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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캠페인 - 미국을 완전히 바꿀 뻔한 82일간의 대통령 선거운동
서스턴 클라크 지음, 박상현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20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라스트 캠페인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인 전 미국 법무장관 로버트 F. 케네디의 두달여 간의 1968년 선거운동을 다룬 책이다. 1968년 미국은 나치와 일본 제국을 쳐부순 위대한 승전국의 시대도 지났고, 늙은 아이크 밑에서 안빈낙도하는 지상낙원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레이건의 손에서 (그 내실이야 어찌 되었건) 활력을 부여받은 시대도 아니었다. 60년대 후반의 미국은 월남전과 혐전 분위기 속에서 기존 삶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반대가 제기되던 상황이었다. 흑인들은 시민으로서 권리를 요구했고 여자들은 전통적인 가부장 제도를, 더 나아가 결혼제도도 거부했다. 젊은이들은 히피가 되어 총을 잡기 거부했고 미국 서부 해안의 캠퍼스들은 자유 언론을 요구하는 시위대로 가득 찼다. 많은 사람들은 킹 목사의 온건한 시민권 운동에 동조했지만, 일부 과격파들은 스파이크 리 감독의 전기 영화를 통해 엿볼 수 있는 맬컴 엑스, 더 나아가 흑표당에게 동조했다. LSD와 헤로인으로 대표되는 마약은 사회 전반에 만연했다. “60년대를 기억하실 수 있다고요? 60년대에 사신 적이 없는건 분명하네요!” 마약은 유명한 가수 지미 헨드릭스를 비롯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1968년 4월 4일, 멤피스에서 킹 목사가 암살당했고 미국 주요 도시에서는 폭동이 발생했다.
베트남에서 전쟁은 격화되었다. 케네디 행정부는 1961년까지만 해도 베트남에 미군 전투부대를 파병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들은 30만 대군을 베트남에 보내도, 프랑스가 그랬던 것처럼 밀림과 논바닥 속에서 다신 찾지 못할 것이며, 남베트남은 처음에는 환호성을 지르겠지만, 나흘만 지나면 더 보내달라고 요구할 뿐일 것이라고 정확하게 예측했다. 하지만 케네디는 베트남에서 발을 뺀다는 선택지는 고려할 수 없었으며, 전임 아이젠하워가 유화적이었다고 비난하면서 비현실적인 강경책으로 선회했다. 또한, 지엠 대통령에 대한 남베트남 군부의 쿠데타를 묵인하고 일부 조장했다. 1963년, 지엠 대통령 형제는 살해당했고, 케네디 대통령은 이들이 죽음까지 당했단 소식에 충격과 실망을 표하며 어떤 책임도 지겠다고 했지만, 그 자신도 불과 3주 후에 암살당했다. 응오딘지엠 대통령은 권위주의적이고 인기 없는 독재자였지만, 남베트남 민족주의 세력에서 유일하게 비전을 가지고 있는 유능한 인물이었다. 그가 죽은 후 베트콩의 확산은 더욱 걷잡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지만, 새로운 군사정부는 속수무책이었고, 미국의 개입 필요성은 더욱 증대되었다. 케네디의 뒤를 이은 존슨 대통령은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1965년에 18만 대군을 베트남에 보냈고 북베트남을 폭격하기 시작했다. 베트남에 파견된 미군의 수는 1966년에 40만에, 1968년에 50만을 넘어섰다. 존슨 행정부 밑에서 지출된 전비는 1천억 달러가 넘었으며, 매주 200명의 미군이 전사했다. 1968년 구정공세는 미국의 남은 전쟁 지지여론마저 산산이 부수었다. 전쟁 격화의 장본인인 존슨 대통령은 1968년 3월, 공식적으로 3선을 포기해야만 했다. 로버트 케네디의 선거운동은 이러한 미국 사회를 바탕으로 치러지고 있었다.
