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천홍규 지음 / 바른북스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서로에게 추억이 돼준 하나뿐인 동생에게 이 시집을 바칩니다."

《사랑도 눈물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는 25세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동생에 대한 그리움을 4부작으로 엮은 시집이다. 있음(有)과 없음(無) 두 파트로 되어있다. 동생이 있었음을 노래하던 시인은 네가 없음을 슬퍼하다 아파하다 끝내는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천홍규 시인의 언어는 간결하고 쉽고 진솔하다. 이별을 경험한 모든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누구나 공감이 된다. 가식적이지 않아 좋다. 꾸밈없이 담백해서 더 가슴 뭉클하다.

<곁 1>

텅 빈

보금자리

사라진

(p.32)

어쩌면 상처와 슬픔과 고통을 극복하려는 일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시인은 그것이 잘 안되나 보다.

<그것>

가장 잊고 싶은 것이

가장 잊히지 않을 때가 있다.

그래서 잊을 것을 두고

나를 잊기 시작했다.

나를 지배한 그것은

내가 되었고

그것에서 빠져나온 나는

잊는 것을 잊은

죽은 화분이 되어 있었다.

(p.32)

이런 것을 해탈의 경지라고 하나? 죽은 화분이라는 말에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라는 시 중 까마귀가 생각났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중략)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나무 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가을의 기도, 김현승

까마귀는 죽음의 새다. 아마 동물의 사체를 먹는 모습과 죽음을 연관시켰던 것 같다. 성묘객들이 묘지에서 제사를 지내고 돌아가면 제사 음식 떨어진 것을 먹으려고 모여든 까마귀들을 보고 괜히 무덤과 연관 지어 생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죽은 화분과 마른 나뭇가지는 소멸이다. 하지만 화분에 씨앗을 심으면 꽃이 필 것이고, 봄이 되면 김현승의 시에 등장하는 마른 나뭇가지에서도 꽃이 필 것이다. 죽음은 또 다른 삶에게 내어주는 거름이 아닐까. 그것에서 빠져나온 나와 마른 나뭇가지에 다다른 까마귀는 고통에서 빠져나와서 고통을 승화시킨 해탈한 자의 모습 같다.

<기억 3>

같이 찍었던

사진이 없다.

너를 잊지 않는 방법이

사진뿐인데

(p.42)

이 시를 읽으니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에서 오이영이 엄마가 있다는 게 어디냐고 말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나는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사진도 많이 찍어놓고 동영상도 찍어 놓았다. 어떤 분이 부모가 돌아가시면 목소리가 기억이 안 난다고 꼭 동영상 찍어 놓아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정말 엄마 보고 싶고 목소리 듣고 싶을 때마다 보면 너무너무 위안이 된다.

하지만 내가 놓친 것이 있었다. 엄마 냄새. 오이영이 이제 곧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셔서 혼자 남게 될 아이에게 엄마 옷이랑 물건 많이 챙겨놓으라며 말하는 대사가 너무 감동적이어서 유튜브 검색해서 그 장면을 다시 보면서 타이핑을 쳐봤다.

"난 중학교 때

엄마가 하늘나라 천사가 됐어

아무 때나 눈물도 나구

화도 엄청나구 짜증 나서

밥도 먹기 싫어

엄마가 죽으면

가슴에 이따만한 구멍이 생기거든

아직도 있어 엄청 크게

그러니까 숨어서 울지 말고

슬픈데 웃는 척도 하지 말고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알았지?"

- 슬전생, 오이영

엄마가 쓰던 물건, 엄마 옷 버리지 말고 가지고 있을 걸 그랬다. 물건이 생각나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오이영의 대사를 받아 적으면서, 너를 잊지 않는 방법이 사진뿐인데... 사진이 없어 애통에 하는 시인의 아픈 마음이 느껴졌다. 그래서 기억하려고 잊지 않으려고 이렇게 하늘을 향해 시를 썼다 보다.

사진이 없으면 모습이 희미해지고, 동영상이 없으면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고, 물건이 없으면 추억과 함께 있던 냄새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 댕댕이 옷도 가지고 있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미신을 믿지도 않는데 왜 죽은 사람 물건 가지고 있으면 부정탄다는 말을 믿었던가! 하는 후회가...

시인의 꿈에 동생이 고양이를 찾던 모습이 나온다.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잠에서 깬다. 동생의 일기장이 놓인 주변에서 고양이가 연신 동생의 냄새를 맡고 있다. 시인은 새벽을 하얗게 밝힌다.

동생은 꿈에 나타나 고양이를 찾고, 고양이는 꿈이 되어버린 동생을 찾고, 시인은 일기장과 고양이를 보며 꿈속에 사는 동생을 찾고... 시인이 말한다.

<꿈 3>

너, 나, 고양이는

서로가 알아줄 수 없는

그리움을

그리워하고 있구나

(p.46)

이렇게 애타게 그립지만, 이제 다시 일어나기로 한다. 나만의 이야기로 나만의 인생을 살아 내기로 한다. 그래서 먼 훗날 하늘에서 동생을 만나면 시인이 너 없는 삶이었지만 잘 살아냈다고, 무수하게 많은 끝없는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너무>

너를 만났을 때

해줘야 할 말이

많았으면 좋겠어

너 없는 삶이

눈물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고

(p.55)

<술> 아직 살아있는 줄 아는 너이거나, 왜 죽었는지 모르는 너이거나, 없다는 것도 있다는 것도 무엇인지 모르지만, 북받친 눈물이 소주잔을 채우려 한다. 해결되지 않는 그리움에 슬퍼한다.

그리고 다시 희망을 찾아 일어난다.

<편지> 그냥 네가 어디 먼 나라로 여행하고 있겠지라 생각하다

<비가 오면 문득> 잠시만 젖어 있기로 한다.

