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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친절한 이슬람 역사 - 1400년 중동의 역사와 문화가 단숨에 이해되는
존 톨란 지음, 박효은 옮김 / 미래의창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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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친절한 이슬람 역사
저자
존 톨란
출판
미래의창
발매
2024.01.30.


※ 본 서평은 역개루 카페의 서평 이벤트에 따라 쓰여진 것임을 밝힙니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교세를 가진 종교 중 하나인 이슬람에 대해서 못 들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필자가 어릴 때까지만 해도 가장 생소한 종교 중 하나였으나 여러 호사가들의 지적처럼 이슬람교는 이전 왕조 시대부터 한국과도 인연이 있는 종교이며, 오늘날에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쉬이 접하는 종교이다. 그러나 이슬람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은 널을 뛰듯이, 그리고 매우 피상적으로 얕은 방식으로 오갔다는 것이 필자의 느낌이다. 과거에는 그저 '한손에는 칼, 한손에는 코란' 정도의 성질 급한 종교, 혹은 산유국에서 믿는 종교 정도로 여겼고 21세기 벽두 9.11 테러로 촉발된 테러와의 전쟁 이후에 불어닥친 수정주의는 이슬람을 과도하게 미화하였다. (하마스나 탈레반을 독립군 운운하는 무지몽매한 인간들도 이 시기에 많았다. 필자는 이것이 21세기 초반의 유물로 여겼으나 근래에도 있다는 사실에 통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근래에는 이슬람에 대한 과도한 혐오와 조롱이 다시 주를 이루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폭도들의 피상적이고 무지몽매한 인식과 별개로 이슬람은 달나라의 옥토끼들도 아니고 아쿠아맨이 심해궁정에서 다스리는 권속들도 아니다. 이슬람은 십억이 넘는 신자를 둔 거대 종교이고, 많은 이슬람 국가들은 한국의 주요 무역 거래국이며 사우디를 비롯하여 냉전 시기부터 우방에 가까운 역할을 수행한 국가들도 있다. 세계화가 진행되면 무슬림들은 우리의 이웃으로 자리잡았고, 과거에는 책에서나 볼 수 있던 이슬람 문화권의 음식들도 오늘날에는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필자도 터키, 모로코, 아랍에미리트, 중앙아시아의 다양한 음식을 즐기곤 한다. 입에 걸레를 물고 죽창을 휘둘러대다가 피로 익사하고 싶은 것이라면 모르되 (필자에겐 그런 더러운 취미는 없다) 인간답게 살려면 이미 우리 사회의 일원이 된 이들에 대해서 객관적이고 심도 있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러한 이해의 대상은 비단 무슬림 뿐만이 아님을 상기해둔다. 조선족, 중국인, 난민을 비롯한 민족문제에 이어서 젠더 이슈에 이르기까지 대화하고 이해해야 할 대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존 톨란의 '세상 친절한 이슬람 역사'는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선 저자가 박사학위를 소지한 전문가란 점에서 신뢰가 가며, 교육자의 경력도 풍부한 인물이다. 존 톨란의 책은 기본적으로 이슬람에 대해서 우호적인 시선을 깔고 가고 있으나, 필자가 앞에 언급한 하마스맘들과 같은 눈먼 옹호와는 결을 달리하며, 오늘날 비판받는 이슬람의 억압적 요소들이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진보적인 것이었음을 지적하는, 합리적이고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상세하고 다양한 문헌 연구는 이 합리적인 전개에 깊이를 더해준다.

책은 전반적으로 무함마드의 이슬람교 창시부터 21세기에 이르는 전반적인 이슬람의 역사에 대해서 다루고 있으며 원한다면 자신이 알고 싶은 특정한 부분을 집중해서 읽어도 괜찮은 선택일 것이다. 물론 이 책이 개론서에 가까운 만큼 심도있는 탐구는 학술서나 논문으로 진행해야겠지만 말이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흥미를 가졌던 부분은 중세 이슬람의 확장이 돈좌되면서 기독교 왕국들의 반격에 직면한 시기였는데, 시칠리아의 재점령 이후 무슬림 사회가 기독교 왕조의 지배 밑에서 어떻게 반응했는지, 이슬람 지식인들이 확장의 좌초를 어떻게 인식했는지에 대한 사료 소개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이 책은 기본적으로 이슬람사를 중심으로 이슬람에 대한 우호적인 시선을 깔고 가고 있는데 이를 염두에 두고 읽는다면 저자에게 '불리한 부분'은 대충 다루거나 피상적으로 다룬 부분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가령 십자군 전쟁과 20세기 이후의 이슬람사가 그렇다. 이 부분은 더 심도있는 연구자료들로 반드시 보완해서 읽을 것을 권한다) 그럼에도 저자의 노력으로 인한 사료 소개가 이러한 약점을 어느 정도 상쇄하며 특히 동남아시아 이슬람사를 비롯해서 다소 생소한 부분 및 국내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은 1920년대 와하비즘의 창시와 전파까지도 다룬 것은 큰 장점이다.

