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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 공산주의 붕괴와 소련 해체의 결정적 순간들 ㅣ 마이클 돕스의 냉전 3부작
마이클 돕스 지음, 허승철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20년 3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본 리뷰는 모던아카이브 출판사가 역개루 카페에 의뢰한 서평 이벤트에 따라 작성된 것임을 밝힙니다.
1970년대, 사회주의의 종주국 소련의 지위는 굳건해 보였다. 소련의 지도자인 브레즈네프는 볼코고노프 장군의 표현에 따르면, 기초적인 문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블라디슬라프 주보크의 평가처럼 매력이라는 강력한 정치적 자산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의 손에는 수백만 대군과 수만 발의 핵무기라는 막강한 무력이 있었다. 소련에서 나는 방대한 자원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권력도 있었다. 그 돈으로 소련은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였고, 세계 각국에 수십만 명의 군사, 기술, 정치 고문을 파견하고 제국에 기생하는 수많은 세력의 보모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제국의 질서에 반대하려는 별종들은 신속하게 제거되었다. 처음에는 헝가리의 너지 임레, 다음에는 체코슬로바키아의 둡체크였다. 티토와 모택동처럼 소련의 강철의 손아귀를 벗어난 지도자들도 있었지만, 이들의 존재가 제국의 질서를 크게 뒤흔들지는 못했다. 적어도 스탈린이 3천만 명의 피를 대가로 지불해서 얻은 힘의 경계선에서 소련은 단 한 번도 물러서지 않았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광활한 영토의 지배자는 표면상으로조차 더 이상 멀쩡해 보이지 않았다. 노쇠한 서기장의 몸은 허물어지고 정신은 퇴행했다. 그보다 조금 더 젊을 뿐인 정치국원들이 나라를 통치했다. 그들이 통치하는 제국도 마찬가지였다. 레닌이 설계하고 스탈린이 주조한 거대한 기계는 녹슬고 있었다. 견제받지 않고 검증받지 않고 물음 받지 않는 현실 사회주의 체제는 일말의 효율성과 기강이라도 유지하던 공포정치는 포기했으되, 비효율적인 체제는 수정하지 않았다. 드라마 체르노빌이 강조하듯, 체면에 집착하는 체제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낭비를 일상적으로 유지했고, 그러면서도 인민들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하지 못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만족하지 못한 인민들의 불만을 누적되었고, 혁명은 후퇴하지 않는다는 완고한 명분에 집착하는 지도자들은 체제의 붕괴를 막을 수 있던 소중한 순간들을 자신들의 콧대를 높이는 데 사용했다.
어떤 것이 봇물을 터트린 첫 구멍이라고 부르기는 힘들 것이다. 누군가는 옐친이나 8월 쿠데타를 원인으로 지목할 것이다. 혹자는 고르바초프를 탓할 것이고, 어떤 이는 스탈린이 레닌을 배신했다고 할 것이며, 누군가는 레닌이 혁명에 성공했던 그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돕스의 책은 삐걱대는 제국을 보여준 후, 아프가니스탄 침공에서 시작한다. 혁명은 무오류고, 따라서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 한번 사회주의 체제가 생겼던 국가는 계속 소련의 울타리 안에 있어야 했다. 늘 그랬듯이 정치논리가 다른 모든 것을 우선했고, 정치국은 군부의 반대를 무시하고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결과적으로 아프가니스탄 민중을, 이슬람 세계 전체를, 사실상 전 세계를 적으로 만들었다.
공산주의 체제는 종주국에서만 흔들리지 않았다. 소련은 동유럽 전체에 자신들의 이념뿐만 아니라 고집스러운 비효율성도 선물했다. 체제의 오류를 자체적으로 수정할 권한은 주지 않았다. 폴란드에서 바웬사가 일어섰을 때 소련은 싸늘한 경고를 보냈다. 하지만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증명되었듯이, 비록 소련군의 손으로 이식된 공산주의 정권이라 하더라도 소련에 마냥 순종적이진 않았다. 모택동이 언젠가 말했듯이, 소련의 방귀조차 향기롭진 않았던 것이다. 군의 손으로 공산주의를 유지하라는 소련의 명령에 폴란드는 나름 강력하게 저항했다. 비록 공산주의가 바로 물러나진 않았지만, 바르샤바는 부다페스트와 프라하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브레즈네프가 죽었다. 스탈린의 죽음에 울부짖던(물론 서슬 퍼런 분위기 속에서도 그의 죽음을 비웃는 사람들도 많았었다) 인민들은 냉소적으로 반응했다. 그 뒤를 이어 안드로포프가 집권했다, KGB 의장 출신으로 소련의 모든 치부를 낱낱이 알고 있던 그는 사회의 나사를 다시 조이고 좀 더 거시적인 해결법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중환자였던 그는 곧 죽었다. 그 뒤를 이어 보수적인 체르넨코가 집권했지만, 안드로포프 보다 약간 더 긴 집권 기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인상도 남기지 못하고 곧 죽었다. 그 뒤를 이어 유명한 고르바초프가 집권했다. 아마추어 배우 출신으로 농업문제를 전담해왔던 그는 소련 체제를 손보려는 열정과 의지로 불타는 인물이었다. 그의 손으로 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되었다.
