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옌롄커 지음, 문현선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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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사서(四書)>를 읽고 이해하려면 중국의 문화대혁명이라는 사건을 알아야 한다.

이 사건은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중국의 주석이었던 마오쩌둥의 주도아래 10년간 벌였던 사회운동이다. 농업국가였던 중국에 과도한 중공업 정책을 펼쳐 국민경제가 파탄이 나는 결과를 초래했다.

권력의 위기를 느낀 마오쩌둥은 부르주아 세력의 타파와 자본주의 타도를 외치면서 이를 위해 청소년들이 나서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 청소년으로 구성된 '홍위병'이 조직되었고 마오쩌둥의 지시에 따라 전국을 휩쓸어 중국은 일시에 경직된 사회로 전락하게 되었다.

 

권력의 위기를 느낀 마오쩌둥은 부르주아 세력의 타파와 자본주의 타도를 외치면서 이를 위해 청소년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처] 문화대혁명 | 두산백과

 

 

 

1966년 5월~1976년 10월에 걸쳐 중국에서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던, 정치적 문화운동을 지칭.

 

'문혁(文革)'이라 줄여 부르기도 한다. 1958년 당(黨)의 일선에서 물러났던 마오쩌둥(毛澤東)과 천보다(陳伯達), 장칭(江靑) 등이 실용주의적 노선의 류사오치(劉少寄) 집단에 대해 대중을 동원하여 정치적으로 도전했던 것이 이 운동의 본질적 성격이다. 마오쩌둥은 린뱌오의 협력에 힘입어 인민해방군 내에서 마오쩌둥 사상의 학습운동을 전개함으로써 군부를 자신의 정치적 기반으로 장악한 뒤, 군부를 배경으로 중학생으로 충원된 홍위병(紅衛兵)을 동원, 류사오치를 축출하고 당의 패권을 잡았다. 그러나 마오쩌둥의 죽음과 4인방(四人幇)의 몰락, 덩샤오핑(鄧 小平)의 부활로 문혁은 1977년 종료가 공식적으로 선언됐다. (출처-시사상식사전)

농업국가인 중국에서 과도한 중공업 정책을 펼쳐 정책 국민경제가 좌초되는 실패를 가져왔고 민생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자본주의 정책의 일부를 채용한 정책이 실효를 거두면서 류사오치 劉少奇(유소기)와 덩샤오핑 鄧小平(등소평)이 새로운 권력의 실세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권력의 위기를 느낀 마오쩌둥은 부르주아 세력의 타파와 자본주의 타도를 외치면서 이를 위해 청소년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 각지마다 청소년으로 구성된 홍위병이 조직되었고 마오쩌둥의 지시에 따라 전국
[출처] 문화대혁명 | 두산백과
마오쩌둥(毛澤東)에 의해 주도된 사회주의에서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대중운동이었으며 그 힘을 빌어 중국공산당 내부의 반대파들을 제거하기 위한 권력투쟁이었다.

농업국가인 중국에서 과도한 중공업 정책을 펼쳐 정책 국민경제가 좌초되는 실패를 가져왔고 민생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자본주의 정책의 일부를 채용한 정책이 실효를 거두면서 류사오치 劉少奇(유소기)와 덩샤오핑 鄧小平(등소평)이 새로운 권력의 실세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권력의 위기를 느낀 마오쩌둥은 부르주아 세력의 타파와 자본주의 타도를 외치면서 이를 위해 청소년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 각지마다 청소년으로 구성된 홍위병이 조직되었고 마오쩌둥의 지시에 따라 전국을 휩쓸어 중국은 일시에 경직된 사회로 전락하게 되었다. 마오쩌둥에 반대되는 세력은 모두 실각되거나 숙청되었고 마오쩌둥 사망 후 중국공산당은 문화대혁명에 대해 ‘극좌적 오류’였다는 공식적 평가와 함께 문화대혁명의 광기는 급속히 소멸되었다.


[출처] 문화대혁명 | 두산백과
 
 
 
 
 
 
 
마오쩌둥(毛澤東)에 의해 주도된 사회주의에서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대중운동이었으며 그 힘을 빌어 중국공산당 내부의 반대파들을 제거하기 위한 권력투쟁이었다.

농업국가인 중국에서 과도한 중공업 정책을 펼쳐 정책 국민경제가 좌초되는 실패를 가져왔고 민생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자본주의 정책의 일부를 채용한 정책이 실효를 거두면서 류사오치 劉少奇(유소기)와 덩샤오핑 鄧小平(등소평)이 새로운 권력의 실세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권력의 위기를 느낀 마오쩌둥은 부르주아 세력의 타파와 자본주의 타도를 외치면서 이를 위해 청소년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 각지마다 청소년으로 구성된 홍위병이 조직되었고 마오쩌둥의 지시에 따라 전국을 휩쓸어 중국은 일시에 경직된 사회로 전락하게 되었다. 마오쩌둥에 반대되는 세력은 모두 실각되거나 숙청되었고 마오쩌둥 사망 후 중국공산당은 문화대혁명에 대해 ‘극좌적 오류’였다는 공식적 평가와 함께 문화대혁명의 광기는 급속히 소멸되었다.


[출처] 문화대혁명 | 두산백과
마오쩌둥(毛澤東)에 의해 주도된 사회주의에서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대중운동이었으며 그 힘을 빌어 중국공산당 내부의 반대파들을 제거하기 위한 권력투쟁이었다.

