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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의 스파이 전쟁
홍윤표 지음 / 렛츠북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홍윤표씨의 책을 읽게 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군복무 시절 우연히 저자의 전작이었던 <중국, 그들이 기억하는 100년의 역사>를 읽었던 적이 있다. 이번에 나온 <중국공산당의 스파이 전쟁>은 그 주제의 흥미성 때문에 신청하였지 같은 작가의 저작이라는 점은 알지 못하고 신청하였다가 책을 수령한 후 저자 소개란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사실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전작에서 대단한 인상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실망했다. 저자는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대만 국립정치대학 동아연구소 석사 출신으로 중국 문제의 전공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의 석사학위 논문은 중국공산당의 정치엘리트에 국한된 것으로, 그 때문인지 신해혁명 이후 오늘날에 이르는 100년에 달하는 중국 현대사를 모두 깊이 있게 다루는 데에는 상당한 한계를 보였다. 그 문제점을 자세히 서술하는 것은 본고가 해당 책의 서평이 아닌 이상 부적절한 것이 되겠지만, 간단한 것만을 소개하자면 중국 현대사를 이해하는데 있어 영미 학계의 핵심적 연구들은 국내에 번역된 일부 책을 제외하곤 하나도 인용하지 않았으며, 화폐전쟁과 같이 신빙성이 부족한 음모론 저작들을 인용하기도 하였다. 또한, 바이두 백과를 비롯한 중국 사이트를 출처로 기재하거나 아예 내용 기술에 있어서 중국 사이트에서 회자되는 서술하는 여러번 있었다. 가뜩이나 그다지 많지 않은(심각할 정도로 많지 않다) 참고문헌 중 상당수가 이런 신뢰할 수 없는 출처로 채워지는 것은 ‘중국이 기억하는’이라는 제목과 상업성을 위한 가벼운 문체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책의 내용에 상당한 의구심을 가지게 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러나 저자의 진가가 발휘되는 대목 역시 분명히 존재하였다. 대만 유학파인 저자는 당연히 대륙과 대만의 여러 중국어 자료들을 인용하는 것에 능숙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의 신뢰할만한 최신 연구성과들을 인용하여 기존 통설에 대해 학술적으로 반박하는 모습은 대단히 인상적이었으며 이것 하나만으로도 홍윤표씨의 책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


이번 저작 <중국공산당의 스파이 전쟁>은 전작의 문제점과 장점을 모두 계승하였다. 이 책은 크게 1927년부터 1949년 사이 국공양당의 첩보전, 민국시기 첩보전 무대로서의 상해의 도시사, 스파이 열전, 3부분으로 구성된다. 저자의 참고문헌 구성은 여전히 대부분 중국어 자료들로 이루어져 있으나 전작에 비해서 상당히 다채로워졌다. 이 분야에 있어 핵심적인 연구 저작인 프레더릭 웨이크먼 주니어(Frederic Wakeman Jr.)의 대립 평전(Spymaster: Dai Li and the Chinese Secret Servic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3)의 중국 번역본이 눈에 띠며, 피터 매티스(Peter Mattis)와 매튜 브라질(Mattew Brazil)의 중국 공산주의 첩보(Chinese Communist Espionage: An Intelligence Primer, Naval Institute Press, 2019)도 참고문헌에 들어갔다. 화폐전쟁이 여전히 참고문헌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점, 저자가 주목하는 인물인 주은래에 관한 주요 연구인 바르바라 바르누앙(Barbara Bamouin)과 위창건(Yu Changgen)의 주은래 평전(Zhou Enlai: A Political Life, The Chinese University Press, 2006), 고문겸(高文謙, Gao Wenqian)의 주은래 평전(ZHOU ENLAI: The Last Perfect Revolutionary, Public Affairs, 2007) 등이나 국공내전에 대한 주요 연구결과인 다이애나 래리(Diana Lary)의 저작(China’s Civil War: A Social History, 1945~1949,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5)을 참고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점이다. 국내의 중화민국 경제사의 걸출한 연구자인 김지환 교수의 논저들이 저자가 국공내전기 경제정책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참고되지 않은 것 또한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다.


그렇다면 내용은 어떨까? 엄격히 말해서 각 부분의 완성도는 조금 중구난방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높은 평가를 주고 싶었던 부분은 1부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국공내전 폭발기의 첩보전사와 상해 첩보전사였다. 이 부분은 기존에 필자도 알지 못하였던 흥미로운 자료들을 바탕으로 기존의 <4대가족론>에 대한 비판 성과 소개, 주은래가 주도한 국공내전기의 선전선동 활동, 국민정부 내부에 깊숙이 침투했던 중국 공산당의 스파이들의 실태에 대해서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중에서 ‘첩보전’보다는 차라리 포괄적인 ‘국공내전사’나 ‘언론전’에 해당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은 부분도 없지는 않았으나 아직까지 국내 저작 중 이 정도로 자세하게 다룬 저작을 잘 보지 못했기에 이는 반가운 부분이었다. 뒤의 스파이 열전에서 배경 설명 역시 필자의 기대 외로 상당히 괜찮은 부분이었다. 가령 3장 <의도적인 경제 정책의 실패, 장개석에게 쏟아진 저주: 기조정>에 저자는 1935년 법폐개혁의 의미와 결과, 그리고 이의 유지를 위한 국민정부의 노력에 대해서 상당히 자세하고도 정확한 기술을 하고 있다. 스파이 열전의 특징상, 특정 스파이가 나라 전체를 쥐락펴락했다고 소설처럼 쓸법도 하지만(부드러운 문체를 시도하겠다고 서문에서 양해를 구하고 있음에도) 저자는 여러 스파이들의 전해지는 활약상에 대해 현재 중국의 통설, 국민당 관계자들의 회고, 영미권 연구자들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이를 대조하고 학술적으로 냉정한 접근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이런 중국 현대사의 ‘열전물’ 중에서 필자가 보아온 것 중에서는 독보적인 완성도를 보인다. 각 사건이나 인물에 관련된 중국에서 제작된 영상매체를 소개하는 것 역시 영화에 대한 관심이 많은 필자에게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부분이었다.