누가 날 절벽에서 밀었다. 덕분에 날개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 동생과 나눌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서, 언젠가는 눈부신 날개를 펼쳐 그리움에게로 훨훨 날아가시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급 광고 인문학 - 광고인의 시선으로 떠나는 유쾌한 인문 여행기
이지행 지음 / J&jj(디지털북스)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광고는 공기처럼 어디에나 있다. 지금 이렇게 서평을 쓰고 있는 나도 나 자신을 광고하는 중이다. 서평은 이 책과 나를 동시에 광고하는 것이기도 하니 말이다. 폰을 켜면 광고를 피할 수 없다. 버스나 지하철 광고, TV를 볼 때도 광고, 길거리에 늘어선 간판도 광고다. OTT나 유튜브를 볼 때도 게임을 할 때도 광고가 나온다.

이지행 저자는 20년 이상 광고계 일을 해 온 B급 인문학자라고 본인을 소개한다. 대부분의 광고는 기다려지거나 꼭 보고 싶지 않다. 그런 광고 이야기가 재미있을까? 어떻게 광고로 인문학을 이야기하겠다는 걸까? 다 읽고 보니 이 책은 광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문학에 나타난 광고 이야기였다. 광고로 다가가는 인문학 이야기인데 아무 데나 읽어도 재밌다.

그래서 이 책은 서평 쓰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야기가 재밌어서 빠져들다 보니 내가 쓸 말을 까먹었다. 내가 생각해 낸 이 책을 읽는 이야기 하나를 읽고 짧은 감상을 책에 메모하거나 따로 메모해 가며 읽는 것이다. 그래야 스토리와 나의 생각이 매칭되고 기억이 더 잘 된다.

A급 광고와 B급 광고의 차이는 무엇일까? A급 광고는 높은 퀄리티와 감동을 주는 반면, B급 광고는 황당하거나 재미와 호기심을 유발해서 소비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적은 비용으로 높은 광고 효과를 내는 것이 특징이다. 나는 간단하게 B급 광고는 사람 냄새 나는 광고라고 정의하고 싶다.

만약 이 책을 A 급으로 광고한다고 생각해 보자. '가장 날카로운 인문학적 통찰은 때때로 가장 익살스러운 가면을 쓴다.' <B급 광고 인문학>의 이미지를 A급으로 정말 멋있게 표현하지 않았나? 하지만 별로 정은 안 간다. 솔직히 멋은 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인생의 해답, 광고의 해답은 이 책에 있다! 나도 모르게 읽다 보면 은근히 지식을 쌓아주는 맛이 있다! 묘하게 빠져든다! 시간 순삭 보장!'

좀 촌시렵긴 해도 어쩐지 이 책이 뭔가 지식도 쌓게 해 주고 재밌을 것 같지 않은가? 나만 그런가? 이 책의 B급 광고를 만들어 본 건데, 엉성하고 투박하다. 그래도 좀 귀엽? 이 책은 이렇게 거칠고 솔직한 B 컷의 연속이다. 특히 저자의 말투도 파격적이고 친근하고 재밌다.

광고란 무엇일까? 저자의 정의를 그대로 가져와 봤다. 광고는 구. 라. 다. 도덕적이지 않다. 온갖 구라로 더 잘 팔리게 해야 한다. 을 중의 을인 광고인들은 왜 죽을 만큼 힘든 광고일을 할까? 광고는 간. 지. 다. 폼 나기 때문이다.

구라와 간지는 옛날부터 쓰던 말인데 광고계에서 쓰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래서 그 유래를 한 번 찾아보았다. 구라는 일본어 '구라마스(晦ます, 숨기다, 속이다)' 에서 왔다. 도박판에서 속임수를 쓰는 은어로 사용되다가 거짓말이라는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이다. 간지 역시 일본어 '간지(感じ, 느낌, 감각, 인상)'에서 유래했는데 한국에서 속어로 멋있다, 스타일리시하다, 폼 난다 등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구라지만 폼 나서 광고를 한다. 그리고 광고는 사람을 향한다. 사람에게 진심이다. 사람을 향한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이 세상에서 인간에게 가장 관심이 많은 것이 광고인이다. 사람을 잘 알아야 팔리는 광고를 만들 수 있고 밥벌이도 되기 때문이다. 인류의 시작은 광고와 함께 했다. 광고의 출발은 인문이다.

인문(人文)은 또 뭘까? 한때 인문학 붐이 일었었다. 그때 나는 인문학이란 종교, 철학, 문학 같은 분야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과 문과할 때 문과 쪽. 인은 인간이고 문은 문학인가? 하며 넘어갔다. 뜻을 생각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알아보니 문학은 물론이고 종교, 철학, 예술, 역사, 윤리, 풍습, 법과 제도와 같은 사람이 만들어낸 모든 아름다운 흔적들을 말하는 개념이었다. 문양(文樣, 무늬). 그래서 인문이란 간의 양이다. 사람의 무늬. 사람이 만들어 낸 모든 정신적이고 문화적인 것을 포괄하는 것. 이런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 인문학이다.

그래서 저자는 광고인의 시선으로 인문을 이야기한다. 광고인은 연구가가 아니라 실용가다. 수많은 역사적인 인물들을 마주하다 보면 그들이 탁월한 퍼스널 브렌딩과 마케팅의 대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저자는 "아이를 학대하지 말라! 커서 히틀러처럼 된다"고 경고하는데 A급 같진 않지만 바로 기억되어 버린다. 이 책은 광고와 사람과 인간성에 관한 B급 보고서이기 때문일까? 고흐와 압생트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고 고흐의 동생이 죽자 먹고살기 힘들어진 동생 와이프가 생계를 위해 고흐를 유명하게 만든 찐 광고인 이었다는 사신도 알게 되었다.

