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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훅스, 당신과 나의 공동체
벨 훅스 지음, 김동진 옮김 / 학이시습 / 2022년 6월
평점 :
이 책을 번역한 여성주의 교육 연구소 페페(Feminist Pedagogy) 소식지에서 작년(2021년) 벨 훅스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한창 이런저런 페미니즘 도서들을 읽으려 들던 때라 벨 훅스라는 인물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출간되면 읽어봐야지 하던 참이었다. 인지도와 영향력을 확장한 사람들은 각자 나름의 고유한 매력이 있다. 벨 훅스도 잘 알지 못하면서도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었고, 그래서 어렴풋하게 늘 머릿 속에서 이름이 맴돌았다. <벨 훅스, 당신과 나의 공동체>는 그 와중에 읽게 된 벨 훅스가 쓴 내가 읽어본 첫 책이다.
이 책은 벨 훅스라는 인물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인종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 계급 엘리트주의에 반대하는 아프리카계 미국 여성 교육자이자 작가이면서 기독교인으로의 모습이 가감없이 담겨 있다. 직접 경험한 사례가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본인과 연계된 관계와 인물들과의 사건들도 솔직하게 썼다. 말과 글과 행동과
사고의 간극이 적은 사람일 것이라 추측됐고, 번역과 무관하게 이 책 외 다른 책들도 비슷한 문체와 뉘앙스로 쓰이지 않을까 예상됐다. 열정적인 활동가의 모습이 그려졌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며 한 명의 인물의 뼈가 세워지고 피가 흐르고 살이 붙는 상황이 좋았다. 작가는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구나 싶은 마음도 들었다.
벨 훅스의 주장은 자못 이상적이거나 가치지향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는데 반해 사례와 대화가 구체적이어서 읽으면서 땅에 발을 딛고 하늘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주로 대학에 몸담고 있었다 보니 대학 내 이야기의 비중이 컸는데 그렇게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게 저자의 방식이라는 생각에 이르고선 읽는 게 어렵거나 불편하지는 않았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가르침(teaching)을 돌봄(caring)과 등치시킨다는 점이었다.
가르치는 일은 아주 좋게 말해서 돌보는 일이다 - 133쪽
공동체 삶의 기본은 함께 돌보는 것이다. - 260쪽
삶이란 일생을 통해 지속적으로 서로 돌보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의실에서 삶의 질에 관한 마음챙김을 가르치면, 우리는 강의실 내에서 더 큰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 263쪽
이 책의 큰 미덕이자 핵심 내용은 저자 서문이다. 두서 게 느껴질 수도 있을 본문을 적확하게 정리해 내고 있다. 나도 책을 읽다 고개가 갸웃거리는 지점이 생길 때 서문을 다시 읽으면 도움이 되었다. 책에서 다루는 인물과 사건이 풍성한 만큼 각각이 꽤나 강렬한 가르침을 주기도 했다. 페미니즘 운동에서 안전을 강조하는 건 연대에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오히려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배우고 성장할 수 있으며 우리의 대처 능력을 믿는 것이 더 생산적(99~100쪽)이라거나, 론 스캡과의 대화에서 기득권자로서 분위기를 감지하고 열린 마음이 되면 '잠시 멈춤'을 통해 존중을 실천할 수 있다(176~177쪽)는 등의 방법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난 후 든 첫 물음은 "왜 이 책 제목이 <벨 훅스, 당신과 나의 공동체>이지?"였다. 본문을 펼치기 전 저자 서문을 읽었을 때 기대한 책의 전개방식과 내용과는 사뭇 다른 흐름에 책을 읽으면서 여러 차례 갸우뚱했다. '벨 훅스'가 제목으로 호명되는 건 충분히 납득이 갔다. 벨 훅스 스스로가 본인을 대중적 지성인이라고 지칭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당신과 나의 공동체'라는 제목에서 부르는 "당신"과 "내"가 광범위해서 이걸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가끔 길을 잃었다. 영문 본 제목인 <Teaching Community : The Pedagogy of Hope>가 책을 읽을 의향이 있는 예비독자에게는 더 적확한 제목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