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테러리스트 뱅크시, 그래피티로 세상에 저항하다
마틴 불 글.사진, 이승호 옮김 / 리스컴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뱅크시(Banksy)'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한 TV프로그램에서 영국의 '뱅크시신드롬'을 취재한 다큐를 봤다.

영국 젊은이들을 대변하는 거리의 그래피티 화가, 영국의 바스키아라고 불리며 그 존재감은 영국을 넘어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에까지 전파를 타게 된 것이다. 벌써 몇 년 전이라니.

그 뒤에도 몇번 뱅크시에 대한 방송을 보았지만 처음 본 다큐와는 성격이 다른 방송이었다.

 

 

 

영국 경찰이 뱅크시를 잡으려고 지명수배까지 내렸지만 오히려 대중들은 뱅크시를 영웅시하며 그의 마니아가 되어 뱅크시가 남긴 그래피티를 보러 세계 각국에서 여행을 온다는 것이다.

여행 프로그램에까지 뱅크시의 그래피티가 소개되었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뱅크시의 그래피티를 보러 오는 바람에 영국 경찰과 정부는 난처하게 되었다.

뱅크시의 낙서를 이미 많이 지워버렸기 때문에 이에 실망한 팬들이 여행을 오지 않을까봐 조마조마하는 마음에 뱅크시의 그래피티를 남겨두게 되었다는 뒷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영국 정부가 뱅크시의 작품을 일부 인정하는 태도로 강압적인 단속을 덜하자 뱅크시를 추종하는 다른 그래피티 아티스트의 작품들이 무분별하게 그려져 문제가 되기도 했다고 하고, 더 큰 문제는 뱅크시를 똑같이 흉내내는 사람들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뱅크시가 그리지도 않은 그래피티에 뱅크시의 서명이 들어가 있어 뱅크시가 해명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뱅크시를 잡기 위한 정부의 방침이 발표되고 뱅크시는 잠시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뱅크시의 이름은 본명이 아니다. 본명을 썼다면 이미 경찰에 잡혔을 것이다.

아직 얼굴도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신비주의 전략 때문인지 팬들의 지지는 대단하다.

다수이지만 소수의 의견같이 되어버린 국민의 의견을 뱅크시는 그림으로 대신한다.

그리고 그 그림은 백마디 말보다 강한 효과를 주는 파격적이면서 강한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듯한 뱅크시에 환호하는 것이다.

 

 

 

침체되는 경제 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비자발적 실업자가 되어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젊은이들, 거짓과 위선으로 똘똘 뭉친 부자들, 귀족들. 영국을 아프게 하고 병들게 하는 기성세대들을 향한 신랄한 풍자와 비판은 예술적 가치로도 큰 평가를 받는다.

뱅크시의 작품들을 보면 특히 경찰의 여러가지 모습들, 예를 들면 땅바닥에 엎드려 마약을 하는 듯한 모습의 경찰관이 여러 곳에 등장하는데 경찰관을 비판하고 풍자하고 있다.

 

 

 

또하나, 뱅크시가 자주 그리는 동물은 '쥐'다.

뱅크시는 그의 저서에서 '쥐'는 '특권층의 권위에 거세당하는 불특정 다수의 시민을 대변한다'고 했다.

쥐의 모습으로 거리의 벽을 장식하는 뱅크시의 쥐들은 의인화되어 이미 영국 시민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피켓을 들고 캠페인을 벌이기도 하고, 평화나 자유를 달라며 외치기도 하고, 작가의 심정을 전달하기도 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거리의 낙서라고 불리는 그래피티를 예술로 만들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뱅크시를 예술가와 불법으로 낙서하는 무법자의 양분하는 시각에 '예술가'라는 손을 들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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