결론적으로 장단점이 뚜렷한 책이나 종합적으로 상당히 잘 쓴 책이라고 말하고 싶으며,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앞으로 이 책을 일부 인용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이슬람에 대해 관심이 있는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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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보는 동양사 만화라서 더 재밌는 역사 이야기 2
살라흐 앗 딘 지음, 압둘와헤구루 그림 / 부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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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역개루 카페의 서평이벤트에 따라 쓰여진 것임을 밝힙니다.

필자가 일전에 리뷰한 바가 있는 전쟁으로 보는 서양사의 후속작 '전쟁으로 보는 동양사'가 출간되었다. 이러한 드립으로 가득한 가벼운 만화에 대한 본인의 관점에 대해서는 저번 서평에서 충분히 밝힌 바가 있으며, 개인적 사정과 갑작스러운 와병으로 인해 필자의 상황이 매우 좋지 않은 관계로 본 서평은 다소 실용적인 관점에서 구성과 내용의 밀도를 중심적으로 논할 것임을 미리 밝힌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전세계적인 사례를 망라하는 거대연구, 한권으로 보는 XX 류의 주제에 대해서 다소 우려의 시각을 가지곤 한다. 이러한 비교연구 혹은 간략한 '총집편'과 같은 책들이 분명히 필요하지만 문제는 세부적인 내용에서의 정확성과 밀도가 보장될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가령 필자의 주전공인 북한학을 다루는 비교연구, 거대연구들에서는 북한 정보를 아주 얇게, 그것도 엉터리로 다루는 경우가 많아서 읽는 필자의 한숨을 자아낸다. 하물며 수천년에 달하는 '동양사'의 주요 전쟁을 한권에 담는 것은 책이 10만쪽 짜리라고 할지라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전쟁으로 읽는 중국사', '전쟁으로 읽는 일본사'로 좁힌다 하더라도 한권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결과적으로 이 책도 주로 몽골의 원정, 일본 전국시대, 중일-태평양전쟁에 집중하는데, 전쟁으로 보는 서양사 리뷰를 할때 밝힌 입장이지만 이럴 것이면 차라리 '만화로 보는 태평양전쟁'과 같은 좁은 주제로 가는 것이 "왜 이 전투는 넣고, 저건 넣지 않았느냐"라는 지엽적 비판을 피하기에 더 좋은 접근지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은 결과는 서양사를 읽었을때에 비해서 더욱 비판적이다. 아무래도 필자가 더 자세히 공부해본 분야를 매우 엉성하게 다룬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초한지와 같은 아시아의 고전 대서사시를 아주 얇고 짧게 다룬다는 선택지는 엄청난 무리수였다. 관련하여 만화, 드라마, 영화, 2차 창작 소설이 수없이 나온 초한지를 동네 바보들이 투닥거리는 수준으로 짧게 압축묘사한 것은 거부감까지 들었다.

2. 일부 전쟁, 전투에만 집중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내용의 밀도가 그럼에도 너무 낮으며, 어떤 전쟁을 설명할 때는 대충 원인과 전개만 훑으면서 어떤 전쟁은 갑자기 전투에 대한 (상대적으로) 자세한 묘사가 넣는 구성은 일과성이 없다. 이러한 점은 몽골 원정편에서 주로 드러난다.

