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산당의 스파이 전쟁
홍윤표 지음 / 렛츠북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홍윤표씨의 책을 읽게 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군복무 시절 우연히 저자의 전작이었던 <중국, 그들이 기억하는 100년의 역사>를 읽었던 적이 있다. 이번에 나온 <중국공산당의 스파이 전쟁>은 그 주제의 흥미성 때문에 신청하였지 같은 작가의 저작이라는 점은 알지 못하고 신청하였다가 책을 수령한 후 저자 소개란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사실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전작에서 대단한 인상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실망했다. 저자는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대만 국립정치대학 동아연구소 석사 출신으로 중국 문제의 전공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의 석사학위 논문은 중국공산당의 정치엘리트에 국한된 것으로, 그 때문인지 신해혁명 이후 오늘날에 이르는 100년에 달하는 중국 현대사를 모두 깊이 있게 다루는 데에는 상당한 한계를 보였다. 그 문제점을 자세히 서술하는 것은 본고가 해당 책의 서평이 아닌 이상 부적절한 것이 되겠지만, 간단한 것만을 소개하자면 중국 현대사를 이해하는데 있어 영미 학계의 핵심적 연구들은 국내에 번역된 일부 책을 제외하곤 하나도 인용하지 않았으며, 화폐전쟁과 같이 신빙성이 부족한 음모론 저작들을 인용하기도 하였다. 또한, 바이두 백과를 비롯한 중국 사이트를 출처로 기재하거나 아예 내용 기술에 있어서 중국 사이트에서 회자되는 서술하는 여러번 있었다. 가뜩이나 그다지 많지 않은(심각할 정도로 많지 않다) 참고문헌 중 상당수가 이런 신뢰할 수 없는 출처로 채워지는 것은 ‘중국이 기억하는’이라는 제목과 상업성을 위한 가벼운 문체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책의 내용에 상당한 의구심을 가지게 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러나 저자의 진가가 발휘되는 대목 역시 분명히 존재하였다. 대만 유학파인 저자는 당연히 대륙과 대만의 여러 중국어 자료들을 인용하는 것에 능숙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의 신뢰할만한 최신 연구성과들을 인용하여 기존 통설에 대해 학술적으로 반박하는 모습은 대단히 인상적이었으며 이것 하나만으로도 홍윤표씨의 책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


이번 저작 <중국공산당의 스파이 전쟁>은 전작의 문제점과 장점을 모두 계승하였다. 이 책은 크게 1927년부터 1949년 사이 국공양당의 첩보전, 민국시기 첩보전 무대로서의 상해의 도시사, 스파이 열전, 3부분으로 구성된다. 저자의 참고문헌 구성은 여전히 대부분 중국어 자료들로 이루어져 있으나 전작에 비해서 상당히 다채로워졌다. 이 분야에 있어 핵심적인 연구 저작인 프레더릭 웨이크먼 주니어(Frederic Wakeman Jr.)의 대립 평전(Spymaster: Dai Li and the Chinese Secret Servic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3)의 중국 번역본이 눈에 띠며, 피터 매티스(Peter Mattis)와 매튜 브라질(Mattew Brazil)의 중국 공산주의 첩보(Chinese Communist Espionage: An Intelligence Primer, Naval Institute Press, 2019)도 참고문헌에 들어갔다. 화폐전쟁이 여전히 참고문헌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점, 저자가 주목하는 인물인 주은래에 관한 주요 연구인 바르바라 바르누앙(Barbara Bamouin)과 위창건(Yu Changgen)의 주은래 평전(Zhou Enlai: A Political Life, The Chinese University Press, 2006), 고문겸(高文謙, Gao Wenqian)의 주은래 평전(ZHOU ENLAI: The Last Perfect Revolutionary, Public Affairs, 2007) 등이나 국공내전에 대한 주요 연구결과인 다이애나 래리(Diana Lary)의 저작(China’s Civil War: A Social History, 1945~1949,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5)을 참고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점이다. 국내의 중화민국 경제사의 걸출한 연구자인 김지환 교수의 논저들이 저자가 국공내전기 경제정책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참고되지 않은 것 또한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다.


