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싸한 기린의 세계 - 스물하나, 여자 아닌 사람이 되었다! 오 마이 갓. 이거 살맛 나잖아?
작가1 지음 / 든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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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알고리즘에 걸려 자연스럽게 접하는 책, 힘들여 이거 꼭 읽어보고 싶은데 여기 있었네 하고 만나서 반가운 책. <알싸한 기린의 세계>는 평소 내가 주로 읽게 되는 그런 류의 책은 아니었다. 20대 초반 여성이 인스타그램에 연재한 만화를 묶은 책. 맛도 멋도 뺀 표현이지만, 그래도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라는 온라인 서점의 분류보단 낫지 않을까 싶다. "만화 > 웹툰/카툰에세이"도 아니고 "정치 > 사회학 > 여성학"도 아니고. 여하튼 누군가 굳이 추천하지 않았다면 가시권 안에 들기 어려웠을 형태의 책을 읽게 되었다. 결론은, 재미있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작가의 발화를 담은 대화상자 안의 글씨체와 말투였다. 제목과 동일한 흘림체 성향의 글씨체를 쓰고 주로 문어체를 쓴다. 문장 자체도 그렇지만 오랫동안 어떤 주제와 논리를 고민해보고 그걸 어떻게 발화하고 표현할 것인지를 고민했다는 느낌을 잘 살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가의 평소 어투는 어떤지 알 수 없지만 20대 초반 여성으로서 페미니스트이자 "비혼이자 비출산주의 (241쪽, 교양 수업 발표)"임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면 예측가능한 폭언에 가까운 비난과 비판을 감당해야 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자기 입장과 논거를 다듬는 지속적인 훈련의 결과가 반영된 게 아닐까 싶었다.

또 하나 눈에 들어온 건 주인공인 기린의 표정이 상당히 풍성하다는 점이다. 만화임에도 지문의 비중이 높고 배경이 거의 없는 편이고 선이나 색이 단순해 그림은 자못 단조로운데 주인공의 표정만큼은 다채로웠다. 이 만화에서 가장 복잡한 선을 사용하는 것이 바로 주인공의 표정인데 그만큼 주인공의 서사에 집중하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딸에게 대리엄마를 요구하는 가정(1장. 딸과 아들), 우연하게 접하게 되어 빠져나오지 않은 페미니스트로의 입문(3장. 그때 그시절) 등 다루는 소재는 친근하고 익숙한데 이를 마주하는 작가의 태도가 친밀하면서도 역동적이어서 청년들에게 페미니스트 입문서를 추천한다면 주는 이도 받는 이도 부담이 덜 하겠다 싶었다.

마지막으로 몇몇 에피소드 마지막에 "세상의 모든 기린이들에게"라는 문장 모음이 참 좋았다. 아마 작가가 받은 응원의 글 몇 개를 추려 담은 게 아닌가 싶은데, 우리 시대를 사는 페미니스트라면 누구나 든든할 만한 소소한 위로와 격려를 담았다. 읽어나갈 때마다 이번 에피소드엔 "세상의 모든 기린이들에게"가 있나 찾아보게 되고, 이것만 따로 모아 어디엔가 적어두고 기운 없을 때마다 꺼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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