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내 가여운 개미
류소영 지음 / 작가정신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잡은 단편집.

평소엔 단편집 읽기를 즐기지 않는다. 단편집의 특성상 이야기가 전개되는 듯하다가 급마무리되어 스토리와 함께 흘러가던 감정의 선이 하늘로 올라가는 썩은 동아줄을 잡고 있다 '툭!'하고 끊기는 느낌이다. 너무 몰입해서 읽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이야기에 빠져 이야기속의 인물처럼 이야기를 따라가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첫번째 '물소리'는 댐 건설로 수몰 예정인 작은 시골 마을에 답사를 간 사람들의 이야기다.

역사적인 유물 현장을 찾으러 갔지만 수몰되는 농촌 마을만이 있다. 노인들만 남은 작은 마을. 볼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조용하다. 처음엔 왜 이런 시골로 답사를 왔나 의아했지만 댐건설로 수몰되면 이 마을은 영원히 볼 수 없게 된다. 역사속에, 그것도 이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속에만 존재하는 현장이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물 속으로 사라지고 과거형이 되어 물소리와 함께 흘러갈 것이다.

 

 

 

두번째는 이 책의 타이틀과도 같은 제목인 '개미, 내 가여운 개미'이다.

개미가 왜 가여울까...궁금증이 생겼다. 이야기는 이랬다. 너무나 어렵고 어려운 사돈처녀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우연히 형의 신혼집에 함께 살게 되었는데 마침 형수의 여동생도 함께 살게 된 것이다.

조용하고 움직임도 없어 한 집에 있어도 뭘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의 움직임을 하던 그녀.

그녀의 큰 비밀을 알아버린다. 새벽에 우연히 깨었는데 그녀가 냉장고 앞에서 음식을 먹고 있었다.

거식증이었다. 비밀을 공유한 두 사람은 거식증의 원인을 찾으려고 하지만 그녀의 기억속엔 없었다.

희미하지만 어린 시절 개미를 먹었던 기억에서부터 거식증이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추측만 한다.

그런 그녀가 교통 사고로 죽는다.

 

사춘기 같은 갱년기를 겪고 있는 남편의 어머니가 아무런 말 없이 가출을 했다.

시어머니의 자아찾기 가출을 그린 '또 밤이 오면',친구에게 소개팅을 잘못해줘 자신의 여동생을 소개하려는 남자가 본 여동생의 춤에 관한 이야기 '윤미와 춤을', 새로 바꾼 핸드폰으로 자꾸 걸려오는 잘못건 전화와 메시지에 시달리는 여자의 독백 '기억할 만한 지나침'등이 이 책을 가득 채우고 있다.

 



 

총 8펀의 단편들이 실려있는 <개미, 내 가여운 개미>중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기록'이라는 작품이다.

입안에 빨래 많이 꽂기 대회에 나간 취업준비생이 나오는 이야기다. 취업 준비생인 '나'는 단순하게 가출을 하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 웃기지도 않는 대회에 나왔다.

취업을 준비하는 27살 나는 집에서 눈치가 보인다. 나이가 들도록 매일 공부만 하는 것이 부모님도 못마땅할 것이다. 건강한 청년이 일을 하지 않고 백수라니, 취업 준비만 한다니.

 

그에 반항이라도 하듯 가족들이 약간 놀랄 정도로 10일만 가출을 하려고 하는데 역시나 돈이 없었다.

가출용 비자금을 만들기 위해 대회에 나왔는데 옆에서 훌라후프를 돌리는 아줌마가 막강한 라이벌로 보인다. 꼭 이겨서 상금 2백만원을 타야한다. 물론 세금을 빼면 160여 만원 밖에 되지 않는다.

 



 

이 '기록'이란 단편은 코믹한 소재로, 코믹하게 그려져 있지만 요즘말로 "웃픈(웃기지만 슬픈)"이야기다. 취업 준비만 몇년째인 젊은이를 보면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주위에 흔하게 볼 수 있는 젊은 비자발적 실업자들. 일을 하고 싶지만 일자리가 없는 현실이다.

그런 젊은이들이 점점 자괴감에 빠지고 가족들의 눈치를 보며 하루하루 용돈에 손 벌리고 숨죽이고 살아야 하는 것이 슬프다. 자신도 이 빨대꽂기 대회가 웃기다는 것을 알지만 생존을 위해 나온 것이다.

 

상상해보라. 입안에 100여개가 넘는 빨대가 꽂혀있는 것을......목도 마르고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침도 흐른다. 하지만 돈을 위해 참아야 한다. 절대 포기할 수 없다.

누가 우리 젊은이들을 "웃프게" 만드는가.

 

소설집의 초반에 이런 말이 나온다.

 

"사는 게 참 신맛이다. 시리고 또 시리다" (p.28)

 

그러게 인생은 참 신맛인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