이 책에는 A급처럼 멋있고 간지나고 완벽한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 B급의 허점투성이 인간에 관한 완벽하지 않은 이야기가 실려있다. 완벽하지 않아서 더 공감이 가고 기억이 잘 된다. 나도 체 게바라 책과 굿즈를 본 적이 있는데 왜 그렇게 유명해졌는지 확 이해가 된다. "나는 해방가가 아니다. 해방가란 존재하지 않는다. 민중은 스스로를 해방시킨다." 너무 멋있는 체 게바라의 명언중 하나다. 나는 그가 쿠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르헨티나 금수저였다.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의과 대학을 나왔다. 게다가 쿠바가 아닌 볼리비아에서 죽었다. 3차 대전이 일어날 뻔했다는 썰도 있었다.

옛날에 마네모네 누가 먼저 태어났는지 엄청 헷갈린 적이 있다. 알고 보니 우리말 사전 찾는 순서대로다. '마'가 '모'보다 먼저 나오니까 마네가 먼저다. 저자는 마네와 모네의 이야기를 하면서 모네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상주의 화가들은 가난 속에 생을 마감했지만 모네는 장수를 해서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B급이라 무시당하며 수십 년간 모욕과 조롱을 당하던 이들이 인상파 화가들로 인정받는다. 그래서 모네는 B급 전성시대에 별이 되었다. 이렇게 별이 되려면 버티고 살아남아야 한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거다.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놈이 강한 법이다. 만고의 진리이자 광고의 진리다.

브랜드 연상(Brand Association)은 소비자가 특정 브랜드를 들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 느낌, 이미지를 말한다. 코카콜라 하면 빨간색, 빨간 옷 하면 산타클로스, 이집트 하면 미라와 피라미드가 연상된다. 나는 루이비통, 구찌, 아디다스 삼선 슬리퍼, 나이키와 필라, K2, 폴로 경기를 하는 모습을 그대로 마크로 만든 폴로셔츠가 생각났다. 루이비통은 짝퉁 가방을 여기저기서 너무 많이 봐서 진품이 백화점에 있는 것을 보고 "가짜랑 똑같은데?"라는 이상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은 내가 아직도 가지고 있는 샤넬 향수 이야기를 가져와 봤다. 샤넬 마크는 C자 2개를 하나만 방향을 바꾸어 겹친 것이다. 옛날에는 '샤넬 넘버 5' 향수가 아주 유명했다. N˚5에서 N은 넘버이고 가운데 있는 작은 동그라미는 프랑스어 숫자에서 순서를 나타내는 서수의 약자다. 코코 샤넬이 선택한 5번째 향수 샘플이라는 설도 있고, 코코 샤넬의 행운의 숫자인 5를 의미한다는 설도 있다.

이 CC 상표의 대선배는 알브레히트 뒤러다. 뒤러는 '기도하는 손'으로 유명하다. 자신의 작품에 이니셜인 A와 D를 디자인한 모노그램을 사인으로 넣었다. 루이비통의 LV나 구찌의 창립자 구초 구치의 약자인 GG처럼. 저자는 500년 전 사람인 뒤러가 '내가 바로 명품 그 잡채'라고 말하는 듯하다고 이야기한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이니셜 AD는 광고라는 뜻이기도 한데, 뒤러는 뼛속까지 광고인이었던 화가라고 평한다.

나는 CC가 코코의 약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코코 샤넬의 약자였다. 코코는 샤넬의 애칭이다. 샤넬의 본명은 가브리엘 보뇌르 샤넬이다. 비욘세의 본명이 비욘세 지젤 놀스 카터인데 비욘세라고 부르듯 별명인 코코와 이름을 함께 부른 것. 그녀의 엄마는 일찍 죽고, 아버지에게는 버림받았다. 아픈 상처를 딛고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샤넬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좋은 사장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렇게 유명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사람 이야기를 광고와 연결시켜 재밌게 풀어준다. 글자로 전하는 쇼츠 느낌?

인문학이 어렵고 지루하다는 내 생각을 속 시원하게 깨 부셔준 책이었다. 후방 주의, 언더독, 자바 헛, 어그로, 디스, 병맛, 트랜드 세터, 좋댓구알 같은 단어의 뜻도 찾아보며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푹 빠졌던 책 읽기, 즐거운 광고 인문학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적절하게 살아가기 - 부적절성 속에서 죽어가는 모든 존재들을 살아가는 것
한광수 지음 / 바른북스 / 2024년 12월
평점 :
절판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간의 불평등은 태아부터 시작된다. 내가 원해서 여자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인종이든 나라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없다. 부모도 환경도 내 마음대로 택할 수 없다. 하지만 태어나서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 나에게 주어진 환경을 바꿀 수 있다.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부적절한 환경은 내가 세상을 어떻게 노력하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적절한 환경이 된다. 그리고 죽을 때는 모두 다 평등하다. 이 책의 3장 자기 존중에 관한 이야기 중 '평등과 불평등'에 나오는 이야기다.

먼저 이 책의 제목 <적절하게 살아가기>에서 적절하다는 뜻부터 살펴보자. 적절하다는 말은, 너무 크거나 작지 않은, 너무 짧거나 길지 않은, 너무 많거나 적지 않은, 잘 맞는, 알맞은, 딱 맞는... 이런 뜻이다. 그런데 이렇게 적절하다는 말의 의미를 검색해서 쓰다 보니 갑자기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중용. 지나침이나 모자람이 없고,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것. 감정이나 행동에 있어 극단을 피하고 적절한 선을 지키는 것. 중용과 적절하다는 의미가 너무 비슷하다.