그렇다면 내용은 어떨까? 엄격히 말해서 각 부분의 완성도는 조금 중구난방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높은 평가를 주고 싶었던 부분은 1부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국공내전 폭발기의 첩보전사와 상해 첩보전사였다. 이 부분은 기존에 필자도 알지 못하였던 흥미로운 자료들을 바탕으로 기존의 <4대가족론>에 대한 비판 성과 소개, 주은래가 주도한 국공내전기의 선전선동 활동, 국민정부 내부에 깊숙이 침투했던 중국 공산당의 스파이들의 실태에 대해서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중에서 ‘첩보전’보다는 차라리 포괄적인 ‘국공내전사’나 ‘언론전’에 해당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은 부분도 없지는 않았으나 아직까지 국내 저작 중 이 정도로 자세하게 다룬 저작을 잘 보지 못했기에 이는 반가운 부분이었다. 뒤의 스파이 열전에서 배경 설명 역시 필자의 기대 외로 상당히 괜찮은 부분이었다. 가령 3장 <의도적인 경제 정책의 실패, 장개석에게 쏟아진 저주: 기조정>에 저자는 1935년 법폐개혁의 의미와 결과, 그리고 이의 유지를 위한 국민정부의 노력에 대해서 상당히 자세하고도 정확한 기술을 하고 있다. 스파이 열전의 특징상, 특정 스파이가 나라 전체를 쥐락펴락했다고 소설처럼 쓸법도 하지만(부드러운 문체를 시도하겠다고 서문에서 양해를 구하고 있음에도) 저자는 여러 스파이들의 전해지는 활약상에 대해 현재 중국의 통설, 국민당 관계자들의 회고, 영미권 연구자들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이를 대조하고 학술적으로 냉정한 접근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이런 중국 현대사의 ‘열전물’ 중에서 필자가 보아온 것 중에서는 독보적인 완성도를 보인다. 각 사건이나 인물에 관련된 중국에서 제작된 영상매체를 소개하는 것 역시 영화에 대한 관심이 많은 필자에게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부분이었다.


하지만 대조적으로 1부의 시작은 저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조악하기까지 한 구성을 보인다. 사건 묘사, 인물 소개, 역사적 배경 설명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저마다의 색채를 주장하면서 뒤엉키고 있다. 또한, ‘중국공산당이 북벌 막바지에 중산함 사건을 일으켰다’(37쪽, 중산함 사건은 북벌이 일어나기 전에 일어난 사건이며 그 주체는 당연히 공산당이 아니라 장개석이다. 원인 제공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 책에서의 서술은 기초 사실 관계 자체가 맞지 않다. 저자의 전작에 중산함 사건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더욱 황당한 오류이다.), ‘남의사가 1938년 한복구, 1940년 석우삼을 암살했다’(38쪽, 두 사람 모두 정식 군사재판을 거쳐 처형된 인물이지 암살된 인물들이 아니며 특히 한복구의 처형은 중일전쟁 초기 전쟁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등 기초적 사실관계가 맞지 않는 오류들도 확인되며 장개석의 통치기반을 단순히 군에 의존하였다고 서술하는 등 구태의연한 서술들이나(저자가 그렇다고 해서 기존 혁명사관처럼 장개석을 군벌의 일원으로 격하하는 것에 동참하지는 않지만 장개석이 당의 권위를 확대하고 당을 통해서 중국을 통제하려 기울인 노력을 감안한다면 이는 너무도 단순한 표현이다. 래리는 이미 1980년의 논문(Diana Lary, 「Warlord Studies」 『Modern China』 6(4) (1980.10))에서 이러한 점을 지적한 바가 있다.) 도입부와 후반부의 내용을 단순 비교 논평하자면, 흔히 말하는 ‘용두사미’가 아니라 ‘사두용미’라는 상당히 기이한 결과가 나온다.


1부 초반의 문제점은 이 책 전체의 문제점의 요약과 같다고 생각한다. 이 결함이 있는 도입부에서도 저자는 여러 신뢰있는 문헌을 인용하여 가치 있는 자료들을 제공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구성이 저자가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어떠한 자료를 제공하고 싶은 것인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파편적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이 책을 쓰는데 대단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이 분야에 대해서 심도 있는 내공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중국공산당의 스파이 전쟁>이라는 제목에 충실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구성을 가지고 있다. 1927년부터 1949년까지 국공의 첩보전 발생의 배경, 발발, 양 진영의 구체적 전략과 진행, 결과에 대해서 순차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설명하기보다는 흥미위주의 내용을 중심으로 파편적으로 설명하는데 치중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 저자가 설명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저자가 가장 비중을 할애한 부분은 스파이 열전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다시 말해서 자료 조사에 있어서는 괄목할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 내용물을 재구성하는데 있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가령 2부 <상해, 스파이들의 천국과 지옥>은 20여쪽 밖에 되지 않는 분량인데 단독 챕터로 분할해야 할 이유부터 납득이 되지 않으며 해당 내용을 분할하여 국공 첩보전의 시기별 배경에 각각 포함시켰으면 책의 완성도를 더욱 높였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여기에 출처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지엽적이라고 하기에는 힘든 사실 오류가 포함되어 있는 것 또한 문제점이다.


몇가지 신랄한 비판점을 남기긴 했으나, 이 책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이 책은 분명 필자로서는 담아낼 수 없었던 중요한 가치들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본 서평에서 지적한 단점을 유념하되, 장점을 더 기억하며 이 책에 대한 애정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중화민국사 원고를 완성시키지 못한 필자로서는 2권이나 책을 완성시킨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과업임을 잘 이해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은 중국 혁명 시대, 국공의 첩보전이라는 주제에서 국내에서 유일한 저작이며, 오랫동안 유일한 저작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공내전이라는 전체 주제로 확장한다 하더라도 독보적인 읽을거리임은 틀림없다. 중국 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애호가들에게는 일독을 권하며 저자에게는 더 훌륭한 차기작을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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