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마톤즈 학교 - 이태석 신부로부터 배우는 네 개의 메시지
구수환 지음 / 북루덴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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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이슈가 의대 정원을 놓고 정부와 의사들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의료대란이 염려되고 있다. 그런 뉴스 중에 이런 뉴스가 눈에 들어왔다. 아프리카 남수단의 톤즈 지역 출신의 의사 2명이 한국 전문의 자격시험을 통과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정식 의사 자격을 얻었고 의사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들은 한 유명 프로그램에 출연해 하루에 3시간 자면서 의대 공부를 했다고 했으며, 한국어 역시 유창했다.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너무도 잘 보여주었고 이 두 의대생은 고(故) 이태석 신부의 제자였다. 이들은 한국에서 의사로 생활할 수 있지만 다시 남수단으로 돌아가 의료 활동을 하고 후배 의사를 양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두 사람의 기사를 보면서 이태석 신부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었는지 알 수 있었다. 고(故) 이태석 신부는 부산에서 태어나 인제대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된 뒤 사제가 되었다고 한다. 2001년 아프리카 남수단의 오지 톤즈에서 병원과 학교, 기숙사를 짓고 구호와 의료, 선교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2010년 대장암으로 선종했다.

<울지마톤즈 학교>는 고(故)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준 PD가 들려주는 톤즈와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이다. 2010년 우연히 알게 된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는 너무나 호기심을 자극했다. 수단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의사 출신 사제의 이야기는 아프리카를 자원한 최초의 한국인 신부였다. 톤즈의 이태석 신부를 만나러 가는 길은 너무 멀고도 험난했다. 톤즈는 남수단의 시골 중에서도 시골이었고 외국 언론사 취재를 거부할 수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이태석 신부를 만났지만 실제로 본 톤즈는 더 열악했다. 엄청나게 더운 날씨와 말라리아 모기와의 전쟁이었다. 톤즈 병원은 규모로 보면 시골의 조그마한 의원 수준이었지만 진료 과목은 종합병원이었다. 의사는 단 1명이다. 톤즈 공동체에는 가난과 전쟁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태석 신부가 고민하고 애쓴 흔적이 남아 있다. 아이들을 위해 농구 코트를 만들고 집이 먼 아이들을 위해 기숙사를 만들어 열악하지만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키워나갈 수 있게 했다. 이태석 신부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 아이들은 신부님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린다. 이태석 신부는 우리의 곁을 떠났지만 너무나 많은 것들을 남겨두고 떠났다. 이기심이 팽배한 현대사회에 이타심을 몸소 보여주며 깊은 사랑을 남기고 간 고(故) 이태석 신부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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