하지만 대조적으로 1부의 시작은 저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조악하기까지 한 구성을 보인다. 사건 묘사, 인물 소개, 역사적 배경 설명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저마다의 색채를 주장하면서 뒤엉키고 있다. 또한, ‘중국공산당이 북벌 막바지에 중산함 사건을 일으켰다’(37쪽, 중산함 사건은 북벌이 일어나기 전에 일어난 사건이며 그 주체는 당연히 공산당이 아니라 장개석이다. 원인 제공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 책에서의 서술은 기초 사실 관계 자체가 맞지 않다. 저자의 전작에 중산함 사건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더욱 황당한 오류이다.), ‘남의사가 1938년 한복구, 1940년 석우삼을 암살했다’(38쪽, 두 사람 모두 정식 군사재판을 거쳐 처형된 인물이지 암살된 인물들이 아니며 특히 한복구의 처형은 중일전쟁 초기 전쟁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등 기초적 사실관계가 맞지 않는 오류들도 확인되며 장개석의 통치기반을 단순히 군에 의존하였다고 서술하는 등 구태의연한 서술들이나(저자가 그렇다고 해서 기존 혁명사관처럼 장개석을 군벌의 일원으로 격하하는 것에 동참하지는 않지만 장개석이 당의 권위를 확대하고 당을 통해서 중국을 통제하려 기울인 노력을 감안한다면 이는 너무도 단순한 표현이다. 래리는 이미 1980년의 논문(Diana Lary, 「Warlord Studies」 『Modern China』 6(4) (1980.10))에서 이러한 점을 지적한 바가 있다.) 도입부와 후반부의 내용을 단순 비교 논평하자면, 흔히 말하는 ‘용두사미’가 아니라 ‘사두용미’라는 상당히 기이한 결과가 나온다.


1부 초반의 문제점은 이 책 전체의 문제점의 요약과 같다고 생각한다. 이 결함이 있는 도입부에서도 저자는 여러 신뢰있는 문헌을 인용하여 가치 있는 자료들을 제공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구성이 저자가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어떠한 자료를 제공하고 싶은 것인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파편적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이 책을 쓰는데 대단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이 분야에 대해서 심도 있는 내공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중국공산당의 스파이 전쟁>이라는 제목에 충실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구성을 가지고 있다. 1927년부터 1949년까지 국공의 첩보전 발생의 배경, 발발, 양 진영의 구체적 전략과 진행, 결과에 대해서 순차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설명하기보다는 흥미위주의 내용을 중심으로 파편적으로 설명하는데 치중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 저자가 설명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저자가 가장 비중을 할애한 부분은 스파이 열전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다시 말해서 자료 조사에 있어서는 괄목할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 내용물을 재구성하는데 있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가령 2부 <상해, 스파이들의 천국과 지옥>은 20여쪽 밖에 되지 않는 분량인데 단독 챕터로 분할해야 할 이유부터 납득이 되지 않으며 해당 내용을 분할하여 국공 첩보전의 시기별 배경에 각각 포함시켰으면 책의 완성도를 더욱 높였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여기에 출처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지엽적이라고 하기에는 힘든 사실 오류가 포함되어 있는 것 또한 문제점이다.


몇가지 신랄한 비판점을 남기긴 했으나, 이 책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이 책은 분명 필자로서는 담아낼 수 없었던 중요한 가치들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본 서평에서 지적한 단점을 유념하되, 장점을 더 기억하며 이 책에 대한 애정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중화민국사 원고를 완성시키지 못한 필자로서는 2권이나 책을 완성시킨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과업임을 잘 이해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은 중국 혁명 시대, 국공의 첩보전이라는 주제에서 국내에서 유일한 저작이며, 오랫동안 유일한 저작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공내전이라는 전체 주제로 확장한다 하더라도 독보적인 읽을거리임은 틀림없다. 중국 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애호가들에게는 일독을 권하며 저자에게는 더 훌륭한 차기작을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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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캠페인 - 미국을 완전히 바꿀 뻔한 82일간의 대통령 선거운동
서스턴 클라크 지음, 박상현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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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라스트 캠페인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인 전 미국 법무장관 로버트 F. 케네디의 두달여 간의 1968년 선거운동을 다룬 책이다. 1968년 미국은 나치와 일본 제국을 쳐부순 위대한 승전국의 시대도 지났고, 늙은 아이크 밑에서 안빈낙도하는 지상낙원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레이건의 손에서 (그 내실이야 어찌 되었건) 활력을 부여받은 시대도 아니었다. 60년대 후반의 미국은 월남전과 혐전 분위기 속에서 기존 삶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반대가 제기되던 상황이었다. 흑인들은 시민으로서 권리를 요구했고 여자들은 전통적인 가부장 제도를, 더 나아가 결혼제도도 거부했다. 젊은이들은 히피가 되어 총을 잡기 거부했고 미국 서부 해안의 캠퍼스들은 자유 언론을 요구하는 시위대로 가득 찼다. 많은 사람들은 킹 목사의 온건한 시민권 운동에 동조했지만, 일부 과격파들은 스파이크 리 감독의 전기 영화를 통해 엿볼 수 있는 맬컴 엑스, 더 나아가 흑표당에게 동조했다. LSD와 헤로인으로 대표되는 마약은 사회 전반에 만연했다. “60년대를 기억하실 수 있다고요? 60년대에 사신 적이 없는건 분명하네요!” 마약은 유명한 가수 지미 헨드릭스를 비롯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1968년 4월 4일, 멤피스에서 킹 목사가 암살당했고 미국 주요 도시에서는 폭동이 발생했다.

 

