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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웨이 해전과 나 - 전설적인 미군 급강하폭격기 조종사의 회고록
노먼 잭 클리스.티머시 J. 오르.로라 로퍼 오르 지음, 이승훈 옮김 / 일조각 / 2023년 5월
평점 :
※ 본 서평은 Gulag 세계대전 떡밥수용소의 서평 이벤트에 따라 쓰여진 것임을 밝힙니다.
세계사적인 분기점이 된 전투를 하나 꼽자면 무엇이 있을까? (참고로 필자는 이런 순위 매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덧붙여둔다) 저마다 관심 있거나 많이 들어본 전투들을 댈 것인데, 미드웨이 전투는 열거되는 목록에서 결코 빠지지 않을 유명한 전투이다. 수많은 교양서, 학습만화에서 “1942년 미드웨이 전투에서 미국이 승리함으로 태평양 전쟁에서 승기를 잡았다”는 서술을 빼뜨리지 않고 있으며 당연히 수차례 영화화도 진행되었는데 2019년,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버전은 필자도 극장에서 보았다. (아쉽게도 역사다큐로는 그냥저냥이었으나 영화로는 참혹한 만듦새였다) 관련한 책도 여러권이 나왔는데, 조너선 파셜, 앤서니 털리의 미드웨이 해전과 프레더릭 미어스가 쓰고 저명한 역덕이신 욱이님이 감수한 미드웨이가 모두 2019년에 정발된 바가 있다. 아쉽게도 태평양 전쟁은 본인의 핵심적인 관심사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두 책 모두 읽어보진 못했다.
각설하고 미드웨이 해전에 급강하폭격기 조종사로 참전했던 노먼 잭 클리스가 99세의 나이로 쓴 회고록 <미드웨이 해전과 나>가 2023년에 국내에 정발되었다. 수차례 반복한 바이지만 필자는 회고록을 대단히 좋아하는데 대개 학술서에 비해서 술술 읽힐 뿐더러 역사적인 상황에서 한 개인의 시각과 심리는 대단히 흥미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클리스의 회고록은 미드웨이 해전 뿐만 아니라 1920~1930년대 미국 사회의 모습, 그리고 전간기 시절의 위태로운 평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가치가 있다. 보수적인 캔자스주에서 자란 청년 클리스의 진화론과 창조론 사이에서의 지적 갈등, 해군사관학교에서 겪은 부조리와 자신의 눈으로 본 전쟁 전야의 노르웨이, 독일, 내전 중의 스페인에 대한 묘사는 대단히 흥미로웠다.
지난번에 리뷰하였던 <진흙 속의 호랑이>와 비교하였을 때의 두드러진 차이는, 진흙 속의 호랑이는 철저히 전쟁 기간에만 집중하여 대단히 기술적이고 전술적인 내용들이 많았으나 <미드웨이 해전과 나>는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듯이 단순히 전쟁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성장 이야기와 사랑 이야기 등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다는 것이다. (책에는 클리스의 미래의 아내인 유니스 나리 ‘진’ 모숑의 사진이 실려있는데 대단한 미인이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클리스가 유니스에게 자신과 결혼하기 위해선 천주교 신앙을 포기하라고 다투는 대목을 비롯하여 한 사람의 개인적인 역정과 사랑의 쟁취를 담은 점에 있어 좀 더 ‘말랑말랑’하고 다채로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저자가 본격적인 해군 복무를 하기 시작하면서 기술적인 얘기들이 많이 나오는데, 늘 강조하듯이 필자는 밀알못이고 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은, 이 부분은 밀덕후들의 흥미를 크게 돋울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필자가 주로 흥미를 느꼈던 부분은 저자가 홀시 제독을 비롯한 역사적 유명 인물들을 만나는 대목이나, 진주만 공습이 터졌을때 그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에 대한, 사회사적인 측면이었다. 또한 이 책은 미드웨이 해전 당시만이 아니라 저자의 해군 복무 시작부터 비행교관으로 종전을 맞는 태평양 전쟁 전반기를 다루고 있으므로 한 개인이 본 태평양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주된 초점은 미드웨이 해전에 맞춰져 있다)
또한 이 책은 클리스의 경험을 담은 회고록이나 올드 도미니언 대학의 역사학 교수 티머시 오르, 햄프턴로즈 해군박물관 교육부 부부장 로라 오르와 공저한 것인데 이들이 단 것으로 추정되는 세심한 부연설명에서 이 책이 현대에서 쓰여졌음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가령, 302쪽의 미드웨이 해전 승리를 축하하는 만평을 소개하면서 “오늘날 이런식으로 적을 묘사하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하는 것을 보라. 두 사람의 참여로 인해서 진흙 속의 호랑이를 읽으면서 느꼈던 불편한 감정이 들 일이 없었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이 추축국 장교가 쓴 것이 아닌 것은 감안해야겠지만 말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밀덕후들과 밀덕후가 아닌 역덕들, 그리고 태평양 전쟁에 대해서 알고 싶은 일반인들에게 모두 권할만한 훌륭한 책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