농업국가인 중국에서 과도한 중공업 정책을 펼쳐 정책 국민경제가 좌초되는 실패를 가져왔고 민생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자본주의 정책의 일부를 채용한 정책이 실효를 거두면서 류사오치 劉少奇(유소기)와 덩샤오핑 鄧小平(등소평)이 새로운 권력의 실세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권력의 위기를 느낀 마오쩌둥은 부르주아 세력의 타파와 자본주의 타도를 외치면서 이를 위해 청소년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 각지마다 청소년으로 구성된 홍위병이 조직되었고 마오쩌둥의 지시에 따라 전국을 휩쓸어 중국은 일시에 경직된 사회로 전락하게 되었다. 마오쩌둥에 반대되는 세력은 모두 실각되거나 숙청되었고 마오쩌둥 사망 후 중국공산당은 문화대혁명에 대해 ‘극좌적 오류’였다는 공식적 평가와 함께 문화대혁명의 광기는 급속히 소멸되었다.


[출처] 문화대혁명 | 두산백과

 

 

 

 

이것이 문화대혁명에 관한 역사적 내용이다.

여기서 '농업국가인 중국'과 '자본주의 타도', '홍위병'라는 세 대목을 유심히 보아야 한다.

바로 <사서>의 주요 골자이기 때문이다.

 

때는 혁명이 한창인 시기로 많은 사람들이 항허 강변의 황량한 땅 99구라는 지역 수용소에 있다.

그들은 이름도 없다. 이름보다는 그들이 전에 가지고 있었던 직업이나 하던 일로 불리게 된다.

글을 쓰는 나인 작가, 종교, 음악, 교수, 과학자 등 시대의 지식인들을 모두 모아두었다.

이런 지식인들은 '사상이 불충'하다는 이유로 잡혀와 노동을 하며 당에 충성하는 마음을 키우고 있다.

그들은 목표량을 생산하면 상으로 종이꽃을 받는다. 그 꽃송이가 모여 오각별로 교환이 되고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그들의 희망은 온통 종이꽃을 모으는 일이다.

 

99구의 죄인들은 서로를 감시하고 자신이 살아 남기 위해 다른 사람을 고발하여 종이꽃을 얻으려고 안달이다. 그래서 밤마다 볼래 만나는 남녀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구석구석 숨어서 지켜본다.

 

작가인 나는 99구의 감독관인 사춘기 소년 '아이'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아이의 명령에 따라 99구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 글은 밀고서였다. 수용소의 사람들은 점점 서로를 감시하다 못해 작은 잘못도 용서하지 못하고 밀고하려든다. 그래서 다툼도 일어나고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된다.

인간의 윤리와 도덕, 인간성이 모두 파괴되어 가고 본능만 남게 되어 그들의 삶은 지식인층으로 보기 힘들게 된다.

 

처음 99구의 감독관은 지식인들이 수용소로 몰래 가지고 오는 책들을 모두 모아 불지른다.

하지만 그 중에 숨겨둔 책들이 있는데 그것을 밀고하면 종이꽃이라는 보상을 준다고 한다.

마지막 남은 책까지 감독관 아이는 모아 겨울철 난로 땔감으로 사용한다.

이것은 바로 서양문물, 부르주아, 자본주의를 타도하는 중국 문화대혁명의 한 방식이다.

 

수용소의 사람들은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지만 겨울이 되어 식량이 모자라게 된다.

그렇게 되자 먹을 것을 얻기 위해 그들은 자신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도 없이 빵 한조각에 매춘을 하거나 시체를 파헤쳐 인육을 먹기도 한다.

 

이런 인간성 상실의 일을 사춘기를 갓 벗어난 '아이'가 모두 관리한다.

이 '아이'가 바로 '홍위병', 청년 공산당원이었던 것이다.

<사서> 한권으로 중국 문화대혁명을 공부할 수 있어 역사 이해해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이미 중국 문학에서 문화대혁명을 소재로 한 소설은 많이 있다. 전에도 읽어본 적이 있다.

작가 옌롄커의 <나와 아버지>에도 이 문화대혁명이 배경이 되어 중국의 농촌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농업국가인 중국에서 과도한 중공업 정책을 펼쳐 정책 국민경제가 좌초되는 실패를 가져왔고 민생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자본주의 정책의 일부를 채용한 정책이 실효를 거두면서 류사오치 劉少奇(유소기)와 덩샤오핑 鄧小平(등소평)이 새로운 권력의 실세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권력의 위기를 느낀 마오쩌둥은 부르주아 세력의 타파와 자본주의 타도를 외치면서 이를 위해 청소년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 각지마다 청소년으로 구성된 홍위병이 조직되었고 마오쩌둥의 지시에 따라 전국
[출처] 문화대혁명 | 두산백과

 


 

 

 

"말하라니까!" 아이가 어름장을 놓았다.

"네 사람을 대면 당신이 121송이를 인정하고 네 송이를 더 주겠다. 그러면 당신들은 125송이가 되고, 그건 오각별 다섯 개와 맞먹으니까 당신이나 음악은 완전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p.273)

 

나는 정말 선량한 책, 아이를 위한 것도, 국가를 위한 것도, 민족과 독자들을 위한 것도 아닌 오직 나 자신을 위한 책을 쓰고 싶었다.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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