베트남에서 전쟁은 격화되었다. 케네디 행정부는 1961년까지만 해도 베트남에 미군 전투부대를 파병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들은 30만 대군을 베트남에 보내도, 프랑스가 그랬던 것처럼 밀림과 논바닥 속에서 다신 찾지 못할 것이며, 남베트남은 처음에는 환호성을 지르겠지만, 나흘만 지나면 더 보내달라고 요구할 뿐일 것이라고 정확하게 예측했다. 하지만 케네디는 베트남에서 발을 뺀다는 선택지는 고려할 수 없었으며, 전임 아이젠하워가 유화적이었다고 비난하면서 비현실적인 강경책으로 선회했다. 또한, 지엠 대통령에 대한 남베트남 군부의 쿠데타를 묵인하고 일부 조장했다. 1963년, 지엠 대통령 형제는 살해당했고, 케네디 대통령은 이들이 죽음까지 당했단 소식에 충격과 실망을 표하며 어떤 책임도 지겠다고 했지만, 그 자신도 불과 3주 후에 암살당했다. 응오딘지엠 대통령은 권위주의적이고 인기 없는 독재자였지만, 남베트남 민족주의 세력에서 유일하게 비전을 가지고 있는 유능한 인물이었다. 그가 죽은 후 베트콩의 확산은 더욱 걷잡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지만, 새로운 군사정부는 속수무책이었고, 미국의 개입 필요성은 더욱 증대되었다. 케네디의 뒤를 이은 존슨 대통령은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1965년에 18만 대군을 베트남에 보냈고 북베트남을 폭격하기 시작했다. 베트남에 파견된 미군의 수는 1966년에 40만에, 1968년에 50만을 넘어섰다. 존슨 행정부 밑에서 지출된 전비는 1천억 달러가 넘었으며, 매주 200명의 미군이 전사했다. 1968년 구정공세는 미국의 남은 전쟁 지지여론마저 산산이 부수었다. 전쟁 격화의 장본인인 존슨 대통령은 1968년 3월, 공식적으로 3선을 포기해야만 했다. 로버트 케네디의 선거운동은 이러한 미국 사회를 바탕으로 치러지고 있었다.

 

<위대한 캠페인>은 케네디의 장례식으로 시작한다. 그가 얼마나 광범위한 민중, 특히 소외받았던 흑인들과 심지어 흑인들의 등교까지 방해했던 월리스 주지사를 지지했던 백인 노동자들의 애도까지 살 수 있었으며, 그가 대통령에 올랐으면 닉슨이 저지른 과오를 미국 역사에서 생략하고 바로 평화와 안정의 해답으로 나갈 수 있었을 것이라는 눈물 젖은 희망을 관속에 같이 묻는다. 심지어 그가 당선되었다 하더라도 형처럼 암살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그가 실제로 암살당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개연성있긴 하지만 케네디 가문의 카멜롯 신화의 낭만성을 절절히 드러내는 전망을 추가한다. 올리버 스톤의 전기영화 닉슨에서 에드가 후버가 노골적으로 케네디의 암살 사주를 암시하는 장면이 생각나는 것도 같고, 우리나라 사극에서 신물 나도록 즐기는 개혁군주 정조 암살설이 생각나는 것도 같다. 이어 암살당한 형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가득한 로버트 케네디의 출마가 시작된다. 앞서 서술한 상당수 사건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존슨의 불출마도 케네디로서는 알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존슨의 연임을 방해하려는 기회주의자라는 오명, 존슨 지지자, 노조 지지자들의 적개심에 둘러싸인 채로 프롤로그의 묘사된 거룩한 최후와 달리 다소 험난한 여정을 시작한다. 베트남 전쟁을 저지해야 한다는 도덕적 사명감이 그의 주된 동기였다. 케네디를 빛내주는 것은 그의 ‘과오’에 대한 통렬한 반성, 그리고 훗날 닉슨에게까지 환호하는 보수계층까지 아우를 수 있는 인간미, 약자에 대한 접근이었다. 그런 그의 대선 행보에 대해서 본서는 십여일 단위, 짧게는 하루와 이틀 단위로 장을 나누어 매우 상세히 다루고 있다. 그는 대단히 인간적인 지도자로 묘사된다. 마틴 루터 킹의 죽음에, 인디언 아이의 죽음에 눈물을 흘렸고,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비정상인 미국 사회에 개탄하여 눈물을 흘렸다. 쌍방의 비난에는 참지 못하고 분통을 터트렸다. 또한, 그는 많은 사랑을 받았다. 분노로 찬 폭동 현장에서 그의 사진은 약탈을 막아 주었고, 계엄군도 그에게 악수를 청했으며, 백인 정치가들에게 분노를 쏟아내던 흑인 군중도 그만은 환영했다. 그러나 완벽한 정치가에게 완벽한 결말은 뜻하지 않은 요절에 있다. 그 자신을 포함해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의 암살을 예감했다. 마침내 자신의 힘으로 승리를 쟁취했다고 느끼고 있을 무렵, 팔레스타인계 젊은이가 쏜, 대기업도, 흑인 과격파도, 공산주의자도, 급진 반정부주의자도 아닌 뜻하지 않은 증오가 그의 심장을 뚫었다. 작가는 케네디를 죽인 시르한의 동기를, 존 레논을 죽인 채프먼이나 레이건을 쏜 힝클리의 동기가 그랬던 것처럼 관심병으로 보고 있다.

 

이 책은 케네디를 미국의 희망으로 보고 있다. 이는 책의 서장에서 두드러진다. “취임 직후 베트남 전쟁 종전 협상에 착수했을 것이고, 그 결과 닉슨 행정부 시절 죽은 베트남인 200만 명과 미군 2만 명의 목숨을 구했을 것”이며, “캄보디아 폭격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폴 포트 정권”도 없었을 것이고,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비롯된 환멸과 냉소주의도 없었을 것이며 젊은이들과 소수인종들은 백악관에 든든한 수원자가 생겼을 것이란 것이다. 물론 케네디가 당선되었다면, 워터게이트 사건이 1972년에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란 점은 크게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닉슨이 베트남 전쟁의 종결을 외치며 남베트남 정권의 체제보장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 그리고 북베트남과의 평화 회담의 필요성을 제기한 키신저의 주장을 수용하여, 심지어 모택동의 중국과의 과감한 데탕트에까지 나서 베트남을 전방위로 압박해 파리 협정으로 나아갔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베트남 전쟁이 잘못된 것임을 알았다는 이유로 케네디가 미국 청년들의 목숨을 더 구했을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생뚱맞기까지 하다. 수만명의 미국인들과 더 많은 베트남인들이 사망한 1968년에, 이미 빈곤과의 전쟁에서 상당한 공적을 세운 존슨 대통령의 정치적 생명까지 소멸시킨 베트남 전쟁이 ‘잘못된 것’이라는 관념이 케네디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은 저자가 이미 잘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미 1964년에 린든 존슨은 골드워터를 광적인 반공주의자로 비난하면서 자신은 베트남 전쟁을 확대하지 않겠다는 공약으로 재선되었다. 그리고 관념만으로 전쟁을 그만둘 수 있다는 것인가? 그의 형인 존 F. 케네디가 이미 겪은 홍역이었지만, 미국의 위신을 손상시키지 않고,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공산화를 초래하지 않고 베트남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아이젠하워부터 포드에 이르는 다섯 행정부가 그저 하기 싫어서 안한 간단한 과제였단 말일까? 현실적인 난제와 더불어 뮌헨의 악몽이 구미 외교계에 준 악몽, 그리고 중국 공산화가 미국 정치계에 준 충격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이미 한 이념의 지도 국가인 미국에게 있어, 드골이 베트남의 공산화가 인접국에게 파급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떠들건 말건, 미국에게 있어 베트남은 이미 미국적 가치의 존망을 건 냉전의 최전선이었다. 첫장만으로 책을 평가할 순 없지만, 지나친 과찬은 불안함을 갖게 만든다.

