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테레지아 - 오스트리아 최초의 여왕 서양근대사총서 6
김장수 지음 / 푸른사상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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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대통령제를 선택하고 있지만 총리나 왕족이 있는 나라도 있다. 특히 유럽은 오랫동안 절대왕정의 시대였고 지금도 왕족이 나라의 중심인 나라도 있다. 그런 유럽의 왕조 중에서 유명 여왕들이 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스페인의 이자벨 1세,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 등 세계사를 기록한 여왕등이다. 이들 중에 마리아 테레지아는 유럽 패권을 600년 간 차지한 함스부르크 가문의 수장이었다. 신성 로마 제국의 황후이자 실질적인 통치자이기도 했던 마리아 테레지아는 오스트리아의 국모로 추앙받고 있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버지 카를 6세는 형인 요제프 1세가 남자 후계자 없이 사망함에 왕위를 계승했지만 카를 6세 역시 아들이 없었다. 태어났던 아들은 생후 7개월에 사망하고 딸만 셋을 더 낳았다. 당시에도 여성은 왕이 될 수 없다는 법이 있었고 카를 6세는 아들을 낳을 수 없을 것 같아 장녀 마리아 테레지아가 왕위를 승계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카를 6세는 아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는지 마리아 테레지아가 왕위를 승계할 때를 대비한 교육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7년 전쟁이 종식되자 오스트리아의 선진국화를 위해 여러 가지 내정 개혁을 실행에 옮겨 큰 성과를 거둔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버지 카를 6세는 신성로마제국의 프란츠 1세와 결혼시킨다. 남편 후보가 여럿 있었지만 프란츠와 결혼하고 마리아 테레지아가 신성로마제국의 정치에 관여할 수 있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하우크비츠가 주도한 조세 개혁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는데 이는 프로이센에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한 군대 양성의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 마리아 테레지아는 군 전반에 대한 개혁 및 개편을 시행했다.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던 각 지방 단위의 징모와 군량 공출, 영주 자의에 따른 연대제를 폐지하고 각 영주의 병력을 통합하여 전국 규모의 오스트리아군을 발족시켰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의학 분야를 넘어 광범위한 교육개혁도 주장했다. 빈 대학의 신학부와 법학부도 개혁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1740년부터 1780년까지 40년 동안 오스트리아 왕국을 통치했다. 강한 결단력과 여성성을 겸비하고 위정자로서의 의무 수행이나 성실성을 중요한 덕목으로 간주했기에 오스트리아인들로부터 존경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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