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히틀러 결정판 1~2 세트 - 전2권 아돌프 히틀러 결정판
존 톨랜드 지음, 민국홍 옮김 / 페이퍼로드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 본 서평은 페이퍼로드 출판사가 역개루 카페에 의뢰한 서평 이벤트에 따라 작성된 것임을 밝힙니다.


아돌프 히틀러는 악인의 대명사이다. 그는 단순히 독재자로 묘사되지 않고 순수악, 인간의 탈을 쓴 악마 그 자체로 여겨진다. 자본주의 세계와 사회주의 세계가 입을 모아서 욕하고 힘을 합쳐서 몰락시켰던 독일 민족의 총통이 벙커에서 스스로 두개골에 총알을 박아 넣고 한줌 재로 사라진지 8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악명은 여전히 만방의 사람들에게 심각한 욕설로 사용되고 있으며 호사가들은 히틀러의 남은 족적을 추적하며 그가 사실 죽지 않았거나 여자였다는 황당무계한 음모론까지 섭렵하고 있다. 그가 남긴 유품조차 뜨거운 논란에 휩싸이며 악마가 남긴 흔적을 소각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는 등 21세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여전히 히틀러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인물들은 당연히 논저와 매체의 소재가 된다. 나치 독일의 관제영화와 선전물을 제외하고 전후에도 히틀러를 다룬 수많은 작품들이 세계 각국에서 쏟아졌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 등 히틀러의 악행을 고발하거나 그 악행 속에서 의인의 분투를 다룬 작품들은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수가 많다. 히틀러가 구축한 파괴적인 세계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물론 이 거대한 아포칼립스적인 세계를 만들었던 인간 히틀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호기심도 뜨겁다. 인간 히틀러를 다룬 매체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올리버 히르슈비켈 감독의 영화 <몰락>에서 브루노 간츠가 맡았던 히틀러일 것이나 히틀러에 대해 광인, 악인의 이미지만을 가지고 있던 한국에서는 인간 히틀러에 대해서 상당히 놀라워하는 반응이 많았다. 우리들의 머릿속의 히틀러는 로버트 칼라일이 분했던 광기와 증오로 똘똘 뭉친 정신병자 히틀러일 것이다.


과연 히틀러는 정말 어떤 인물이었을까? 히틀러를 다룬 연구들은 수도 없이 쏟아졌다. 국내에 들어온 책들을 가볍게 소개하자면 라파엘 젤리히만의 히틀러, 요아힘 페스트의 히틀러, 그리고 이언 커쇼의 히틀러이다. 이중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추천할만한 것은 히틀러 연구의 결정판이라 불리는 커쇼의 평전이며 학술적인 평가도 대단히 높은 책이다. 솔직하게 밝히자면 현재 히틀러에 대해서 한국에서 공부를 하기 위해서 외국의 연구가 아니라 국내의 서적 중에서 고른다며 이미 충분한 자료가 들어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페이퍼포드에서 퓰리처상을 수상 받은 작가 존 톨랜드의 히틀러 전기를 정발하였다. 제일 먼저 드는 궁금증은 이 미국인 작가는 히틀러를 어떻게 보았으며, 또 이 책은 다른 평전에 비해서 어떤 가치가 있느냐는 것이다.


톨랜드의 히틀러는 히틀러의 발자국 하나하나를 되살리려고 한 작품이다. 작가는 서문에서 자신이 주장하고자 한 특별한 이론이 없다고 밝히며 자신이 발로 뛰며 수집한 수많은 자료와 인터뷰를 통해서 히틀러의 행적을 복구하고 있다. 첫 번째 세계대전에서 패망하고 좌절한 히틀러로 시작한 톨랜드의 전기는 히틀러의 일가와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 매우 상세한 부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시클그루버 가문의 사생아였던 엄격한 공무원 알로이스 히틀러와 그의 자식들, 미술가가 되고 싶었던 골목대장 히틀러의 유년시절에서 작가는 유려한 필력을 뽐내며 만약 히틀러가 시클그루버라는 성을 유지했다면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하일 시클그루버를 외쳤을 것이라는 단순하지만 웃음이 나오는 가정을 던져본다.


히틀러의 어릴 적 절친한 친구였던 아우구스트 쿠비체크, 가족과 지인들,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의 증언과 히틀러 본인의 기술 등을 종합하여 톨랜드는 히틀러의 행적을 하나하나 되살린다. 빈에서 좌절을 겪은 실패한 미술가는 독일로 흘러 들어갔고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여한다. 톨랜드는 히틀러가 전선으로 가는 날 무엇을 먹었는지, 그가 처음에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정부로부터 병역기피 혐의로 기소되었을 때에 어떤 탄원서를 썼는지까지 모두 제시하는 등 작가의 두드러진 열정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이 두드러진 열정은 작가의 본업이 역사학자가 아니란 점에서 일부 불협화음을 낸다. 커쇼의 히틀러 평전과 교차검증해서 읽어본다면 잘 알 수 있는 내용이겠지만 톨랜드는 히틀러가 훗날 자신을 띄우기 위해 했던 거짓말들, 가령 그가 빈에 있을 때 사회민주당원들과 주먹다짐을 했다거나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여하기 위해 비텔스바흐 왕가에 직접 탄원했다거나 하는 내용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 허나 이는 지금 와서는 신빙성을 잃은 주장들이다. 또한 히틀러의 명성을 이용하여 자신을 띄우려고 했던 오스트리아의 극우 선동가들의 자화자찬, 그리고 나의 투쟁을 고스란히 옮겨 쓴 것에 불과한 일부 지인들의 회고 역시 톨랜드는 모두 옮겨 쓰고 말았다. 이는 작가의 성실성이 빚은 오류이나 7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 전문적 역사학자가 아닌 작가의 본업을 생각하면 아쉽지만 이해가 안 될 부분은 아니다.


세계대전에서 패하고 절망한 히틀러는 독일 노동자당이라는 한미한 정당에 들어가 신들린 듯한 선동가로서의 자질을 유난 없이 발휘하고 맥주홀 폭동이라는 무모하지만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한차례 실패를 통해 도약하여 마침내 총통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 뒤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고 끝내 총통 벙커에서 머리에 총알을 박고 죽는다. 톨랜드가 묘사한 히틀러는 입체적이기 그지없다. 그는 보수적이고 성을 혐오했지만 아이들을 좋아했으며 성실하고 믿을 수 있는 괴짜였다. 바이에른의 선동가 시절에도 그는 입에 게거품을 무는 미치광이는 아니었다. 일부 의견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한프슈탱글의 말에도 히틀러는 의견의 차이는 조율할 수 있다고 상냥하게 말한다. 하지만 그는 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으며 한 민족의 생존권을 박탈하여 산업적인 절차로 멸절하려 한 학살자이다. 그런 사람에겐 인간성이 있어선 안될까? 단순한 우화와 판에 박힌 선전에 익숙한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 인간 히틀러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인물이다. 하지만 가장 거대한 악을 자행한 인물을 그저 악마화하는 것은 후세에게 교훈을 주기엔 적합하지 못한다. 우린 그저 악마를 구마하기 위한 기도문을 외우면 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뿐이니까.


결론적으로 톨랜드의 히틀러 전기는 몇 가지 분명한 결점이 있으나 히틀러의 세세한 행보까지 알기 위해서 입문용으로, 그리고 다른 히틀러 평전들과 교차검증해서 정보를 얻기에 매우 읽을 만한 책이다. 나치 독일과 히틀러에 대해서 알고 싶었지만 아직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들, 기존에 있는 학술서들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입문을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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