나는 적절하다는 말을 듣고 최근에 본 드라마인 <약한 영웅>의 주인공 연시은과 시즌 2에 처음 등장하는 박후민이 생각났다. 주인공은 시종일관 적절이라는 말의 뜻을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정의와 불의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즌 2에서 처음 등장하는 박후민은 비록 중간에 마음은 흔들렸지만, 끝까지 나백신 밑으로 들어가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택한다. 이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자기 적절성이 아닐까 싶다. 나 스스로가 어떤 일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다고 믿는 마음이 자기 적절성이니까. 저자는 자기 적절성이란 자존감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했다. 그럼 자존감이란?

내가 그림을 그렸다. 내 생각에 이 정도면 꽤 잘 그린 거 같다. 이런 내가 좀 잘했다는 적절하다는 느낌이 자존감이다. 내가 화가도 아닌데 이 정도면 잘 그렸다고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 자기 적절성이 높은 것이다. 나는 그저 존재 자체로 충분하다. 그림을 조금 못 그렸어도 다음에 더 잘 그리면 된다고 생각하고, 내가 그림이 아니어도 다른 것도 잘하는 게 많다고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자존감이 높은 것과 같다. 그래서 자기 적절성은 자존감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 연시은은 서준태에게 뉴턴의 제3법칙인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알려준다. 내가 반응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행동한다는 것. 은장 고등학교 빵 셔틀 서준태는 폭력에 굴복했기 때문에 빵 셔틀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결국 범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친구들의 핸드폰을 훔쳤다. 하지만 연시은의 말을 고민하던 서준태는 결국 훔친 핸드폰을 미안하다는 쪽지와 함께 모두 주인에게 돌려준다.

이 드라마를 안 본 사람이라도 빵 셔틀 서준태는 이제 죽겠구나 하고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죽도록 맞긴 했지만 연시은의 도움으로 죽지는 않았다. 빵 셔틀이 죽기를 각오하고 폭력에 맞설 수 있었던 것은, 연시은의 말을 진심으로 고민하고, 자기를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라는 믿음도 있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서준태의 마음에는 나도 폭력에 맞설 수 있다는 자기 적절성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스스로를 한 번 돌아보자. 대부분의 괴로움은 스스로의 부족함에서 비롯된다. 자기 부적절성이다. 저자는 묻는다. 나는 나를 가장 편하게 해주고 있는가? 자기에게 너무 기대를 많이 하고 괴로워하는 것은 아닌가?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나 자신인 것 같다. 생각하지 않으면 될걸, 계속 생각해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한다. 자신에 대한 기대를 좀 낮추면 되는데, 기대치를 높게 잡아놓고 달성하지 못했다고 스스로 열등감에 시달린다.

정체성이란 무엇일까? 책에는 자동차 부품을 비유로 든다. 좋은 부품들이 아무리 많더라도 엉뚱한 곳에 놓으면 차를 조립할 수 없다. 정체성이란 마치 자동차 부품처럼 내가 가지고 있는 좋은 부분들을 제자리에 놓고 좋은 차를 조립하는 것과 비슷하다. 나의 신체와 정신 모든 부분이 제대로 발휘할 수 있게 통일시켜 주는 것이 정체성이다.

쉽게 말하자면 정체성이란 내 이름과 나이, 성별, 민족, 내가 좋아하는 음악, 취미, 음식, 책, 스포츠 그리고 말투나 성격 등등 자동차의 부품처럼 나를 구성하는 모든 것이다. 자동차 부품은 교체할 수 있지만 나의 정체성은 이 세상에 유일한 것이기 때문에 교체할 수 없다는 점이 정체성과 자동차 부품의 다른 점이다. 그리고 정체성은 성장하거나 바뀔 수 있다.

정체성을 영어로 아이덴티티(Identity)라고 하는데, 신분증인 ID 카드에서 ID는 Identity의 약자다. 어쩌면 나의 정체성과 나의 신분이라는 것은 유일무이하기에 영어로는 똑같이 아이덴티티라고 표현을 하나보다. 다시 말해서 정체성이란 당신은 누구냐는 Who are you?에 대한 나만의 답이자 색깔이 아닐까 싶다.

이 정체성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이 적절성이다. 적절성은 자기와 타인, 세상과의 관계에서 적절한 행동으로 세상과 화해를 이루는 것이다. 내 마음대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내가 죽고 싶다고 해서 죽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자기 부적절성에 빠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부적절성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살아있는 운명도 죽어간다는 운명도 긍정할 수 있다. 부적절성을 인정해야 자유인이 된다.

이 세상에 적절성은 없다. 자유를 얻은 자가 추구해야 최고의 목표는 지혜롭게 사는 것이다. 가능하면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나의 존재로 인해 타인도 행복할 수 있게 사는 것이다. 이렇게 부적절성에서 나오는 적절성이 삶을 긍정하는 최고의 방식이다.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실현시켜 보자. 자기실현에는 자기가 창조하는 것을 포함한다. 창조는 자신의 몸과 마음이 조화로울 때 가능하다. 지혜롭고 기쁘게 사는 것은 부적절한 사람이 부적절성의 긍정을 통해 자유를 얻는 것이다. 자유라는 것은 몰입(flow)의 또 다른 표현이다.

저자는 몰입이란 애씀 없이 다 하는 것이며 노력 없는 노력이라고 설명한다. 애씀 없이 적절성을 이루고자 한다면 적절성에 이를 수 있다. 결과나 성과보다 몰두하는 과정 자체에 초점이 맞춰진다. 완벽한 몰입의 경지이다.

달리기 연습을 하는 학생이 있다. 그 학생은 등수나 기록보다 달리는 과정에서 얻은 몰입감과 인내가 더 큰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꾸준한 노력 속에서 경험한 성장과 적절성이었다. 얼마나 빨리 달렸는지 보다 꾸준히 자신의 리듬을 유지하며 끝까지 달렸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어떤 대학생 이 있다. 그 학생은 정해진 일과를 묵묵히 실천하며 단지 책상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매 순간 공부하는 것 자체에 집중한다. 성적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계속 앉아서 공부하는 과정 자체가 평온하다. 이는 무위의 개념을 체현하는 것으로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성취를 통해 적절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학생으로서 학업을 성취하면서도 그 과정 자체에서 최고의 적절성을 느끼며 4년을 보냈다고 한다.

