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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몸은 너의 것이야 - 경계존중으로 시작하는 우리 아이 성교육 부모 가이드
엘리자베스 슈뢰더 지음, 신소희 옮김 / 수오서재 / 2023년 3월
평점 :
2022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운영하는 폭력예방 통합교육 전문강사 양성과정을 수료했다. 총 4단계 150시간의 교육을 이수하고 필기시험과 위촉평가를 통과하면 전문강사로 위촉될 수 있다. 위촉된 전문강사는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라 폭력 예방교육 의무대상기관의 필수 교육대상을 교육할 수 있고 전문강사에게 교육을 받는 것이 의무대상기관의 실적 점검에서 교육방법 상 배점이 높기 때문에, 폭력예방교육을 하려는 강사들에게 이점이 있다. 해당 과정을 수강하면서 성폭력, 가정폭력, 성희롱, 성매매 4개 분야를 중심으로 젠더폭력의 구조와 현실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서류접수에서 탈락하는 경우도 많고, 위촉평가 합격률이 2022년 당시와 전 해 기준으로 30% 가량이라고 해서 긴장을 했는데, 다행히 한 해에 수료하게 되었다.
성폭력 예방교육에 관해 학습하면서 가장 자주 들었던 표현이 '경계 존중'과 '동의'였다. 특히 (각급학교는 의무대상기관이므로) 아동
대상 폭력예방교육의 경우 이 개념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다만 이를 전달하는 매개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청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전할지는 까다로웠다. 기존 표준강의안도 있고 업무 차 아동이나 양육자 대상 폭력예방교육을 자체점검하면서 강사들의 강의도 자주 듣게 되는데 흔쾌히 납득할 수 있게 설명이 된 경우는 흔치 않았다. 전문용어나 개념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과정에서 듣는 사람 입장에서 허공에 뜬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하고, 폭력예방교육이 보건 및 위생 교육이나 안전 교육으로 전환되는 경우도 잦았다.
성교육 교육자이자 훈련가인 엘리자베스 슈뢰더가 쓴 <너의 몸은 너의 것이야>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내가 배웠던 폭력예방교육을 아동과 양육자 관점에서 완벽에 가깝게 소화하고 있었다. 일례로 "경계"를 '내 영역을 만드는 울타리'라고 설명하면서, "네가 혼자 있고 싶어서 방문을 닫고 들어갔다면, 그게 바로 경계를 만든 거야. 누군가 경계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면 일단 문을 두드려야 해. 그러면 너는 '들어와도 돼'라든가 '지금은 혼자 있고 싶어'라고 대답할 권리가 있어'(12쪽)"라고 친절하게 사례를 든다. 매번 도로의 차선을 예로 들면서 '차는 인도로 오면 안 되요. 차는 차선을 지켜가며 달려야 해요.'와 같은 강의를 들었었는데, 그보다 훨씬 청자 중심적이면서도 일상에 가까운 사례라 귀에 쏙 들어왔다.
책 전반적으로 소아과 의사가 진찰하듯 온화하고 친절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를 간결하게 구사하는 점도 장점이다. 각 단락 별로 핵심요약과 양육자가 해야 하는 발언의 예시를 든 것도 도움이 되었다. "아이가 어리거나 신경다양성을 지녔다면 시각 자료를 활용하세요(78쪽)"과 같이 다양한 아동과 양육자의 상황을 고려한 점도 좋았다. "공감과 동감의 차이(106쪽)"처럼 어른들도 구분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개념들도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동시에 '좋은' 접촉과 '나쁜' 접촉이라는 표현의 위험성을 예민하게 포착하면서 차라리 "아이에게 괜찮지 않은, 바로 부모에게 와서 알려야 할 접촉들을 일러주는 쪽을 추천(55쪽)"하는 것처럼 언어와 상황을 민감하게 다루는 지점도 인상 깊었다.
부제에서 말하듯 이 책은 "우리 아이 성교육 부모 가이드"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영역과 무관하게 전문가들이 양육자에게 요구하는 자세는 일관되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목차에서처럼 "아이는 부모의 거울(10)"이고, 양육자는 아이가 설정한 경계를 존중(9)"해야 하며, "믿을 수 있는 어른 네트워크(11)"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같은 것 말이다. 그 방법도 아주 특별하다기보다 "실제 사례를 활용(134쪽)"해서 "반복, 반복, 반복(133쪽)"해야 하고, "항상 아이의 의사를 확인(121쪽)"하면서 양육자부터 "언행일치를 실천(67쪽)"해야 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다시 태어나는 일과 같다거나 제2의 삶이 시작되었다고 하는 비유는 사람마다 다르게 활용하겠지만, 내 경우는 지금까지의 삶을 반추할 수 있는 기회이자 새롭게 배워야 하는 강력한 동기인 것 같다. 번역도 감수도 훌륭한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배우자에게도 읽어보라고 추천할 수 있을 만큼 가볍고 쉽게 읽힌다는 것 그럼에도 그 깊이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