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 동안 핀 꽃 - 최초의 지역 축제 ‘춘향제’를 만든 최봉선
김양오 지음, 곽정우 그림 / 빈빈책방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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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인물이지만 '성춘향'은 상징적인 인물이다. 신분차별, 성차별이 심했던 조선시대에 기생의 딸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춘향은 자신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었던 여성으로 신분차별과 성차별을 뛰어넘는 인물로 그려졌다. 그런 춘향을 기리기 위한 지역 축제인 '춘향제'는 의미가 있는 행사이다. 더구나 이 지역 축제 춘향제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졌다고 한다면 더욱 큰 의미를 가질 것이다.


부산 동래 기생 최봉선은 동생 수련과 함께 남원으로 간다. 원래 최봉선이 소리를 잘해 명창으로 통했고 소리꾼들이 많은 남원에서도 인정 받는다. 일제 강점기에 기생의 수는 많이 줄어들었고 권번이라는 조합이 생겨 기생을 관리했다. 1907년 관기 제도가 폐지되고 전국에 기생 조합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권번은 기생 조합의 일본식 명칭이었다. 권번은 기생들이 돈을 모아 함께 운영하는 회사이기도 하고 어린 여자아이들을 기생으로 키우는 학교이기도 했다. 당시 남자들도 권번의 기생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었고 권번 기생들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 춤과 노래와 솜씨를 파는 예술인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기생을 천한 신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갑오개혁에 신분제도가 없어지고 진주에서는 형평운동까지 일어나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던 때 천한 사람 귀한 사람이 따로 없었다. 동학운동까지 일어 모든 사람이 똑같이 귀하고 평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평등 정신을 가지게 되었지만 나라는 잃었고 일본인들이 남원 광한루를 차지하게 된다. 남원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제2의 만세운동이나 비밀 모임 등을 통해 나라의 독립을 외치고 있었다. 최봉선은 기생의 딸로 태어났지만 어사부인이 된 춘향이를 위한 사당을 짓게 된다. 그곳에서 춘향의 제사를 지내주며 신분 타파와 민족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함이었다. 처음엔 춘향제가 시작될 때는 기생들이 춘향의 제사를 지내고 판소리 대회도 하는 큰 행사였지만 일본의 탄압으로 겨우 제향만 지내게 되었다. 1930년대 일본은 조선민족말살정책을 펼치고 있었고 경성 조선 식산 은행장은 춘향 공연 광고를 보고 춘향을 일본 춘향이로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최봉선이 운영하고 있는 음식점인 부산관으로 간다. 기여이 춘향의 영정을 일본 앞잡이 화가가 그린 그림으로 바꾸었고 최봉선은 그 광경을 보고 목놓아 울었다. 1950년 전쟁이 터지고 최봉선도 피난을 떠났는데 짐 하나 없이 11년 동안 숨겨두었던 춘향의 영정만을 들고 피난갔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남원으로 돌아온 최봉선은 춘향 사당은 피해가 없었고 친일화가의 영정은 찢어져 있었다. 다시 춘향의 영정을 걸게 되었지만 그것도 잠시 이번엔 정권 교체로 영정을 교체하게 된다. 1931년 춘향제를 탄생시킨 최초 춘향 영정은 60년 만에 복위하게 되었지만 그것도 일부 시민 단체에서 자신들이 알던 춘향의 모습과 다르다고 해 문제가 되고 있단다. 최봉선이 그렇게 지키려고 했던 춘향의 정신과 얼은 나라만 찾으면 잘 될 줄 알았지만 그렇지 못해 더욱 안타깝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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