신장투석과 신비주의에 물든 전임자들과 달리 고르바초프는 정력적이고 개방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초기에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가 물려받은 제국은, 돕스가 첫 180여 쪽에 걸쳐 강조했듯이 체면과 정치논리가 망쳐놓은 녹슬고 침몰해가는 배였다. 그의 전임자들이 게걸스럽게 파서 팔아치운 석유는 동이 나고 있었고, 국채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아프간은 여전히 소련 젊은이들의 피와 군비를 빨아들였다. 재앙적인 체르노빌도 고르바초프의 집권 초기에 터진 대참사였다. 고르바초프는 이를 바로 잡으려 했다. 아프간에서 병력을 물렸고,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서방의 인기를 어느 정도 사는데는 성공했지만, 서방과의 대결을 없던 일로 하진 못했다. 나라를 바로 잡으려는 그의 열정은 진심이었으나, 그의 금주 정책이 참혹하게 실패했듯이 그는 방법을 잘못 정했다. 물질적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그는 정치적 자유화를 먼저 선택했지만, 결과적으로 급진파와 보수파 그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고르바초프의 의도대로 흘러가진 않았지만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서기장이 대통령을 대체했고 사하로프가 대의원이 되었다. 캅카스와 발트에서는 소수민족들이 소련으로부터의 독립을 외쳤다. 당도 힘을 잃었다. 동독에선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폴란드에선 바웬사가 돌아왔고,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불가리아가 뒤를 이었다. 카르파티아 산맥의 천재로 자칭한 차우셰스쿠는 악명 높은 아내 엘레나와 함께 총살당했다. 유고슬라비아에서는 민족들 간의 증오가 폭발해서 피바다로 이어졌다. 고르바초프는 큰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 사이에서도, 당 내부에서도 차차 고립되어 갔다. 동독에서의 철수, 통일 독일의 나토 가입, 리투아니아 사태를 목도한 당 보수파들은 소련을 개편하려는 고르바초프의 노력에 더 이상 참지 않았다. 1991년 8월, 소련의 최초이자 마지막 쿠데타가 일어났다. 그리고 실패했고 소련의 목숨도 그렇게 끝이 났다. 옐친이 그 시체 위에서 월계관을 썼다.
마이클 돕스는 600여쪽에 달하는 방대한 책에서 공산주의 체제의 마지막 20년을 조명한다. 전 세계에서 수억명이 신봉하고 따랐던 사회주의 혁명과 체제의 몰락과 실패한 최후의 발버둥에 대해 돕스는 자기 자신이 기자 생활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목격한 흥미로운 장면들에 대한 증언과 해금된 기밀 자료들, 다양한 증언록을 통해서 매우 어렵지 않으면서도 깊게 접근한다. 그리고 공산주의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였던 고르바초프가 공산주의의 관에 못을 박게 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전체적으로 매우 읽을만한 책이지만, 결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공산주의가 몰락으로 치닫는 과정과 논리에 대해서 그는 매우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하지만 그것을 살리려는 노력이 어떻게 파국에 치달았는지에 대해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급하게 지나가느라 설명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준다. 정열적인 지도자 고르바초프가 옐친과 사하로프에게 밀려나는 데는 많은 페이지가 할애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학술서가 아니라 논픽션이라는 한계를 감안한다면 납득되지 않는 수준은 아니지만, 몸통이 빈약하다는 느낌은 아쉽다. 번역은 전체적으로 매우 성실하다. 하지만 군데군데 인명과 지명의 심각한 오역들이 보인다는 점에서 옥에 티라고 하겠다. 하지만 공산주의의 최후에 대해서 이 정도로 방대하고 자세하게 다룬 책도 국내에 많지 않으며, 몇몇 주제는 최초로 다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냉전의 마지막 역사에 대해 읽고 싶은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