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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개지만 그렇다고 아무나는 아니다 - 차별해서도 차별받아서도 안 되는 철학적 이유 10
김한승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9년 7월
평점 :
철학과 과학의 만남인 <나는 아무개지만 그렇다고 아무나는 아니다>를 읽으며 조금은 어려운 분야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과학자들이 보는 인류와 인간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기도 했는데 아직은 이해를 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과학과 철학은 그것을 생각하는 구조부터 다르다고 생각한다. 철학의 물음에는 정답이 없지만 과학에서는 그 원인과 결과가 있어야 한다. 철학자들은 지각적으로 구별이 불가능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을 즐긴다.
근대철학을 보면 인간을 '투명인간'으로 살아가길 권한다. 투명인간이란 타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의 투명한 인간의 모습을 말한다. 우리도 가끔 투명인간처럼 행동하거나 투명인간이길 바라거나, 타인을 투명인간 취급할 때도 있다. 근대철학은 왜 인간을 투명인간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일까? 현대에서는 이 투명인간을 '익명'이라고 한다. 누군가의 눈에 띄이고 싶어하는 인간도 있지만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익명으로 살기를 바라고 대중속에 숨어서 살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인간은 투명인간처럼 살 수는 없다.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투명인간은 반지 하나로 사라질 수도 있고 다시 인간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이런 존재와 비존재의 사이에 있는 것이 투명인간이다.
투명인간이 아닌 나의 존재는 이 우주속 어디에 있을까? '나'는 어디에 있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길을 잃었다고 대답할 수도 있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자신의 위치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길을 찾고 싶어한다. 나는 왜 나인가라는 질문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고 싶어하고 그 과정에서 나로 만드는 특정성이 구체적인 나의 위치를 알려준다는 것이다. 인류 원리에서 특정성이 '아무나'가 아닌 '아무개'로 보일 수 있게 자신의 정확한 위치를 가늠하게 해준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과학이 아주 명료하고 이해하기 쉬운 원리로 말할 것 같았지만 지금까지 <나는 아무개지만 그렇다고 아무나는 아니다>를 읽다보니 근대철학보다 어렵고 '나의 존재'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의 답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인류를 과학적인 시각에서 풀어보려는 시도가 무지한 독자에게 적은 지식이지만 빛을 주는 것 같았다. 한 인간의 존재를 투명인간이 아닌 편향성을 가지고 존재를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