이 두 가지 이야기에는 무위라는 개념이 나온다. 무위란 몰입과도 같은 경지이며 그래서 자유롭다. 자연은 서두르거나 억지로 빨리빨리 하는 일이 없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흐르니 자연인가 보다. 그 흐름은 일과 내가 하나 되는 상태인 몰입의 흐름과 비슷하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오랜 정신과 상담과 임상 경험을 통해 축적한 통찰을 바탕으로, 적절하게 살아간다는 게 어떤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그 답을 함께 찾을 수 있도록 가이드 해주었다. 적절함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인 나에서 시작된다. 그 반대인 부적절함은 죽음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죽음을 인정하는 적절성으로 삶과 죽음은 서로 조화를 이룬다.

마지막 4장과 5장에서는 자기 존중과 자존심의 본질, 상처의 이해와 용서, 낮은 자존심 극복하는 법, 남에게 부탁하기도 어려워하고 남의 부탁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이유, 다양한 사랑의 종류와 적절성에 대해 알아본다.

여기서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좋은 부모를 만나지 못한 것만 생각했었는데, 나의 부모 역시 좋은 부모를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나의 부모님도 좋은 부모를 만나지 못했다는 부모님에 대한 이해는 지금의 나를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준 것 같다. 내가 부모님께 제일 바라고 원했던 것을 지금 내 아이에게 해 주고 있는 나는 너무 행복하다. 지금 행복하다면 적절하게 잘 살고 있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말투만 바꿨을 뿐인데
김민성 지음 / 프로파일러 북스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의 지인 중에도 말만 안 하면 다 좋은데, 한마디 툭 던지는 말이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상처를 주던 사람이 있었다. 그때 이 책이 있었다면 바로 선물해 줬을 것이다. 스스로의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말투를 파악하고 조금 더 나은 말투로 바꿀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혹시 주위에 이런 분들이 계시다면 꼭 알려주자. 눈에 보이는 팩트를 얘기하지 말고 사랑을 얘기해야 한다고. 내가 해보니까 팩트를 이야기하긴 쉽지만 내 마음을 이야기하려니 생각과 고민을 많이 해야 했다.

저자는 고등학교 대학교 모두 무용을 전공했다. 그런데 어떤 친구에게서 너는 말만 안 하면 진짜 괜찮은데 굳이 입을 열어서 네 이미지를 스스로 망치냐는 말을 듣고 전공인 무용보다 말하는 공부를 했다. 첫 직장을 보험 설계사로 시작했는데 말에 대해 깊이 연구하며 최고 매출을 올렸다. 그때 깨달았다. 말투 하나 바꿨는데 인생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말에 대한 공부를 얼마나 했는지 이 책을 읽다 보니 느껴졌다. 친구의 말을 듣고 바로 말하기 공부를 시작한 저자도 멋있다.

이제까지 10년 이상을 쌓아온 내공을 이 책에 모두 담았다. 상황별로 다양한 말투를 크게 5장으로 나누어 정리했다. 인간관계가 고민이라면 3장을, 세일즈가 고민이라면 4장을 먼저 읽기를 추천한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구체적인 말투 변화 방법을 실제 예를 들어 설명해 준다는 점이다.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누구나 바로 시도해 볼 수 있는 말투를 바꾸는 방법을 배워보자.

나도 아무도 안 물어봤는데 혼자서 드라마 몰아보기를 한 내용을 장황하게 이야기했던 나 자신의 모습이 생각났다. 아무리 재밌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본 드라마 장르를 싫어할 수도 있고,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고, 상대방이 유치하다거나 시간 낭비라고 말하면 내가 상처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상대방이 요청을 한 게 아니면 이야기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 나는 이 사실을 왜 이제야 알았을까? 묻지 않으면 이야기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부탁하지 않았는데 나서서 해 주면 오지랖이듯.

조언을 하고 싶으면 질문형으로 바꾸면 된다. 직접적으로 조언을 하면 상대방이 나를 멀리하거나 기피할 대상으로 여길 수 있지만 조언을 질문형으로 바꾸기만 해도 자신을 위해 이야기해 주는 사람으로 기억한다는 것이다. "이 대리, 오늘 보고서 끝내고 퇴근해"라고 말하는 상사와 "이 대리, 보고서 오늘 싹 끝내버리고 주말에 마음 편히 쉬는 건 어때?"라고 말하는 상사, 누가 더 매력적인가?

보고서를 읽었더니 뭘 말하려고 하는지 주제가 명확하지 않다. 질문형으로 바꾸면 된다고 "그래서, 이 보고서 주제가 뭐야?" 설마 이런 질문형을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보고서의 주제를 좀 더 명확하게 해봐"라고 말하는 대신 "이 보고서의 주제를 좀 더 명확하게 해보면 어떨까?" 이렇게 질문형으로 바꾸기만 해도 배려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가?

너 청소하는 거 싫어하지 않아? 너 청소하는 거 관심 없잖아. 이렇게 상대방을 평가하는 말을 하면 안 된다. 하지만 "~않아, ~잖아" 같은 말을 질문형으로만 바꾸어 봐도 한결 부드러워진다. 너 청소하는 걸 좋아하니? 너 청소에 관심이 많은 편이야? 정말 언어의 마술쇼가 아닌가?

상대방이 고쳤으면 하는 점이 있더라도 당장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조언하면 안 된다. 그래서 치아에 고춧가루가 끼었다든가 옷을 뒤집어 입었다던가 하는 바꿀 수 있는 것만 이야기해 주어야 센스 있고 배려심 깊은 사람으로 기억된다.