3. 내용의 밀도가 서양사 시절보다 낮아진 느낌인데, 특히 중일-태평양전쟁의 묘사는 아주 심각할 정도로 대충이고 뒤떨어져있다. 이건 나무위키만 열심히 읽었어도 이 정도로 묘사하진 않았을 것인데 엉성한 밀도를 드립으로 때우려고 하니 단점이 두드러진다. (쓸데없는 시비를 피하고자 미리 말하자면 나무위키 중국 현대사 문서들은 거의 다 필자가 썼다)

다시 말해서, 필자의 생각으로 전작의 단점들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악화되었다. 단순히 '덕후 만화'이기 때문에, '한권으로 담기엔 지나치게 큰 주제이기 때문에'는 변명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처음부터 기획을 제대로 하고 자료조사를 충실히 하지 않는 이상 '재미'로도 '정보전달'로도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다소 엄격한 평가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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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하는 인류 - 인구의 대이동과 그들이 써내려간 역동의 세계사
샘 밀러 지음, 최정숙 옮김 / 미래의창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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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책은 역개루 카페와의 서평 이벤트로 쓰였음을 밝힙니다.


우리는 모두 이주민의 후손이었다.”

 

<이주하는 인류>는 이 반박할 수 없는 담대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아프리카에서 최초의 인류가 탄생한 이후 인류는 전 세계로 진출해 나갔고, 모든 인류는 거슬러올라가면 최초로 새로운 정착지에 발을 디딘 탐험가들의 자손인 셈이다. 저자는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필자는 네안데르탈인이 이들의 유골이 발견된 네안더 골짜기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이란 것을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되었음을 고백하는 바이다) 현대 멕시코의 이주민 노동자들에 이르기까지 장구한 인류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섬세하고 우아한 발걸음으로 오간다.


저자는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 길가메시 서사시와 성경에서부터 파리대왕에 이르는 고대와 현대의 문학작품들을 유려하게 인용하며 이 유서깊은 역정길을 수완좋게 인도한다. 그가 역사의 여러 대목길에 남기는 많은 주석들을 동반한 사려깊은 논평들은 저자가 가진 관점과 학식의 높은 수준을 짐작케하는데, 가령 칠레의 야간족의 최후에 대해서 그는 우리는 모두 네안데르탈인들과 약 1억년전 아프리카를 떠난 현대 인류의 후손들이다. 우리의 혈족관계는 순수혈통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야간족의 혈통을 잃는 것이 아니라 야간족의 문화를 잃는 것에 대해 슬퍼해야 한다.”라고 마무리짓는다. 저자의 잘 다듬어지고 조심스러운 태도는 필자를 실망케한 근래의 여러 책팔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을 보여주며 그가 이 문제에 보이는 진지한 태도와 품들인 노력을 증명한다.


본 책이 전반적인 인류의 이주사를 다루기 때문에 네안데르탈인과 페니키아인, 유대 디아스포라, 게르만족의 대이동, 바이킹에서부터 현대 아시아인과 히스패닉 이민에 이르는 민감한 정치, 사회적문제들의 근원도 다루고 있다. 앞서 필자가 높이 평가한 저자의 세심한 연구와 탄탄한 조사는 모든 장에서 드러나는데, 가령 아시아 이민에 있어 그는 아시아인을 황인이라 부르는 분류체계의 학술적 근원을 거슬러올라가는 것으로 시작하여 중국인 이민에 대한 배척이 흔히 생각하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황화론을 떠나서 1603년 중국인 이민자 학살 사건을 거론하며 17세기 스페인의 아시아 식민지에서부터 있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방대하고 치밀한 조사는 필자와 같이 지식습득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을 대단히 즐겁게 하며 모든 사회적 현상과 문제들이 일조일석에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오랜 맥락과 연원을 가지고 있음을 효과적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점은 인종차별, 인종주의가 더욱더 민감해진 2020년대 오늘날에 큰 의의를 가지는데 인종주의 문제는 지나치게 과거에 존재하지 않던 현대적이고 인공적인 개념들을 억지로 주입하는 선정적인 방식으로 다뤄지고 있다. 이 책의 조심스럽고 섬세한 대응은 인터넷과 거리에 선동가들이 판을 치는 오늘날에 꼭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고색창연한 순수혈통주의자들과 오늘날의 선동가들에게 동시에 가해지는 엄중한 타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을 꼽자면 매 장의 마지막마다 저자노트라는 부록을 할당하여 저자 본인의 혈통적 근원을 추적한 경험, 이 문제를 놓은 개인의 경험을 서술하는 방식을 취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성은 과거 올레그 흘레브뉴크의 스탈린 평전에서 본 바가 있는데, 이 책이 단순히 사실 나열이 아니라 (오해를 피하기 위해 부연하자면 본 책의 서술방식이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이 중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쓰여졌고, 그것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참신하고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하고 싶다. 가령 노예도 이주민인가에 대한 저자의 부연은 저자가 이 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깊고 신중하게 (특히 저자가 매도되기 쉬운 유대-영국-북유럽계의 백인 혈통의 남성이라는 점에서 더욱 필요한 태도였을 것이다) 접근하고 다루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서 학술의 자유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부연한다면 필자의 지나치게 나간 사족이 될 수 있으나, 어쩄거나 그렇게 느꼈음을 밝혀둔다.


