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소련의 우주 탐험 대결 - 최초의 인공위성부터 달 착륙 그리고 우주 정거장까지 풀빛 지식 아이
클라이브 길포드 지음, 폴 다비즈 그림, 채연석 옮김 / 풀빛 / 2019년 8월
평점 :
절판




'냉전시대'라는 단어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미국과 소련은 라이벌 관계라고 해도 될 것이다. 특히 우주 탐험에 대한 두 나라의 모험심과 발전 속도는 다른 나라들보다 강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독일은 유도 미사일을 만들게 된다. 이 미사일은 수백 킬로미터를 날아 우주 가장자리까지 올라가는데 이 미사일을 만든 과학자들이 세계 대전 후 소련과 미국으로 가게 된다. 1950년대 미국과 소련에 있던 수천 명의 과학자들은 미사일에 대해 연구하고 개발한다. 미국과 소련은 점점 각자 더 크고 강력한 로켓 엔진을 만들었고, 핵미사일로 더 멀리 날려 보내려고 했다. 소련의 R-7 로켓은 세계 최초의 인공 위성을 지구 궤도에 진입시킨다. 이에 놀란 미국은 인공위성을 발사할 계획을 세운다. 미국 해군은 뱅가드 TV3 로켓을 발사했다. 우주는 화젯거리가 되었고 많은 미국인들이 우주 여행과 우주 탐사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미국은 소련과 벌어진 우주 관련 기술의 격차를 좁히기로 하고 학교에서 과학 수업을 놀리는 새로운 계획을 세우게 된다.



소련은 스푸트니크 1회의 발사 이후 스푸트니크 2호에는 모스크바 거리에서 발견한 길 잃은 개 라이카를 태우게 된다. 그 뒤에도 소련은 1960년 한 쌍의 쥐, 개 두 마리, 마흔 두 마리의 생쥐, 회색 토끼, 파리 그리고 수많은 식물을 싣고 발사한다. 동물들이 우주로 나가고 다음은 인간이 우주로 나가게 된다. 우주 비행사 훈련은 무척 힘들었다. 소련 장교 가가린은 우주로 향하는 최초의 인간이 되었고 미국의 우주 비행사 역시 곧 소련을 따라잡게 된다. 소련은 가가린의 우주 비행에 영향을 받은 여성 비행사를 우주로 내보내게 된다. 그런데 라이벌은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경쟁만 하고 서로 앞서려고만 하는 것은 발전이 없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은 인간을 우주로 보내는 것에 대해 경쟁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우주 탐사선으로 알려진 무인 탐사선을 이용하여 우주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우려고 했다.

이렇게 경쟁과 발전을 거듭하던 미국과 소련의 우주 탐험이 항상 성공한 것은 아니다. 우주에 간 우주선이나 비행사도 많지만 중간에 사고를 당하거나 우주에 도달하는데 실패한 탐험도 많았다는 것이다. 실수를 다시 연구하고 발전시켜 새롭고 더 나은 우주 탐험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미국과 소련의 우주 탐험 대결>은 세계사와 함께 과학까지 공부할 수 있는 알찬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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