나는 남편이랑 대화가 안 된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내 이야기를 듣고 있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 어린이날 연휴에 푹 쉬어서 그런지 좀 여유가 있어 보이길래 말을 걸었더니 이렇게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경청을 해주는 것이다. 이야기를 할 때는 상대방이 들어줄 여유가 있는 상황인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상대방의 실수를 과거가 아닌 미래형으로 말하라. "너는 어떻게 맨날 늦니? 그래서 나만 맨날 기다리잖아" 이것은 이미 벌어진 과거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음부턴 안 늦었으면 좋겠어. 네가 약속 시간에 맞춰서 오면 난 더 행복할 것 같아" 이렇게 미래형으로 말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아이가 실수를 했으면 "넌 왜 맨날 그 모양이니" 하지 말고 "네가 이렇게 해주면 엄마도 더 행복할 것 같아" 이렇게 미래형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런 말투는 꼭 알려줘야 한다. 나도 엄마에게 '너는 애가 왜 맨날 그 모양이냐'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우리 엄마가 몰라서 그렇게 표현 한 것이었다.

그런데가 아니고 그리고를 사용하라고? 오늘 저녁은 친구와 탕수육을 먹었다. 그 친구가 잘 먹고 하는 말이 "오늘 탕수육 맛있었어. 그런데 저번에 먹었던 깐풍기가 더 맛있었어." 어쩐지 맛있게 먹은 탕수육이 별로인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하지만 여기에 그리고를 넣어보자. "오늘 탕수육 맛있었어. 그리고 저번에 먹었던 깐풍기도 맛있었어." 그리고를 사용하니 둘 다 기분 좋은 문장이 된다. "인디캣님은 1일 1책 리뷰를 하신다. 그리고 동영상 리뷰까지 하신다." 여기에 그런데를 넣어보자. "그런데 동영상 리뷰는 안 하신다?" 뭔가 안 좋거나 부정적인 표현을 해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그리고를 넣어서 말하는 습관을 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가 아니라 그리고를 사용하듯, 때문에가 아니라 덕분에를 쓰자. 너 때문에 일이 꼬였어와 같이 때문에라는 말이 들어가면 누군가를 탓하는 표현이 된다. 네 덕분에라고 표현하는 순간 긍정적인 표현을 할 수밖에 없다. 너 때문에 잘 됐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네 덕분에 잘 됐다고 말해야 한다. 때문에 대신 덕분에라고 말하자.

평가하지 말고 공감하라는 부분을 읽으며 나는 속으로 가슴이 철렁했다. 아들이 요새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평가 내지는 해결책을 제시했던 것이다. 요새 AI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아들은 나에게 해결책이 아닌 공감 또는 위로를 구한 것인데 나는 전혀 몰랐다. 이런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직설적인 평가를 하는 것은 상처가 될 뿐이라고 한다. 해결책이 아니고 공감이 먼저다.

공감은 상대방이 운다고 함께 울어주는 게 아니라 왜 우는지 그 원인을 알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내가 바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아들이 왜 힘들었는지 그 원인을 알기 위해 이야기를 꼼꼼히 들어주려고 노력했다면 아들은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나중에 아들에게 공감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나의 충고는 아들에게 상처만 되었던 것.

어떻게 공감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 상대방이 말할 때 무조건 듣기만 하면 된다. 상대방은 나에게 해결책을 구하지 않는다.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면 엄청 좋아하고 위로를 받는다. 내가 정말 뼈저리게 느낀 건, 상대방이 나한테 고민을 털어놓는다는 것은 해결책을 알려달라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착각하지 말자. 친구가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는 것은 결코 해결책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고민을 열심히 들어주고 맞장구쳐주다 보면 해결책은 스스로 찾아낸다. 그리고 나에게 고마워한다. 하지만 내가 해결책을 제시하면 매우 기분 나빠한다. 아들도 기껏 해결책을 제시해 줬더니만 짜증을 다 내더라. 나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명심하자. 해결책이나 조언을 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이야기 들어달라는 소리임을!

나는 말할 때나 글을 쓸 때 부사를 정말 많이 쓴다. 그런데 부사를 쓰지 않는 연습을 하라고 한다. 부사를 안 쓰면 말하기가 너무 어렵다. 하지만 어렵더라도 부사를 안 쓰고 표현하는 연습을 하면 상대방이 부사를 썼을 때보다 몇 배로 감격스러워한다.

"이 돈가스 너무너무 맛있어."라는 문장에서 너무너무라는 부사를 빼고 말해보자. "이 돈가스 바삭하고 육즙이 살아 있네" 정말 느낌이 좀 다르지 않은가? 나도 앞으로 부사를 빼고 말하는 연습을 해봐야겠다. 하지만 엄청 어렵다. 여기서 엄청을 빼보자. 소설책 한 권 쓰기만큼 어렵다?

나도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서 그동안 보험도 많이 들어주고 정수기 구독도 많이 해줬다. 거절하는 법을 몰라서였다. 먼저 쿠션 멘트인 정말 감사한데, 제가 도와드리고 싶은데 와 같은 말로 시작한다. 그다음 거절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상대방이 아닌 나에게로 돌려 말한다. 너무 바쁠 때 오셔서 도와드릴 수 없어요, 부탁하신 일을 제가 처리하기엔 제 능력이 아직 부족합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말하며 거절한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내 사정을 모른다. 그래서 어려운 부탁을 받았을 땐 이런 중요한 부탁을 저에게 해주셔서 감사한데 와 같은 쿠션 멘트를 한 다음에 정확하게 나의 상황을 설명하고 거절해야 한다. 괜히 나중에라도 들어 줄 것처럼 말하면 안 된다.

