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이름으로 - 학교폭력과 18년,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김종기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모성애도, 부성애도 어느 것이 더 진하다고 말할 수 없다.

부모에게 아프지 않은 자식이 있을까. 자식은 다 같은 자식이지 않은가.

그런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도 학교 폭력으로 말이다. 다 컸다고 생각할 수도 없는 17살의 나이에 말이다.

 

이 <아버지의 이름으로>라는 책은 바로 그런 한 아버지, 흔히들 말하는 '엄친아' 아들을 잃은

한 아버지의 사자곡(思子曲)이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일 때문에 외국에서 자랐다.

특히 초등학생 시절을 보낸 홍콩에서 아들은 말그대로 타의 모범이 되는 아들이었다.

외국인 학교에서 자랑스런 한국인으로 나라를 자랑스럽게 알리고 공부, 운동까지 못하는게 없었다.

그런 아들을 일을 하느라 자주 이야기를 하거나 겉으로 표현해 주지 않았다.

보통의 한국 아버지처럼 일이 바쁜 아버지였다.

 

그러다 일 때문에 다시 한국으로 들어와 중학교를 다녔다.

어디에 가든 아이들은 잘 적응하며 자랄 것이라고 여겼던 아버지.

중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는 것을 보고 마음을 놓았다.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공부까지 잘했으니까

이만하면 한국생활도 적응을 완료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춘기가 절정에 달하는 고등학생 시절을 몇달 보내지 않고 아들은 아파트 계단의 창문에서

투신해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만다. 무엇이 아들을 그렇게 힘들게 만들었을까.

아버지는 충격에 퇴직을 하고 아들의 죽음의 책임을 찾으려고 한다.

왜 아이가 죽어야만 했을까? 그 만큼 힘든 일이 무엇이었을까?

아버지는 평소에 다정하고 인자한 아버지는 아니었다고 하신다.

그렇지만 아들의 죽음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남은 가족들의 삶도 달라지고.

 

아들이 죽음을 선택할 때만 해도 18년 전이니 '학교폭력'같은 인식이나 자각도 없었다.

아니 심지어 '학교폭력'이라는 단어도 없었다. 그렇다 보니 아이가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아니라 그냥 자살을 선택한 학생일 뿐이었다. 정말 답답할 노릇이었다. 죽음의 원인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아버지는 분노할 만했지만 분노 대신 더 이상 자신의 아들같은 아이들이 세상에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청예단(청소년 폭력예방 재단)"을 만든다.

 

이 재단으로 많은 아이들의 목숨을 살리는 것이 아버지의 목적이고 아들의 죽음을 헛되게 만들지 않게 된 것이다. 지금은 더 많은 아이들이 학교폭력에 시달린다. 이젠 사람들이 인식을 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위험하고 힘든지 알게 된 것이다. 앞으로도 아버지는 계속 아들을 위해 아이들을 걱정하고 고통에서 구해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