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판을 짜다 - 가치의 붕괴와 새로운 모색 인생 전환점에서 춘추전국을 읽다
장박원 지음 / 행간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라 함은 중국의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통틀어 일컫는 말로, 극도의 혼란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춘추시대(春秋時代)'는 중국 주왕조의 봉건제도가 무너지기 시작하여 제후들이 패권을 다투던 시대로 전쟁이 끊이지 않는 하극상과 약육강식의 세태를 이루었다. 춘추 말기에는 100여 제후국 중에서 비교적 세력이 강한 14개 국만 남았을 정도로 부침이 심했다.

 

진나라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할 때까지의 시대를 말한다. 이 시대에는 전쟁의 규모나 기간이 춘추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었으며, 봉건제도는 완전히 붕괴되어 중국은 온통 혼란에 빠져 하루도 전쟁이 없는 날이 없었으므로, '전국시대(戰國時代)'라 부르게 된다.

 

 

 

중국은 남북한의 국토보다 약 40배나 더 넓을뿐만 아니라 그 넓은 땅에 우리의 오천년이란 역사에서도 알 수 있듯 수많은 나라들이 세워지고 없어졌다. 영웅은 난세에 나타나듯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때에 인생이나 나라에 전환점을 알려줄 인재들이 나타난다.

 

중국 춘추전국 시대에 살았던 많은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의 지식을 함께 보며 어렵고 힘든 고난을 이려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줄 것이다.   

춘추전국시대에 이름을 알린 사상가로 '공자'나 '손자', '한비자' 등은 많이 알려져있다.

그들을 제외한 몇몇 사상가들에 대해 알아보자.



 

 

 

고사성어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관중'과 '포숙'과의 변하지 않는 우정을 뜻하는 말의 대명사가 되었다. '관포지교'의 '관중'은 빈궁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와 가족을 부양해야 했기 때문에 젊은 시절부터 장사를 했다. 그러던 중 부잣집 아들 포숙과 동업을 하게 되었는데, 신분마저 낮은 관중과 포숙이 동업을 한데에는 이유가 있다. 관중의 안목 때문이었다. 강직한 성격의 포숙과는 달리 관중은 상황에 따라 변하기도 하고 타협하기도 하며 일을 했다. 서로의 장단점을 잘 보완했기 때문에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로 오랫동안 함께하지 않았나 싶다.

 

관중은 현실적이며 가장 잘 이루어질 수 있는 목표를 정해 행동하고 판단하는 사람이었다.

관중의 지속가능하고 혁신적인 개혁은 요즘 기업에도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혁신과 개혁을 추진하되 안정된 시스템을 추구하기에 백성들에게 환영받았다.

 


 

 

 

'손자병법'의 '손자'와 함께 중국의 2대 병법서로 불리는 '오자병법'을 쓴 '오기'는 병법서에서도 정치와 군대에 대한 개혁사상이 들어있다고 알려져 있다.

오기의 일화들에서 보면 현대의 '연고주의' 또는 '족벌주의'를 타파하려 했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지만 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연고주의와 족벌주의에 막혀 출세를 할 수 없었던 오기는 나라를 떠난다. 노나라로 간 오기는 돈을 벌게되고 초도왕을 만나면서 그의 뜻을 펼칠 수 있게 된다. 오기의 개혁은 시대와 장소를 떠나 객관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어 초도왕과 의기투합한다.

하지만 연고주의와 족벌주의는 현대까지 남아있어 얼마나 그 생명력이 질긴지 잘 알수 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은 갚는다"라는 말이 있듯 상대방을 잘 설득하면 어떤 어려움이나 난관이든 해결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말을 잘 보여주는 예가 소진과 장의다. 그들은 전략적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사고 설득하여 위기에서 벗나난 사람들이다.

또한 맹상군은 인맥을 중요하게 여겨 인맥으로 자신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  외에도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공자는 배움과 가름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손자는 싸움도 단순한 것이 아니라 시작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한비자 역시 비전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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