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군벌 전쟁 - 현대 중국을 연 군웅의 천하 쟁탈전 1895~1930
권성욱 지음 / 미지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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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 청나라 호북성 무창에서 터진 총성으로 300년간 지속되었던 중국 역사상 마지막 제국인 청나라가 무너졌다.(일부 호사가들은 원세개의 중화제국과 일본의 괴뢰 만주국을 진짜 마지막으로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필자는 그렇게까지 관대하진 않다) 1912, 60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석권했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어떠한 자각도 없이 퇴위했고 중국 역사상 첫 번째 공화국이 중화민국이 세워졌다. 하지만 중화민국의 운명은 파란만장했다. 어떤 사람들은 영화 <패왕별희>의 후반부 장면을 기억할지 모른다. 공산군에 포위된 북평시에서 쌀을 실은 트럭에 폭도들이 몰려오고 병사들이 폭도들을 몽둥이로 쳐서 내쫓는다. 그걸 보고 있던 만주족 출신 극장 주인 나곤은 좋든 싫든 우리 만주족은 300년간 대륙을 지배했는데, 민국은 금방 망해버리는군요. 우린 이제 (공산당의) 새 돈 샐 일만 남았습니다.”라고 비웃는다. 1949, 중화민국 총통 장개석은 대만으로 퇴각했다. 중화민국의 이름은 사람들에게 부정부패, 무능, 그리고 무엇보다도 군벌할거의 이미지로 남았다.


이러한 평가들이 공정한가의 문제를 본글에서 다루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은 그보다는 군벌들이 누구였는가에 대해서 다루고자 한다. 군벌(軍閥), 영어로는 Warlord라고 하는 이들은 민국 초기 각 지방에서 할거하며 작게는 도적떼 수준의 무리를, 크게는 몇 개의 성을 지배했으며 중화민국의 국가원수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중화민국 역대 대총통 중 원세개, 여원홍, 풍국장, 조곤 등이 모두 군벌이었으며 문인인 서세창 역시 북양군벌의 일원이었다. 오로지 초대 임시대총통 손문만이 군벌과 연고가 없었다.(물론 그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서남군벌을 이용했다는 것은 차치하자) 임시 집정 단기서, 대원수 장작림 역시 모두 군벌이었다.


군벌이라는 용어는 과거 당나라의 혼란을 표현하기 위해서 신당서에서 처음 사용하였던 용어였다. 과거 역사 용어였던 군벌은 민국 초 중앙과 지방의 군웅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다시 부활하였으나 그 계기는 역사서가 아니라 옆나라 일본의 용어인 군바츠를 들여온 것이었다. 군바츠란 용어는 중국의 좌익 작가들의 손으로 수입되었으며, 국민당과 공산당이 자신들을 제외한 군사실력자들을 비난하기 위해서 사용하였다. 심지어 군벌들도 서로를 군벌이라고 비난했으며 자신은 군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19221차 직봉전쟁이 발발하였을 때 오패부와 장작림은 모두 서로를 군벌이라고 비난하였는데, 이것이 중국 사회에서 군벌이라는 용어가 공개적으로 사용된 첫 번째 사례였다. 즉 군벌은 일반명사가 아니라 멸칭인 것이다. 신해혁명 이후 2번째 혁명이었던 국민혁명을 진행했던 중국 국민당도, 다시 공산혁명을 일으킨 중국 공산당도 군벌들을 제국주의 주구, 민생 파괴자로 보고 우선적인 타도 대상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오명에 얼룩진 군벌들은 빠르게 잡으면 1912년부터, 늦게 잡아도 원세개가 죽은 1916년부터 이 군벌들은 중화민국의 법통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으며 그 뒤로도 한동안 영향력을 행사하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일반적으로 군벌시대의 종말은 1928, 장개석의 북벌이 완료되는 시점으로 잡고 있으며 윌버(Wilbur), 제석생 등이 이러한 주장을 견지한다. 하지만 많은 군벌들은 단순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국민당에 항복하면서 명맥을 이어나갔고 그들의 군벌적 습성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이 때문에 카프(Kapp)와 같은 학자들은 심지어 남경 국민정부는 군벌시대의 종식이 아니라 오히려 군사화와 분열이 더 가속화된 시기에 불과하다고 보며, 공산당은 당연히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고 나서야 군벌시대가 끝났다고 주장했다.


