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는 아니지만 - 구병모 소설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다보면 지겨워지거나 지루해진다.

책 읽는 것도 그렇다. 매번 같은 장르만 읽다보면 금방 지루해지고 언어습관도 굳어지게 된다.

그래서 책을 첫페이지부터 끝페이지로 읽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깨어보기로 했다.

단편이라는 장점을 이용해 총 7편의 단편을 순서없이 셔플(섞어)읽기로 했다.

 

그래서 제일 먼저 고른 작품이 이 책 <고의는 아니지만>과 동명 타이틀인 '고의는 아니지만'이다.

첫번째 단편부터 너무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유치원 교사와 원생 아동들의 일상사를 다룬 이야기였다. 유치원 교사인 F는 아이들에게 이리저리 치인다. 시달린다고 해야 할까? 어디를 가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볼 수 있는 계급이 유치원에서도 나타난다. 유치원비나 준비물을 잘 챙겨주는 부모가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부모로 아이들의 유치원 생활은 나뉜다.

 

 

 

수영장 가는 날, 수영복에 수영모까지 잘 챙겨온 아이가 있고, 집에 입던 반바지와 티를 가지고 온 아이가 있다. 어쩌다 한번 가는 수영장에 자주 입지도 않는 수영복의 비싼 돈이 부담이었거나 늦게 지쳐 들어와 아이의 알림장을 열어볼 겨를도 없는 엄마가 아침에 부랴부랴 챙겨준 것이리라. 삶의 고단함이 엿보인다.

 

이 엄마는 자신의 아이가 이날 하루만 '나는 다른 아이들과 옷이 달라'라는 수치심을 견디며 되는 일이라고 믿었을 것이며, 더 정확하게는 아이가 그런 걸 느낄지 어떨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고, 아이란 몸이 계속 자라게 마련인 데다, 자라나서도 모녀가 물놀이를 떠나거나 아이가 정기적으로 스포츠센터에 다닐 예정은 없을 테니 일회성 행사를 위한 수영복 준비한 돈 낭비일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으리라. (p.90)

 

 

 

그런 아이들의 교사인 F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 준비물을 잘 챙겨오는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 사이에 차별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을 진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도 통제나 관리의 한 방법으로 필요하다. 아이들을 향한 불만이라기 보다 어른들에게 외치는 외침일 것이다.

준비물도 잘 챙겨오지 않아 다른 아이들과 선생님을 곤란하게 하지만 사소한 것에 자신의 아이에게 이익을 주고 싶은 엄마의 모습. 드디어 교사인 F는 아이들에게 소리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소리친 F는 교육자로서 큰 실수를 했고 금방 후회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지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되었다. 한번 뱉은 말은 다시 담을 수 없다.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고의가 아니었던' 그 말에 다른 사람이 상처를 받았고 사건이 일어나고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이런 일들은 현실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사회의 계층은 물과 기름처럼 나뉘고 섞일 수 없다.

그 중간에 서 있는 중간자인 F. 두 층을 이어주는 역할이지만 불평등을 어떻게 해결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F의 죽음으로 불평등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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