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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란사 - 조선의 독립운동가, 그녀를 기억하다
권비영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7월
평점 :
'하란사'라는 이름은 예쁘면서 특이한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이름으로도 참 예쁜 이름인데 '하란사'는 조선시대의 여성 이름이다. 대한제국의 여성 독립운동가이자 신여성인 '하란사', 그녀의 이름이 태어났을 때 부모님에게 받은 이름은 아니다. '하란사'의 본명은 '김란사'로 '란사'는 영어 이름으로 '김란사'가 된 이야기는 길었다. <하란사>는 란사의 친구였던 화영이 란사를 기억하며 떠오른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란사는 하상기라는 남자와 결혼했다. 열일곱 살의 꽃다운 나이에 하상기는 한번 상처했고 나이도 중년이었다. 아버지의 무역업에 큰 도움을 주는 하상기가 아버지의 손님으로 온 뒤 아버지는 갑자기 결혼을 하라고 한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머니, 할머니까지 중늙은이인 하상기에게 시집가라고 했고 정말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무섭게 느껴지던 하상기는 란사를 아주 소중히 생각하고 아꼈다. 윤화영의 남편이 미국 선교사들이 여인들에게 공부를 가르쳐준다는 말을 듣고 화영도 공부를 하러가고 란사를 만나게 된다. 란사는 자신의 조선이름이 싫다며 영어 이름으로 불렸으면 해서 '낸시'라는 이름을 한문식으로 표기한 '란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다. 란사는 선교사에게 공부하고 영어를 배워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 당시 란사는 첫 아이가 태어났고 딸로 이름을 자옥이라고 지었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란사는 어린 자옥을 두고 유학을 가기로 한다. 란사의 남편은 딸 자옥을 유모에게 맡기고 란사의 유학을 찬성한다. 몇 년 뒤 란사가 돌아왔지만 자옥은 란사가 엄마인지도 못 알아보았지만 란사는 서운해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옥이 열여덟 살의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란사는 모성애 없는 엄마라고 손가락질도 받았지만 사실은 딸 자옥을 잃은 것을 너무나 슬퍼했다. 친구인 화영 앞에서만 펑펑 울었던 것이다.


란사는 이화학당의 첫 사람이 되었는데 별명은 '욕쟁이 사감'이었다. 함께 이화학당에서 공부를 시작했지만 란사는 유학까지 갔다오는 용감함도 가지고 있었다. 반면 화영의 남편은 밖으로 나가거나 공부를 하는 것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게다가 화영은 천생 여자여서 남편의 반대를 꺾지 못했고 일주일에 하루 이화학당에 공부하는 것도 버거웠다. 그렇다보니 화영과 란사의 거리도 멀어지게 된다. 란사는 서른여섯이 되던 해에 고종 황제의 훈장을 받았다. 란사는 미국에서 공부한 것도 대단하지만 미국에서 돌아와 우리나라 최초로 퐁파두르 헤어스타일을 선보였다. 또 유학 때 알게 된 조선 최초의 여의사인 박 에스터와 조선을 위해 일을 하게된다. 유학 중에 또 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조선의 '의친왕'으로 란사는 의친왕을 돕고 의지하면서 조선을 독립시키려고 노력했다. 란사는 거침없는 신여성의 삶을 살았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