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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천홍규 지음 / 바른북스 / 2025년 1월
평점 :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서로에게 추억이 돼준 하나뿐인 동생에게 이 시집을 바칩니다."
《사랑도 눈물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는 25세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동생에 대한 그리움을 4부작으로 엮은 시집이다. 있음(有)과 없음(無) 두 파트로 되어있다. 동생이 있었음을 노래하던 시인은 네가 없음을 슬퍼하다 아파하다 끝내는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천홍규 시인의 언어는 간결하고 쉽고 진솔하다. 이별을 경험한 모든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누구나 공감이 된다. 가식적이지 않아 좋다. 꾸밈없이 담백해서 더 가슴 뭉클하다.
<곁 1>
텅 빈
보금자리
사라진
곁
(p.32)
어쩌면 상처와 슬픔과 고통을 극복하려는 일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시인은 그것이 잘 안되나 보다.
<그것>
가장 잊고 싶은 것이
가장 잊히지 않을 때가 있다.
그래서 잊을 것을 두고
나를 잊기 시작했다.
나를 지배한 그것은
내가 되었고
그것에서 빠져나온 나는
잊는 것을 잊은
죽은 화분이 되어 있었다.
(p.32)
이런 것을 해탈의 경지라고 하나? 죽은 화분이라는 말에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라는 시 중 까마귀가 생각났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중략)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나무 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가을의 기도, 김현승
까마귀는 죽음의 새다. 아마 동물의 사체를 먹는 모습과 죽음을 연관시켰던 것 같다. 성묘객들이 묘지에서 제사를 지내고 돌아가면 제사 음식 떨어진 것을 먹으려고 모여든 까마귀들을 보고 괜히 무덤과 연관 지어 생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죽은 화분과 마른 나뭇가지는 소멸이다. 하지만 화분에 씨앗을 심으면 꽃이 필 것이고, 봄이 되면 김현승의 시에 등장하는 마른 나뭇가지에서도 꽃이 필 것이다. 죽음은 또 다른 삶에게 내어주는 거름이 아닐까. 그것에서 빠져나온 나와 마른 나뭇가지에 다다른 까마귀는 고통에서 빠져나와서 고통을 승화시킨 해탈한 자의 모습 같다.
<기억 3>
같이 찍었던
사진이 없다.
너를 잊지 않는 방법이
사진뿐인데
(p.42)
이 시를 읽으니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에서 오이영이 엄마가 있다는 게 어디냐고 말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나는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사진도 많이 찍어놓고 동영상도 찍어 놓았다. 어떤 분이 부모가 돌아가시면 목소리가 기억이 안 난다고 꼭 동영상 찍어 놓아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정말 엄마 보고 싶고 목소리 듣고 싶을 때마다 보면 너무너무 위안이 된다.
하지만 내가 놓친 것이 있었다. 엄마 냄새. 오이영이 이제 곧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셔서 혼자 남게 될 아이에게 엄마 옷이랑 물건 많이 챙겨놓으라며 말하는 대사가 너무 감동적이어서 유튜브 검색해서 그 장면을 다시 보면서 타이핑을 쳐봤다.
"난 중학교 때
엄마가 하늘나라 천사가 됐어
아무 때나 눈물도 나구
화도 엄청나구 짜증 나서
밥도 먹기 싫어
엄마가 죽으면
가슴에 이따만한 구멍이 생기거든
아직도 있어 엄청 크게
그러니까 숨어서 울지 말고
슬픈데 웃는 척도 하지 말고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알았지?"
- 슬전생, 오이영
엄마가 쓰던 물건, 엄마 옷 버리지 말고 가지고 있을 걸 그랬다. 물건이 생각나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오이영의 대사를 받아 적으면서, 너를 잊지 않는 방법이 사진뿐인데... 사진이 없어 애통에 하는 시인의 아픈 마음이 느껴졌다. 그래서 기억하려고 잊지 않으려고 이렇게 하늘을 향해 시를 썼다 보다.
사진이 없으면 모습이 희미해지고, 동영상이 없으면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고, 물건이 없으면 추억과 함께 있던 냄새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 댕댕이 옷도 가지고 있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미신을 믿지도 않는데 왜 죽은 사람 물건 가지고 있으면 부정탄다는 말을 믿었던가! 하는 후회가...
시인의 꿈에 동생이 고양이를 찾던 모습이 나온다.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잠에서 깬다. 동생의 일기장이 놓인 주변에서 고양이가 연신 동생의 냄새를 맡고 있다. 시인은 새벽을 하얗게 밝힌다.
동생은 꿈에 나타나 고양이를 찾고, 고양이는 꿈이 되어버린 동생을 찾고, 시인은 일기장과 고양이를 보며 꿈속에 사는 동생을 찾고... 시인이 말한다.
<꿈 3>
아
너, 나, 고양이는
서로가 알아줄 수 없는
그리움을
그리워하고 있구나
(p.46)
이렇게 애타게 그립지만, 이제 다시 일어나기로 한다. 나만의 이야기로 나만의 인생을 살아 내기로 한다. 그래서 먼 훗날 하늘에서 동생을 만나면 시인이 너 없는 삶이었지만 잘 살아냈다고, 무수하게 많은 끝없는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너무>
너를 만났을 때
해줘야 할 말이
많았으면 좋겠어
너 없는 삶이
눈물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고
(p.55)
<술> 아직 살아있는 줄 아는 너이거나, 왜 죽었는지 모르는 너이거나, 없다는 것도 있다는 것도 무엇인지 모르지만, 북받친 눈물이 소주잔을 채우려 한다. 해결되지 않는 그리움에 슬퍼한다.
그리고 다시 희망을 찾아 일어난다.
<편지> 그냥 네가 어디 먼 나라로 여행하고 있겠지라 생각하다
<비가 오면 문득> 잠시만 젖어 있기로 한다.
누가 날 절벽에서 밀었다. 덕분에 날개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 동생과 나눌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서, 언젠가는 눈부신 날개를 펼쳐 그리움에게로 훨훨 날아가시기를...