 

저자는 케네디의 반성에 대해서 주목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케네디의 ‘반성’이 정말 가슴 깊게 절절이 우러나오는 그런 류의 반성이었을지 의문이다. 히틀러조차도 자신이 세계 대전을 일으킬 생각은 없었다고 죽기 얼마 전까지 부인하지 않았던가. 더군다가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의 원인을 생각해본다면 바비 케네디의 개인적인 부분보다는, 당시 미국이 서 있던 근본적인 부분을 생각해야 한다. 정작 저자는 케네디 역시 공산주의에 맞서는 미국의 사명감과 도덕적 우월성에 대한 신념에 대해서 주요하게 언급하고 있다. 그가 TR이나 닉슨이 그랬던 것처럼, 필요하면 공산주의자와도 악수하고 미국의 이익에 손해가 되는 땅덩어리 따위 던져버릴 수 있었을까? 이러한 점에서 나는 케네디의 ‘반성’을 다른 의미로 케네디의 영리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집권을 위해서 어떤 의미로 형의 영광까지도 일부 팔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케네디가 없었다면 폴 포트는 집권하지 않았을 것이고, 닉슨이 아니라 케네디가 집권했으면 갑자기 북베트남이 미국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서 남베트남의 안전을 보장했을까? 미군 파병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며 미국의 힘에 한계가 있다는 로버트 케네디의 말을 인용하면서도 저자는 다른 나라의 전략적 목표와 독자적인 의지의 존재에 대해서 무시하는 위험한 상상에 대해서, 그리고 냉전의 복잡한 지형에 대해서 함부로 재단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국내에서 다뤄지지 않은 시기와, 다뤄지지 않은 인물에 대한 매우 드물게 자세한 책이며, 그 상세함과 정보의 희소성에 있어서 매우 읽을만한 책임은 확실하다. 비록 위에서 그의 역할에 대해서 회의하는, 다소 냉소적인 글줄을 남기긴 했으나, 본서에 서술된 그의 모습에 대단히 매력적이며, 그 때문에 그의 죽음에 상당히 아쉬움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60년대 미국 사회상, 그리고 로버트 케네디란 개인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일독을 권한다.

 

참고문헌

김봉중, 닉슨의 베트남 정책과 닉슨독트린, 미국사연구 31 (2010.5)

김봉중, 냉전, 베트남, 그리고 역사적 기억: 로버트 맥나매라와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 미국사연구 12 (2000.11)

이혜정, 미국의 베트남 전쟁, 한국정치외교사논총 27(2) (2006.2)

장준갑, 케네디의 베트남 정책 ‚냉전 승리를 위한 색다른 방식, 미국사연구 32 (2010.11)

장준갑, 케네디의 현실주의 베트남 정책 거부 ‚냉전외교의 한계-, 세계 역사와 문화 연구 51(2019.6)

정일준, 지엠 정권과 미국의 동맹- 상이한 국가건설 전망과 제한적 협력관계, 1954-1963, 사회와역사 108 (2015.12)

Richard Layman, American Decades: 1960~1969(Detroit: Gale Research Inc,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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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군벌 전쟁 - 현대 중국을 연 군웅의 천하 쟁탈전 1895~1930
권성욱 지음 / 미지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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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 청나라 호북성 무창에서 터진 총성으로 300년간 지속되었던 중국 역사상 마지막 제국인 청나라가 무너졌다.(일부 호사가들은 원세개의 중화제국과 일본의 괴뢰 만주국을 진짜 마지막으로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필자는 그렇게까지 관대하진 않다) 1912, 60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석권했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어떠한 자각도 없이 퇴위했고 중국 역사상 첫 번째 공화국이 중화민국이 세워졌다. 하지만 중화민국의 운명은 파란만장했다. 어떤 사람들은 영화 <패왕별희>의 후반부 장면을 기억할지 모른다. 공산군에 포위된 북평시에서 쌀을 실은 트럭에 폭도들이 몰려오고 병사들이 폭도들을 몽둥이로 쳐서 내쫓는다. 그걸 보고 있던 만주족 출신 극장 주인 나곤은 좋든 싫든 우리 만주족은 300년간 대륙을 지배했는데, 민국은 금방 망해버리는군요. 우린 이제 (공산당의) 새 돈 샐 일만 남았습니다.”라고 비웃는다. 1949, 중화민국 총통 장개석은 대만으로 퇴각했다. 중화민국의 이름은 사람들에게 부정부패, 무능, 그리고 무엇보다도 군벌할거의 이미지로 남았다.


이러한 평가들이 공정한가의 문제를 본글에서 다루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은 그보다는 군벌들이 누구였는가에 대해서 다루고자 한다. 군벌(軍閥), 영어로는 Warlord라고 하는 이들은 민국 초기 각 지방에서 할거하며 작게는 도적떼 수준의 무리를, 크게는 몇 개의 성을 지배했으며 중화민국의 국가원수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중화민국 역대 대총통 중 원세개, 여원홍, 풍국장, 조곤 등이 모두 군벌이었으며 문인인 서세창 역시 북양군벌의 일원이었다. 오로지 초대 임시대총통 손문만이 군벌과 연고가 없었다.(물론 그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서남군벌을 이용했다는 것은 차치하자) 임시 집정 단기서, 대원수 장작림 역시 모두 군벌이었다.