군벌들에 대한 평가는 중국, 대만, 서구를 가리지 않고 모두 가혹했다. 중국에서는 혁명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당연히 국민당을 포함해서 군벌들을 주권과 이익을 외국에 팔아먹은 매국노들이며, 민중을 도탄에 빠뜨린 세력으로 보고 맹목적인 비난만 퍼부었다. 대만에서도 군벌들의 범주에 국민당을 제외했을 뿐, 군벌들을 국민당이 당연히 타도했어야 할 악의 세력으로 맹비난하였다. 이는 국공내전의 패배 이후 국민당 체제의 정통성을 강화하고, 대륙반공의 열정을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서구에서도 군벌들은 거대한 불안정 외에 어떠한 것도 창출하지 못했으며 민심이 북양정부를 버리게 만든 주범이라고 평가하였다. 하지만 1976년 모택동이 사망하고 문화대혁명이 종식되면서 중국의 연구방향이 바뀌기 시작했다. 중국에서는 군벌들의 봉건매판성을 비판하면서도 한때 중국의 국정운영 주체로서 기능했던 이들의 실체를 인정하고 이들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시작하여 이들의 공적에 대해서도 재평가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러한 경향에는 일본과 민주화된 대만 역시 영향을 받았으며, 서구에서도 90년대 이후 군벌 통치가 중국 사회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에 대한 재평가가 상당히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물론 군벌 통치의 결산에 대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중국인들이 공유하고 있던 위기감을 충족하는데 실패했으며, 내전으로 국고를 탕진하고 중국의 국제적 지위를 실추시켰으며 북양정부의 정통성이라는 정치적 자산을 소모하여 결국 중국의 지식인과 민중이 국민당과 공산당이라는 과격한 대안을 지지하게 만드는데 결정적인 일조를 하였다.