기분이 안 좋아 보이거나 화가 나 있는 사람에게는 표정이 안 좋은데 혹시 무슨 일 있었나요?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었나요? 이렇게 넌지시 물어보기만 해도 상당히 효과적이다. 왜 화가 났는지, 왜 짜증이 났는지 원인을 당당하게 물어보는 것이 그 사람과의 사이를 좁힐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상대방의 선택을 더 빠르게 유도하는 법은 거절의 여지를 주는 답변을 선택지에서 없애는 것이다. 만약 내가 식당 주인이라면 손님에게 "술은 안 필요하세요?"라고 물으면 안 된다. 안 필요하다는 거절의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거절의 여지를 없애야 한다. "술은 소주와 맥주 중에 어떤 걸로 드릴까요?"라고 해야 주문율이 올라간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공유하라. "나 말하기 실력이 향상된 것 같아"라고 말하지 말고 "나는 말을 좀 더 잘하고 싶어서 매일 <말투만 바꿨을 뿐인데>라는 책을 읽는 중이야."라고 이야기하자. 그러면 모두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고 격려를 해줄 것이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공유하면 반발심이나 질투심이 생기지 않는다. "나 일본어 능력 시험 1급 받았어!"라고 말하면 그래 너 잘났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나 일본어 능력 시험 1급을 따기 위해 1년간 매일 퇴근 후에 학원을 다녔어."라고 말하는 순간 1급 딴 것을 마구 축하해 주고 싶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저자는 간곡히 부탁한다. 이 책을 덮고 난 뒤에도 단 한마디라도 말투를 바꿔보라고. 처음에는 작은 변화일 수 있지만 그 작은 변화가 큰 기적을 만들어줄 것이라고.

나도 말투 하나로 가족과의 관계가 더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말투는 정말 중요하다. 혹시 누군가의 말투 때문에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면 이 책에서 배운 말투를 알려주자. 그 사람 인생이 바뀔 것이다. 내 인생도 더 즐거워질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은 이미 충분히 강한 사람입니다 -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600억 자산가 이야기
박지형(크리스) 지음 / 체인지업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뭐라도 해보고 죽는 편이 나았다. 운이 좋으면 더 살 수도 있고 운이 나쁘면 더 빨리 죽을 수도 있다니. 저자는 자신의 인생을 운에게 맡기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말기 암이라는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은 판정을 받고도 낙담하고 불평하는 대신 처음으로 웨이크 서핑을 배우고, 전국 대회에서 우승까지 한 사실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4기 암 환자의 웨이크 서핑 도전기라고까지 부르고 싶었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강한 사람입니다>라는 제목 그대로 저자는 사형 선고를 받은 이후 10년 이상을 강하게 살아남았다. 우리는 누구나 이렇게 살아남기에 충분히 강하다. 다만 누워서 죽지 않겠다는 의지가 필요할 뿐. 저자의 영어 이름은 크리스다. 가평에 있는 크리스 월드 대표이기도 하다. 지금도 그는 절대로 누워서 죽지는 않겠다며 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모든 환자들에게 그는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10년 차 희망의 증거가 된다. 앞으로 10년을 더 살면 20년 차 희망의 증거가 될 것이다.

책 표지에는 파란색으로 <After 10 years>라고 새겨져 있다. 제발 딸아이가 태어나는 모습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었는데, 그 후로 10년을 살았다. 이제 10년만 더 살면 딸아이의 결혼하는 모습도 볼 수 있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10년 후 미래에 이 책의 2권이 나오길 꿈꾸어 본다. 3자릿수 항암 치료와 몇 번의 수술을 견딜 수 있었던 건 꼭 딸아이를 보겠다는 염원 하나 때문이었을 것이다. 1000 페이지가 넘는 진료 기록은 힘겨운 투병 생활을 증명해 주는 것 같았다.

"너무 늦었다"라는 절망적인 독백으로 이 책은 시작된다. 열어봤는데 원발암(Primary cancer)이 위(胃)를 뚫고 나와 있다. 파종된 씨처럼 복막과 몸 곳곳에 전이되어 있다. 원발암이란 암세포가 처음 발생한 부위의 암이다. 2014년, 저자는 혈액 종양내과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사형 선고를 받는다.

항암을 안 하면 6개월 항암을 하면 1년의 중앙 생존기간이 예상된다고 했다. 중앙 생존기간(median survival time)이란 전체 환자의 절반이 생존하는 기간이다. 전체 환자 중 절반이 특정 시점까지 생존하고 나머지 절반은 그 이전에 사망한다. 중앙 생존기간이 1년이라는 말은 이 암을 진단받은 환자 중 절반은 진단 후 1년까지 생존했다는 뜻이다.

평균 생존기간은 너무 오래 살았거나 너무 일찍 사망한 극단적인 값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데 반해 중앙 생존기간은 환자들의 생존기간을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가장 중앙에 위치한 값이기 때문에 같은 환자 중 절반이 생존하는 시점이라 스스로의 생존 가능성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콧줄 이름도 알았다. 이비인후과 할 때 이비는 귀(耳)와 코(鼻)를 말한다. 콧줄은 코(鼻,비)에서부터 위까지 삽입하는 튜브다. 그래서 비위관(鼻胃管)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 책을 쓰게 된 이유 중 하나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아마도 암 환자이거나, 암 환자의 가족이거나, 혹은 암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어떤 이들일 것이다. 아니면 암과는 무관한 평범한 사람들일 수도 있다. 어떤 독자이든 이 책을 통해 암이라는 병으로부터 얻게 되는 삶의 다양한 관점들을 획득할 수 있길 바란다. 암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만약 나처럼 살게 된다면 물리적인 시간 자체를 훨씬 밀도 있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암 환자도 장애 등급이 있나? 없다. 암 환자에게는 장애 등급이 부여되지 않는다. 병과 장애는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병을 얻었지만 이것이 장애는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기 암 환자라는 말이 좀 부정적으로 들렸다고 한다. 특히 환자에게는 모든 것이 다 끝났다는 느낌을 추기 때문에 4기 전이암 환자로 고쳐 쓰자고 제안한다. 말기라는 워딩이 주는 끝이라는 뉘앙스는 있던 힘마저 빼앗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암 환자들의 루틴은 대부분 비슷하다. 암에 걸리면 가장 먼저 하던 것들을 모두 멈추고 투병 생활을 한다면서 가족 등 타인에게 의존한다. TV에서도 보면 암 환자 하면 병원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며 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 선택지를 하나 더 추가했다. 굳이 하던 일을 멈추지 않아도 된다는 것. 암을 치유하기 위해 속세를 버리고 자연으로 들어가 투병하는 사람도 있고, 기도원에 들어가 금식 기도로 암에서 낫다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저자처럼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병원 치료와 병행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암 환자라는 고정 관념을 통쾌하게 깨 주셨다.

