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이 꼭 알아야 할 일제강점기 역사
이영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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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2024년 3월 1일이 다가온다. 대한민국에게 3월 1일, 3.1절은 역사적인 날이다. 1919년 1월 고종이 사망하고 이 갑작스런 사망으로 조선인들의 민족의식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2월에 만주에 있던 민족운동가들이 독립선언을 발표한다. 독립선언서를 작성할 당시 독립을 요구하는 간단한 탄원서를 작성해 조선총독부에 제출하려고 했지만 종교 대표자들이 참석하면서 더욱 거사가 되었다. 3월 1일 독립선언서가 탑골공원에 모인 인파들 앞에서 발표가 될 예정이었지만 경찰들이 출동해 민족대표들을 체포해 간다. 3월 1일 만세시위는 서울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고 매일 같이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서울로 유학 와 있던 지방 출신 학생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3.1운동의 현장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만세 시위를 퍼지게 한다. 그 중 충청도 천안의 만세 시위를 주도한 16살의 학생이 유관순이었다.

얼마 전 논란이 된 '홍범도 장군'은 간도에서 터전을 잡고 있던 기독교 독립단체 대한국민의회의 지원을 받고 산하 부대인 대한독립군의 사령관이 된다. 1920년 대한북로독립군부로 합치고 봉오동에 기지를 두고 군대 양성과 훈련을 한다. 일본 사령관이 봉오동을 기습 공격했고 홍범도는 봉오동의 입구 쪽에 유격부대를 두어 일본군을 골짜기 깊숙이 유인해 매복해 있다 일본군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 봉오동 전투가 일본군을 전쟁으로 무찌른 최초의 전투이자 독립전쟁의 서막이었다. 이런 역사적 사건을 남긴 봉오동 전투의 대표적인 인물로 여천 홍범도를 꼽는다. 일본강점기라고 일본인들이 조선에서만 조선인들을 괴롭힌 것은 아니다. 일본 간토 지방에는 식민지 조선인 유학생과 노동자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1923년 9월 간토 지방에 강진이 덮치고 엄청난 피해를 입히게 된다. 이런 천재지변으로 인한 공포가 조선인을 향한 공분으로 폭발하게 된 것이 '관동대학살'이다. 일본 정부가 조선인 관련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하면서 일본인들의 분노가 학살을 초래한다. 이후 관동대학살의 진실이 밝혀졌지만 일본정부는 책임을 회피하고 사건을 축소해 기록하는 등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10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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