<위대한 캠페인>은 케네디의 장례식으로 시작한다. 그가 얼마나 광범위한 민중, 특히 소외받았던 흑인들과 심지어 흑인들의 등교까지 방해했던 월리스 주지사를 지지했던 백인 노동자들의 애도까지 살 수 있었으며, 그가 대통령에 올랐으면 닉슨이 저지른 과오를 미국 역사에서 생략하고 바로 평화와 안정의 해답으로 나갈 수 있었을 것이라는 눈물 젖은 희망을 관속에 같이 묻는다. 심지어 그가 당선되었다 하더라도 형처럼 암살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그가 실제로 암살당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개연성있긴 하지만 케네디 가문의 카멜롯 신화의 낭만성을 절절히 드러내는 전망을 추가한다. 올리버 스톤의 전기영화 닉슨에서 에드가 후버가 노골적으로 케네디의 암살 사주를 암시하는 장면이 생각나는 것도 같고, 우리나라 사극에서 신물 나도록 즐기는 개혁군주 정조 암살설이 생각나는 것도 같다. 이어 암살당한 형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가득한 로버트 케네디의 출마가 시작된다. 앞서 서술한 상당수 사건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존슨의 불출마도 케네디로서는 알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존슨의 연임을 방해하려는 기회주의자라는 오명, 존슨 지지자, 노조 지지자들의 적개심에 둘러싸인 채로 프롤로그의 묘사된 거룩한 최후와 달리 다소 험난한 여정을 시작한다. 베트남 전쟁을 저지해야 한다는 도덕적 사명감이 그의 주된 동기였다. 케네디를 빛내주는 것은 그의 ‘과오’에 대한 통렬한 반성, 그리고 훗날 닉슨에게까지 환호하는 보수계층까지 아우를 수 있는 인간미, 약자에 대한 접근이었다. 그런 그의 대선 행보에 대해서 본서는 십여일 단위, 짧게는 하루와 이틀 단위로 장을 나누어 매우 상세히 다루고 있다. 그는 대단히 인간적인 지도자로 묘사된다. 마틴 루터 킹의 죽음에, 인디언 아이의 죽음에 눈물을 흘렸고,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비정상인 미국 사회에 개탄하여 눈물을 흘렸다. 쌍방의 비난에는 참지 못하고 분통을 터트렸다. 또한, 그는 많은 사랑을 받았다. 분노로 찬 폭동 현장에서 그의 사진은 약탈을 막아 주었고, 계엄군도 그에게 악수를 청했으며, 백인 정치가들에게 분노를 쏟아내던 흑인 군중도 그만은 환영했다. 그러나 완벽한 정치가에게 완벽한 결말은 뜻하지 않은 요절에 있다. 그 자신을 포함해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의 암살을 예감했다. 마침내 자신의 힘으로 승리를 쟁취했다고 느끼고 있을 무렵, 팔레스타인계 젊은이가 쏜, 대기업도, 흑인 과격파도, 공산주의자도, 급진 반정부주의자도 아닌 뜻하지 않은 증오가 그의 심장을 뚫었다. 작가는 케네디를 죽인 시르한의 동기를, 존 레논을 죽인 채프먼이나 레이건을 쏜 힝클리의 동기가 그랬던 것처럼 관심병으로 보고 있다.