군벌이라는 용어는 과거 당나라의 혼란을 표현하기 위해서 신당서에서 처음 사용하였던 용어였다. 과거 역사 용어였던 군벌은 민국 초 중앙과 지방의 군웅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다시 부활하였으나 그 계기는 역사서가 아니라 옆나라 일본의 용어인 군바츠를 들여온 것이었다. 군바츠란 용어는 중국의 좌익 작가들의 손으로 수입되었으며, 국민당과 공산당이 자신들을 제외한 군사실력자들을 비난하기 위해서 사용하였다. 심지어 군벌들도 서로를 군벌이라고 비난했으며 자신은 군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19221차 직봉전쟁이 발발하였을 때 오패부와 장작림은 모두 서로를 군벌이라고 비난하였는데, 이것이 중국 사회에서 군벌이라는 용어가 공개적으로 사용된 첫 번째 사례였다. 즉 군벌은 일반명사가 아니라 멸칭인 것이다. 신해혁명 이후 2번째 혁명이었던 국민혁명을 진행했던 중국 국민당도, 다시 공산혁명을 일으킨 중국 공산당도 군벌들을 제국주의 주구, 민생 파괴자로 보고 우선적인 타도 대상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오명에 얼룩진 군벌들은 빠르게 잡으면 1912년부터, 늦게 잡아도 원세개가 죽은 1916년부터 이 군벌들은 중화민국의 법통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으며 그 뒤로도 한동안 영향력을 행사하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일반적으로 군벌시대의 종말은 1928, 장개석의 북벌이 완료되는 시점으로 잡고 있으며 윌버(Wilbur), 제석생 등이 이러한 주장을 견지한다. 하지만 많은 군벌들은 단순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국민당에 항복하면서 명맥을 이어나갔고 그들의 군벌적 습성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이 때문에 카프(Kapp)와 같은 학자들은 심지어 남경 국민정부는 군벌시대의 종식이 아니라 오히려 군사화와 분열이 더 가속화된 시기에 불과하다고 보며, 공산당은 당연히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고 나서야 군벌시대가 끝났다고 주장했다.


군벌들에 대한 평가는 중국, 대만, 서구를 가리지 않고 모두 가혹했다. 중국에서는 혁명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당연히 국민당을 포함해서 군벌들을 주권과 이익을 외국에 팔아먹은 매국노들이며, 민중을 도탄에 빠뜨린 세력으로 보고 맹목적인 비난만 퍼부었다. 대만에서도 군벌들의 범주에 국민당을 제외했을 뿐, 군벌들을 국민당이 당연히 타도했어야 할 악의 세력으로 맹비난하였다. 이는 국공내전의 패배 이후 국민당 체제의 정통성을 강화하고, 대륙반공의 열정을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서구에서도 군벌들은 거대한 불안정 외에 어떠한 것도 창출하지 못했으며 민심이 북양정부를 버리게 만든 주범이라고 평가하였다. 하지만 1976년 모택동이 사망하고 문화대혁명이 종식되면서 중국의 연구방향이 바뀌기 시작했다. 중국에서는 군벌들의 봉건매판성을 비판하면서도 한때 중국의 국정운영 주체로서 기능했던 이들의 실체를 인정하고 이들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시작하여 이들의 공적에 대해서도 재평가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러한 경향에는 일본과 민주화된 대만 역시 영향을 받았으며, 서구에서도 90년대 이후 군벌 통치가 중국 사회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에 대한 재평가가 상당히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물론 군벌 통치의 결산에 대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중국인들이 공유하고 있던 위기감을 충족하는데 실패했으며, 내전으로 국고를 탕진하고 중국의 국제적 지위를 실추시켰으며 북양정부의 정통성이라는 정치적 자산을 소모하여 결국 중국의 지식인과 민중이 국민당과 공산당이라는 과격한 대안을 지지하게 만드는데 결정적인 일조를 하였다.


하지만 이들이 실패하였다는 것이, 이들이 무능하고 부패하고 사악하고 욕심 많은 인간 쓰레기들이었다는 소리로 직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중화민국에서 명멸해간 군벌만 1300여명에 달하며 이들의 성장배경, 교육환경, 경력, 성격 역시 천차만별이다. 중국 현대사의 전문가 가와시마 신이 지적하듯이, 군벌들도 중국의 발전에 무관심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상당히 높은 애국심이 있었고, 저명한 군벌연구가 진지양 교수가 지적하듯이, 이들이 외세의 지원을 받아다고 한들 이것이 매국적 외세의 주구라는 소리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예컨대, 호북독군 왕점원은 5.4운동의 소식을 듣고 국가가 나약하니 학생들이 나선 것이라고 오히려 대견하게 여기며 칭찬했다. 일본의 주구로 비난받은 장작림도 만주의 일본 자본 진출을 억제하려고 했고 다나카 내각의 산동출병에 항의했으며, 권력에서 축출된 단기서는 일본의 도움이 가장 절실하였을 순간에 화북 괴뢰정권의 수장을 시켜주겠다는 일본의 유혹을 단호히 거부하고 옛 동료들에게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맞설 것을 단호히 통전했다. 이렇듯 군벌의 성격은 복합적이고 한두마디로 간단히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군벌들이 마주하였던 근대로부터 생존해야 한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은 구한말과 식민지, 그리고 가난한 건국 초기를 경험하였던 우리나라 역시 한때 공유하였던 것으로 군벌들은 우리의 입장에서도 유리된 우스꽝스러운 에고이스트들이 아니다. 이들에 대해서 우리는 좀 더 진지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국내에 군벌에 대한 서적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비록 개개인의 군벌과 그 정책 일부 연구는 존재하지만 일반인의 입장에서 논문의 접근성은 매우 좋지 못하다. 송한용 교수의 東北軍閥日本(서울: 서도문화사, 2002), 강명희 교수의 近現代 中國의 국가건설과 제3의 길 : 非資本主義의 이론과 실천(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3)과 같이 탁월한 연구서도 있으나, 역시 일반인 입장에서는 읽기 쉽지 않은 어려운 연구서이며 판매량이 많지 않아 예전에 절판되었기 때문에 중고장터나 도서관에 가서 봐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군벌(서울: 도서출판삼화, 2018)의 저자 이건일 교수는 국내에 군벌 관련 저서가 부족한 데에 놀랐다는 소회를 밝힌 바가 있다. 즉 일반인들이 중국 군벌들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 수단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권성욱 씨의 중국 군벌 전쟁: 현대 중국을 연 군웅의 천하 쟁탈전 1895~1930은 마치 가뭄 속의 단비와 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중일전쟁: , 사무라이를 꺾다 1928~1945(서울: 미지북스, 2015)의 출판으로 혹자는 전격전의 전설급의 충격과 영향력을 역덕계에 주었다고 평가하는 그는 이제는 중일전쟁의 프리퀄이라고 할 수 있는 군벌 시대로 돌아왔다. 중국 군벌 전쟁은 제목과 달리, 사실상 청나라 쇠락사와 북양정부 흥망사를 합친 것과 같은 풍부한 구성을 자랑한다. 이 책은 크게 청나라의 쇠락을 다룬 1, 북양정부의 군벌전쟁을 다룬 2,3, 북벌과 반장전쟁을 다룬 4,5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마치 군벌시대의 개막과 종식이 언제까지인지에 대한 학술적 논쟁의 절충과도 같은 구성이다. 부록과 참고문헌, 색인 등을 제외하고 1300쪽에 가까운 방대한 분량이지만 풍부한 사진자료와 술술 읽히는 문체로 이 책을 완독하는 것은 전혀 부담되지 않는다. 단순히 중국 군벌 뿐만 아니라 청의 멸망, 북양정부사와 국민혁명사에 입문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좋은 이정표가 나타난 것이다. 또한, 작가의 개인적 관심사 덕분에 곁들여진 풍부한 무기 관련 지식 역시 관련 호사가들에겐 매우 귀중한 자료들이다.


