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 인 서울
방현희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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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많은 사람들과 무명인이 잘 어울리는 도시라는 공간적 배경은 이가 잘 맞는 톱니바퀴 같다. 작은 톱니들이 모여 하나의 큰 톱니가 돌아갈 수 있게 만든 톱니바퀴.

그 작은 톱니바퀴들의 이야기가 <로스트 인 서울>이라는 단편집이다.

 

첫번째 단편부터 예전의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이나 '타락천사'의 화면을 채우던 '스텝페인팅'이라는 영화을 생각나게 했다. '스텝페인팅'이란 주인공은 가만히 보통으로 움직이고 주위환경이 빠르게 또는 느리게 움직이는 그런 기법으로, 소설 속의 주인공은 정지된 것 같이 느리게 움직이지만 그의 주위 환경은 의식하지 못한 채 빨리 움직이고 있는 느낌이었다. 도시의 느낌이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나만 정지된 것 같고 나머지는 정신없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그것이 거대한 도시다.

 

 

 

 

<로스트 인 서울>은 동명의 단편 외에 총 7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한국, 중국, 일본 등을 배경으로 하는 단편들은 하나같이 외로움을 주제로 하듯 쓸씀함과 외로움이 가득한 이야기들이다. 도시인들을 단적으로 외롭다는 것을 표현하기라도 하듯 말이다.



'로스트 인 서울'은 '코이안드림'을 꿈꾸는 여자의 이야기다. 한국 남자를 잘 만나 한국에 정착하는 것이 꿈이지만 그녀는 남자의 '애인'일 뿐이다. 몰래 아파트와 차를 사주고 가끔 집에 들르는 남자와의 만남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방송국에서 리포트를 하던 그녀는 말실수로 대중들의 질타를 받고 방송과 남자에게 퇴출된다. 그래도 한국을 떠날 수 없었던 그녀의 지금 모습은 수 많은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한국을 온 외국여성들의 모습이 아닐까. 우리가 수십 년 전에 '아메리칸드림'이라는 것을 꿈꾼 것처럼.



'탈옥'은 감옥을 탈출하고 싶은 한 죄수의 끝없는 자유로의 갈망을 이야기한다.

자신만을 감시하는 간수의 눈을 피할 방법은 하나도 없다. 24시간 자신을 감시하는 CCTV도 있다.

어떻게 하면 좁은 감방을 탈출할 수 있을까? 기발한 방법으로 탈옥을 꿈꾸지만 최후엔 씁쓸함을 느끼게하는 이야기.



'후쿠오카 스토리'는 오랜시간 함께 지낸 4명의 친구들 이야기다.

일본이라는 낯선 땅에서 만난 남녀들. 금방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된다. 힘든 유학 생활을 서로에게 의지하며 지낸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네 사람. 하지만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연인들의 관계가 흔들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시 옛 생각을 하며 요트를 타고 후쿠오카로 떠난다.

바다위에 뜬 요트는 바람과 파도에 부딪치며 흔들리다 사고가 나는데......

'후쿠오카 스토리'에는 '위급 상황에서의 이별에 관한 섬세한 보고서'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더 말하지 않아도 네 사람의 상황을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는 부제가 아닌가 싶다.


 

 

감성 가득한 단편들. 그런데 감성 가득하다고 말랑말랑하고 눈물 나는 핑크빛 감성이 아니다.

차갑고 도시의 그늘이 느껴지는 단단한 껍질을 가지고 있는 감성들이다.

눈물보다 가슴을 아프게 하는 단편들. 우리가 지금 도심 속에서 느끼는 잔상들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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