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정체가 모호한 어떤 격렬한 감정. 심장을 찢어발리고 와해시키고 산산이 부수는 감정.

그러나 이상하게도 동시에 마음을 하없는 심연 아래도 가라앉게 만드는 감정. 나는 감정이다. (p.36)

 

배수아 작가님의 신작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를 읽고 얼마전에 본 예술영화가 생각이 났다.

평소에 자주 즐기는 장르의 영화는 아니지만 그날은 보고 싶었다.

1시간 넘게 보아도 잘 이해되지 않아 영화를 중간에 그만 볼까 생각했다. 하지만 결말은 봐야겠다는 생각에 끝까지 보았는데 지금도 다 이해는 되지 않는다. 약간 답답하기도 했다.

 

감정의 선은 끝없이 뻗어나오는데, 그 감정의 선을 이해를 못하겠으니 얼마나 답답한지는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이 책도 처음 한 번 읽고 답답했다.

뭔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알겠는데 그 이야기가 '뭔지' 맥을 잡지 못하겠고, 책에 나오는 자동으로 켜지고 꺼지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처럼 나와 주파수가 맞지 않아 지지직거려 귀를 간질간질하게 하는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다. 

 

궁금한 거 참으면 병 된다고 해서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를 과감하게 포기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고지가 20페이지 남은 책을 포기하고 다시 처음부터 읽기로 했다.

어렴풋하게 알면서 '아는 척'을 하고 싶지 않았다.

김아야미와 독일어 선생님 여니, 오디오 극장장, 독일인 작가 등이 관계와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특이한 이름의 아야미는 전직 무명 배우 출신이다. 그런데 지금은 오디오 극장에서 일한다.

요즘은 볼 수 없는 오디오 극장에서 일하지만 정해진 일은 없다. 극장에서 음반을 빌려주는 사서로도 일을 한다. 하지만 이 극장도 문을 닫는다. 그렇다고 달리 할 일은 없다. 오라는 곳도 없다. 


 

 

어린 아야미는 길을 걷다가 조그만 푸른색 돌을 발견하고 그것을 집어 들었는데, 돌 아래 깊은 구멍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 구멍은 동시에 존재하는, 거울 반대편의 세상으로 통하는 구멍이었다(고 누군가로부터 들은 기억이 떠오른다). 깜깜한 구멍 저편으로는 또 하나의 아야미가 또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다. (p.69)

 

등장인물도 많지 않은 이 소설엔 여러개의 조각같은 이야기들로 나뉜다.

아야미와 극장장, 아야미와 독일어 선생님 여니, 아야미와 부하, 아야미와 독일인 작가 볼피.

그 이야기들은 각각의 에피소드들 같지만 또 퍼즐 조각처럼 되어 있어 마지막엔 모두 연결되어 제자리를 찾으면 하나의 큰 퍼즐이 되는 것 같다.

사실 그 조각을 하나하나 찾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서 아마 책을 두번 보게 만들었나 보다.

두번째도 첫페이지부터 마지막페이지(작품해설)까지 읽었다. 뭔가 빠진 퍼즐이라도 있는지 찾으려는 노력을 하게 만들었다.

 

네 가지 장에 걸친 이야기는 그물처럼 온 사방에 연결되어 있어 이야기에 진입한 독자가 길을 잃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p.206)

 

길을 잃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니 두 번 읽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길을 잃게 만드르려고 작가는 각각의 단서들이 퍼즐의 고각과 같이 사방에 흩어려 놓았는지도 모른다. 그 이야기 속에 오랫동안 머물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정답은 없다. 길을 잃고 방황해도, 영원히 이야기속에 머물러도 상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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