저자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누워서 보낸다면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았다고 한다. 받을 수 있는 치료는 다 받되 그 외의 시간은 움직이고 싶었다. 왜 나에게 이런 불행이 찾아왔냐며 누워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것과 죽어 있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겠는가? 계속 누워만 있게 되면 누워있지 않으면 불편해진다. 그런 무기력에서 오는 불편함을 살아서는 느끼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이듬해부터 저자는 웨이크 서핑을 하기 시작했다. 웨이크(wake)는 보트가 지나가면서 만드는 물결이다. 파도가 웨이브니까 발음이 비슷해서 금방 외워졌다. TV에서 보았던 보트 꽁무니에 줄을 매달아 그 줄을 잡고 웨이크 보드로 파도타기를 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에너지 소모가 큰 격렬한 운동이지만 물에서 하는 운동이라 다칠 일은 없다. 나중에는 하루에 서너 시간씩은 기본으로 탔다. 당시에는 완전히 웨이크 서핑에 미쳐서 결국 시작한 지 2년 정도가 지난 뒤에는 전국 대회에서 우승까지 해버렸다.

그저 그런 하루, 그저 그런 한 달, 그저 그런 일 년이 모여서 그저 그런 사람을 만든다. 흔히 말하는 성공과 실패가 여기에 달려 있다. 24시간이라는 시간은 무언가를 도전하기에는 부족한 것 같으면서도 충분한 시간이다. 내가 바라던 결과를 얻을 만큼의 충분한 시간은 아닐지라도 도전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그저 그런 날들로 채워가기 싫어서 항암 치료를 받으며 시작한 웨이크 서핑. 게다가 2년 만에 전국 대회 우승이라니! 병마와 싸워서 이겨내는 모습에, 사람이 이렇게 멋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유튜브에 크리스 월드라는 채널이 있다. 들어가 봤더니, 다양한 스포츠는 물론이고, 같은 병으로 고생하는 분들을 위하여 정기 모임도 갖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살아있는 희망의 증거로 많은 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나도 크리스 월드에 가서 웨이크 서핑 🏄‍♀️ 배우고 싶다. 처음에는 보트 옆에 있는 봉을 잡고 물 위에서 일어서기부터 배우는데 너무 신나고 재밌어 보인다. 있던 병도 싹 없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저자가 전국 대회 우승까지 한 것이 아닐까. 웨이크 서핑을 한다는 자체만으로 무한한 즐거움과 생명력이 느껴졌다.

이제는 넘버 원이나 온리 원이나 별 의미가 없어졌다. 오직 스페셜 원만이 살아남는 시대다. 사업가들이 똑똑해진 만큼 소비자들도 똑똑해졌다. 특별한 무언가가 없으면 그만큼 경쟁하기 힘든 시대다. 이 특별함을 기저에 깔고 맛이든 품질이든 가격이든 소비자의 니즈에 맞춘다면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다. 그래서 가평 빠지인 크리스 월드에는 대형 워터파크도 있고, 제트보트도 있고, 웨이크 서핑까지 할 수 있게 해 놓은 것 같다. 블로그를 검색해서 리뷰만 읽는데도 마치 내가 웨이크 서핑을 하는 것처럼 너무 신난다.

빠지는 수상 레저를 즐기는 곳이다. 나는 원래 바지(barge) 선이 뭔지도 몰랐다. 알고 보니 물 위에 뜬 대형 판자가 바지선이다. 동력이 없어서 다른 배(예인선)가 끌어줘야 한다. 동력이 없으면 그냥 물에 뜬 판때기에 불과하다. 모터보트, 바나나보트, 플라이피시, 웨이크 서핑 모두 누가 끌어줘야 한다. 그래서 예인선이 꼭 필요한 바지선에 비유해서 빠지라고 한다. 바지 사장이란 말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싶다. 얼굴마담에 불과한 사장이라서 진짜 사장이 끌어줘야 하니까?

적성에 맞지 않고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도 돈을 벌 수는 있다. 하지만 롱런하기 힘들뿐더러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엉뚱한 땅을 파면서 마치 성실하게 삶을 사는 것으로 착각하며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지 말자. 한 우물만 파서 성공하는 시대는 지났다. 그래서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

저자 역시 웨이크 서핑을 즐기며 암을 이겨냈지 않았는가! 좋아하는 것을 하다 보니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이제 내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는 것을 넘어,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흥미를 느끼는지, 나의 강점은 무엇인지를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며 노력하자.

암이라는 것은 외국에서는 감기처럼 생각한다고 한다. 어차피 우리는 결국 모두 죽는다. 그 시기가 암이라는 병 때문에 조금 앞당겨질 수도 있지만 저자처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치료를 다 하면서 일도 하고 운동도 병행한다면, 4기 전이암도 이겨낼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