국내에 매우 드물었던 군벌 관련 책이 이 책의 첫 번째 가치라면, 그 다음은 제목에 충실한 내용일 것이다. 위에도 언급하였지만, 군벌에 대한 책이 국내에 전무하였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는 허우이제의 원세개: 중국의 마지막 황제(서울: 지호, 2003), 쉬처의 만주군벌 장작림(서울: 아지랑이, 2011) 등 군벌 개인의 일대기에 관한 것이나, 정치외교사적 관점 안에서의 군벌을 분석하는 것이었지 전쟁사 측면에서 다룬 책은 사실상 없거나 매우 단편적으로 언급한 수준에 그쳤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말 그대로 전술, 전략, 그리고 무기의 활용이라는 일반인들의 입장에서 제일 흥미롭지만 기존에 찾을 수 없던 부분에 충실하여 독자들을 만족시킨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라고 생각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참고문헌 부분의 처리가 다소 부실하다는 점이다. 참고문헌으로 기재된 논문들의 경우, 학술지명이 삭제되어 있으며 송한용 교수가 번역한 중일외교사연구의 경우, 저자가 카츠미 우스이(臼井勝美)지만 역자인 송한용 교수가 저자로 잘못 적혀 있다. 이러한 부분이 2쇄에서 바로 잡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2쇄가 나오기 위해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들에게 중국 군벌 전쟁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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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 공산주의 붕괴와 소련 해체의 결정적 순간들 마이클 돕스의 냉전 3부작
마이클 돕스 지음, 허승철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20년 3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본 리뷰는 모던아카이브 출판사가 역개루 카페에 의뢰한 서평 이벤트에 따라 작성된 것임을 밝힙니다.


1970년대사회주의의 종주국 소련의 지위는 굳건해 보였다소련의 지도자인 브레즈네프는 볼코고노프 장군의 표현에 따르면기초적인 문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만블라디슬라프 주보크의 평가처럼 매력이라는 강력한 정치적 자산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그의 손에는 수백만 대군과 수만 발의 핵무기라는 막강한 무력이 있었다소련에서 나는 방대한 자원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권력도 있었다그 돈으로 소련은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였고세계 각국에 수십만 명의 군사기술정치 고문을 파견하고 제국에 기생하는 수많은 세력의 보모 노릇을 할 수 있었다제국의 질서에 반대하려는 별종들은 신속하게 제거되었다처음에는 헝가리의 너지 임레다음에는 체코슬로바키아의 둡체크였다티토와 모택동처럼 소련의 강철의 손아귀를 벗어난 지도자들도 있었지만이들의 존재가 제국의 질서를 크게 뒤흔들지는 못했다적어도 스탈린이 3천만 명의 피를 대가로 지불해서 얻은 힘의 경계선에서 소련은 단 한 번도 물러서지 않았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광활한 영토의 지배자는 표면상으로조차 더 이상 멀쩡해 보이지 않았다노쇠한 서기장의 몸은 허물어지고 정신은 퇴행했다그보다 조금 더 젊을 뿐인 정치국원들이 나라를 통치했다그들이 통치하는 제국도 마찬가지였다레닌이 설계하고 스탈린이 주조한 거대한 기계는 녹슬고 있었다견제받지 않고 검증받지 않고 물음 받지 않는 현실 사회주의 체제는 일말의 효율성과 기강이라도 유지하던 공포정치는 포기했으되비효율적인 체제는 수정하지 않았다드라마 체르노빌이 강조하듯체면에 집착하는 체제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낭비를 일상적으로 유지했고그러면서도 인민들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하지 못했다정치적으로경제적으로 만족하지 못한 인민들의 불만을 누적되었고혁명은 후퇴하지 않는다는 완고한 명분에 집착하는 지도자들은 체제의 붕괴를 막을 수 있던 소중한 순간들을 자신들의 콧대를 높이는 데 사용했다.

 

어떤 것이 봇물을 터트린 첫 구멍이라고 부르기는 힘들 것이다누군가는 옐친이나 8월 쿠데타를 원인으로 지목할 것이다혹자는 고르바초프를 탓할 것이고어떤 이는 스탈린이 레닌을 배신했다고 할 것이며누군가는 레닌이 혁명에 성공했던 그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돕스의 책은 삐걱대는 제국을 보여준 후아프가니스탄 침공에서 시작한다혁명은 무오류고따라서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한번 사회주의 체제가 생겼던 국가는 계속 소련의 울타리 안에 있어야 했다늘 그랬듯이 정치논리가 다른 모든 것을 우선했고정치국은 군부의 반대를 무시하고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결과적으로 아프가니스탄 민중을이슬람 세계 전체를사실상 전 세계를 적으로 만들었다.

