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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사회 - 타인의 공간에서 통제되는 행동과 언어들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11월
평점 :
[서평] 대리사회 [김민섭 저 / 와이즈베리]
저자 김민섭은 대학에서 인문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던 시간강사였고 조금만 더 버티면 교수가 될 수도 있던 그런 그가 8년만에 자신의 경력을 버리고 대학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걸어 나왔다. 여직까지 집과 학교가 전부라고 생각하고 강의실과 연구실에서 강의와 논문만 쓰며 생활하던 저자가 그 모든 것들이 다 몹쓸 희망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오게 된 이유는 바로 자신이 지켜야 하는 가족들 때문이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안락하고 조금만 더 버티면 승승장구할 것 같기만 한 대학 강사의 실상은 사실 나라의 혜택도 받지 못하는 유령과 같은 것이었는데, 4대보험은 커녕 재직증명서 조차 발급받을 수 없으니 그가 행정조교로 4년과 시간강사로 일한 4년 합하여 총 8년의 시간은 노동을 했지만 사회에서 인정하는 노동자이자 사회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 것은 아이의 탄생이었다.
사회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월 80만원 받는 시간강사에게 직장 건강보험을 제공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고, 저자는 건강보험료를 내기가 두려워서 혼인신고도 못하는 상황이었고 자신은 아버지에게, 아내는 취업한 남동생의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되어 있었다. 그러다 아들이 태어났고 아이의 출생신고를 미룰 수는 없었기에 저자는 건강보험이 절실했다. 그 때 눈에 띈 구인광고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4대보험을 보장한다는 문구가 선명한 맥도날드의 물류 하차 알바였다. 그렇게 저자는 시간강사 일을 하면서 새벽에 맥도날드 알바를 하게 되었다.
일이 꽤 고되었지만 강사일까지 열심히 하며 버티던 그가 대학과 이별하게 된 계기는 바로 맥도날드에서 자신을 노동자로 대우해 준다는 것이었다. 가족들을 피부양자로 둘 수 있는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임을 증명하는 우편물도 눈물겨웠고 아이의 돌잔치에 맥도날드의 명의로 축의금이 입금된다거나, 명절이면 본사에서 선물이 나오는 것을 경험한 저자는 당황스러워서 점장에게 물었다고 한다. "저한테 왜 이렇게 잘해 주나요?"라는 질문에 점장은 법을 지키는 것뿐이라고 말하는데, 이 부분에서 노동자가 받아야 할 당연한 대우를 받는 것이 어색하고 감동받은 저자의 모습이 그려져 안쓰럽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했다.
그리고 저자는 대학을 나온다. 그리고 아내의 동의를 얻어 글을 쓰기로 하는데 방에만 틀어 박혀서는 답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대리기사를 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동안 자신이 대리인간으로 살아왔다는 저자는 자신이 지나온 대리의 시간을 몸의 언어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며, 그것은 자신을 포함한 우리가 이 사회에서 주체성을 가진 온전한 나로서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뛰어든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대학이라는 거대한 대리사회의 괴물에서 벗어나 대리기사를 하면서 한없이 작은 인간이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었고 그동안 육체적 노동이라는 것은 모르고 학교와 집만 다니던 저자에게 육체 노동은 모두가 존중할 만한 각자의 삶을 영위하고 있을 것이라는 전에 없던 자각과 그러한 성찰을 가능케 했고 더 의미있는 경험이라고 말한다.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고 손님의 심기를 건드리지는 않을까 눈치를 봐야 하는 자리가 바로 타인의 운전석이었다. 이 사회는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부터 시작해 교사, 직장 상사와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을의 공간에서 순응하는 방법을 주로 배워왔다. 우리는 순응하는 몸에 익숙해진 개인이다. 그러나 국가나 사회 시스템의 욕망을 대리하는 대리인간이 되어서는 안된다. 끊임없어 질문하고 불평하며 사유해야 한다.
이 책은 많은 생각과 여운을 남긴 인상적인 책이었다. 글이 생생하고 친숙하게 다가오는데 어떤 부분은 너무 재미있어서 크게 웃기도 했고 어떤 부분에서는 저자의 현실이자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 씁쓸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책의 저자 김민섭에 애정이 가는 이유는 나와 같은 나이대에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운전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할 거 없으면 대리기사나 하지"라고 툭툭 뱉을 정도로 만만하게 보는 직업이자 위험하고 자존심이 많이 짓눌리기도 하는, 결코 쉽지 않은 대리기사를 하겠다고 뛰어든 전직 대학 강사라니 그야말로 신기하고 대단해 보였다. 그저 샌님이었던 대학 강사가 밤의 거리를 뛰어다니는 모습이 그려지고 그와 그의 부인이 함께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는 표현 그 이상이었다. 저자의 용기와 열정에 감동했고 마음 깊은 곳에서 그를 열렬히 응원하게 되었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고 자극을 받으면서 나 자신에게 솔직하며 나의 삶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