하지만 이들이 실패하였다는 것이, 이들이 무능하고 부패하고 사악하고 욕심 많은 인간 쓰레기들이었다는 소리로 직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중화민국에서 명멸해간 군벌만 1300여명에 달하며 이들의 성장배경, 교육환경, 경력, 성격 역시 천차만별이다. 중국 현대사의 전문가 가와시마 신이 지적하듯이, 군벌들도 중국의 발전에 무관심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상당히 높은 애국심이 있었고, 저명한 군벌연구가 진지양 교수가 지적하듯이, 이들이 외세의 지원을 받아다고 한들 이것이 매국적 외세의 주구라는 소리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예컨대, 호북독군 왕점원은 5.4운동의 소식을 듣고 국가가 나약하니 학생들이 나선 것이라고 오히려 대견하게 여기며 칭찬했다. 일본의 주구로 비난받은 장작림도 만주의 일본 자본 진출을 억제하려고 했고 다나카 내각의 산동출병에 항의했으며, 권력에서 축출된 단기서는 일본의 도움이 가장 절실하였을 순간에 화북 괴뢰정권의 수장을 시켜주겠다는 일본의 유혹을 단호히 거부하고 옛 동료들에게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맞설 것을 단호히 통전했다. 이렇듯 군벌의 성격은 복합적이고 한두마디로 간단히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군벌들이 마주하였던 근대로부터 생존해야 한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은 구한말과 식민지, 그리고 가난한 건국 초기를 경험하였던 우리나라 역시 한때 공유하였던 것으로 군벌들은 우리의 입장에서도 유리된 우스꽝스러운 에고이스트들이 아니다. 이들에 대해서 우리는 좀 더 진지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국내에 군벌에 대한 서적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비록 개개인의 군벌과 그 정책 일부 연구는 존재하지만 일반인의 입장에서 논문의 접근성은 매우 좋지 못하다. 송한용 교수의 東北軍閥日本(서울: 서도문화사, 2002), 강명희 교수의 近現代 中國의 국가건설과 제3의 길 : 非資本主義의 이론과 실천(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3)과 같이 탁월한 연구서도 있으나, 역시 일반인 입장에서는 읽기 쉽지 않은 어려운 연구서이며 판매량이 많지 않아 예전에 절판되었기 때문에 중고장터나 도서관에 가서 봐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군벌(서울: 도서출판삼화, 2018)의 저자 이건일 교수는 국내에 군벌 관련 저서가 부족한 데에 놀랐다는 소회를 밝힌 바가 있다. 즉 일반인들이 중국 군벌들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 수단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권성욱 씨의 중국 군벌 전쟁: 현대 중국을 연 군웅의 천하 쟁탈전 1895~1930은 마치 가뭄 속의 단비와 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중일전쟁: , 사무라이를 꺾다 1928~1945(서울: 미지북스, 2015)의 출판으로 혹자는 전격전의 전설급의 충격과 영향력을 역덕계에 주었다고 평가하는 그는 이제는 중일전쟁의 프리퀄이라고 할 수 있는 군벌 시대로 돌아왔다. 중국 군벌 전쟁은 제목과 달리, 사실상 청나라 쇠락사와 북양정부 흥망사를 합친 것과 같은 풍부한 구성을 자랑한다. 이 책은 크게 청나라의 쇠락을 다룬 1, 북양정부의 군벌전쟁을 다룬 2,3, 북벌과 반장전쟁을 다룬 4,5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마치 군벌시대의 개막과 종식이 언제까지인지에 대한 학술적 논쟁의 절충과도 같은 구성이다. 부록과 참고문헌, 색인 등을 제외하고 1300쪽에 가까운 방대한 분량이지만 풍부한 사진자료와 술술 읽히는 문체로 이 책을 완독하는 것은 전혀 부담되지 않는다. 단순히 중국 군벌 뿐만 아니라 청의 멸망, 북양정부사와 국민혁명사에 입문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좋은 이정표가 나타난 것이다. 또한, 작가의 개인적 관심사 덕분에 곁들여진 풍부한 무기 관련 지식 역시 관련 호사가들에겐 매우 귀중한 자료들이다.


국내에 매우 드물었던 군벌 관련 책이 이 책의 첫 번째 가치라면, 그 다음은 제목에 충실한 내용일 것이다. 위에도 언급하였지만, 군벌에 대한 책이 국내에 전무하였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는 허우이제의 원세개: 중국의 마지막 황제(서울: 지호, 2003), 쉬처의 만주군벌 장작림(서울: 아지랑이, 2011) 등 군벌 개인의 일대기에 관한 것이나, 정치외교사적 관점 안에서의 군벌을 분석하는 것이었지 전쟁사 측면에서 다룬 책은 사실상 없거나 매우 단편적으로 언급한 수준에 그쳤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말 그대로 전술, 전략, 그리고 무기의 활용이라는 일반인들의 입장에서 제일 흥미롭지만 기존에 찾을 수 없던 부분에 충실하여 독자들을 만족시킨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라고 생각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참고문헌 부분의 처리가 다소 부실하다는 점이다. 참고문헌으로 기재된 논문들의 경우, 학술지명이 삭제되어 있으며 송한용 교수가 번역한 중일외교사연구의 경우, 저자가 카츠미 우스이(臼井勝美)지만 역자인 송한용 교수가 저자로 잘못 적혀 있다. 이러한 부분이 2쇄에서 바로 잡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2쇄가 나오기 위해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들에게 중국 군벌 전쟁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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