정리하여 이 책은 오늘날 사회의 핵심적인 문제 중 하나를 잘 다룬 의의있는 책이며 여러 독자들의 일독을, 특히 이주민 문제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에게는 필독을 권하고 싶다. 이주민 문제로 과도한 증오와 선동이 판을 치는 한국사회에서는 더욱 큰 의의를 가질 것이다. 현대인들은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서 쉽게 망각한다. 때로는 뒤를 돌아볼 필요가 있으며, 이 책은 그 여정을 잘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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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웨이 해전과 나 - 전설적인 미군 급강하폭격기 조종사의 회고록
노먼 잭 클리스.티머시 J. 오르.로라 로퍼 오르 지음, 이승훈 옮김 / 일조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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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Gulag 세계대전 떡밥수용소의 서평 이벤트에 따라 쓰여진 것임을 밝힙니다.


세계사적인 분기점이 된 전투를 하나 꼽자면 무엇이 있을까? (참고로 필자는 이런 순위 매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덧붙여둔다) 저마다 관심 있거나 많이 들어본 전투들을 댈 것인데, 미드웨이 전투는 열거되는 목록에서 결코 빠지지 않을 유명한 전투이다. 수많은 교양서, 학습만화에서 “1942년 미드웨이 전투에서 미국이 승리함으로 태평양 전쟁에서 승기를 잡았다는 서술을 빼뜨리지 않고 있으며 당연히 수차례 영화화도 진행되었는데 2019,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버전은 필자도 극장에서 보았다. (아쉽게도 역사다큐로는 그냥저냥이었으나 영화로는 참혹한 만듦새였다) 관련한 책도 여러권이 나왔는데, 조너선 파셜, 앤서니 털리의 미드웨이 해전과 프레더릭 미어스가 쓰고 저명한 역덕이신 욱이님이 감수한 미드웨이가 모두 2019년에 정발된 바가 있다. 아쉽게도 태평양 전쟁은 본인의 핵심적인 관심사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두 책 모두 읽어보진 못했다.

각설하고 미드웨이 해전에 급강하폭격기 조종사로 참전했던 노먼 잭 클리스가 99세의 나이로 쓴 회고록 <미드웨이 해전과 나>2023년에 국내에 정발되었다. 수차례 반복한 바이지만 필자는 회고록을 대단히 좋아하는데 대개 학술서에 비해서 술술 읽힐 뿐더러 역사적인 상황에서 한 개인의 시각과 심리는 대단히 흥미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클리스의 회고록은 미드웨이 해전 뿐만 아니라 1920~1930년대 미국 사회의 모습, 그리고 전간기 시절의 위태로운 평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가치가 있다. 보수적인 캔자스주에서 자란 청년 클리스의 진화론과 창조론 사이에서의 지적 갈등, 해군사관학교에서 겪은 부조리와 자신의 눈으로 본 전쟁 전야의 노르웨이, 독일, 내전 중의 스페인에 대한 묘사는 대단히 흥미로웠다.

지난번에 리뷰하였던 <진흙 속의 호랑이>와 비교하였을 때의 두드러진 차이는, 진흙 속의 호랑이는 철저히 전쟁 기간에만 집중하여 대단히 기술적이고 전술적인 내용들이 많았으나 <미드웨이 해전과 나>는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듯이 단순히 전쟁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성장 이야기와 사랑 이야기 등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다는 것이다. (책에는 클리스의 미래의 아내인 유니스 나리 모숑의 사진이 실려있는데 대단한 미인이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클리스가 유니스에게 자신과 결혼하기 위해선 천주교 신앙을 포기하라고 다투는 대목을 비롯하여 한 사람의 개인적인 역정과 사랑의 쟁취를 담은 점에 있어 좀 더 말랑말랑하고 다채로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저자가 본격적인 해군 복무를 하기 시작하면서 기술적인 얘기들이 많이 나오는데, 늘 강조하듯이 필자는 밀알못이고 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은, 이 부분은 밀덕후들의 흥미를 크게 돋울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필자가 주로 흥미를 느꼈던 부분은 저자가 홀시 제독을 비롯한 역사적 유명 인물들을 만나는 대목이나, 진주만 공습이 터졌을때 그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에 대한, 사회사적인 측면이었다. 또한 이 책은 미드웨이 해전 당시만이 아니라 저자의 해군 복무 시작부터 비행교관으로 종전을 맞는 태평양 전쟁 전반기를 다루고 있으므로 한 개인이 본 태평양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주된 초점은 미드웨이 해전에 맞춰져 있다)

