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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학대하는 사회, 존중하는 사회 - 아동학대를 멈추고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길을 찾아 ㅣ 민들레 선집 13
부추 외 지음, 민들레 편집실 엮음 / 민들레 / 2022년 10월
평점 :
일독하고나서 무심결에 책을 후루룩 넘기며 17편의 글이 격월간 민들레에 실린 시기를 살펴봤다. 20년부터 22년까지 만 3년이 채 안 되는 시기, 딱 내가 영아 양육자로 산 시기와 중첩됐다. 맞아, 내가 출산하고 맞이한 첫 여성의 날 나를 위해 샀던 책이 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사계절, 2020)였지. 함께 걷던 길에 어린이가 있는지도 눈치채지 못했던 내가 길가의 어린이에게 먼저 미소 지으며 인사하고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을 읽고 있다니. 최근 3년 간 어린이에 관해서만큼은 내 시선과 태도가 상당히 달라졌음을 실감한다.
책 속에는 몇 차례 아동학대 주요통계가 등장한다. 2021년 보건복지부 통계를 살펴보니 피해아동과의 관계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학대행위자는 부모(83.7%)였다. 여러 사람들이 아동학대 행위자가 부모라는 점에서 소위 제가 낳고 기르는 자식을 학대할 수 있느냐는 표현으로 어떻게 보호의 의무가 있는 부모가 가해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지만, 나는 실상 그만큼 아이를 돌보고 기르는 역할이 부모에게 치중되어 있는 사회현실을 보여주는 통계라고 생각했다. 양육자라면 누구나 온 시간과 체력을 갈아넣어 아이를 돌봐도 보상은 커녕 아이에 대한 온갖 책임만 짐 지우는 통념에 숨막혀 해본 적 있지 않은가.
그럼 아이를 부모가 키우지 누가 돌보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사회문화적으로 취약하거나 고립된 이들이 결국 본인보다 더 약한 이에게 힘으로 제압하는 방식으로 악순환이 반복될 건 눈에 뻔하다. 오히려 학대행위자의 성별 중 남성(54.7%)이 여성(45.3%)보다 많다는 점이 더 신기했다. 한국사회에서 대다수의 관계에서 단절된 채 양육을 옴팡 뒤집어 쓰고 있는 상당수가 여성인데, 아동과 함께 하는 시공간의 비중만큼 비례해 학대가 발생한다면 행위자의 비율은 여성이 훨씬 높아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상대적으로 더 적은 시간 아동과 같이 있는 남성이 왜 여성보다 더 많이 아동을 학대하는지가 궁금할 지경이었다.
처음에 "아동"을 중점에 두고 읽었던 책은 읽어나갈수록 어떤 단어로도 대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큰 따옴표 안에는 여성으로, 노인으로, 장애인으로 바꾸어도 실상 크게 무방하지 않았다. 아이를 학대하는 사회는 여성도 노인도 장애인도 학대할 것이고, 아이를 존중하는 사회는 역시 그들 역시 존중하며 동등한 존재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일 것이다. 저자들이 보여주는 사례는 절망이기도 하지만 희망이기도 했다. 아동 청소년 역시 대등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권리를 주장할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내가 일하는 현장에서 아이 한 명 한 명에게 집중하고 관심을 잃지 않는 등의 각각의 노력들이 전국민의 관심으로 모여 아동청소년법이 개정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물론 허술하거나 행정 편의의 시스템도 여전하지만 체계 또한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니.
어린이와 산다는 건 내 삶에서 어린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집 어린이에게 내가 좋은 어른이라고, 그를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고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오히려 나는 우리집 어린이의 무수한 용서와 애정으로 좋은 어른이 될 기회를 얻은 셈이다. 남은 하루만큼이라도 어린이와 서로 존중하는 시간을 보내야지, 작심삼일의 다짐을 앞으로도 계속 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