 

공산주의 체제는 종주국에서만 흔들리지 않았다소련은 동유럽 전체에 자신들의 이념뿐만 아니라 고집스러운 비효율성도 선물했다체제의 오류를 자체적으로 수정할 권한은 주지 않았다폴란드에서 바웬사가 일어섰을 때 소련은 싸늘한 경고를 보냈다하지만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증명되었듯이비록 소련군의 손으로 이식된 공산주의 정권이라 하더라도 소련에 마냥 순종적이진 않았다모택동이 언젠가 말했듯이소련의 방귀조차 향기롭진 않았던 것이다군의 손으로 공산주의를 유지하라는 소련의 명령에 폴란드는 나름 강력하게 저항했다비록 공산주의가 바로 물러나진 않았지만바르샤바는 부다페스트와 프라하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브레즈네프가 죽었다스탈린의 죽음에 울부짖던(물론 서슬 퍼런 분위기 속에서도 그의 죽음을 비웃는 사람들도 많았었다인민들은 냉소적으로 반응했다그 뒤를 이어 안드로포프가 집권했다, KGB 의장 출신으로 소련의 모든 치부를 낱낱이 알고 있던 그는 사회의 나사를 다시 조이고 좀 더 거시적인 해결법을 찾으려 했다하지만 중환자였던 그는 곧 죽었다그 뒤를 이어 보수적인 체르넨코가 집권했지만안드로포프 보다 약간 더 긴 집권 기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인상도 남기지 못하고 곧 죽었다그 뒤를 이어 유명한 고르바초프가 집권했다아마추어 배우 출신으로 농업문제를 전담해왔던 그는 소련 체제를 손보려는 열정과 의지로 불타는 인물이었다그의 손으로 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되었다.

 

신장투석과 신비주의에 물든 전임자들과 달리 고르바초프는 정력적이고 개방적인 인물이었다그는 초기에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데 성공했다하지만 그가 물려받은 제국은돕스가 첫 180여 쪽에 걸쳐 강조했듯이 체면과 정치논리가 망쳐놓은 녹슬고 침몰해가는 배였다그의 전임자들이 게걸스럽게 파서 팔아치운 석유는 동이 나고 있었고국채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아프간은 여전히 소련 젊은이들의 피와 군비를 빨아들였다재앙적인 체르노빌도 고르바초프의 집권 초기에 터진 대참사였다고르바초프는 이를 바로 잡으려 했다아프간에서 병력을 물렸고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를 시작했다하지만 그는 서방의 인기를 어느 정도 사는데는 성공했지만서방과의 대결을 없던 일로 하진 못했다나라를 바로 잡으려는 그의 열정은 진심이었으나그의 금주 정책이 참혹하게 실패했듯이 그는 방법을 잘못 정했다물질적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그는 정치적 자유화를 먼저 선택했지만결과적으로 급진파와 보수파 그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고르바초프의 의도대로 흘러가진 않았지만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서기장이 대통령을 대체했고 사하로프가 대의원이 되었다캅카스와 발트에서는 소수민족들이 소련으로부터의 독립을 외쳤다당도 힘을 잃었다동독에선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폴란드에선 바웬사가 돌아왔고체코슬로바키아헝가리불가리아가 뒤를 이었다카르파티아 산맥의 천재로 자칭한 차우셰스쿠는 악명 높은 아내 엘레나와 함께 총살당했다유고슬라비아에서는 민족들 간의 증오가 폭발해서 피바다로 이어졌다고르바초프는 큰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 사이에서도당 내부에서도 차차 고립되어 갔다동독에서의 철수통일 독일의 나토 가입리투아니아 사태를 목도한 당 보수파들은 소련을 개편하려는 고르바초프의 노력에 더 이상 참지 않았다. 1991년 8소련의 최초이자 마지막 쿠데타가 일어났다그리고 실패했고 소련의 목숨도 그렇게 끝이 났다옐친이 그 시체 위에서 월계관을 썼다.

 

마이클 돕스는 600여쪽에 달하는 방대한 책에서 공산주의 체제의 마지막 20년을 조명한다전 세계에서 수억명이 신봉하고 따랐던 사회주의 혁명과 체제의 몰락과 실패한 최후의 발버둥에 대해 돕스는 자기 자신이 기자 생활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목격한 흥미로운 장면들에 대한 증언과 해금된 기밀 자료들다양한 증언록을 통해서 매우 어렵지 않으면서도 깊게 접근한다그리고 공산주의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였던 고르바초프가 공산주의의 관에 못을 박게 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전체적으로 매우 읽을만한 책이지만결점도 분명히 존재한다공산주의가 몰락으로 치닫는 과정과 논리에 대해서 그는 매우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하지만 그것을 살리려는 노력이 어떻게 파국에 치달았는지에 대해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급하게 지나가느라 설명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준다정열적인 지도자 고르바초프가 옐친과 사하로프에게 밀려나는 데는 많은 페이지가 할애되지 않았다기본적으로 학술서가 아니라 논픽션이라는 한계를 감안한다면 납득되지 않는 수준은 아니지만몸통이 빈약하다는 느낌은 아쉽다번역은 전체적으로 매우 성실하다하지만 군데군데 인명과 지명의 심각한 오역들이 보인다는 점에서 옥에 티라고 하겠다하지만 공산주의의 최후에 대해서 이 정도로 방대하고 자세하게 다룬 책도 국내에 많지 않으며몇몇 주제는 최초로 다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냉전의 마지막 역사에 대해 읽고 싶은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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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히틀러 결정판 1~2 세트 - 전2권 아돌프 히틀러 결정판
존 톨랜드 지음, 민국홍 옮김 / 페이퍼로드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 본 서평은 페이퍼로드 출판사가 역개루 카페에 의뢰한 서평 이벤트에 따라 작성된 것임을 밝힙니다.


아돌프 히틀러는 악인의 대명사이다. 그는 단순히 독재자로 묘사되지 않고 순수악, 인간의 탈을 쓴 악마 그 자체로 여겨진다. 자본주의 세계와 사회주의 세계가 입을 모아서 욕하고 힘을 합쳐서 몰락시켰던 독일 민족의 총통이 벙커에서 스스로 두개골에 총알을 박아 넣고 한줌 재로 사라진지 8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악명은 여전히 만방의 사람들에게 심각한 욕설로 사용되고 있으며 호사가들은 히틀러의 남은 족적을 추적하며 그가 사실 죽지 않았거나 여자였다는 황당무계한 음모론까지 섭렵하고 있다. 그가 남긴 유품조차 뜨거운 논란에 휩싸이며 악마가 남긴 흔적을 소각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는 등 21세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여전히 히틀러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인물들은 당연히 논저와 매체의 소재가 된다. 나치 독일의 관제영화와 선전물을 제외하고 전후에도 히틀러를 다룬 수많은 작품들이 세계 각국에서 쏟아졌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 등 히틀러의 악행을 고발하거나 그 악행 속에서 의인의 분투를 다룬 작품들은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수가 많다. 히틀러가 구축한 파괴적인 세계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물론 이 거대한 아포칼립스적인 세계를 만들었던 인간 히틀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호기심도 뜨겁다. 인간 히틀러를 다룬 매체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올리버 히르슈비켈 감독의 영화 <몰락>에서 브루노 간츠가 맡았던 히틀러일 것이나 히틀러에 대해 광인, 악인의 이미지만을 가지고 있던 한국에서는 인간 히틀러에 대해서 상당히 놀라워하는 반응이 많았다. 우리들의 머릿속의 히틀러는 로버트 칼라일이 분했던 광기와 증오로 똘똘 뭉친 정신병자 히틀러일 것이다.