또한 이 책은 클리스의 경험을 담은 회고록이나 올드 도미니언 대학의 역사학 교수 티머시 오르, 햄프턴로즈 해군박물관 교육부 부부장 로라 오르와 공저한 것인데 이들이 단 것으로 추정되는 세심한 부연설명에서 이 책이 현대에서 쓰여졌음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가령, 302쪽의 미드웨이 해전 승리를 축하하는 만평을 소개하면서 오늘날 이런식으로 적을 묘사하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하는 것을 보라. 두 사람의 참여로 인해서 진흙 속의 호랑이를 읽으면서 느꼈던 불편한 감정이 들 일이 없었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이 추축국 장교가 쓴 것이 아닌 것은 감안해야겠지만 말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밀덕후들과 밀덕후가 아닌 역덕들, 그리고 태평양 전쟁에 대해서 알고 싶은 일반인들에게 모두 권할만한 훌륭한 책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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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 속의 호랑이 (독일어 완역판) - 독일 전차 에이스 오토 카리우스 회고록
오토 카리우스 지음, 진중근.김진호 옮김 / 길찾기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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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서평을 쓰기에 앞서 솔직한 고백을 하나 하자면 사실 필자는 밀덕이 아니다. 필자가 지금까지 쓴 글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필자는 무기 제원이나 개발사, 각종 이론과 교리에 대해서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밀알못이다. 그럼에도 티거 탱크와 오토 카리우스의 존재는 그런 필자조차 모를 수 없는, 한국 인터넷에서 2차 세계 대전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씩 들어본 존재들이었다. 누구나 AK-47과 그 개발자 미하일 칼라니시코프의 존재는 알았던 것처럼 말이다. 20151, 그가 작고하였단 소식을 들은 후에 짤막하게 그를 애도했던 기억도 난다. 당연히 그의 회고록 <진흙속의 호랑이>가 국내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 큰 관심을 가졌으나, 문제의 오역 논란 때문에 시도하진 않았었다. 정 돈주고 사는 것이 아까웠으면 도서관에 가서 읽어보면 되었겠지만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반드시 연체하고야 만다는 필자의 못된 버릇 때문에 끝내 시도해보지 않았다. 그렇게 그의 이름을 듣게 된 이후에 10년이 가까이 지나서 오토 카리우스의 회고록이 마침내 전격전의 전설을 번역한 진중근씨에 의해 완전히 번역되었다. 굴락 카페에서 진행된 서평 이벤트에 운좋게 당첨되었고 10년을 벼르던 그의 회고록을 마침내 읽게 되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구술사에 대해서 대단히 흥미가 많았는데 필자가 지금까지 읽은 구술사들은 대부분 외교관, 정치가의 회고록들이었고 일선에서 분투한 장병들의 회고록은 다소 생소한 것이 사실이었다. 자연스럽게 필자가 관심을 가지는 정치, 외교적 중대사의 내막이나 뒷모습에 대한 언급보다는 역사의 중대한 시기에 있었던 개인의 입장을 담고 있었으며 티거 에이스인 저자의 신분상 매우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얘기가 많아서 다른 회고록들에 비해서 읽기가 상당히 뻑뻑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특정한 주장을 담기보단 저자 오토 카리우스의 생애와 전쟁에 대한 인상을 담은 개인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필자가 지금까지 리뷰한 학술서, 교양서에 비해서 서평을 쓰는 것에 상당히 난관을 겪었다. 고민 끝에 본 서평은 오토 카리우스의 전쟁 경험을 서사적으로 정리하는 것에는 비중을 두지 않고 책을 읽으면서 필자가 주목하였던 몇몇 부분을 자세히 다루는 것에 집중하겠다.

