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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 속의 호랑이 (독일어 완역판) - 독일 전차 에이스 오토 카리우스 회고록
오토 카리우스 지음, 진중근.김진호 옮김 / 길찾기 / 2023년 4월
평점 :
본격적인 서평을 쓰기에 앞서 솔직한 고백을 하나 하자면 사실 필자는 밀덕이 아니다. 필자가 지금까지 쓴 글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필자는 무기 제원이나 개발사, 각종 이론과 교리에 대해서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밀알못이다. 그럼에도 티거 탱크와 오토 카리우스의 존재는 그런 필자조차 모를 수 없는, 한국 인터넷에서 2차 세계 대전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씩 들어본 존재들이었다. 누구나 AK-47과 그 개발자 미하일 칼라니시코프의 존재는 알았던 것처럼 말이다. 2015년 1월, 그가 작고하였단 소식을 들은 후에 짤막하게 그를 애도했던 기억도 난다. 당연히 그의 회고록 <진흙속의 호랑이>가 국내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 큰 관심을 가졌으나, 문제의 오역 논란 때문에 시도하진 않았었다. 정 돈주고 사는 것이 아까웠으면 도서관에 가서 읽어보면 되었겠지만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반드시 연체하고야 만다는 필자의 못된 버릇 때문에 끝내 시도해보지 않았다. 그렇게 그의 이름을 듣게 된 이후에 10년이 가까이 지나서 오토 카리우스의 회고록이 마침내 전격전의 전설을 번역한 진중근씨에 의해 완전히 번역되었다. 굴락 카페에서 진행된 서평 이벤트에 운좋게 당첨되었고 10년을 벼르던 그의 회고록을 마침내 읽게 되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구술사에 대해서 대단히 흥미가 많았는데 필자가 지금까지 읽은 구술사들은 대부분 외교관, 정치가의 회고록들이었고 일선에서 분투한 장병들의 회고록은 다소 생소한 것이 사실이었다. 자연스럽게 필자가 관심을 가지는 정치, 외교적 중대사의 내막이나 뒷모습에 대한 언급보다는 역사의 중대한 시기에 있었던 개인의 입장을 담고 있었으며 티거 에이스인 저자의 신분상 매우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얘기가 많아서 다른 회고록들에 비해서 읽기가 상당히 뻑뻑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특정한 주장을 담기보단 저자 오토 카리우스의 생애와 전쟁에 대한 인상을 담은 개인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필자가 지금까지 리뷰한 학술서, 교양서에 비해서 서평을 쓰는 것에 상당히 난관을 겪었다. 고민 끝에 본 서평은 오토 카리우스의 전쟁 경험을 서사적으로 정리하는 것에는 비중을 두지 않고 책을 읽으면서 필자가 주목하였던 몇몇 부분을 자세히 다루는 것에 집중하겠다.
첫번째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본 책이 제2차 세계 대전, 특히 가장 엄혹하였던 독소전쟁 중의 경험을 대부분 얘기하고 있지만 전쟁을 겪어보지 않았을 한국 군필자 독자들의 입장에서 굉장히 흥미로울 것이라는 점이다. 단순히 적을 죽였다, 뭔가를 때려부쉈다, 어디를 점령했다는 기술적 서술을 넘어서 상급자들과의 관계, 전우 및 후임자들의 관계에 대한 카리우스의 상세한 설명은 군생활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인간관계 문제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했다. 다른 특기 분야 간의 갈등, 고압적인 장교의 지시와의 마찰, 무능하고 이기적인 직속상관과 부하들의 갈등은 군필자라면 모두가 자신의 군생활을 투영해보면서 읽을 내용들일 것이다. 다만 한가지 논쟁적인 부분이 있다면 카리우스는 군생활이 대단히 고된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매우 가치 있고 고귀한 경험으로 간직하고 있는데, 군 복무 경험을 시간낭비로만 여기는 이들을 소위 뺀질이, 폐급으로 간주한다. 카리우스의 이런 논평에는 발끈할 독자들도 많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는 단순히 독일군에 복무했던 자신에 대한 정당화를 떠나서 그가 전쟁 중에 끈끈한 유대관계를 나눈 훌륭한 전우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도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의 경우에도 군생활 중에 형성된 인간관계가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고 그들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군복무 경험을 여전히 대체적으로 좋은 것으로 간직하고 있다.
둘째는 이 책에서 가장 논쟁적인 내용일 것인데, 카리우스는 독일군을 단순히 침략자, 범죄자로 보면서 분투한 자국의 군인들을 폄하하는 여론에 대해서 책 곳곳에서 반기를 드러낸다. 또한 독일군의 분투가 볼셰비즘의 서진으로부터 서유럽을 구원하였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독소전쟁에서 누가 선제공격을 하였는지, 독소전쟁이 없었으면 과연 소련의 영향력이 엘베강까지 전진할 수 있었는지의 문제는 고찰의 대상이 아니며, 마치 90년대에 유행하였던 Ice Break 테제, 즉 소련은 어차피 독일을 선제공격할 것이었으니 독일의 전쟁은 예방전쟁에 불과했다는 블라디미르 레준의 엉터리 이론을 전제한 것과 같다. 카리우스가 독일군이 범죄와 완전히 무관하였다고 주장한다거나 러시아인들을 죽여 마땅한 벌레들로 폄하한 것은 아니었으나 (오히려 카리우스는 미군에 대해서 낮게 평가하면서 러시아인들은 일선 병사들에서부터 정치장교들에 이르기까지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 마치 독소전쟁이 전사 대 전사의 공정한 싸움, 혹은 침략자에 대한 방어전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회고록은 매우 주의 깊은 일독을 요구한다.
독소전쟁 중 독일군의 범죄와 전쟁의 참상, 소련 선제공격설의 허위 등은 이 서평과는 무관한 얘기이므로 자세히 얘기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카리우스의 이런 멘털리티가 분명 옳은 것은 아니나, 인간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부정하고 바닥에 납작 엎드려 땅을 기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려운 것임은 이해해야 한다고 하고 싶다. 한국인들이 일본의 역사 문제를 다룰 때 자주 벌이는 실수 중 하나는 미군 폭탄에 맞아죽은 일본인들은 고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전쟁을 일으킨 죄많은 쪽바리들이니 감사하게 죽어야 한다”라고 반성하며 죽어야 한다고 여기거나(이 정도로 극단적이진 않더라도 반딧불의 묘를 둘러싼 논란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런 뉘앙스들은 아주 많다) 당대 일본인들이 가졌던 모든 신념과 사고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황된 개소리라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인데,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적어도 과거의 참상에서 한걸음 더 나선 우리는 이런 복잡한 문제에 대해 살육의 시대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수준에서 생각해보고 냉철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작금의 국제적, 국내적 상황을 보면 우리는 그런 교훈을 크게 얻지 못한 것 같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인류사를 뒤흔든 거대한 사건 속에 있었던 개인의 관점이라는 점에서 가치 있으며 군필자들 입장에서 자신의 경험을 투영해 볼 수 있는 한 기회가 될 것이다. 독자들의 사려 깊은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