과연 히틀러는 정말 어떤 인물이었을까? 히틀러를 다룬 연구들은 수도 없이 쏟아졌다. 국내에 들어온 책들을 가볍게 소개하자면 라파엘 젤리히만의 히틀러, 요아힘 페스트의 히틀러, 그리고 이언 커쇼의 히틀러이다. 이중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추천할만한 것은 히틀러 연구의 결정판이라 불리는 커쇼의 평전이며 학술적인 평가도 대단히 높은 책이다. 솔직하게 밝히자면 현재 히틀러에 대해서 한국에서 공부를 하기 위해서 외국의 연구가 아니라 국내의 서적 중에서 고른다며 이미 충분한 자료가 들어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페이퍼포드에서 퓰리처상을 수상 받은 작가 존 톨랜드의 히틀러 전기를 정발하였다. 제일 먼저 드는 궁금증은 이 미국인 작가는 히틀러를 어떻게 보았으며, 또 이 책은 다른 평전에 비해서 어떤 가치가 있느냐는 것이다.


톨랜드의 히틀러는 히틀러의 발자국 하나하나를 되살리려고 한 작품이다. 작가는 서문에서 자신이 주장하고자 한 특별한 이론이 없다고 밝히며 자신이 발로 뛰며 수집한 수많은 자료와 인터뷰를 통해서 히틀러의 행적을 복구하고 있다. 첫 번째 세계대전에서 패망하고 좌절한 히틀러로 시작한 톨랜드의 전기는 히틀러의 일가와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 매우 상세한 부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시클그루버 가문의 사생아였던 엄격한 공무원 알로이스 히틀러와 그의 자식들, 미술가가 되고 싶었던 골목대장 히틀러의 유년시절에서 작가는 유려한 필력을 뽐내며 만약 히틀러가 시클그루버라는 성을 유지했다면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하일 시클그루버를 외쳤을 것이라는 단순하지만 웃음이 나오는 가정을 던져본다.


히틀러의 어릴 적 절친한 친구였던 아우구스트 쿠비체크, 가족과 지인들,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의 증언과 히틀러 본인의 기술 등을 종합하여 톨랜드는 히틀러의 행적을 하나하나 되살린다. 빈에서 좌절을 겪은 실패한 미술가는 독일로 흘러 들어갔고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여한다. 톨랜드는 히틀러가 전선으로 가는 날 무엇을 먹었는지, 그가 처음에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정부로부터 병역기피 혐의로 기소되었을 때에 어떤 탄원서를 썼는지까지 모두 제시하는 등 작가의 두드러진 열정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이 두드러진 열정은 작가의 본업이 역사학자가 아니란 점에서 일부 불협화음을 낸다. 커쇼의 히틀러 평전과 교차검증해서 읽어본다면 잘 알 수 있는 내용이겠지만 톨랜드는 히틀러가 훗날 자신을 띄우기 위해 했던 거짓말들, 가령 그가 빈에 있을 때 사회민주당원들과 주먹다짐을 했다거나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여하기 위해 비텔스바흐 왕가에 직접 탄원했다거나 하는 내용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 허나 이는 지금 와서는 신빙성을 잃은 주장들이다. 또한 히틀러의 명성을 이용하여 자신을 띄우려고 했던 오스트리아의 극우 선동가들의 자화자찬, 그리고 나의 투쟁을 고스란히 옮겨 쓴 것에 불과한 일부 지인들의 회고 역시 톨랜드는 모두 옮겨 쓰고 말았다. 이는 작가의 성실성이 빚은 오류이나 7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 전문적 역사학자가 아닌 작가의 본업을 생각하면 아쉽지만 이해가 안 될 부분은 아니다.


세계대전에서 패하고 절망한 히틀러는 독일 노동자당이라는 한미한 정당에 들어가 신들린 듯한 선동가로서의 자질을 유난 없이 발휘하고 맥주홀 폭동이라는 무모하지만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한차례 실패를 통해 도약하여 마침내 총통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 뒤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고 끝내 총통 벙커에서 머리에 총알을 박고 죽는다. 톨랜드가 묘사한 히틀러는 입체적이기 그지없다. 그는 보수적이고 성을 혐오했지만 아이들을 좋아했으며 성실하고 믿을 수 있는 괴짜였다. 바이에른의 선동가 시절에도 그는 입에 게거품을 무는 미치광이는 아니었다. 일부 의견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한프슈탱글의 말에도 히틀러는 의견의 차이는 조율할 수 있다고 상냥하게 말한다. 하지만 그는 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으며 한 민족의 생존권을 박탈하여 산업적인 절차로 멸절하려 한 학살자이다. 그런 사람에겐 인간성이 있어선 안될까? 단순한 우화와 판에 박힌 선전에 익숙한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 인간 히틀러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인물이다. 하지만 가장 거대한 악을 자행한 인물을 그저 악마화하는 것은 후세에게 교훈을 주기엔 적합하지 못한다. 우린 그저 악마를 구마하기 위한 기도문을 외우면 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뿐이니까.


결론적으로 톨랜드의 히틀러 전기는 몇 가지 분명한 결점이 있으나 히틀러의 세세한 행보까지 알기 위해서 입문용으로, 그리고 다른 히틀러 평전들과 교차검증해서 정보를 얻기에 매우 읽을 만한 책이다. 나치 독일과 히틀러에 대해서 알고 싶었지만 아직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들, 기존에 있는 학술서들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입문을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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