첫번째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본 책이 제2차 세계 대전, 특히 가장 엄혹하였던 독소전쟁 중의 경험을 대부분 얘기하고 있지만 전쟁을 겪어보지 않았을 한국 군필자 독자들의 입장에서 굉장히 흥미로울 것이라는 점이다. 단순히 적을 죽였다, 뭔가를 때려부쉈다, 어디를 점령했다는 기술적 서술을 넘어서 상급자들과의 관계, 전우 및 후임자들의 관계에 대한 카리우스의 상세한 설명은 군생활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인간관계 문제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했다. 다른 특기 분야 간의 갈등, 고압적인 장교의 지시와의 마찰, 무능하고 이기적인 직속상관과 부하들의 갈등은 군필자라면 모두가 자신의 군생활을 투영해보면서 읽을 내용들일 것이다. 다만 한가지 논쟁적인 부분이 있다면 카리우스는 군생활이 대단히 고된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매우 가치 있고 고귀한 경험으로 간직하고 있는데, 군 복무 경험을 시간낭비로만 여기는 이들을 소위 뺀질이, 폐급으로 간주한다. 카리우스의 이런 논평에는 발끈할 독자들도 많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는 단순히 독일군에 복무했던 자신에 대한 정당화를 떠나서 그가 전쟁 중에 끈끈한 유대관계를 나눈 훌륭한 전우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도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의 경우에도 군생활 중에 형성된 인간관계가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고 그들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군복무 경험을 여전히 대체적으로 좋은 것으로 간직하고 있다.

둘째는 이 책에서 가장 논쟁적인 내용일 것인데, 카리우스는 독일군을 단순히 침략자, 범죄자로 보면서 분투한 자국의 군인들을 폄하하는 여론에 대해서 책 곳곳에서 반기를 드러낸다. 또한 독일군의 분투가 볼셰비즘의 서진으로부터 서유럽을 구원하였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독소전쟁에서 누가 선제공격을 하였는지, 독소전쟁이 없었으면 과연 소련의 영향력이 엘베강까지 전진할 수 있었는지의 문제는 고찰의 대상이 아니며, 마치 90년대에 유행하였던 Ice Break 테제, 즉 소련은 어차피 독일을 선제공격할 것이었으니 독일의 전쟁은 예방전쟁에 불과했다는 블라디미르 레준의 엉터리 이론을 전제한 것과 같다. 카리우스가 독일군이 범죄와 완전히 무관하였다고 주장한다거나 러시아인들을 죽여 마땅한 벌레들로 폄하한 것은 아니었으나 (오히려 카리우스는 미군에 대해서 낮게 평가하면서 러시아인들은 일선 병사들에서부터 정치장교들에 이르기까지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 마치 독소전쟁이 전사 대 전사의 공정한 싸움, 혹은 침략자에 대한 방어전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회고록은 매우 주의 깊은 일독을 요구한다.

독소전쟁 중 독일군의 범죄와 전쟁의 참상, 소련 선제공격설의 허위 등은 이 서평과는 무관한 얘기이므로 자세히 얘기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카리우스의 이런 멘털리티가 분명 옳은 것은 아니나, 인간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부정하고 바닥에 납작 엎드려 땅을 기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려운 것임은 이해해야 한다고 하고 싶다. 한국인들이 일본의 역사 문제를 다룰 때 자주 벌이는 실수 중 하나는 미군 폭탄에 맞아죽은 일본인들은 고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전쟁을 일으킨 죄많은 쪽바리들이니 감사하게 죽어야 한다라고 반성하며 죽어야 한다고 여기거나(이 정도로 극단적이진 않더라도 반딧불의 묘를 둘러싼 논란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런 뉘앙스들은 아주 많다) 당대 일본인들이 가졌던 모든 신념과 사고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황된 개소리라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인데,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적어도 과거의 참상에서 한걸음 더 나선 우리는 이런 복잡한 문제에 대해 살육의 시대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수준에서 생각해보고 냉철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작금의 국제적, 국내적 상황을 보면 우리는 그런 교훈을 크게 얻지 못한 것 같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인류사를 뒤흔든 거대한 사건 속에 있었던 개인의 관점이라는 점에서 가치 있으며 군필자들 입장에서 자신의 경험을 투영해 볼 수 있는 한 기회가 될 것이다. 독자들의 사려 깊은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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