 만나게 되어 무척 반가웠다.

 

# 군사 제갈량은 관우의 죽음을 감히 속이지 못하고 유비에게 천천히 이야기했다. 유비는 그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라 땅에 쓰러졌고 몇 번이나 기절했다. (343쪽)
# 세 사람은 함께 군막으로 가서 장비를 죽인 뒤 그의 목을 잘라 오나라에 투항했다. 다음날 유비는 그 사실을 알고 여러 번 기절했다. (346쪽)

 

  『삼국지평화』는 『삼국지』를 다시 읽고 싶을 때, 그리고 새로 읽고 싶을 때 편하게 집어들 수 있는 책이다. 『삼국지평화』는 『삼국지연의』보다 한참 앞서 구전된 내용을 텍스트로 엮은 것인데 연의에 비해서 자세하지는 않으나 시간을 비교적 적게 들여 삼국지 전체 내용을 훑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연의에는 나타나지 않는 몇 가지 독특한 설정이 눈에 띈다. 해제에서 옮긴이가 언급하기도 했지만, 내 개인적으로도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환생 모티프를 사용했다는 점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삼국지』가 『초한지』의 복수극이라는 것인데, 『초한지』에서 유방을 도와 한나라 건국에 이바지한 한신, 팽월, 영포가 저승의 판결을 통해 각각 조조, 유비, 손권으로 환생해 한 헌제로 환생한 유방에게 복수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한신에게 유방에게서의 독립을 말했던 괴철은 제갈량으로 환생하며 판결을 한 저승의 왕은 사마의로 환생한다. (36쪽 참고) 『초한지』의 유방과 항우 이야기는 『삼국지』의 삼국 이야기 이전에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다. 유방이 세운 한나라를 배경으로 삼국 이야기가 시작되므로 환생 소재는 초한지와 삼국지의 이야기가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특징은 장비의 활약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장비는 사고가 단순하고 행동이 거친 까닭에 장비 중심의 『삼국지』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최초의 삼국지 텍스트에서 장비는 주도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술을 좋아하고 거친 성정은 그대로지만 도원결의를 주도하는 것도 장비였고 독우 최렴을 죽이고 삼 형제가 산적이 되었을 때도 장비가 앞장섰으며 서주를 잃고 삼 형제가 흩어졌을 때 장비는 '쾌활'이라는 연호를 사용하며 왕으로서 고성에 근거지를 마련한다. (34~35쪽 참고) 개인적으로 어릴 적부터 삼국지를 읽을 때 항상 눈에 밟혔던 인물이 장비와 조운이었는데 - 장판파 전투와 장판교에서의 장비, 아두를 구해 적진을 홀로 탈출한 조운의 모습이 크게 남았던 것으로부터 시작된 것 같다 - 최초 텍스트에서는 장비가 우리가 알던 것보다 주체적이고 긍정적인 인물로 그려져 있다는 사실이 기꺼웠다. 『삼국지평화』의 이러한 특성에 맞추어 표지에 장비 일러스트를 내세운 점 또한 인상적이다.

 

# "장비의 용력은 천하에 으뜸이다. 내 휘하 관원들도 모두 장비에 비견할 수 없다." 조조는 또 이렇게 말했다. "장비는 벼슬이 없지만 거기대장군이라 할 만하다. 내가 동쪽에서 여포를 정벌한 뒤 조정으로 돌아가면 그대에게 바로 벼슬을 내릴 것이다." (143쪽)

 

  상·중·하 3권이 1책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모든 쪽마다 삽화가 들어가 있는 원전에 충실하도록 지면이 허락하는 한 가급적 본문 내용과 일치되게 구성했다. 그 밖에도 인물화, 계보도, 지도 등을 삽입하여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 책은 정사 『삼국지』나 소설 『삼국지연의』와 비교하여 ‘삼국 이야기’의 원류와 그 형성과정, 변화과정을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yes24 보도자료 발췌) 본래 삼국지의 팬이었던 사람, 오래전 읽었던 삼국지의 기억을 되살리고 싶은 사람, 중국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 모두 『삼국지평화』를 한번쯤 읽어 보면 좋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은 삼국 이야기를 기억하는 그리고 기억해나갈 모두를 위한 텍스트다.

 

# 교유당 서포터즈 활동을 위해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리뷰는 개인의 주관적 시각에서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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