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임당을 그리다 - 내실에서 꿈을 찾은 예술가
정항교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6년 4월
평점 :
[서평] 사임당을 그리다 [정항교 저 / 생각정거장]
저자 정항교는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가톨릭관동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교육대학원에서 한문교육으로 석사 학위를 가천대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과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화재청 강원도고문서감정위원, 강원도 문화재전문위원, 사단법인 한국박물관협회 이사, 사단법인 한국사립박물관 운영위원, 오죽헌시립박물관장을 지냈다. 중국 북경 어언문화대에서 연수했으며, 현재 장강대에서 국어국문학 초빙교수로 지내고 있다. 저서로 <겨레의 어머니 겨레의 스승>, <율곡 선생의 시문학>, <율곡 선생의 금강산 답사기>, 번역서로 <증수임영지>, <고성 건봉사사적>, <송담재지>, <봉서유고> 등이 있다.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 우리나라의 현모양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신사임당이다. 신사임당은 선덕여왕과 유관순 열사 등 몇몇의 여성 후보들 중에서 뽑혀 여성 최초로 고액권인 5만원 화폐 도안 인물로까지 이어진 인물이다. 여자들은 물론 남자들에게도 큰 존경을 받는 인물이기도 한데 그녀의 삶과 그녀가 남긴 작품들을 접할 수 있는 책이 출간되었다.
신사임당은 1504년 강원도 강릉 북평촌에서 아버지 신명화와 어머니 용인 이씨 사이에서 다섯 딸 중 둘째로 태어났다. 신사임당의 어머니 이씨 부인은 참판을 지낸 최응현의 손녀로 강릉에서 외조부인 최응현 밑에서 자랐으며 아버지 최치운은 이조참판을 지낸 인물이다. 신사임당의 본명은 신인선으로 사임당은 당호이며 사임당 외에도 시임당, 임사제라고도 했다. 사임당이라고 당호를 지은 것은 중국 고대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로 뛰어난 부덕을 갖추었다는 태임을 본받는 뜻이 담겨 있는데 태임은 신사임당의 롤모델이었던 것이다.
사임당은 7세 때부터 스승 없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몽유도원도>, <적벽도>, <청산백운도> 등 산수화를 보면서 모방해 그렸고 특히 풀벌레와 포도를 그리는 데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시와 글쓰기에서도 남다른 재능이 있었고 뛰어난 두각을 나타내 부모님이 가장 아끼는 딸이기도 했다고 한다. 사임당은 1522년 19세에 덕수 이씨 가문의 이원수와 결혼을 했는데 2년 뒤인 21살에 맏아들 선을 낳고 26살에 맏딸 매창을, 33세에 셋째 아들 율곡 이이를 낳아 모두 4남 3녀를 낳아 길렀다.
사임당은 결혼 후에도 친정과 인연이 깊었다. 어머니 용인 이씨가 그랬듯이 아들 없는 친정 어머니 용인 이씨를 아들처럼 모셨는데 결혼 후 서울에서 정착하기 전까지 근 20년을 강릉에서 함께 살았고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친정에서 3년 상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기도 했다고 한다. 율곡 이이는 홀로 계시는 어머니의 말동무를 해드리는 사이에 강릉에서 낳아기에 외할머니의 사랑도 듬뿍 받고 자란 아이였다.
사임당은 남편 이원수가 수운판관에 임명되어 아들들과 함께 평안도로 갔을 때 48세의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날 때 남편에게 재혼을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이원수는 아이들 때문인지 재혼을 했다고 한다. 사임당이 죽었을 때 율곡 이이의 나이는 16세였는데 어머니를 여의고 금강산에 입산할 정도로 방황했지만 외조모의 따뜻한 정에 의해 관직에 나갔다. 결국 사임당은 아들 율곡 이이 덕분에 정경부인에 증직되었고 그의 유적으로는 탄생지인 오죽헌과 묘소가 있는 조운산이 있다.
신사임당은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 현모양처이고 인품과 재능을 겸비한 여성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녀가 살았던 당시에는 산수도를 잘 그린 화가로서 명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지혜롭고 현명한 자식이자 부인이자 어머니였던 신사임당의 일생을 만나고, 그녀가 남긴 작품 <초충도>를 비롯하여 수박과 꽈리, 물소와 물새, 매화, 산수도, 포도 그림, <격몽요결> 등을 접할 수 있는 유익한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