이 책은 케네디를 미국의 희망으로 보고 있다. 이는 책의 서장에서 두드러진다. “취임 직후 베트남 전쟁 종전 협상에 착수했을 것이고, 그 결과 닉슨 행정부 시절 죽은 베트남인 200만 명과 미군 2만 명의 목숨을 구했을 것”이며, “캄보디아 폭격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폴 포트 정권”도 없었을 것이고,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비롯된 환멸과 냉소주의도 없었을 것이며 젊은이들과 소수인종들은 백악관에 든든한 수원자가 생겼을 것이란 것이다. 물론 케네디가 당선되었다면, 워터게이트 사건이 1972년에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란 점은 크게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닉슨이 베트남 전쟁의 종결을 외치며 남베트남 정권의 체제보장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 그리고 북베트남과의 평화 회담의 필요성을 제기한 키신저의 주장을 수용하여, 심지어 모택동의 중국과의 과감한 데탕트에까지 나서 베트남을 전방위로 압박해 파리 협정으로 나아갔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베트남 전쟁이 잘못된 것임을 알았다는 이유로 케네디가 미국 청년들의 목숨을 더 구했을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생뚱맞기까지 하다. 수만명의 미국인들과 더 많은 베트남인들이 사망한 1968년에, 이미 빈곤과의 전쟁에서 상당한 공적을 세운 존슨 대통령의 정치적 생명까지 소멸시킨 베트남 전쟁이 ‘잘못된 것’이라는 관념이 케네디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은 저자가 이미 잘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미 1964년에 린든 존슨은 골드워터를 광적인 반공주의자로 비난하면서 자신은 베트남 전쟁을 확대하지 않겠다는 공약으로 재선되었다. 그리고 관념만으로 전쟁을 그만둘 수 있다는 것인가? 그의 형인 존 F. 케네디가 이미 겪은 홍역이었지만, 미국의 위신을 손상시키지 않고,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공산화를 초래하지 않고 베트남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아이젠하워부터 포드에 이르는 다섯 행정부가 그저 하기 싫어서 안한 간단한 과제였단 말일까? 현실적인 난제와 더불어 뮌헨의 악몽이 구미 외교계에 준 악몽, 그리고 중국 공산화가 미국 정치계에 준 충격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이미 한 이념의 지도 국가인 미국에게 있어, 드골이 베트남의 공산화가 인접국에게 파급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떠들건 말건, 미국에게 있어 베트남은 이미 미국적 가치의 존망을 건 냉전의 최전선이었다. 첫장만으로 책을 평가할 순 없지만, 지나친 과찬은 불안함을 갖게 만든다.
저자는 케네디의 반성에 대해서 주목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케네디의 ‘반성’이 정말 가슴 깊게 절절이 우러나오는 그런 류의 반성이었을지 의문이다. 히틀러조차도 자신이 세계 대전을 일으킬 생각은 없었다고 죽기 얼마 전까지 부인하지 않았던가. 더군다가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의 원인을 생각해본다면 바비 케네디의 개인적인 부분보다는, 당시 미국이 서 있던 근본적인 부분을 생각해야 한다. 정작 저자는 케네디 역시 공산주의에 맞서는 미국의 사명감과 도덕적 우월성에 대한 신념에 대해서 주요하게 언급하고 있다. 그가 TR이나 닉슨이 그랬던 것처럼, 필요하면 공산주의자와도 악수하고 미국의 이익에 손해가 되는 땅덩어리 따위 던져버릴 수 있었을까? 이러한 점에서 나는 케네디의 ‘반성’을 다른 의미로 케네디의 영리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집권을 위해서 어떤 의미로 형의 영광까지도 일부 팔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케네디가 없었다면 폴 포트는 집권하지 않았을 것이고, 닉슨이 아니라 케네디가 집권했으면 갑자기 북베트남이 미국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서 남베트남의 안전을 보장했을까? 미군 파병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며 미국의 힘에 한계가 있다는 로버트 케네디의 말을 인용하면서도 저자는 다른 나라의 전략적 목표와 독자적인 의지의 존재에 대해서 무시하는 위험한 상상에 대해서, 그리고 냉전의 복잡한 지형에 대해서 함부로 재단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국내에서 다뤄지지 않은 시기와, 다뤄지지 않은 인물에 대한 매우 드물게 자세한 책이며, 그 상세함과 정보의 희소성에 있어서 매우 읽을만한 책임은 확실하다. 비록 위에서 그의 역할에 대해서 회의하는, 다소 냉소적인 글줄을 남기긴 했으나, 본서에 서술된 그의 모습에 대단히 매력적이며, 그 때문에 그의 죽음에 상당히 아쉬움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60년대 미국 사회상, 그리고 로버트 케네디란 개인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일독을 권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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